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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4-18, (화) 11:09 am 

가입일: 2016-11-29, (화) 5:4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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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의 역사-4
한국불교와 쉬라마나 정신

한국불교는 지금 과도기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그것은 주도면밀하게 관찰해야 만이 이런 실상을 제대로 볼 수 있다. 현재 한국불교의 현상과 정체성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평가는 달라질 수가 있을 것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본다면, 승가공동체의 해체와 운영상의 어려움 등등 이루 말할 수 없는 난관과 현안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현대 첨단 정보사회에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점 또한 문제점이다. 게다가 미래가 매우 불안하다는 위기의식 등이다. 필자의 소견으로 보는 한국불교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회와 시대에 뒤처지는 종교로서 대중들에게 별로 어필하지 못하는 한국의 전통종교로서만이 존재하지 않을까 심히 걱정된다. 하지만, 한국 불교에는 쉬라마나 정신만은 그대로 살아있다고 본다.

사진1:면벽 좌선하고 있는 보리달마대사에게 팔을 자를 정도의 각오로 불법의 대의를 묻는 혜가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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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라마나(사문)정신과 승가공동체 정신이 아니었다면 한국불교의 정체성과 존재감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불교가 중국 전진에서 한반도 북부의 고구려에 전파되었고, 몇 년 후에는 중국 동해안의 동진에서 해로로 백제에 전파되었다. 신라불교는 고구려와 백제에서 150년 늦게 전파되었다. 삼국통일이후, 당나라 불교가 본격적으로 수입되었다. 이후 고려시대에는 송나라불교가 전파되었고, 중국 선종불교가 한반도 전역에 광범위하게 자리 잡게 된다. 이른바 5교 9산 불교가 정립되게 되었고, 조선 시대로 계승되게 되는 것이 대강의 한국불교사 스토리이다. 조선시대에 비록 숭유억불 정책으로 한국불교는 산중 불교화 되었고, 이런 전통이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데, 불교가 한반도에 수용되는 그 시기부터 지금에 이르기 까지 한국불교의 정체성은 바로 이 쉬라마나 정신과 공동체 전통이다. 지금도 이 쉬라마나 정신은 살아있다고 본다. 다만, 승가공동체가 해체되는 과정에서 이 쉬라마나 정신은 충격을 받으면서 한국불교 정체성 문제와 존립문제에 이르기 까지 뭔가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한국불교의 본질은 아직도 이 쉬라마나 정신(이데올로기)이 살아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단적인 표출은 다름 아닌 한국불교의 선(禪) 수행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해야 하겠다. 한국불교의 대중화 현대화 도시화 등등의 구호아래 한국불교의 변화와 변혁을 바라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이 쉬라마나 정신이 아직도 강하게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진단하고 싶다. 이 쉬라마나 정신이 구현되는 마지막 보루가 바로 선원이다. J종 승려(비구 비구니)가 1만 3천 명이라고 보고 2천명이상인 5분의 1 이상이 선원에서 안거를 한다는 것은 바로 이 쉬라마나 정신의 살아있음을 뜻한다. 그나마 선원에서의 안거기간에는 승가공동체가 가동되고 있다. 선원을 떠나서는 소수의 강원(승가대학)과 몇 몇 사찰에서의 승가 공동체가 존재할 뿐이다.

사진2:중국 임제종 창시자 임제의현(臨済義玄 ?〜866) 선사 초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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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딜레마는 이 쉬라마나의 공동체 정신과 불교의 현대화 대중화에 따른 승가생활의 변화에 대한 대처에서의 고민이다. 다시 말하면 선원과 일반 도시 사찰의 포교활동은 전연 다르다고 봐야하며 승가생활 방식이나 운영도 당연히 달라야 하는데, 이를 종책(宗策)이나 행정면에서 동일하게 이끌고 가려고 하는 데에서 부조화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중사찰이라고 해서 다 선원이 아니며 공동체 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구성원도 없으면서 선원이기를 바라는 것은 어딘가 초점을 잘못 맞추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물론 도시사찰이라고 해서 선원을 두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도시사찰은 전적으로 포교위주의 사찰이 되어야 한다고 본다. 산중사찰도 본사의 경우, 거의가 선원을 설치하고 운영 중인데. 본사마다 선원을 운영해야 하는가를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적어도 선원이라면 50명 이상의 승려가 함께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강원은 적어도 백 명 이상은 되어야하는데, 10명도 안 되는 강원을 운영해야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제대로 파악해야 뭔가 대책이 선다는 뜻으로 한국불교의 현재 상황을 쉬라마나의 정신으로 분석해 본 것이다. 이런 이데올로기적인 관점에서 현재 한국불교의 문제점을 풀어가야 한다는 점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다. 타종교의 선교가 잘되어서 또는 일종의 신 불교 종파의 교리가 뛰어나고 대 사회적인 포교를 잘해서가 아니라, 전통불교가 잘 못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빚어진다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불교에서의 쉬라마나 정신을 바로 보는 관점이 필요하고, 이런 쉬라마나의 공동체 정신을 어떻게 구현시키고, 운영해 가느냐 하는 데에 초점이 있다고 본다. 그런데 이런 쉬라마나의 길을 가는 것도 또한 쉽지가 않다. 그만큼 문호가 닫혀있어서 쉬라마나의 길을 가고자 하는 자들은 방황하게 되고, 제3의 쉬라마나의 길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다.


보검(http://www.haedongacademy.org :세계불교네트워크 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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