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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글 제목: 조계六祖禪師序
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3-27, (월) 11:42 am 

가입일: 2016-11-29, (화) 5:42 am
전체글: 425
六祖 - 대저 금강경이란 相 없는 것으로 宗을 삼고 머무름이 없는 것으로써 體를 삼으며 妙有로써 用을 삼음이라 달마 스님이 서쪽에서 오심으로부터 이 경의 뜻을 전하사 사람들로 하여금 이치를 깨닫고 성품을 보게(見性)하시니 다만 세상사람이 자기의 성품을 보지 못하므로 見性의 法을 세웠거니와 世人이 만약 眞如本體를 볼 수 있으면 법을 세울 필요가 없으리라.

이 경을 독송하는 자는 수도 없고 칭찬하는 자도 헤아릴 수 없으며 疎를 짓고 註解를 한 사람이 무릇 八백여 분이로되 설하신 도리는 각각 소견을 따르니, 그 견해가 비록 같지 않으나 법은 둘이 아니로다. 전생에 씨앗을 심은 上根의 사람은 한번 듣고 곧 깨닫거니와 만약 전생에 익힌 지혜가 없으면 독송을 비록 많이 해도 부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함이니, 그러므로 그 뜻을 해석하여서 학자들이 의심 끊기를 바라노라.

만약 이 경에서 뜻을 얻어 의심이 없으면 굳이 이 해설에 의존하지 않으리라. 위로부터 여래께서 설하신 善法은 범부의 착하지 못한 마음을 제거하기 위함이니 경은 성인의 말씀이라 사람들이 그것을 듣고 범부로서 성인의 깨달음에 이르게 해서 영원히 미혹된 마음을 쉬게 하시니라. 이 한 권의 經은 모든 중생들의 성품중에 본래 있건만, 스스로 보지 못하는 것은 다만 문자만을 읽고 외우기 때문이로다. 만약 본래의 마음을 깨달으면 비로소 이 經이 문자에 있지 않음을 알리라. 다만 능히 자기 성품을 밝게 요달하면 모든 부처님이 이 경으로부터 나오심을 믿으리라.

요즘 세상 사람들이 몸 밖에서 부처를 찾고 밖을 향해 경을 구하므로 마음 안에서 발견하지 못하고 내면의 經을 갖지 않을까 두려워하신 고로, 이 口訣(구결)을 지어서 모든 학자들이 안으로 마음의 경을 가져서 淸淨한 佛心이 數量을 지나서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음을 요연히 스스로 보게 하노라. 후세의 학자들은 經을 읽다가 의심이 있거든 이 解義를 보아서 의심이 풀어지면 다시 이 口訣(구결)을 쓰지 않으리라.

바라는 바는 공부하는 사람은 다같이 광석 가운데 있는 금의 성품을 보고 지혜의 불로 녹여서 잡된 광물은 버리고 金만 있게 함이로다. 우리 석가본사께서 금강경을 설하심은 사위국에 계시사 수보리의 물음으로 인하여 대자비로 설하시니, 수보리가 설하심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서 부처님께 법과 더불어 이름을 청하시어 후인으로 하여금 이에 의지하여 받아 지니게 하시니라. 그르므로 경에 이르되 '부처님이 수보리 에게 이르시되 이 경은 금강반야바라밀이라 명하노니 이 이름으로써 너희는 마땅히 받아가지라'하시니라.

여래께서 설하신 금강반야바라밀을 법으로써 이름하신 그 뜻은 무엇인가. 금강은 이 세계의 보배라. 그 성품은 매우 예리하여 능히 모든 물건을 부수도다. 금강이 비록 지극히 견고하나 고양각(산양의 뿔)이 능히 부서뜨리니, 금강은 불성에다 비유하고 고양각은 번뇌에 비유하도다. 금강이 비록 견고하고 강하나 고양각이 능히 부수고 불성이 비록 견고하나 번뇌가 능히 어지럽히고 번뇌가 비록 견고하나 반야지혜가 능히 부수고 고양각이 비록 견고해도 빈철(賓鐵)이 능히 파괴하나니, 이 이치를 깨달은 자는 요연히 견성하리라. 열반경에 이르되 불성을 본 사람은 중생이라 이름하지 않고 불성을 보지 못한 자를 중생이라 하니 여래가 설하신 금강의 비유는 다만 세인들의 성품이 견고하지 못해서 입으로 비록 경을 외우나 밝은 빛이 나지 않음이라. 밖으로 외우고 안으로 행하여야 광명이 가지런히 고르고, 안으로 견고하지 않으면 정과 혜가 균등하리라. 이 이름이 구경(이곳에선 제일 또는 원만 성취를 뜻함)이니라.

