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고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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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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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고찰(6)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19, (일) 1:08 pm

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고찰(6)
성원스님

미주 한국불교의 비판적 검토
우리가 협의의 범주개념인 “미주 한국불교”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전에, 우리는 광의의 범주개념인 “미국불교”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불교”라는 용어는 매우 이질적인 범주개념인 미국과 불교라는 두 단어의 복합어로 이루어져 있다. 본 글의 핵심용어인 “미주 한국불교”는 매우 이질적인 범주개념인 미주, 한국, 그리고 불교라는 세 단어의 복합어로 이루어져 있다. 필자는 이 세가지 단어는 서로 다른 범주개념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가장 상위의 범주개념인 미국과 불교의 범주로 나눌 수 있고, 우리는 두번째 상위의 범주개념인 불교의 범주 속에 다양한 불교전통인 한국불교, 일본 불교, 티베트 불교, 중국불교, 베트남 불교, 상좌부 불교, 등을 포함시킬 수 있다. 우리는 한국불교의 다양한 전통 또는 종파를 세번째 상위의 범주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미국불교를 기술할 때, 우리는 미국과 불교의 다양한 관계성을 상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불교보다 미국에 강조점을 둘 때, 우리는 불교의 미국화에 중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미국보다 불교에 강조점을 둘 때, 우리는 미국의 불교화에 중점을 맞출 수 밖에 없다. 모든 교류는 쌍방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불교의 미국화와 미국의 불교화는 상보적인 관계를 통해서 확연히 드러날 수 밖에 없다. 인도와 중앙아시아 사람들은 불교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 상품들을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를 통해서 중국인들에게 제공하였듯이, 중국인들은 실크로드를 통해서 실크를 비롯한 자국의 다양한 문화 물품들을 중앙아시아와 인도 사람들에게 제공하였다.

근대사회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관계성은 이분법 체계의 틀 속에서 일반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다. 식민지 국가는 제국주의 국가를 본받아야할 대상으로 여기면서 자기 국가의 정체성을 지켜야했다. 한국은 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지였고, 그 기간 동안 일본을 근대화의 모델로 간주하여 한국의 근대화를 추구하였지만, 자기 국가의 정체성도 지켜야했다. 일본은 근대화라는 미명하에 문화, 정치, 그리고 경제의 측면에서 한국을 지배하였고, 한국은 일본의 침략을 막아야했다. 우리는 보편주의 입장에서 일본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한 점을 부인할 수 없고, 민족주의 입장에서 일본이 한국을 얼마나 억압하고 착취하였는 지도 고려해야 한다. 보편주의와 민족주의 입장을 동시에 고려했을 때, 우리는 근현대 한국사를 바로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선 “미국불교”를 두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 “미국불교”의 첫번째 정의는 “미국에 있는 다양한 불교전통”이고, “미국불교”의 두번째 정의는 “미국화된 불교전통”이다. 우리가 그 두가지 정의를 사용하여 얼마 만큼 정확하게 미국불교를 설명할 수 있는 지 모르지만, 필자는 우리가 이 두가지 정의를 사용하여 미국불교를 매우 효율적으로 소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필자는 우리가 이 두가지 정의를 원용하여 미주 한국불교의 당면과제를 매우 효과적으로 논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세번째 정의로 그 두 유형의 혼합형을 상정할 수 있다. 세번째 미국불교의 유형은 미국화된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그 조상들의 불교전통을 신행하는 경우이다.

첫번째 유형의 미국불교와 두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는 매우 긴밀한 상호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미국불교의 성공을 위해서, 다양한 불교전통의 미국 수입은 필요하다. 그 다양한 불교전통이 미국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그 불교전통의 토착화는 그 성공의 전제조건이다. 예를 들어, 제 14대 달라이 라마 성하 (b. 1935) 는 미국 주류 백인사회에 불교를 전파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 성하가 실천하고 있는 두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는 본인이 직접 배우고 실천한 티베트 불교의 체계화를 전제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성하는 티베트 불교 특성인 논리성과 철학성에 기반하여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불교를 가르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미국 불자들은 성하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미국사회 속에 티베트 불교를 조금씩 토착화할 수 있다.

