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고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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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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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고찰(3)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19, (일) 1:04 pm

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고찰(3)
성원스님

도진호의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참석-역사적 배경-
월간 『불교』 제 50/51 합호 (1928년 9월 1일) 는 버마 랑군에서 1929년 1월 개최될 예정인 세계불교대회의 참여신청을 독려하는 광고를 게재하였다:
“명년 (1929년) 1월 랑군에서 개최되는 세계불교대회는 버마, 스리랑카, 태국, 캄보디아, 중국, 일본, 티베트, 등의 불교도들로 조직한다는 데 목적인 즉 오직 불교를 선전함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고, 일보를 옮겨 세계를 개조하는 데 노력할 것이며 동시에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의 지혜를 인식케 하자는 것이다. …본회에서 토론할 주제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금주이고, 둘째는 매춘금지이고, 세째는 동물학대방지이고, 네째는 상공인의 부당대우 금지이고, 다섯째는 국가간 전쟁금지이다. 개최일과 개최지는 아래와 같다. …대회에 참가할 각국 승려단 또는/그리고 거사단은 속히 참가 신청을 바라며 동시 다수 참가하기를 바란다.”

한국불교도들은 세계불교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조선불교선교양종 승려대회가 1929년 1월 3일에서 5일까지 수송동 각황사에서 열렸고, 그 승려대회 참석자들은 1월 5일 중앙교무원 명의로 축전을 보낼 것을 결의하였다. 도진호는 조선불교청년회의 대표로 정토진종 본원사파 하와이교구 불교청년회의 주도로 1930년 7월 21일에서 26일까지 하와이 호놀루루에서 개최된 제1회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에 참석하였다. 한국불교도들이 사실상 세계불교대회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과 같이, 도진호는 사실상 불교청년대회에 참석하였고, 그의 대회 참석은 한국불교에 많은 반향을 일으켰다.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를 다녀온 이후, 도진호는 그 대회의 일정과 내용, 그리고 그 대회에서의 본인의 활약상을 월간 『불교』에 네차례에 걸쳐 상세히 보고하였다. 비록 그의 활동이 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와 직접적인 관련을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가 한국불교의 대표로 미국에서 개최된 국제대회에 참석한 최초의 한국승려였다는 점에서 그의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참석은 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에 매우 의미가 있다.

도진호가 네차례에 걸쳐 월간『불교』에 기고한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참가기를 주로 참조하여, 필자는 그가 그 대회에서 행한 활동상을 지금부터 소개하겠다. 조선불교청년회는 1930년 (3월) 정기총회에서 조선불교청년회의 대표를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에 파견하기로 만장일치 결정하였고, 동년 3월 조선불교 선교양종 교무원 이사회의 동의를 그리고 동년 3월 23일 선교양종 종회의 의결을 얻었고, 종회는 3,000여원의 여비로 3명의 대표를 그 대회에 파견하기로 결정하였다.

조선불교청년회는선교양종 종회가 승인한 3명의 대표를 인선하기 위해 임시총회를 개최하였고, 미국에 있는 박노영, 중앙불전 교수인 김포광 (1884-1967), 그리고 그 당시 한국불교의 유일한 월간지인 『불교』의 사원인 도진호가 3명의 대표로 선임되었다. 3명의 대표 가운데, 김태흡 (1899-1989) 은 박노영을 미국에 있는 승려로 소개하였지만, 필자는 자료의 부족으로 박노영의 기초적 인적사항도 파악할 수 없었고, 박노영이 언제, 어떻게, 그리고 왜 미국으로 갔고, 미국에 간 이후 미국에서 무엇을 했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박노영이 1930년 이전 한국불교의 승려 신분으로 미국에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국불교는 여러가지 우여곡절 끝에 아마도 예산 문제 때문에 도진호 한 명만을 조선불교청년회 대표로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에 파견하기로 결정한 것 같다. 김태흡은 도진호가 조선불교청년회 대표로 범태평양 청년대회에 참석하는 의의를 네가지로 정리하였다. 첫째, 도진호는 서구에서 열리는 국제불교회의에 한국불교 역사상 최초로 참석할 예정이다. 둘째, 그는 개인 자격이 아니고 공인의 자격으로 그 대회에 참석할 것이다. 세째, 그는 공인 가운데에서도 종단의 대표 자격으로 그 대회에 참석할 것이다. 네째, 한국불교의 대표로서 그의 자격은 출중하다.

