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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11-29, (화) 5:4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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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불교학회 세미나 원고 / 장휘옥(章煇玉)
불교수행의 세계적 현황과 그 미래
2004. 5.21

1.1. Ⅳ. 유럽 명상센터에서의 수행과 인터뷰

1.1.1. 1. 프랑스
1.1.1.1. 1) 틱낫한 스님의 플럼 빌리지
플럼 빌리지는 베트남의 유명한 틱낫한 스님이 1982년 프랑스 보르도 지방에 세운 명상수련센터이다. 이곳에선 현재 틱낫한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세계 각국의 비구‧비구니 스님 120명이 함께 생활하고 있으며, 일반인들도 머물며 수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플럼 빌리지는 종교를 불문하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공동체 생활을 익히게 하면서 사랑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이곳의 수행 프로그램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참가하는 수련회는 7월 초에 시작되어 4주간 계속되는 여름 수련회이다. 이 기간 중에는 거의 똑같은 내용으로 된 1주일 코스가 반복적으로 시행된다. 1주일에서 ‘게으름의 날’(Lazy Day) 하루를 뺀 6일 동안 매일 오전 중에 진행되는 틱낫한 스님의 법문 내용만 조금 다를 뿐이다. 플럼 빌리지에 머물며 1주일 코스 수행 프로그램에 참가하였다.

1.1.1.1.1.1. ① 오리엔테이션
법당으로 갔다. 100명 남짓 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동양인은 한국인뿐이었다. 우리 일행과 우리보다 1주일 먼저 와 있던 불문학 전공의 여교수님 한 분이 전부였다. 모두 눈을 감고 바닥의 매트에 편안히 눕게 한 다음 긴장을 풀게 했다. 플럼 빌리지 비구니계의 최고 어른인 찬콩(Chan Khong, ‘眞空’의 베트남식 발음) 스님의 자애로우면서도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플럼 빌리지 전체에 일반 참가자 600여 명 정도가 모였습니다. 조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 순간 행복을 느끼십시오.”

이어 찬콩 스님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가 마음을 턱 놓게 했다. 모차르트의 자장가, 프랑스 어린이들의 동요 등 영어와 불어로 여러 노래를 부르셨다. 어디선가 코고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완전한 휴식’(Total Relaxation) 수행이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쉴 시간이 있어도 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쉬는 것도 이제 수행이 되어버렸다.

찬콩 스님의 뒤를 이어 젊은 비구니 스님이 오리엔테이션을 하였다. 여기서의 의사소통은 주로 영어 아니면 불어로 이루어졌다. 내용은 대강 이랬다.

1.1.1.1.2. 마음이 긴장하면 몸도 긴장한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억압하지 말고 받아들여서 알아차려라(to aware). 몸에서 일어나는 것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음식을 먹을 때는 음식 맛과 씹고 삼키는 동작을 알아차려라.

1.1.1.1.3. 말이나 걸음걸이, 먹는 동작은 되도록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잘 알아차릴 수 있고 에너지를 보존하게 된다. 걸을 때나 식사할 때는 ‘숭고한 침묵(noble silence)’을 지켜야 한다. 좌선할 때는 편안히 앉되 불편하면 자세를 바꾸어도 된다. 앉아서 들숨과 날숨을 알아차려라. 타인에 대한 판단을 멈추고 사랑이 듬뿍 담긴 말을 하라. 긴장을 풀고 들어 봐라. 몸과 마음이 말하는 것을 들어 봐라. 듣는 것은 예술이다.

바닥에 앉아서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있는 자세들이 과히 이국적이었다. 맨 앞의 여성은 큰 대자로 벌렁 누워서 듣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발을 앞으로 죽 뻗는 등 자유방임형(?) 포즈들을 취했다. 오리엔테이션을 들어보니 여기의 수행 내용은 위빠사나 수행과 비슷했다.

1주일 간의 수행 일정표를 보니, 수행 기간 중 기상 시간은 아침 5시, 취침 시간은 오후 10시 30분이었다. ‘게으름의 날’을 제외한 6일 동안 매일 아침 45분간의 좌선 겸 경전 독경이 있었고, 2시간 30분에 걸친 틱낫한 스님의 법문이 5일간 있었다. 걷기 명상, 즉 행선 시간은 1주일을 통틀어 4시간. 선이나 위빠사나 전문 수행 센터에 비해서 좌선과 행선에 할당되는 시간이 굉장히 적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독참이나 개인 인터뷰도 없었다.

그럼 나머지 시간에는 무엇을 할까? 일정표에는 ‘울력명상(Working Meditation)’ 매일 1시간 15분, ‘진리 토론(Dharma Discussion)’ 1주일 동안 3시간 45분, ‘대지와 접하기(Earth Touching)’ 등이 있었다.