미주 한국불교는 한국불교의 미국화를 요구하면서도 미국불교의 한국화를 요구한다. 한국불교는 미국의 문화와 언어를 통해서 미국사회 속에 수용될 수 밖에 없다. 미국은 한국불교의 수입을 통해서 미국의 문화를 풍부하게 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수입은 미국불교의 내용을 풍부하게 할 수 있다. 한국불교의 본격적인 수입은 1965년 미국정부의 이민법 개정을 통해서 가능하였다.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아시아인의 이민을 합법화한 개정된 이민법을 통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올 수 있었고, 한국불교는 그 이민자들과 더불어 본격적으로 미국에 수입되었다.

미국인들은 한국불교가 동아시아의 다른 불교전통인 중국불교 그리고 일본불교와 많은 부분에서 같으면서도 많은 부분에서 또한 다르다는 사실을 미주 한국불교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동아시아 불교도들은 한자 문화권으로 한문으로 쓰여진 동일한 경전들을 사용하지만, 일본불교는 종파주의 불교로 어느 특정 전통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실천하지만, 한국불교는 중국불교와 같이 다양한 불교전통을 동시에 연구하고 실천한다. 그렇지만, 한국불교는 중국불교와 다르게 불교 미술, 건축 그리고 의식의 측면에서 티베트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들여 한국불교의 고유한 특성을 형성하였다.

첫번째 유형의 미주 한국불교: 이민자 한국불교
첫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는 미국에 있는 불교로 정의될 수 있다. 우리는 첫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를 이민자 불교라고 말할 수 있다. 불교국가의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이민올 때, 그들은 그들이 믿고 있는 불교전통을 가지고 미국에 들어와서 본인들의 불교전통을 미국에서 실천한다. 우리는 그 첫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를 민족종교라고도 정의한다. 미국은 이민국가로, 우리는 미국사회에서 무수히 많은 종교와 종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세계의 다양한 불교전통과 종파들을 미국사회에서 매우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종교의 다양성과 불교의 다양성을 담지하고 있다.

한국계 이민 1세들이 미국에서 신행하는 한국불교는 그 첫번째 유형의 미국불교 범주에 속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모든 불교 이민자들은 본인들이 신행하는 불교전통 속에서 미국에서 불교를 신행한다. 첫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는 한국불교를 비롯하여 중국불교, 베트남 불교, 티베트 불교, 일본불교, 그리고 상좌부 불교이다. 중국계 이민 1세는 중국불교를, 베트남계 이민 1세는 베트남 불교를, 티베트와 몽고계 이민 1세는 티베트 불교를, 일본계 이민 1세는 일본불교를, 그리고 동남아시아계 이민 1세는 상좌부 불교를 신행한다. 미국은 종교 (불교) 박람회장을 방불하고, 미국불교는 어느 불교 국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불교의 다양성을 대표한다.

한국계 이민 1세 승려들과 재가 불자들이 미국에서 한국불교의 스타일로 신행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거의 대다수의 한국불교 사찰은 그 첫번째 유형의 미국불교에 속한다. 경보 스님은 미국정부가 1965년 이민법을 개정하여 아시아인들이 미국으로 합법적으로 이민올 수 있는 길을 터주기 바로 한 해 전인 1964년 미국에 입국하였다. 스님은 사실상 그리고 최초로 한국불교를 미국에 소개하였다. 그 이후로, 한국의 스님들과 불교 지도자들이 미국에 들어오시기 시작하여 주로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 불자들을 대상으로 그리고 매우 적은 경우에 있어서 미국인 불자들에게 한국불교를 소개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한국불교가 미국에 소개된 년도는 1964년으로 볼 수 있다.

경보 스님이 1964년 한국불교를 미국에 소개한 이후로, 삼우 스님은 1967년 미국에 입국하였고, 불교학자인 박성배 (b. 1933), 강건기 (b. 1940), 그리고 이장수, 재가 지도자인 이한상 (1917-1984), 그리고 선 무용가인 이선옥, 등은 1969년 미국에 입국하였다. 그 이후 경보 스님의 제자인 고성 스님은 1970년 미국에 입국하였고, 숭산 스님 (1927-2004), 법안 스님 (1932-2007) 과 정달 스님이 1972년 미국에 입국하였고, 대원 스님과 도안 스님 (1939-2006) 이 1975년 미국에 입국하였다. 비구니인 광옥 스님은 1976년 캐나다에 입국하였고, 인환 스님 (b. 1931) 은 1977년 캐나다에 입국하였다. 법안 스님은 미국 동부인 뉴욕과 필라델피아를 중심으로, 도안 스님은 미국 서부인 로스엔젤레스를 중심으로, 그리고 대원 스님은 하와이를 중심으로 한국계 이민1세 불교포교를 하였고, 그들은 한국불교의 지도자들로 초기 미주 한국불교를 정초하였다.