도진호는 1930년 7월 7일 저녁 기차로 서울을 출발하여 7월 9일 일본 요코하마에 도착하여 요코하마에서 하루 저녁을 묵었다. 그는 7월 10일 오전 10시 제1회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의 동양 사무국인 동경의 불교협회 본부를 방문하였다. 도진호는 본인의 이름이 일본대표자 명단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을 그곳에서 발견하고, 조선 대표로 본인을 분류해줄 것을 동양 사무국에 요구하였다. 일본대표단은 3명의 교수와 33명의 학생대표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는 7월 11일 오전 4시 36인의 일본불교 대표들과 함께 기선을 타고 요코하마를 출발하였다. 항해 기간 동안, 그는 조선불교 대표로 본인을 위치매김하였고, 본인을 조선불교 대표로 인정해줄 것을 그들에게 주장하였다. 그 결과, 일본불교 대표들은 선상 회의를 개최하여 도진호를 조선불교 대표로 인정한다고 결의하였고, 그 사실을 무선으로 일본의 중외일보에 알렸다.

그는 일본불교 대표들과 더불어 7월 18일 하와이에 도착하였고, 하와이 지역의 영자와 일본어 각종 신문은 7월 19일자 기사에서 도진호를 일본불교 대표로 보도하였다. 그는 일본대표단의 사무장을 방문하여 각 신문의 오보를 강력히 항의하였고, 일본대표단은 하와이 지역의 각 신문사에 오보의 정정을 요구하였고, 하와이 지역의 각 신문은 7월 20일 오보를 정정하여 도진호를 한국대표로 보도하였다.

미국 대표들은 7월 16일 배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하였고, 아시아 제국의 대표들은 7월 18일 배를 타고 하와이에 도착하였고, 각국 대표들은 7월 19일 오전 9시 모임을 가졌다. 하와이불교교단연맹은 7월 19일 오후 6시 로얄 하와이언 호텔에서 각국 대표 환영 만찬회를 개최하였다. 정토진종 (서)본원사파 개교사단은 7월 20일 정오 모아나 호텔에서 각국 대표 환영 만찬회를 개최하였고, 국제불교협회는 동일 오후 7시 45분 시작하는 정토진종 본원사파 하와이별원의 영어법회에 각국 대표들을 초대하였다.

의안정리위원들이 7월 20일 오전 10시 각국 대표 가운데 선출되었고, 도진호는 총 15명의 위원들 가운데 한 명의 위원이 되었다. 그들은 하와이 불교청년회관에 모였고, 도진호도 한국 대표로 참여하여 5개의 의안을 제출하였다.

대회 경과
도진호는 제1회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가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1시간 전인 7월 21일 오전 8시 행사장에 도착하여 최남선 (1890-1957) 이 쓰고 최봉수가 번역한 소책자로 19페이지 분량인 Korean Buddhism and Her Position in the Cultural History of the Orient (Seoul: YMCA Press, 1930) 를 행사 참가자들에게 배포하였다. 최남선은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한국불교의 우수성과 독창성을 소개하기위해 51페이지 분량의 소책자인 『조선불교: 동방문화사상에 있는 그 지위』 (서울: 조선불교청년회, 1930) 를 저술하였다. 경도제국대학 영문과에서 수학하였던 유점사의 최봉수가 최남선이 쓴 한글 소책자의 요약본을 영역하였고, 도진호는 그 영역본 소책자를 하와이로 가지고 갔다.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가 7월 21일 오전 9시 정식으로 하와이 불교청년회관에서 개최되었다. 미국령 하와이 총독인 로렌스 M. 주드 (1887-1960), 177인의 각국 대표, 56인의 백인, 내빈, 방청자를 포함하여, 총 1,000명 이상이 그 대회의 개회식에 참석하였다. 그 대회는 7월 26일 오후까지 6일간 계속되었고,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주요 일정은 다음과 같이 소개될 수 있다.

