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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학불교학회 세미나 원고 / 장휘옥(章煇玉)
불교수행의 세계적 현황과 그 미래
2004. 5.21

1.1. Ⅲ. 한국․미얀마에서의 위빠사나 수행

우리 나라에 가장 널리 알려져 있고 우리 나라 사람이 가장 많이 수행하는 위빠사나는 미얀마의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1904~1982)와 미얀마 태생의 인도인 고엔카 지(S. N. Goenka Jī, 1924~) 계통의 것이다.

이 중 우리는 국내에서, 대만의 조지 샤오(George Hsiao) 법사의 지도로 진행된 고엔카(S. N. Goenka)의 위빠사나 10일 집중수련 코스와 마하시 사야도의 직제자이며 미얀마 양곤에 있는 찬매 예이타 수행 센터의 원장인, 우 자나카(U. Janaka, 1928~) 사야도가 직접 지도한 위빠사나 20일 집중수련 코스에 참가하여 수행하였다.

그리고 보다 본격적인 위빠사나 수행을 위해서는, 위빠사나 수행의 본고장인 미얀마에서 직접 큰 사야도의 가르침을 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얀마의 수도 양곤(Yangon)에 있는 ‘쉐우민 담마 수카 또야’(Shwe Oo Min Dhamma Sukha Tawya)로 갔다. 마하시 사야도의 직제자 중 가장 연장자였던 쉐우민 사야도(Shwe Oo Min Sayadaw)가 건립한 위빠사나 수행 센터였다.

위빠사나 수행은 주로 대념처경에 근거하고 있다. 대념처경은 수행할 때의 관찰 대상을 4가지로 규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몸(身)․느낌(受)․마음(心)․법(法)이다. 이 네 가지 관찰 대상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를 관찰 대상으로 삼는다고 해도 궁극적으로는 나머지 세 가지를 다 관찰할 수 있다. 그러나 수행 과정에서 이 4가지 중 어느 것에 더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위빠사나 수행법이 조금씩 달라진다.

우리가 여러 수행처 중에서 쉐우민 수행 센터를 택한 이유는, 이 센터의 수행은 관찰 대상 4가지 중 마음(心)에 특히 중점을 두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는 쉐우민에서의 수행을 집중적으로 소개하지만, ‘고엔카 지’나 ‘우 자나카’의 위빠사나 수행법도 관련 있는 부분에서 간략히 언급하였다.

1.1.1. 1. 쉐우민 센터의 하루 일과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있는 ‘쉐우민 담마 수카 또야’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받았다. 1인 1실이었다. 2층 콘크리트 건물에 각 방에는 모기장이 쳐진 소박한 나무침대 하나가 놓여 있는, 의외로 호화스런(?) 숙소였다. 미얀마 보통 사람들의 집에 비하자면 초현대식 건물이었다. 이런 건물이 수련원 안에 여러 채가 있었고, 남녀의 숙소는 서로 떨어져 있었다.

쉐우민 센터의 하루 일과는, 새벽 3시 30분에 기상하여 오후 10시에 취침이다. 오전 5시 30분부터 6시까지는 아침 공양, 10시 30분부터 11시까지는 점심 공양, 오전 6시부터 7시까지는 청소 시간이다. 이때는 담마홀, 자기가 머무는 방 그리고 복도를 청소한다. 오전 7시부터 8시까지는 비구 스님들은 센터 바깥으로 탁발을 나가고, 띨라신(여성 출가자)들과 일반인 수행자들은 담마홀에서 좌선한다.

점심 공양 이후 정오까지는 자유 시간으로 목욕을 하거나 빨래를 한다. 매일 아침 큰 보온병으로 따뜻한 목욕물 한 병씩을 얻을 수 있었다.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담마홀에서 법문을 듣거나 행선. 수행은 1시간 좌선 뒤 1시간 행선하는 식으로 해서, 하루에 좌선을 7시간 30분, 행선을 6시간 30분씩 한다. 행선(行禪, walking meditation)은 걸으면서 하는 수행이다.