한국계 이민사회의 규모는 중국계 이민사회에 비해서 매우 적고, 한국인 1세들의 기독교인 비율은 중국인 1세들에 비해서 매우 높고, 그들의 불교인 비율은 매우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는 로스엔젤레스의 서래사, 남가주 샌 디마스의 자재공덕회 본부, 뉴욕의 장엄사, 샌프란시스코의 만불사, 등으로 대표되는 중국사원과 같은 대찰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한국불교의 지도자들과 불자들은 매우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미국 곳곳에 한국사원들을 창건하였다.

예를 들어, 이한상은 1973년 북가주 카멜에 현존하는 사원 가운데 가장 오래된 미주 한국사찰인 삼보사를 창건하였고, 숭산 스님은 1973년 로스엔젤레스에 달마사를 창건하여 제자인 계정 스님을 초대 주지로 임명하였고, 손영익, 최옥희, 이장수, 등은 1974년 시카코에 불타사를 창건하였고, 1972년 미국에 입국한 법안 스님은 1974년에 창건된 뉴욕 원각사를 이끌었고, 대원 스님은 1975년 호눌루루 무량사 (구명 대원사) 를 창건하였고, 도안 스님은 1974년 창건된 로스엔젤레스 관음사를 1975년부터 이끌었고, 현호 스님 (b. 1942) 은 1980년 로스엔젤레스에 고려사를 창건하였고, 설조 스님 (b. 1931) 은 1980년 북가주 샌프란시스코 지역에 여래사를 창건하였고, 일면 스님은 1983년 워싱턴 타코마의 서미사 (구명 성불사/경국사) 주지로 부임하였고, 혜성 스님은 1984년 뉴욕 백림사를 창건하였고, 도범 스님은 1992년 보스톤 문수사를 창건하였고, 백인 한국 스님인 무량 스님은 1994년 숭산 스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남가주 테하차피에 태고사를 창건하였고, 휘광 스님은 1994년 업스테이트 뉴욕에 불광선원을 창건하였고, 청화 스님 (1924-2003) 은 1996년 남가주 밴닝에 금강선원을 창건하였고, 그리고 태응 스님은 캐나다 밴쿠버에 서광사를 창건하였다.

한편, 1999년 이후 한국에서 미주로 활동 영역을 넓힌 정우 스님 (b. 1952) 은, 미주 한국불교의 기초를 세운 선각자들로 이미 입적한 숭산 스님, 법안 스님, 그리고 도안 스님의 불교활동을 계승하여 미국에서 현재 왕성하게 불교를 포교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님은 1999년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에 선연사를 창건하였고, 1974년 창건된 뉴욕 원각사, 1981년 창건된 오레곤 포틀랜트의 보광사 (구명 성불사), 2002년 창건된 아리조나 메사의 감로사, 그리고 1977년 창건된 캐나다 토론토의 대각사와 인연을 맺었고, 이상의 사찰들을 통도사 해외 포교당으로 조계종에 등록하였다. 특히 스님은 뉴욕 원각사 대작불사를 현재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경기도 안양에 본부를 두고 있는 한마음선원은 대행 스님 (1927-2012) 의 원력으로1989년 뉴욕 지원을, 1990년 로스엔젤레스 지원을, 1991년 시카코 지원을, 그리고 1993년 캐나다 토론토 지원을 개원하여 교민 포교를 하였다. 서울 능인선원의 지광 스님 (b. 1950) 은 2007년 뉴욕 근교의 턱시도에 뉴욕 능인선원을 개원하였다.