금이 산중에 있으나 산은 이 보배를 알지 못하고 보배 또한 이 산을 알지 못하니, 무슨 까닭인가 성품이 없기 때문이니라. 사람은 성품이 있어서 그 보배를 캐서 사용하되 金師(연금사)를 만나서 부수고 뚫어 산을 파헤치고 광석을 꺼내어서 녹이고 단련하여 드디어 순금을 얻어서 마음대로 사용하여 가난을 면하게 되느니라. 四大로 된 몸속의 불성도 그러하여 몸은 세계에 비유하고 人我는 산에 비유하고 번뇌는 광석에 비유하며 불성은 금에 비유하고 지혜는 工匠(장인)에 비유하며 정진용맹은 부수고 뚫는 데 비유하느니라. 몸의 세계 중에 人我의 산이 있고 인아의 산중에 번뇌의 광물이 있으며 번뇌 광물 중에 불성의 보배가 있고 불성의 보배 중에 지혜의 工匠이 있으니, 지혜의 공장으로 써서 人我의 산을 뚫고 번뇌의 鑛을 발견해서 깨달음의 불로써 잘 단련하여 자신의 금강불성이 요연히 밝고 깨끗함을 보리라.

이런 고로 금강으로 비유해서 이름하시니, 헛되게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이름만 있고 實體가 없음이요, 뜻을 알고 행을 닦으면 이름과 體가 갖추어지도다. 닦지 않으면 범부요 닦으면 곧 성인의 지혜와 같은 고로 금강이라 하시니라.

반야는 무엇인가. 이것은 범어이니 唐言으로는 지혜이다. 智란 어리석은 마음을 일으키지 않음이요 慧란 그 방편이 있음이라. 慧는 智의 體이고 智는 用(씀)이니, 體에 만약 慧가 있으면 智를 쓰는데 어리석지 않고 體에 만약 慧가 없으면 어리석음을 써서 智가 없음이니 다만 우치로 말미암아 깨닫지 못하므로 드디어 지혜를 빌려서 우치를 제거함이니라.

무엇을 바라밀이라 名하는가.
唐言에 到彼岸이니 도피안이란 생멸을 떠난다는 뜻이니 다만 세인의 성품이 견고하지 못하므로 인하여 일체의 법에 대해 生滅(여기에선 상대적인 것을 뜻함)하는 모습이 있으므로諸趣(육도)에 유랑해서 진여의 땅에 이르지 못하므로 이를 이 언덕(彼岸)이라 한다. 종요로 이 대지혜를 갖추어 일체법에서 원만하게 생멸을 떠나면 곧 저 언덕에 이르는 것이로다. 또한 말하기를 마음이 미하면 차안이고 마음을 깨달으면 피안이며 마음이 삿되면 차안이고 마음이 바르면 피안이니,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행하면 곧 자기 스스로 법신에 바라밀이 있는 것이요, 입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곧 바라밀이 없는 것이니라.

經이란 무엇인가. 경이란 經(길)이니 부처가 되는 길이라 (이 길을 통해서 성불[깨달음, 저 언덕]에 이른다). 무릇 사람이 이 길을 이르고자 하면 응당히 안으로 반야행을 닦아야 구경에 이르려니와 만약, 혹, 다만, 능히, 외우고 말하기만 하며 마음으로 의지하여 행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에 經이 없음이요. 실답게 보고 실답게 행하면 자기 마음에 경이 있음이니, 그러므로 이 경을 여래께서 [금강반야바라밀]이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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