여기는 일본의 선방처럼 직일 스님의 인경 소리를 신호로 다 함께 좌선에 들어갔다가 함께 휴식 시간을 갖는 체계가 아니다.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자율적으로 수행한다. 미얀마의 여타 이름난 수행처와 마찬가지로 여기도 100명 이상의 수행자가 함께 수행하므로 일일이 한 사람 한 사람 물리적으로 감독하기도 힘들다.

1.1.2. 2. 미얀마의 출가승들
우리 나라, 중국, 일본 등 북방 불교권에서는 평생 환속하지 않는다는 각오 하에 출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남방 불교권, 적어도 미얀마에서는 출가와 환속이 자유롭다. 일단 출가를 하면 스님으로서 철저히 계율을 지켜야 하지만 언제라도 쉽게 환속할 수 있다. 환속했다가 다시 출가할 수도 있고, 또 환속할 수도 있다. 특히 남자인 경우, 평생에 한 번은 출가를 해야 한다는 믿음이 미얀마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잡고 있다. 비구 스님과 띨라신에 대한 미얀마인들의 존경심은 대단하다.

띨라신이란 여성 출가자를 말한다. 미얀마에서는 언제부턴가 정식 비구니 교단이 사라졌다. 그래서 미얀마에서는 여성들이 출가를 해도 정식 비구니는 되지 못하고 띨라신이라는 신분의 출가자로 남게 된다. 띨라신은 ‘8계를 지키는 여성’이라는 뜻이다. 띨라신은 머리는 깎고 분홍빛 가운 모양의 승복을 입는다. 미얀마에 와서 띨라신이 되어 수행하고 있는 한국 여성분들도 더러 있었다.

미얀마 수행 센터에서는 보통 비구 스님들과 띨라신 그리고 일반인들이 한곳에서 함께 수행한다. 수행 공간이 따로 나누어져 있지도 않다.

우리가 수행 센터에 있는 동안, 여기서 단기 출가하는 미얀마 젊은이와 외국인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외국인들도 자유롭게 출가할 수 있었는데, 한국 남자분들도 여러 명 출가해서 수행하고 있었다.

미얀마의 많은 수행 센터가 사찰 기능까지 함께 한다. 쉐우민 센터도 마찬가지였다. 여기서 출가도 하고 비구 스님들은 아침 탁발이라든가 매월 보름에 하는 참회 의식인 포살 등을 이행한다. 당시 쉐우민 센터에는 23명의 비구 스님(외국인 16명)과 28명의 띨라신(외국인 21명, 우리 나라와 러시아 비구니 스님 4명 포함), 11명의 남자 수행자(외국인 4명), 42명의 여자 수행자(외국인 8명) 등 총 104명이 수행하고 있었다. 한국 수행자는 비구 스님 5명, 비구니 스님 3명, 거사 3명, 보살 3명, 우리 일행 2명까지 모두 16명이었다.

1.1.3. 3. 우 떼자니야 사야도
여기서는 절을 운영하시는 주지 스님과 법을 설하시는 사야도가 따로 있었다. 이 센타를 건립하신 쉐우민 사야도는 생전에 이미 40대의 우 떼자니야 사야도(U. Tejaniya Sayadaw)를 자신의 법을 이을 후계자로 인가하여 가르침을 펴게 했다. 우 떼자니야 사야도는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1.1.3.1.1. “두 손바닥을 맞닿게 해보십시오.” (시키는 대로 합장했다)
1.1.3.1.2. “손가락이 몇 개나 맞닿아 있습니까?”
1.1.3.1.3. “열 개가 다 맞닿아 있습니다.”
1.1.3.1.4. “닿은 부위의 느낌들이 다 똑같습니까?” (잠시 집중해서 관찰해 본 뒤)
1.1.3.1.5.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1.1.3.1.6. “어떻게 해서 그렇다고 알게 되었습니까?”
1.1.3.1.7. “손에 주의를 기울였기 때문에 알았습니다.”

1.1.3.1.8. “그렇습니다. 잠을 자거나 다른 생각에 빠져 있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하지요. 마음이 거기에 대해 작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1.1.3.1.9. “지금 마음이 편안하십니까?”
1.1.3.1.10. “조금 긴장하고 있습니다.”