한국불교 사원들은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창건되기 시작하였고, 100여 군데의 한국불교 사원이 현재 미국 전역에 산재해있다. 거의 대다수의 한국불교 사원들이 제대로 된 사원의 틀을 가지고 못하고 하우스 사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하와이 무량사, 로스 엔젤레스의 달마사, 뉴욕의 백림사, 뉴욕의 한마음 선원, 워싱턴 타코마의 서래사, 캐나다 밴쿠버의 서광사, 남가주 테하차피의 태고사, 그리고 남가주 밴닝의 금강선원은 한국전통양식의 사원 건물을 포함하고 있다. 원각사는 한국전통양식의 사원 건물들을 건립하고 있는 중이다. 일본불교는 인도의 종교건축 양식을 받아들여 일본계 미국불교의 독특한 사원건축 양식을 나름대로 만들었지만, 한국불교는 한국계 미국불교의 독특한 사원양식을 아직까지 만들지 못했고, 한국불교의 미국화는 아직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다.

두번째 유형의 미주 한국불교: 미국화된 한국불교
두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는 미국화된 불교로 정의될 수 있다. 첫번째 유형의 미국불교가 미국으로 이민온 이민자들을 위한 불교라면, 두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는 미국에서 태어나서 자란 미국인들을 위한 불교이다. 한국의 스님들로서 1972년 미국에 입국한 이래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포교하였던 숭산 스님과 1967년 미국에 입국한 이래로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포교하고 있는 삼우 스님은 이 두번째 유형의 미국불교에 속한다. 티베트 불교의 달라이 라마 성하, 베트남 불교의 틱냑한 스님 (b. 1926), 그리고 일본 선불교의 스즈끼 다이셋쯔 (1870-1966) 는 두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다. 달라이 라마 성하, 틱냑한 스님, 그리고 스즈끼 다이셋쯔는 주로 미국인들을 위해서 불교를 포교하였고, 미국에 있는 티베트인들, 베트남인들, 그리고 일본인들을 주로 그들의 포교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미국불교의 두번째 유형은 두가지로 세분된다.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와 유태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한 백인들이 첫번째의 유형에 속한다. 그들의 종교인 기독교와 유태교를 버리지 않고 불교를 신행하는 백인들은 두번째 유형에 속한다. 필자는 두번째 미국불교 유형에 속하는 미국 불자들을 이상의 두가지 세부 유형으로 얼마나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지 아직 모르겠고, 그 세부유형을 좀 더 연구할 예정이다. 이런 점에서, 특히 두번째 유형의 미국불교의 두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는 미국의 다종교주의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다.

서구종교의 비주류인 신비주의는 이분법적 이론체계에 기반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서구종교의 주류는 이분법적 이론체계에 근거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서구의 아브라함 종교인 유태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상호 배타적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유태교 신자이면서 기독교 신자일 수 있는 가능성을 서구종교에서 상정할 수 없다. 동일한 종교적 뿌리를 가진 유태교, 기독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배타성 때문에 각 종교의 우월성과 정통성을 끊임없이 주장하였다. 그 결과, 이상의 세 종교들은 각자 자기종교의 우월성과 정통성을 다른 종교들에게 때로는 대화를 통해서 그리고 때로는 폭력을 통해서 강요하였다. 이 세 종교들은 오랫 동안 세계 평화의 암적 존재로 맹활약하였다. 그 세가지 종교를 신봉하는 근본주의자들은 본인들의 종교는 선이고, 다른 사람들의 종교는 악이라고 정의하였고, 자기들의 종교는 선양할 대상이고, 다른 사람들의 종교는 박멸할 대상으로 간주하였다. 불교와 다르게, 그들은 종교전쟁을 서슴지 않았고, 그 종교전쟁을 성전으로 미화하였다.

아시아 종교 전통인 불교, 유교, 힌두교, 도교, 신도, 자이나교, 본교, 등은 서구의 아브라함 종교가 가지고 있는 배타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아시아인들은 다양한 종교들을 동시에 그리고 아무런 갈등 없이 믿는다. 위에서 언급한 다양한 종교 전통 가운데 동아시아 종교만 예를 들어 설명하겠다. 일본인들은 정초에는 신도의 신사에 가고, 조상의 제사를 불교의 사원에서 모시고, 결혼식을 기독교의 교회에서 거행한다. 전근대 한국인들은 유교, 불교, 그리고 샤머니즘 (무교) 를 갈등관계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의 신앙생활속에 그 세가지 전혀 다른 이질적인 종교들을 체화시켰다. 중국인들은 유교, 불교, 그리고 도교를 동시에 신행한다. 위의 예시에서 볼 수 있듯이, 미국불교는 기독교인 또는 유태인의 개종을 요구하지 않고, 본인의 종교인 기독교 또는 유태교를 믿으면서 불교를 신행할 수 있도록 미국인들에게 권유한다.