1.1.1.1.3.1. ② 틱낫한 스님의 법문
1주일 수련기간 중 5일 동안 매일 2시간 30분에 걸쳐 있는 틱낫한 스님의 법문은 수련회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수련자들의 호감도도 가장 높았다. 이 시간이 없다면 참가하는 수련자들의 숫자에도 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스님은 베트남어와 영어와 불어를 순서대로 돌아가며 사용하셨다. 세계적으로 불교를 홍포하는 데는 역시 외국어, 특히 영어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여기서도 실감할 수 있었다. 동시통역은 플럼 빌리지에 거주하는 스님들이 했다.

연단에 오르신 틱낫한 스님은 침묵 속에서 차를 한 잔 마셨다. 모두들 침묵 속으로 함께 빨려들어 갔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니 차분한 어조로 법문을 시작하셨다.

1.1.1.1.4. 부모님은 우리 밖에도 있지만 우리 세포 하나하나에도 있습니다. …… 나는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 하므로, 내가 숨 쉴 때 이들과 함께 숨을 쉽니다. …… 걸을 때도 부모님과 붓다와 함께 걷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집중이고 알아차림이요 자유입니다. …… 과거의 아쉬움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후회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걸으십시오. 그것이 바로 깨어있음이요 알아차림입니다. 자유가 없이는 행복도 없습니다. 혼란과 증오와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 현순간을 알아차리며 걸으십시오. ……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란, ‘모든 것과 분리된 나(Separate Self)란 없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은 조상과 미래 세대에 영향을 미칩니다. 당신의 자녀를 위해 수행하십시오. 수행은 책임입니다.…… 내가 딛는 모든 발걸음과 내가 쉬는 한 숨 한 숨이 조상과 미래 세대를 위한 공양이 되도록 합시다.

플럼 빌리지 수행 프로그램이 무엇을 지향하느냐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법문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을 호흡과 걷기 명상을 통해 알아차리고, 모든 존재가 그물처럼 연관되어 있다는 자각 하에 더불어 살 수 있도록 이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지향점을 몸에 붙도록 하는, 보다 집중적이며 밀도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는 게 1주일 수행 전체 과정을 통해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았다.

1.1.1.1.4.1. ③ 울력명상
오후 3시부터 4시 15분까지 1시간 15분 동안은 울력명상(Working Meditation) 시간이었다. 각자의 그릇을 씻고, 분담된 일을 할 때도 명상을 해야 한다. 그것이 울력명상이다. 일을 빨리 해치워야 할 의무로 보는 것이 아니라, 일과 하나 되어 음미하고자 함이 그 목적이다. 뿐만 아니라 타인과 함께 공동체의 일을 사이좋게 함께 할 수 있는 자질을 길러주기 위함도 그 목적 중의 하나이다.

1.1.1.1.4.2. ④ 진리토론
오후 4시 30분부터 1시간 15분 동안 사흘에 걸쳐 수행 가족이 한 자리에 모여 ‘진리 토론(Dharma Discussion)’을 하였다. 비구니 스님도 서너 분 참가하여 사회하고 질문에 대답하였다. 그날의 법문에 대해서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거나, 자신의 힘든 인생사를 토로하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40대 후반의 이스라엘 직장 여성은 아들과 어머니 둘 다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다. “아들과 어머니 돌보랴, 직장 생활하랴, 정말 힘들어요.” 그녀가 제일 먼저 울음을 터뜨렸다. 금발의 50대 미국인 여인은 직업이 노인 카운슬러였다. “너무도 빡빡한 하루하루가 힘들어요.” 그녀는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찬콩 스님을 개인적으로 인터뷰 했을 때, 이곳에는 인생의 큰 전환기를 맞이한 사람, 방황하거나 큰 슬픔을 안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했다. “그들과 친구가 되어주는 것이 성직자가 해야 할 일이 아니겠어요?” 찬콩 스님의 말씀이었다.

삶이 만만치 않음은 여기에서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푸른 초원 위로 흰 구름이 한가롭게 떠가고 분홍빛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 있는, 평화롭기 그지없는 곳이었다. 토론장에서나 한밤의 뜰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평소에는 밝은 표정으로 미소 짓던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애환을 품고 있었다.

1.1.1.1.4.3. ⑤ 대지와 접하기
저녁 식사 후 오후 7시 45분부터 10시까지 ‘완전한 휴식’과 ‘대지와 접하기’(Earth Touching)가 있었다. ‘대지와 접하기’는 1주일 동안 한 번 있는 수행이다. 오체투지하듯이 땅에 엎드려 대지와 한참 접하면서 명상했다가, 또 일어서서 한동안을 명상하는 수행이다. 대지에 엎드려서는 조상과 영적 부모, 은인, 지인 등 모든 존재가 나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조상한테서 물려받은 부정적인 것을 땅에 내려놓고 긍정적인 에너지는 몸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 그 긍정적인 에너지를 타인이나 나무, 비참한 존재 등에게 보낸다. 자기가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에게까지도 보낸다. 상대가 아무리 잔인하더라도 그는 나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가깝기 때문이다. 일어서서는 조상의 구체적인 장단점을 생각해내어 단점은 내보내고 장점은 받아들인다.