1.1.3.1.11. “마음의 상태도 그처럼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일어나는 즉시 그냥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입니다. 눈으로 일일이 볼 필요 없이 마음으로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알아차린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디든지 내가 알고 싶을 때 마음을 갖다 두기만 하면 곧바로 알게 됩니다.”

1.1.3.1.12. “망상이 일어나면요?”

1.1.3.1.13. “망상이 일어나는 순간 망상이 일어나는 걸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것이 수행입니다. 망상하는 것이 습관이 된 사람은 망상이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없습니다. 단지 할 수 있는 것은 망상을 알아차리는 것뿐입니다. 망상을 억지로 없애려 하거나 일어나지 않게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망상이 일어나서 사라질 때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알아차리도록 하십시오.”

사야도께서 말씀을 이었다.

1.1.3.1.14. “무릎 꿇고 앉아있으니 다리가 아픕니까?”
1.1.3.1.15. “예, 좀 아픕니다.”
1.1.3.1.16. “그 아픔을 알아차리고 있습니까?”
1.1.3.1.17.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분명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1.1.3.1.18. “그 아픔에만 집중해 보십시오.”(1~2분 동안 다리의 아픔에만 집중했다)
1.1.3.1.19. “아픔을 바라보는 마음이 어떠합니까?”
1.1.3.1.20. “(웃으면서) 솔직히 좋지는 않습니다.”

1.1.3.1.21. “아픔이 심해지면 마음은 괴로워하고 못 견뎌하고 동요합니다. 사실 아프면 마음은 긴장합니다. 고통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과 없애고 싶은 생각 때문에 마음은 점점 더 긴장하게 됩니다. 관찰 대상을 알아차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관찰 대상을 바라보는 이러한 마음 자세를 알아차리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아픔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 마음부터 먼저 봐야 합니다.

1.1.3.1.22. 아픔과 같은 싫은 느낌이 있을 때 우선 긴장을 푸십시오. 그런 다음 ‘없어지려면 없어지고 말려면 말아라.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마음 자세로 아픔은 멀리 툭 던져놓고 그냥 단지 긴장하고 싫어하고 답답한 그 느낌(mental feeling)만 보십시오. 이런 느낌이 있을 때는 아픔을 보면 안 됩니다.

1.1.3.1.23. 위빠사나 수행은, 아픔을 없애기 위해 보는 수행도 아닐뿐더러, 마음이 잔뜩 긴장되어 있는데도 아픔만 계속 보려 하면 보이지도 않습니다. 아픔에 대한 마음 자세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마음이 평정해 지면 아픔을 봐야 합니다. 아픔을 없애기 위해 보는 것이 아니라 아픔의 참된 본질을 자각하기 위해 보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 자세부터 우선적으로 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픔 등과 같은 마음을 긴장케 하는 대상이 있을 때, 아픔은 보지 말고 그것에 대한 마음의 반응을 우선적으로 지켜보아야 함을 쉐우민 센터는 굉장히 강조했다. 대상의 본성을 관하기 전에 자신의 본성부터 먼저 보라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점은 우리가 경험한 여타 위빠사나 수행과는 다른, 쉐우민 수행의 큰 특징 중의 하나였다. 싫어하고 긴장하는 마음 상태만을 지켜보다가 마음이 평정되었을 때, 마치 옆에서 지켜보듯이 그 대상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이처럼 대상을 바라보는 마음 자세를 중시하는 것은 어떠한 관찰 대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대상이든 그 대상을 바라보는 마음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사야도는 처음 이곳을 방문한 우리들을 위해서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가셨다.

1.1.3.1.24. “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른 마음 자세입니다. 기대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고, 원하는 마음이 없어야 하며, 염려하는 마음도 없어야만 합니다. 이와 같은 마음가짐들이 관찰하는 마음속에 있을 것 같으면 수행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좋은 것도 봐야 하고 싫은 것도 봐야 합니다. 좋은 것만 원하고 싫은 것은 티끌만큼도 원치 않는다면, 그것이 어디 이치에 맞겠습니까?