숭산 스님은 1972년 미국으로 입국한 이후, 당해 10월 10일 프로비덴스 젠 센터를 개원하였고, 당해 11월 8일에는 미국인 불자들에게 재가 5계를 수여하였다. 스님은 2년 후 1974년 보스톤 캠브리지 선원을 개원하였고, 1977년 외국인 포교를 위해서 뉴욕 조계사를 창건하였다. 스님은 1981년 관음선종을 선포하였고, 1982년 프로비덴스 재미홍법원 본부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재미 홍법원 10주년 기념 세계 평화고승대법회를 개최하였고, 1984년 재미 홍법원 계간지인 Primary Point 창간호를 발행하였고, 1987년 3년에 한번씩 개최하는 제1회 세계일화대회를 재미 홍법원에서 개최하였다. 스님은 1992년 미국 홍법원 개원 2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였고, 그 기념으로 평화탑을 준공하였다.

삼우 스님은 1967년에 미국에 도착한 이후, 1968년 캐나다 몬트리올로 그의 활동 무대를 옮겼고, 1972년 토론토로 그의 활동 무대를 옮겼다. 스님은 캐나다의 토론토와 미국의 미시칸 앤 아버와 일리노이 시카코에 선련사 분원을 창립하였고, 1984년 멕시코 포교를 시작하였다. 선련사 불교운동본부는 스님의 지도로 1987년 7월 10일부터 17일까지 8일 동안미국과 캐나다에서 활약하고 있는 38명의 불교지도자와 학자들을 초청하여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북미불교세계대회를 미시간의 앤 아버에서 개최하였다. 스님은 1993년 7월 4일 토론토 선련사에서 본인의 북미포교 25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고, 1994년 12월 26일부터 30일까지 5일 동안 멕시코 포교 10주년 기념 용맹정진법회를 개최하였다.

세번째 유형의 미주 한국불교: 첫번째와 두번째 유형의 혼합형 미주 한국불교
세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로, 우리는 이상의 두가지 미국 불교 유형의 혼합형도 상정할 수 있다. 이민 1세들은 본인들이 태어나서 자라면서 신행해온 본인들의 불교전통을 신행할 수 밖에 없다. 한국계 이민 1세 불자들도 한국어로 그리고 한국 스타일로 한국불교를 신행하고 있다. 한국계 이민 1.5세 또는 2세들은 그들의 부모들과 다르게 한국의 전통과 문화가 아니라 미국의 전통과 문화 속에서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미국화되어 있다. 그들은 그들 부모들이 가지고 온 한국불교를 신행하더라고 미국의 문화적 그리고 종교적 토양 속에서 그들의 부모들이 신행하는 한국불교와 다른 한국불교를 믿지 않을 수 없다. 미주 한국불교는 한국계 이민 1.5세 또는 2세들을 위한 한국불교의 유형을 아직 창출하지 못했고, 그 유형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조차 거의 하지 못했다. 일본계 미국인들을 위해서 혼합형 미국불교를 오랫 동안 실천해온 일본불교와 다르게, 혼합형 미국불교를 실천해온 한국불교 사원은 거의 없다.