1.1.1.1.4.4. ⑥ 게으름의 날
5일째는 ‘게으름의 날(Lazy Day)’이었다. 이 날은 게으르면 게으를수록 수행을 잘하는 날이다. 1시간 15분 동안의 울력명상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것도 하지 않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아무런 계획도 세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그 날이 펼쳐지도록 허용하되, 알아차리는 수행은 해야 한다. 2~3시간 좌선을 해도 된다. 거의 온종일을 알아차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보내는 날이다.

선이나 위빠사나 집중수행에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수행한다. 수행의 8부 능선까지는 성실하기만 하면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마지막 고지에 이르는 나머지 구간은 거리는 짧을지 모르나 단순한 성실함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다. 초인적인 에너지와 죽음도 마다 않는 정신력이 필요하다.

스승은 이때 본인 혼자서는 도저히 해 낼 수 없는 일을 해낼 수 있도록 이끈다. 고지에 올라섰을 때에야 스승의 고마움을 뼈저리게 안다. 자신을 여기까지 올려다 놓은 스승에게 진정 눈물 흘리며 감사드리고 싶은 때가 바로 그때이다. 수행이 어느 정도 단단히 익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루를 스스로에게 맡긴 다음 다시 수행하라는 것은, 여름휴가 다녀와서 스트레스 받지 말고 첫 출근하라는 것과 같지 않을까.

솔직히 말해, 게으름의 날에 개인적으로는 플럼 빌리지에서 의도한 대로 그렇게 수행이 잘 되지 않았다. 그저 일요일과 같이 하루 쉬는 날이라는 정도의 느낌이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랬다. 어떤 사람은 하던 수행도 이 날이 있어 리듬이 깨어져 버렸다고 했다. 가족끼리 온 사람들은 휴양지에서의 하루처럼 보내기도 했다. 초보자들에게는 너무 이상적인 프로그램이 아니었을까?

1.1.1.1.4.5. ⑦ 틱낫한 스님과의 개인적 만남
마지막 날 틱낫한 스님을 개인적으로 만나 인터뷰했다. 80이 다 된 연세에도 아직 굉장히 정정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그 연세로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말씀에는 힘이 배어 있었고 지적 능력은 새벽별과 같았다. 열여섯 나이에 출가하여, 1960년대에는 전쟁에 휘말린 조국 베트남의 죽어가는 동포들을 위해 전세계를 돌며 전쟁에 반대하는 연설과 법회를 열어 노벨 평화상 후보로 올랐고, 1970년대 초반 파리평화회의에 불교 대표단 단장으로 참가한 이후부터는 프랑스의 시골 농장에 조용히 머물며 세상 사람들을 가르쳐 온 그의 삶이 빛나는 두 눈에 그대로 영글어 있었다.

스님과의 인터뷰 내용 중 필요한 부분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대중적이었다. 다시 말해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었다. 화두나 사띠는 그 사람의 근기와 상관없이 집중을 유지시켜 주는 데 도움을 준다. 화두가 상근기만을 위한 것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에는 동조할 수 없다. 화두를 드는 모든 사람은 집중을 유지시키는 데 도움을 받는다.

현대인들은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고 긴장하는 데 익숙해 있다. 그들은 이러한 일상생활을 멈출 수 없다. 이곳에서 하는 ‘게으름의 날’은 현대인들의 이런 경향을 치료하는 훌륭한 약이라 할 수 있다.

1.1.1.2. 2) 성일(性日)∙법천(法泉) 부부
송광사 구산 스님 밑에서 한국의 선(禪)을 수행했던 프랑스 여성인 전 성일 스님과 영국 남성인 전 법천 스님 부부. 프랑스 보르도에 있는 이 부부의 집에 머물며 ‘유럽 불교의 현황’, ‘한국선의 강점과 약점’, ‘선과 위빠사나’, ‘두 사람의 불교입문 동기’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성일과 법천은 법명인데, 성일의 본명은 마틴 배츨러(Martine Batchelor, 결혼 전: Martine Fages), 법천의 본명은 스티븐 배츨러(Stephen Batchelor)이다. 성일 스님은 약 10년간, 법천 스님은 약 4년간 송광사에서 좌선했다.

두 사람은 1985년 환속하여 결혼한 이후, 영국과 프랑스 등지의 명상센터와 대학에서 한국선을 중심으로 불교명상 수행을 지도하는 한편 활발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스티븐 씨는 한국에 오기 약 8년 전에 티베트 망명 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출가하여 티베트 승려가 되었고, 출가 전을 포함하여 약 10년 간 티베트불교의 교리를 배우고 수행했다. 마틴 씨는 프랑스 방송국에 출연하여 불교를 강의하기도 한다.