1.1.3.1.25. 어떤 한 대상에 매달려서 거기에만 집중해서 본 적이 있습니까? 예를 들어, ‘화’라든가 ‘신비한 느낌’ 같은 것 말입니다.”

1.1.3.1.26. “있습니다.”

1.1.3.1.27. “한 대상에 매달려서 그것만 보고자 하는 경우에는, 원하는 것이 일어나길 바란다든가, 어떻게 되게 하거나, 없애고자 하는 마음 중 어느 하나가 도사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렇게 되면 바른 수행과는 거리가 멉니다. 알아차리는 마음의 자세만 바르면, 대상은 저절로 바른 대상이 됩니다. ‘어떤 마음 자세로 수행하고 있나?’ 하고 항시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사야도께 인사하러 갔다가 수행 지침에 대해 소상히 들었다. 최고의 답례를 받은 셈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곧 ‘사띠’(念, sati)의 수행이라 할 만큼, 위빠사나 수행에서 ‘사띠’는 대단히 중요하다. 사띠는 ‘수행상의 관찰 대상에 늘 주의를 집중하는 마음 작용’이라 할 수 있는데, ‘마음 챙김’ ‘마음 지킴’ ‘수동적 주의 집중’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확고한 사띠가 있는 곳에는 언제나 ‘분명한 앎’(正知, sampajañña)이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수행현장에서는 사띠가 ‘알아차림’으로 통용되고 있다. 여기에서는 독자들의 이해와 편의를 최우선으로 하여 사띠를 ‘알아차림’ 등으로 번역했다.

1.1.4. 4. 행선
행선은 걸으면서 하는 수행이다. 쉐우민 센터에서 가르치는 행선은 마하시 계통의 여타 사야도들의 가르침과는 약간 차이가 있었다. 적어도 우리가 경험한 우 자나카 사야도의 가르침과는 달랐다.

쉐우민 사야도와 같은 뿌리인 마하시 계통의 많은 다른 사야도들은, 명칭을 붙이는 것이 대상을 명확히 알아차리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한다. ‘명칭 붙이기(labeling)’를 알아차림의 벗이라고까지 한다. 반면, 고엔카의 수행에서는 행선은 하지 않고 좌선만 하는데 명칭 붙이기를 하지 않는다.

명칭을 붙여 가며 행선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음과 같다. 행선 때에는 발에 주의를 모아서 발의 움직임을 관찰한다. 처음에는 ‘왼발’, ‘오른발’ 하고 마음속으로 명칭을 붙이면서 움직이고 있는 한쪽 발걸음만 알아차린다.

집중이 향상되면 한 번의 걸음에서 관찰해야 할 것들이 증가한다. 발을 들어서 앞으로 이동하고 바닥에 놓는 과정을 분리하여 ‘듦’, ‘나아감’, ‘놓음’ 하고 명칭을 붙이며 관찰한다. 다음 단계에서는 똑같은 과정을 ‘(발을 들고자 하는) 의도’, ‘듦’, ‘나아감’, ‘놓음’, ‘닿음’, ‘눌림’의 5과정으로 나누어 명칭을 붙여가며 알아차린다. 한 발걸음을 떼는 시간이 오래 걸리면 오래 걸릴수록 좋다하여, 한 걸음을 관찰하는데 10분이 걸리기도 한다.

좌선할 때에는 배의 움직임을 알아차림의 주대상으로 하여, 들숨에 따라 복부가 불러오면, ‘일어남’ 하고 마음속으로 명칭을 붙이며 알아차리고, 날숨 때 복부가 꺼져 가면 ‘사라짐’ 하고 알아차린다.