하와이 주립대학 종교학과 명예 교수인 조지 다나베는 최근 2010년 7월 5일 한 편의 조그마한 글을 써서 세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로 범주화될 수 있는 현 미주 일본불교의 미래를 매우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미주 일본불교는 일본 전통과 과감한 단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미주 일본불교는 일본에서 새로운 전통을 시작한 정토종 창시자인 호넨 (법연) (1133-1212) 과 호넨의 제자로 정토진종 창시자인 신란 (친란) (1173-1262) 과 같은 새로운 이단자 지도자들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였다. 필자는 그의 글 전문을 한글로 번역하여 아래와 같이 인용하였다:

이민자들이 일본에서 가져와 20세기 초 하와이에 이식하였던 일본불교는 매우 번성하였다. 그렇지만, 최근 25년 이상 동안, 그토록 번성했던 하와이 일본불교는 죽어가고 있고, 어느 누구도 그 죽어가는 하와이 일본불교를 부흥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른 것 같다. 하와이 각 사원 구성원들은 점차 노령화되어 가고 있고, 각 사원 구성원의 숫자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소속된 각 사원의 성직자들을 경제적으로 보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교육을 받은 젊은 성직자들은 불교를 매우 잘 안다. 그렇지만, 하와이 지역문화를 잘 모르고 영어에 익숙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와이에서 불교를 효과적으로 포교할 수 없었다. 하와이 각 일본사원을 운영하고 있는 일본계 미국인들은 영어를 잘 하고 하와이 지역문화를 잘 안다. 그렇지만 그들은 이 위기를 극복할 방안들을 모른다. 하와이의 모든 불자들은 그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그 문제의 해결에 관심이 많다. 그렇지만 걱정은 해결이 될 수 없다.

이론적으로 말해서, 불교는 보편종교이다. 그러나 일본계 미국인 그룹 이외의 다른 그룹은 하와이 일본불교를 신행하지 않고 있다. 이론적으로 말해서, 불교는 변화의 변재성을 가르친다. 그러나 하와이 일본불교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신성화된 과거 속에 굳게 닫혀있고, 어떠한 변화도 거부한다. 불교는 인도에서 발생하여 세계 방방곡곡으로 전파되었고, 새롭게 전파된 그 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였고, 인도불교 원래의 모습을 탈피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그 지역에서 탈바꿈을 하였다.

인도불교는 중국불교가 되었고, 중국불교는 일본불교가 되었다. 일본불교는 아직 하와이 불교가 되지 못했다. 일본인은 더 이상 중국으로 가서 중국불교로 교육을 받지 않고 중국불교의 전통 속에서 스님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본 불교도들은 하와이 일본불교의 성직자들은 일본에서 불교와 승려 교육을 받아 일본의 교단본부의 감독 하에 수계를 받아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와이 일본불교의 사망은 현재 진행되고 있고, 그 사망의 여러가지 주요 이유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하와이 일본불교가 일본불교 전통에 너무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필자가 하와이 일본불교의 문제점을 분석한 내용이 어느 정도 옳다면, 우리는 이론이 아니라 실천을 통해서 그 해결점을 구체적으로 모색해야 한다. 첫째, 하와이 일본불교는 일본이 아니라 하와이에서 성직자를 교육시키고 수계시켜야 한다. 하와이에 사원을 두고 있는 일본의 각 종단본부는 각 종단 소속의 하와이 일본불교 그룹이 하와이 지역에서 자율적으로 성직자들을 교육시키고 수계를 할 수 있도록 신뢰를 가지고 배려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각 종단본부는 하와이 일본불교가 자립할 정도로 이미 성숙하였고 모국의 일본불교로부터 받은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일본불교에 직접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좋은 협력적 (그리고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만약 일본의 각 종단본부가 그 종단 소속의 하와이 별원과 사원을 계속해서 통제하려고 한다면, 하와이 일본불교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클 지라도 일본의 종단본부와 (행정적 그리고 종교적) 관계를 깨끗이 청산해야 한다.

둘째, 하와이 일본불교는 전통적인 교리를 현대적 가르침으로 재해석해야 한다. 우리는 정토진종 창시자인 신란, 조동종 창시자인 도겐 (도원) (1200-1253), 정토종 창시자인 호넨, 일련종 창시자인 니치렌 (일련) (1222-1282), 그리고 그 이외의 각 종파의 창시자들과 스승들의 전적들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러나 하와이 일본불교는 그 스승들이 낙태, 전쟁, 빈곤, 건강관리, 여성권, 인종 평등, 기업 비즈니스, 정부, 게이 그리고 레즈비언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그 당시에 무슨 말을 했을까?라고 현재 이 순간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그 스승들이 여성이 예를 들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하였다면, 현대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들의 주장은 전적으로 틀리고,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부정해야 하고, 모든 사람은 불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교리 해석을 통해서, 그들의 주장을 재해석하고 수정해야 한다.