1.1.1.3. 3) 파리 관음사
우리 나라 숭산 스님의 제자인 미국인 우봉(宇峰) 스님이 운영하는 파리 관음사를 방문하여 우봉 스님과 인터뷰했다. 우봉 스님이 영어와 불어를 섞어가며 말씀하셨다.

1.1.1.3.1. “아시아에서는 서양 문명, 즉 가톨릭이나 기독교를 더 현대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서양에도 당연히 인간의 근원적인 고뇌가 있습니다. 서양의 교회는 수행하는 곳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기복 차원에서 교회에 갑니다. 교회에서 순간적인 평안은 얻지만, 또다시 무언가를 달라고 해서 얻어야 욕구가 충족되지요. 그래서 일반인뿐만 아니라 신부와 목사까지도 근원을 찾아 참선을 합니다.

1.1.1.3.2. 나는 선 관련 책을 보면서 선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티베트 불교의 금강승 수행을 했습니다. 1년간 미국에 있는 티베트 절에서 수행하다가 1971년 21세 때 숭산 스님을 만나 지금까지 한국선을 닦고 있습니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 문화를 중시합니다. 티베트어도 배워야 했지요. 그러나 숭산 스님의 선은 현실과 바로 직결되어 있었고, 매우 강렬했으며 살아 있었습니다.

1.1.1.3.3. 여기서는 숭산 스님의 가르침 그대로 선을 지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선을 수행하고부터는 그들의 일상생활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생생하게 경험하고 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의문점이 바로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이 뭣꼬’ 화두나 ‘관세음보살’ 염불이나 ‘옴마니 반메훔’의 진언이나 모두 다 똑같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나이프나 포크로도 먹을 수 있고 손으로도 먹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음식을 먹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화두나 염불이나 진언이나 결국은 같습니다. 우리 관음사에서는 사람에 따라서 참선과 염불을 번갈아 시키기도 합니다.

1.1.1.3.4. 일상생활을 안락하게 하는 것만으로는 선이라 할 수 없습니다. 해탈까지 가서 남을 돕는 것이 선이고, 보살행이 불교입니다. 프랑스에서 선은 인기가 있지만 좋은 느낌을 주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불교가 아닙니다.

1.1.1.3.5. 선은 불교에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 선도 될 수 있고 유대교 선도 될 수 있지요. 컵 속의 물이 설탕물도 소금물도 될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선에 집착하면 또 하나의 고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봉 스님은 우리와 인터뷰를 마치자 곧 선원을 나섰다. 밤차를 타고 폴란드로 가서 집중수행 기간 동안 선을 지도해야 한다고 했다.

1.1.1.4. 4) 파리 길상사
파리에 있는 한국 절 길상사를 방문했다. 법정 스님이 파리에 세우신 절이다. 주지 무이(無二) 스님과 고(故) 혜암 종정스님의 제자 지도(知道) 스님을 만나 ‘한국 불교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프랑스와 영국 불교의 동향’, ‘선에서 지혜가 발현되는 과정’, ‘화두선과 염불선’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인터뷰 내용은 지면 관계상 생략한다.

1.1.2. 2. 스위스
1.1.2.1. 1) 중관학의 세계적 거장, 자크 메 교수
중관학의 세계적 거장, 스위스 로잔대학의 자크 메 교수와 그의 자택에서 9일 동안 함께 생활하면서, 생활 속에 용해되어 있는 그의 정신세계와 삶의 철학을 접하고, 인터뷰했다.

자크 메 교수는 세계적인 불교학자로 스위스 로잔 대학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재직하다 정년퇴임하였다. 그는 중관사상, 쉽게 말하면 불교의 공(空)사상 전문가로서 세계적인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산스크리트와 티베트어로 전하는 월칭(月稱)의 쁘라산나빠다(Prasannapāda, 淨明句)에 대한 번역은 아직도 고전에 속한다. 쁘라산나빠다는 용수의 중론(中論)에 대한 주석서이다.

자크 메 교수는 일흔이 넘은 나이지만 그는 철저히 현역 때와 같은 일과표에 따라 생활했다. 오전 6시 기상, 오전 7시 아침 식사, 정오에 점심 식사, 오후 6시에 저녁 식사, 오후 11시 취침. 나머지 시간은 두문불출하고 연구실에만 계신다. 요즘은 중국 화엄의 대가 이통현 장자의 화엄사상과 중관사상의 연관성에 대해 연구하신다고 했다.

자크 메 교수는 장시간에 걸친 인터뷰에 성심 성의껏 응해 주었다. 평소 그의 처신으로 볼 때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불교의 핵심 교리와 함께 유럽에서 불교학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인터뷰이므로 전문을 싣는다.