그러나 쉐우민 센터에서는 행선이나 좌선에서 ‘명칭 붙이기’를 하지 않았다. 알아차리는 데는 직접 바로 아는 것이 필요할 뿐 명칭은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마음이 명칭 붙이는 데 반, 알아차리는 데 반, 이렇게 둘로 나뉘면 반씩밖에 모르게 되고 복잡해진다. ‘닿음’이라고 명칭을 붙이게 되면, 오히려 이것 때문에 전체적으로 발의 어느 쪽이 더 벌어지고 힘이 더 들어가고 하는 등의 세밀하고 완전한 느낌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한 행선할 때 발에만 주의를 집중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발이든 손이든, 한쪽 코너 끝에서 돌아설 때의 어깨 근육의 움직임이든, 걸을 때 떠오르는 생각이든 무엇이든 알아차리면 된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한 순간에 무엇이든 하나씩 놓치지 말고 세밀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다. 걸음의 속도도 평상시 속도보다 조금만 천천히 걸으면 되었다.

1.1.5. 5. 좌선
좌선을 할 때는 알아차려야 할 주대상을 하나 두는 것이 좋다고 했다. 자연스럽게 호흡하면서 콧구멍과 입술 사이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주대상으로 해도 좋고, 아니면 호흡과 함께 일어나는 배의 불러오고 꺼지는 움직임을 주대상으로 해도 좋다. 자신에게 맞는 것, 편안한 것을 선택하면 된다.

호흡 시 코와 입술 사이의 감각에 집중하는 것은 고엔카의 수행 방법이다. 초기 단계에서 코와 입술 사이의 감각에 집중하다가 수행이 진전되어 감에 따라 머리끝에서 발가락 끝까지 한 부위 한 부위를 훑어내려가면서 각 부위의 감각을 알아차린다. 고엔카의 수행은 미얀마의 고승 레디 사야도(Ledi Sayadaw, 1846~1923) 계통의 수행법에 속한다.

한편, 호흡을 할 때 배의 움직임에 주의를 집중하는 수행은 마하시 사야도 계통의 수행법이다. 쉐우민 사야도는 마하시 사야도 계통에 속하지만 코 언저리와 배 어느 쪽에 집중해도 좋다고 가르친 것이다.

좌선할 때 쉐우민 센터에서는 명칭을 붙이지 않고 코 언저리의 감각이나 배의 움직임을 1차 대상으로 관찰하면서, 몸과 마음의 다른 현상이 일어나면 그것을 충분히 알아차린 다음, 다시 1차 대상으로 되돌아가는 좌선 방식을 택하고 있었다.

좌선을 하다가 다리가 아프다 해서 처음부터 이리저리 자세를 고치면 안 된다. 다리 통증 때문에 생기는 긴장과 답답한 느낌부터 지켜보다가, 마음이 어느 정도 평정되면 통증을 지켜봐야 한다. 긴장을 풀어도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 수 없을 때는 자세를 바꾸어도 된다. 다만 자세를 바꾸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면서 서서히 바꾸어야 한다. 통증을 억지로 참으려고만 하면 더 힘들어지고 참기만 해서는 통증의 성질을 알 수 없다. 이것은 차를 운전하는데 이상한 소리가 나고 고장 난 것이 분명한데도 계속 달리는 것과 같다. 일단 멈춰 서서 고치고 난 뒤에 달려야 하듯이, 자세를 천천히 바꾸고 나서 마음을 일단 차분히 가라앉힌 다음에 통증을 봐야 한다.

1.1.6. 6. 인터뷰
위빠사나 수행에서는 수행의 보고와 점검이 있다. 수행자가 스승을 만나 자신의 수행 진행 사항에 대해 보고하고 점검받는 것이다. 이때 스승은 수행을 고쳐주고 더 나아간 가르침을 주기도 하며 더욱 향상하게끔 수행자를 격려하기도 한다. 이러한 위빠사나 수행의 보고와 점검을 흔히 인터뷰라고 부른다. 인터뷰는 이틀에 한 번 있었다. 인터뷰는 각 나라별로 그룹을 지어서 했다. 한국 사람들은 청현 스님이 통역을 해 주어서 인터뷰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인터뷰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김사업 교수가 발표한 내용을 참고하기 바란다.

위빠사나 집중수련 코스에 참가하면 외부 출입은 물론, 외부와의 연락도 금지된다. 수련센터 경내에만 머물며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 수행 기간 동안은 철저히 묵언(noble silence)해야 한다. 또한 남방 상좌부 불교의 전통대로 오후에는 식사를 못하므로 하루 두 끼의 식사를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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