세째, 현재 하와이 일본불교의 사원에서 행해지고 있는 일본어로 된 의례는 미학적으로 매우 아름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청중은 종종 그 의례의 의미를 알 수 없다. 하와이 일본사원의 승려들과 재가 불자들은 한문으로 쓰여진 중국경전을 일본식 발음으로 독송한다. 중국어와 일본어는 맥락이 전혀 다르다. 그들은 중국어도 아니고 일본어도 아닌 이상한 언어로 한문경전을 독송하고 있다. 그러한 의례는 재가 불자들에게, 심지어 상당수의 승려들에게 미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들은 한역 경전들을 잘 취급해 그 경전들을 영어로 번역해야 하고, 영어로 번역된 그 경전들을 독송해야 한다. 그랬을 때, 각 경전의 의미는 드러난다. 감정가들은 의례의 미학을 느낄 수 있지만, 젊은이들과 이방인들은 그 미학을 맛볼 수 없다.

영어로 쓰여진 찬불가를 부르는 훌륭한 전통이 하와이 일본불교에는 있다. 그러나 지금 그 전통은 이미 고루하게 되었고, 하와이 음악 스타일과 취미는 변했다. 우리는 고루한 경건주의와 침울한 곡조를 포함하고 있는 기존의 하와이 일본불교 음악을 힙합, 컨트리 음악, 재즈, 서양 고전음악, 등으로 대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불교음악에 북, 기타, 전자 키보드, 금관악기, 등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법회에서 오르간을 연주하지만, 법회에서 사용하고 있는 음악은 매우 단조로운 리듬으로 구성되어 있고 타악기의 소리를 포함하지 않는다.

네째, 현재 하와이 각 사원의 회원은 감소하고 있고, 각 사원은 그 사원의 행사 참가자들을 증가시키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하와이 각 사원은 현재 회원들만을 위한 클럽으로 기능하고 있고, 그 사원의 행사 참가자들을 유인하려고 다각도로 노력하지 않는다. 설령 회원이 아닌 사람들이 하와이 불교사원의 행사에 참가할지라도, 그 행사 참가자 대다수는 그 사원의 회원이 되지 않는다. (회원의 경제적 지원으로 운영되는 하와이 일본불교와 다르게), 일본의 대다수 사원들은 방문객들과 관광객들을 유치하여 사원을 경영한다. 우리는 이러한 유형의 불교를 관광불교라고 부른다.