자크 메 교수와의 인터뷰
“불교를 전공하게 된 동기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10살 때부터 부모님의 서재에 있던 알렉산드라 다비드넬(Alexandra David-Neel)의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특히 책에 나오는 ‘반야바라밀’이라는 단어를 본 순간 강렬한 어떤 느낌이 듭디다. 프랑스 사람인 알렉산드라 다비드넬은 서양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비구니가 된 사람이고 모험가이기도 합니다. 그녀는 티베트 입국이 금지되어 있던 당시 상황에도 불구하고 티베트의 라사를 최초로 방문한 서양 여성이었습니다. 유럽 불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사적 인물이죠.

102살까지 생존했던 그 분을 임종 2년 전인 1968년에 직접 찾아가 뵈었습니다. 1968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 있는 해였습니다. 파리문화혁명이 있었던 해이고, 제가 일본에서 돌아와 로잔 대학의 교수가 된 해이기도 합니다. 만났을 당시 그녀는 류머티즘으로 고생하고 있었지만 100살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식만은 생생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불교학자인지도 모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불교에 대해 알려고 하면 단 세 가지만 분명하게 알면 된다. 그것은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이다. 이 셋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자아 때문에 인간은 괴로움을 당하게 되고, 자아 때문에 늘상 무엇이 되려고 한다. 자아를 약화시켜야 한다. 자아를 없애서, 다시 말해 아집을 없애서 무아로 되기 위해서는 항상 무상과 고를 골수에 박히도록 생각해야 한다.’

무상이라는 말이 나왔으니 재미있는 이야기부터 하나 하죠. 제 경험에 의하면 한국인과 일본인의 무상에 대한 태도가 다릅니다. 한국 사람들은 속상하는 일이 있어도 ‘무상하니까 나쁜 일은 다 지나가고 앞으로는 잘 될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기쁜 일이 있어도 ‘무상하니까 이 기쁜 일도 오래 가지 않을 것이고 또 고통스런 일이 닥칠 것이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은 낙천적 경향이 강한 반면, 일본인은 비관적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죠. 제 아내 김형희 씨를 통해 한국인의 이러한 경향을 잘 보게 되는데, 볼 적마다 저는 감명 받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 둘 중 어느 쪽 경향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야 물론 한국 사람들 쪽입니다. 한국인들은 고통을 완화시키는 사고 패턴을 갖고 있는데 반해, 일본인들은 고통을 더 강화시키는 사고 패턴을 갖고 있는 셈이죠. 한국 사람들의 사고 패턴이 더 불교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샜군요.”

“제가 불교에 입문하게 된 동기는, 10살 때 알렉산드라 다비드넬의 책을 누가 권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끌려서 읽을 정도였으니까, 타고난 저의 성향이 불교와 가까웠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춘기 때에는 철학적인 니힐리스트적 경향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니힐리스트적 경향, 즉 허무주의적 경향과 불교가 관계가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물론, 불교는 허무주의가 아닙니다. 절대적 허무주의는 논리적으로도 성립될 수 없으며 부당합니다. 무언가가 있습니다. 불교의 대철학자 용수가 말하는 공(空)은 절대적 허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는 ‘유(有)도 아니고 무(無)도 아니다’고 말할 뿐, ‘모든 것이 허무다’라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입니다. 용수의 계승자인 월칭도『쁘라산나빠다』에서 ‘우리는 나아스띠까(nāstika, 허무론자)가 아니다’라고 자주 강조했습니다. 불교와 상관없이 사춘기 때의 저는 허무주의적인 성격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오해의 여지가 있어서 염치 불구하고 여쭈어 보았는데 명확히 답변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계속 해 주시죠.”

“16살 때 인도철학의 고전『바가바드기타』연구 그룹을 만나 함께 공부했습니다. 로잔 대학에 진학해서는 희랍어와 라틴어를 전공했습니다. 로잔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파리의 소르본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희랍어와 산스크리트 전공 중 산스크리트를 택했습니다. 당시 소르본 대학에는 루이 르노(Louis Renou)와 장 필리오쟈(Jean Filliozat)라는 인도학 대가가 있었습니다. 산스크리트 전공은 다시 10개의 세부 전공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산스크리트 문법’ ‘베다’ ‘힌두이즘’ ‘브라흐니즘’ ‘불교’ 등이 있었는데, 저는 불교를 선택했습니다. 어학보다는 철학에 더 흥미가 있었기 때문이었죠.”

“불교 중에서도 중관사상을 전공하신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제가 재학할 당시 소르본 대학에는 폴 마송-누르셀(Paul Masson -Oursel)이라는 유명한 불교학자가 계셨습니다. 그 분의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를 듣던 중 무슨 책을 읽으면 좋은지 여쭤보았더니 인도철학개론을 권해 주셨습니다. 그 책의 목차 가운데, ‘반야바라밀다(Prajñāpāramitā), 마명(Aśvaghoṣa), 용수(Nāgārjuna)’라는 장이 있었습니다. 반야바라밀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지만, 마명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용수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러나 용수에 관한 내용의 첫 페이지를 읽고, 이것이 바로 내가 앞으로 연구해야 할 테마라는 영감이 들었습니다. 평생에 걸친 중관학 연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폴 교수님께서 마명과 용수에 관해 설명해 주셔서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대학에서 공부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소르본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로잔 대학으로 돌아왔습니다. 로잔 대학에서의 은사님은 콩스탕테 레가메(Constantin Regamey) 박사님이셨습니다. 그 분은 산스크리트, 티베트어, 한문, 일본어에 능통하셨고, 음악가이기도 하셨습니다. 티베트어와 한문을 그 분에게서 아주 잘 배웠습니다. 은사님께서 박사논문 주제로 어떤 것을 할 것이냐고 물으셔서, 중관학과 관련해서 쓰고 싶다고 하니, 월칭의『쁘라산나빠다』중에서 아직 번역되지 않은 부분이 있으니 그 부분의 번역을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쁘라산나빠다』를 구하기 위해 영국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에 있는 동양학 서점 네 군데에 서신으로 문의를 했더니, 세 군데로부터는 답변도 없고 파리의 한 서점에 마침 책이 있어서 살 수 있었습니다. 4년 동안 매일『쁘라산나빠다』를 연구하여 12개 장을 불어로 번역했습니다. 그것에만 매달렸기 때문에 빨리 마칠 수 있었습니다. 박사 학위도 받았습니다.”

“번역이 힘들지 않았습니까?”
“번역이 힘든 부분은 일단 건너 뛰어 다음 부분을 한 뒤, 번역하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하는 방법으로 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고 나신 뒤에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스위스 정부 장학재단으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아 일본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가기 전에 일본어를 배워야 했기 때문에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 대학의 동양학 학부(School of Oriental Studies)에서 1년 동안 일본어를 배웠습니다. 일본어, 정말 어려웠습니다.”

“언어 구조상 서양인들이 한국어나 일본어를 배우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죠. 한문 배우는 것도 어려운 일이고요. 그런데 일본어 공부하기 위해 왜 하필 영국으로 가셨나요?”

“파리를 권하는 교수님도 계셨지만, 영국이 더 좋아서 영국을 택했고……. 영국에서의 일본어 공부는 영국 장학금으로 했으니 잘 간 것 아닙니까? (웃음)”

“부모님께서는 불교 공부하시는 것에 대해 찬성하셨는지, 경제적인 지원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불교학과에 입학한다고 하면 출가해서 스님 되려고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구나 공부 잘하는 수재인 자녀가 불교학과에 들어가려 한다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거의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저의 부친은 도로를 건설하는 중소기업을 경영하셨습니다. 동양의 부모님들처럼, 저의 부모님은 자식들 공부하는데 뒷바라지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아버님은 제가 동양학 하는 것을 좋아하셨지만, 어머님은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어머님은 ‘이제, 학위도 받았으니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웃음)”

“일본에는 얼마나 계셨습니까?”

“7년 동안 있었습니다. 스위스 정부의 연구비 지원이 만료된 뒤부터는 쿄토(京都)에서『법보의림』(法寶義林, 불교백과사전)의 편집장으로 연구하고 일했습니다. 거기서 약 1년간 좌선 수행도 했습니다. 다이토쿠지(大德寺)의 오다(小田) 로오시(老師, 일본에서는 방장스님을 ‘로오시’라 부른다)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평생 불교 교리 연구를 해오셨는데, 교리 이외에 불교 수행을 해 보아야겠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습니까?”

“말씀드린 대로 일본 쿄토에 머물 때, 좌선을 했습니다. 그때 무념무상을 경험했고, 화두가 늘 자신을 끌고 다니고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화두, 즉 공안도 공(空)이지만, 늘 있습니다. 당시 쿄토 대학 사람들은 많이 좌경화되어 있어서, 불교 수행 같은 것은 멀리 했습니다. 이런 영향 때문이었는지, 좌선을 1년 정도 했습니다만, 수행이란 행주좌와 하는 것이지 특별히 따로 해야만 된다는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세계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불교는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미래 세계에서의 불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불교야말로 세계를 구제할 수 있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탐욕이 세계를 좀 먹고 있습니다. 탐욕의 근원인 자아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불교의 가르침 아닙니까? 불교가 해야 할 역할은 자아를 없애도록 이끄는 것입니다. 다른 종교도 이 역할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불교의 역할은 근원적입니다. 불교만을 고집하는 것은 또 하나의 자아이겠죠. 사람들은 자아를 없애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을 이해하지만, 세상은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불교의 방법론은 다 좋다는 것입니다.”