하와이는 세계적으로 매우 유명한 관광지이다. 하와이 불교 사원들이 하와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진정으로 환영하고 그 관광객들을 위한 좋은 프로그램과 훌륭한 마케팅 전략을 가진다면, 많은 사람들이 사원들을 방문할 것이다. 전통이 모두 나쁜 것이 아니다. 이렇게 했을 때, 하와이 각 일본사원은 과거에 했던 것처럼 하와이 지역사회의 중심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지역 주민들이 채팅할 장소를 제공하고, 음악, 무용, 영화, 연극, 등으로 대변되는 엔터테인먼트와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지역 주민들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사원은 그 사원의 각종 프로그램을 대중매체를 통해서 지역 주민들과 관광객들에게 널리 알리고, “방문자 환영”이라는 배너를 그 사원에 걸어놓고, 자원봉사자들을 훈련시켜, 자원봉사자들로 하여금 방문객들을 그 사원으로 안내하고 그 사원의 건축과 예술의 상징적 의미를 방문자들에게 설명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하와이 일본불교를 부흥시키고 생존시킬 다른 전략들도 분명 있을 수 있다. 우리가 그 새로운 전략들을 성공시킬 수 있을 지 성공시킬 수 없을 지는 우리가 그 전략들을 시도해본 이후에만 알 수 있다. 필자가 여기서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하와이 각 사원에서 현재 시행하고 있는 대부분의 불교활동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전통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필자는 과거를 벗어나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과정으로 전통의 의미를 해석하고 싶다. 일본의 신란, 호넨, 도겐 그리고 그 이외의 위대한 종교 지도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새로운 전통을 만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새로운 정통을 만든 일종의 이단자들이였다. 그 과정은 계속될 것이고, 이단자라고 불리워질 수 있는 용감한 사람들이 하와이 일본불교를 부흥시키지 못한다면, 하와이 일본불교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다나베의 주장은 미주 한국불교의 미래에도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고 여겨, 필자는 그의 글 전문을 번역하여 인용하였다. 미주 한국불교는 다나베의 주장을 참조하여 미주 한국불교의 미래를 준비해야할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미주 한국불교는 미주 일본불교가 겪은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번째 유형의 미국불교인 미주 일본불교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주 한국불교는 세번째 유형의 미국불교의 기초조차 세우지 못했고, 미주 한국불교는 미국 토착화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첫번째 유형의 미주 한국불교의 형태로 영구히 미국에서 사라질 위기에 놓여있다. 미주 한국불교는 첫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를 발전시키고, 세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의 한인 불자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온 후 기독교로 개종을 하고 있는 현실에서, 첫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는 현재형 미주 한국불교에 매우 중요하다. 1.5세와 2세들을 위한 두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는 미주 한국불교의 미래형일 수 밖에 없다. 일본의 선불교 그리고 티베트 불교와 다르게, 한인 교포 포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미주 한국불교는 비한인 포교를 목적으로 하는 두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를 주도적으로 창출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민불교를 극복하여 이민불교를 철저히 토착화한 미국불교의 창출이 우리 불자들의 궁극적인 과제이겠지만, 우리 미주 한국불교의 당면과제는 이 세번째 유형의 미국불교의 창출에 있다. 이 세번째 유형의 미국불교의 모델은 미주 일본불교이다. 일본불교는 19세기 말 미국에 소개되었고, 상당수의 일본계 이민 3세와 4세 또는 심지어 5세들도 일본불교를 신행하고 있다. 이민국가인 미국사회에서 몇 세대를 걸쳐서 본인 조상들의 종교 (불교) 를 고수하는 것이 좋을 지에 대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요구한다. 정토진종 서본원사파 불교는 세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를 대표한다. 우리는 이 세번째 유형의 미국불교를 통해 미주 한국불교의 당면과제와 미래를 검토해볼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인종간 그리고 민족간 결혼을 통해서 일본계 미국인들은 점차 사라질 것이고, 그 결과 일본계 미국불교는 점차 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으로 말해서, 한국계 미국인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한국계 미국 불교는 존재해야 한다. 한국계 미국불교는 100여년 이상의 역사적 그리고 종교적 경험을 축적한 일본계 미국불교를 통해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일본계 미국인 불교, 한국계 미국인 불교, 중국계 미국인 불교, 등이 먼 훗날에는 사라지고, 토착화된 미국불교라는 이름 속에 모든 불교 전통들이 용해되겠지만, 한국불교는 현재로서는 한국계 미국인들을 위한 미국불교를 창출해야할 지상과제를 가지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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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chard Hughes Seager, Buddhism in America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9), pp. 9-10. \n Lorraine Reiko Minatoshi Palumbo, “The Process of Transformation of the Buddhist Temple Architecture of the Japanese Society of Hawaii,” Ph.D. dissertation, Waseda University, 1999. 팔룸보는 본인의 박사학위논문에서 하와이 일본불교 건축양식을 다섯가지 유형으로 분류하여 하와이 일본불교의 사원 건축양식을 매우 체계적으로 설명하였다. 하와이 일본불교의 다섯가지 사원 건축양식은 하우스 사원 양식, 일본전통사원 양식, 약식 일본전통사원 양식, 인도-서구 혼합형 사원 양식, 그리고 예배당 사원 양식이다. 팔룸보의 연구 성과를 계승하여, 조지 J. 다나베와 윌라 제인 다나베는 Japanese Buddhist Temples in Hawaii: An Illustrated Guide (Honolulu: University of Hawaii Press, 2013)를 공동으로 저술하여 건축과 미술의 측면에서 현존하는 하와이 일본불교 주요 사원들을 개괄하였다. George Tanabe, “Heresy and the Future of Japanese Buddhism in Hawaii,” <http://www.patheos.com/Resources/Additi ... awaii.html">(2013년 1월 15일 접속). 전게논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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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0일; 옮긴이-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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