“유럽에서 불교는 얼마나 성행하고 있고 불교인들은 얼마나 열성적입니까? 앞으로의 전망도 함께 말씀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럽의 많은 지역에서 불교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영국과 프랑스에서 불교가 가장 성행하고 있습니다. 영국 북부인 스코틀랜드에는 티베트 불교가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런던이나 그 외곽에는 스리랑카와 타이 불교 등 동남아시아의 테라와다 불교가 두드러진 포교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스페인에도 불교가 퍼졌는데, 유명한 티베트 스님이 그곳에 환생한 것이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럽 특히 스위스 사람들 사이에 ‘선(禪)적으로 산다’는 말이 일상어로 정착되어 있다고 들었습니다. 간결하게 꾸미지 않고 사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다고 하더군요. 이처럼 유럽의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불교가 점점 확산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유럽의 불교학계로 눈을 돌리면 어두운 면이 없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영국의 경우, 대학에서 불교 전공 교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몇 해 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초기불교를 가르치던 교수가 은퇴한 뒤 후속으로 불교 담당 교수가 채용되지 않은 것이 그 일례입니다. 대학에서는 불교학 진흥에는 제도적으로 관심이 없으므로, 불교 전담 교수직을 확보하려면 엄청난 돈이 기부되어야 한다더군요.”

“학문의 세계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불교학이 유행했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르죠. 모든 것이 무상(無常)합니다. 학문이 이어져 나가려면 제자가 중요합니다. 불교학계의 거장이었던 라모트(Lamotte) 교수에게도 제자가 없어서 오랫동안 그 맥이 끊기고 말았습니다. 제가 재직했던 로잔 대학은 불교학의 중심입니다. 제가 정년퇴직한 후, 2명의 제 제자가 교수로 들어갔습니다. 또 불교학 관련 강사도 4명이나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제가 일본 쿄토에 있을 때 알게 된 스위스 여자 한 분이 불교신자가 되면서, 전재산을 희사하여 로잔대학에 불교장학재단을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로잔대학에서 불교 담당 교수가 사라질 염려는 없습니다.”

“화제를 좀 바꾸어서 불교 수행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불교교리를 모른 채 화두 하나만 들어도 깨달음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중도적이 아니고 일방적이긴 하지만, 근기가 뛰어난 사람에게는 좋은 결과를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에게는 좋지 않게 작용할 수도 있습니다. 화엄경에 나오는 53분 선지식의 가르침이 모두 다른 것처럼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각각 다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근기에 맞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갖추고 있는 불성(佛性)에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평소에 선(禪)은 중국인들이 인도의 공(空)사상을 체득하기 위해 중국적으로 고안한 것이고, 화두는 공을 깨닫기 위한 수단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분명히 그렇습니다. 공사상을 체계화한 인도의 중관사상은 철학적 요소와 선적인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저 자신은 일상생활의 삶 그 자체가 화두라고 생각합니다.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화두를 들고 있습니다.”

“마지막 질문이 되겠습니다. 서양인에게 불교가 어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우선 그 정신세계와 철학이 고차원이라는 점을 들 수 있겠지요. 다음으로는 불교 교리의 합리성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원죄와 같은 것이 불교에는 없습니다.”

“장시간 동안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었던 것에 대해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닙니다. 저에게도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1.1.2.2. 2) 티베트 사원 랍땐 최링(Rabten Choeling)
랍땐 최링(Rab brTan Chos gLiṅ, Rabten Choeling)은 스위스 브베에 있는 높이 1084미터의 뻴레겡(Pélerin) 산 정상 부근에 위치해 있다. 티베트어 ‘링’(gLiṅ)은 사원〔寺〕이라는 의미이다. 이 사원은 달라이 라마의 ‘짼샵(Tsenshap)’ 즉 철학적 조언자이며, 티베트 고승으로서는 유럽에 처음으로 가르침을 편 게쉐 랍땐 린포체에 의해 1977년에 창건되었다.

그의 문하에서 뛰어난 고승들이 수없이 배출되었고, 이중에는 서양에서 명성이 자자한 스님들도 많다. 1986년에 입적한 랍땐 스님은 인도에 망명해 있던 티베트인 부부 사이에 환생하여 지금은 이곳에서 15세의 스님으로 영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가 유럽에서 최초로 설법한 장소도 이곳이었고, 우리 나라의 구산 스님도 이곳을 방문했다고 한다.

우리가 랍땐 최링을 방문한 날은 공교롭게도 곤살 주지스님을 포함하여 많은 스님들이 오스트리아에 있는 말사에 출타하여 절에 계시지 않았다. 주지 스님께서 출타 중이셨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출신의 창춥 스님(48세)을 만나 1시간 반 가량 인터뷰를 했다. 스님의 원래 종교는 가톨릭이다. 대학 때는 아이스하키 선수를 했단다. 키는 190센티미터가 넘어 보이는 장신이었다. 대학 졸업 후 의약품 계통의 회사원으로 일하던 그에게 삶은 큰 의미가 없었다. 그때부터 인생은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가느냐 하는 철학적 의문이 들었고, 의문을 해결하려다 보니 자연히 불교에 접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교 명상 수행을 하기 위해 스리랑카의 어느 사찰에서 4개월을 보냈다. 그 후 달라이 라마가 망명해 있는 인도의 다람살라로 옮겨 몇 개월 있었는데 거기서 곧 자신의 길을 발견하고 티베트 불교로 전향했다. 이후 12년간 이곳의 랍땐 최링을 오가며 공부하다가 1997년 드디어 이곳에서 출가했다.

우선 여기 스님들의 하루 일과에 대해서 물었다. 오전 4시에 기상하여 명상하고, 7시에 아침 예불이 있다. 8시부터 12시까지는 간단한 아침 공양과 교리 강의가 있다. 오후 2시부터 3시까지는 주지 스님의 강의가 있고, 오후 3시에서 4시까지는 교리에 관한 논쟁을 벌인다. 오후 6시에서 8시까지는 예불과 저녁 공양, 8시 이후는 경전 암송 시간이다.

일과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곳 스님들은 교리 공부만 하루에 7시간 이상씩 한다. 교리로 서로 논쟁하는 시간도 1시간 있다. 경전 외우는 시간은 일과에 정해 놓고 시행하고 있는데, 혼자서 해도 되고 그룹으로 해도 된다. 교리 강의 시간에는 여러 등급으로 나누어 불교 철학과 티베트어를 배운다. 보통 스승 1명에 학생 2~3명이 한 반이 되어 수업이 이루어진다. 고급반 강의는 모두 티베트어로 진행된다.

일과표에 명상(meditation) 시간이 따로 없어서 명상은 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명상은 개인적으로 한다고 대답했다. 보통 아침 4시부터 일어나 명상하고 일과 중 틈틈이 수시로 명상한다고 했다.

랍땐 최링에서는 두 종류의 명상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첫째는 분석적 명상, 즉 위빠사나인데, 한 주제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사마타로 정(定)을 닦는 명상이다. 위빠사나와 사마타가 미얀마와 태국 등 동남아시아 불교의 수행법과 용어가 같다고 해서 수행법도 같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 티베트 불교의 ‘위빠사나’와 ‘사마타’ 수행법은 동남아시아 불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여기에서 위빠사나 수행은 스승의 설법을 듣고 그 중의 한 주제에 대해 명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예를 들어 스승의 설법 중 무상(無常)을 명상의 주제로 택했다면, 거칠거나 미세한 것 등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것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며 명상한다. 이렇게 계속 명상해 나가다 보면, 죽을 정도로 힘든 지경에까지 이르는데 이 고비를 넘기며 계속 집중하여 명상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과연 모든 것이 무상하다는 확신에 이른다.

하지만 이 확신은 생각의 차원에서의 확신이지 깨달음이 아니다.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서는 확신한 것에 대해 집중해서 명상해야 한다. ‘확신에 대한 집중’을 반복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게 된다. 사마타만 하면 분석할 수 없기 때문에 확신에 이르지 못하므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함께 수행해야 한다.

이와 같이 티베트 불교의 수행은 한 주제에서 다음 주제로 점진적으로 진행된다. 한 주제에 대해 명상하는 시간은 수행자에 따라 각각 다르다. 이러한 수행에서 스승의 지도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러므로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창춥 스님은 몇 번이나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 지금 명상하고 있는 주제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스님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위빠사나 주제에 대해서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오스트리아에서 불교가 얼마나 성행하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오스트리아에서 불교는 가톨릭과 함께 공식화되어 있다. 공식화되어 있다는 의미는 불교를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교에서는 교수를 채용하여 불교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에는 스스로 불교도라고 밝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지만 실제 불교인은 대단히 많다. 불교는 대단히 논리적이고 우리가 사는 세계에 대해 분명한 해답을 주고 있기 때문에 의식 있는 서양인들은 불교로 전향할 수밖에 없으며, 앞으로 그 수는 점점 더 불어날 것이다.

랍땐 최링에는 현재 스님이 40여 분 상주한다.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출신의 비구 스님, 프랑스와 포르투갈 출신의 비구니 스님 등 서양 스님이 20여 분, 티베트 스님이 10여 분, 그 외에 몽고 출신 스님도 계신다. 수행하고 있는 일반인을 포함하면, 14개국 출신의 수행자가 조화를 이루며 생활하고 있다.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만 해도 11종에 이른다. 한국‧중국‧일본‧대만‧베트남‧네팔 등 아시아 출신의 수행자들도 랍땐 최링을 찾는다고 한다.

이곳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수행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주말 강좌와 공개 강의, 명상 집중수련 코스도 1년 내내 개설되어 명망 있는 스승들이 지도하고 있다. 7년 과정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 티베트 불교의 철학과 논리, 논쟁, 심리, 명상, 티베트 고전어와 현대어, 승원의 전통적인 생활 등을 익히게 된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긴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 때로는 귀찮을 정도의 질문 공세에도 시종일관 평정을 유지하며 따뜻한 미소와 자애를 잃지 않았던 창춥 스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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