대회는 7월 21일 오전 9시 시작되었다. 합창단이 찬불가를 봉송하였고, 행사 참가자들은 귀경문과 성구를 낭송하였고 찬불가 한곡을 불렀다. 식전 행사를 마치고, 개회사, 임시의장 착석, 대표자 명단 및 일정 배포, 의장 및 부의장 추천, 의장 인사, 각국 대표자의 인사, 내빈 축사, 각국 축전 소개, 각국 대표자 전원 소개, 기념 촬영, 의장 이하 각 분과위원장 그리고 각 분과위원 선출의 순서로 대회는 진행되었다. 일본 대표 1인이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인도 대표 1인, 미국 대표 1인, 일본 대표 1인, 그리고 한국 대표 1인 (도진호) 이 부의장으로 선출되었다. 당일 오후에는 각국 대표자들은 본인들이 제안한 의안의 이유를 설명하였다. (하와이 주재) 일본 총영사는 오후 4시 반부터 6시까지 파티를 열어 각국 대표들을 그 파티에 초대하였다.

대회는 7월 22일 오전 9시 속개되었고, 각국 대표자는 성명서를 발표하였고, 각국 불교청년회 상황을 보고하였다. 도진호는 조선 대표로 영문 성명서를 본회의에서 낭독하였고, 「조선불교 청년회 상황보고」를 본회의에서 발표하였고, 「조선불교 청년회 연혁개요」를 회의 참석자들에게 배포하였다. 각 분과위원회 회의가 분과위원회별로 진행되었다. 하와이 불교여자청년회는 오후 4시부터 5시까지 각국 대표들을 초청하여 다과회를 개최하였다. 조선불교청년회 대표 도진호가 낭독한 성명서는 아래와 같다:
세계는 도도하게 흐르고, 사람들은 물질을 중시하고 정신을 경시하며 이해의 경쟁을 최고로 여기고 도의의 평화를 방기한다. 동일한 불성을 소유하고 있는 중생들이 고해에 빠져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 매우 빠르게 질주하여, (우리 불교청년들이) 실로 그것을 저지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군소의 악마가 발호하고 대도가 쇠약해져 철인 석덕의 탄식이 끊이지 않는 것이 금일의 현상이다.
(우리 불교청년들이) 인아산 (人我山) 의 산마루를 안고 있는 고해의 광란을 전회하고 일체의 어리석은 중생을 인도하여 반야의 피안에 도달케 하는 것이 우리 불교청년들의 의무인 동시에 권리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불교청년들이) 한 손으로 곧 무너질 큰집을 지탱치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 불교청년들이) 하나의 노로 세계의 급류를 거슬러 항해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무명의 미로에서 방황하는 일체 중생을 광명의 성스러운 경지로 인도하기 위해, 우리 세계불교청년들은 마땅히 단결하고 협조하여 마음과 힘을 같이 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 조선불교 청년들이 일찌기 갈망하는 바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를 기회로 삼아 본인 (도진호) 가 조선불교청년의 숙지 (宿志)를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에서) 성명하게 되는 것은 실로 광영 (光榮) 에 넘치는 바이다. 현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는 일시적 친목이나 협의에 그치지 말고 보다 더 확대하고 단결하여 세계의 어리석은 중생들을 제도하는 고해의 보배로운 땟목이 되고 어두운 밤의 밝은 등불이 되기를 우리 조선불교 청년들은 충심으로 바라는 바이다. 그러하기 위해 세계의 불교청년들은 마땅히 먼저 나와 남의 차별적 편견을 제거하고 동일 불자의 평등성을 발휘하여 서로 애호하며 협조하여 대동단결을 도모하야 우리 불교의 대지를 선포하야 세계인류의 평화와 행복을 완성하고 나아가서는 만유의 해탈을 기도할지라. 이러함에 있어서는 우리 조선불교 청년들은 세계불교 청년들의 일원으로 최선의 노력을 다함을 스스로 약속하여 주저치 아니하는 바이며, 본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의 성공을 끊임없이 열망하는 바이다. (필자가 현대 한글로 다듬어 위의 인용문을 소개하였다.)

각국 불교청년회를 대표하여 성명서를 발표한 이후, 각국 청년 대표자는 각국 불교청년회의 상황보고를 시작하였다. 도진호는 조선불교청년회를 대표하여 아래와 같이 조선불교청년회의 상황을 보고하였다:
우리 조선불교청년회는 그 수가 매우 많고 활동도 다방으로 수확이 상당하지만 가장 유감되는 점은 아직 연맹을 완성하지 못해 사업진작에 다소의 통일을 결여하고 있다. 동회는 1919년 이래 조선불교 유신운동의 획기적 개혁전선 전초군이 되어 10여년간 계속적 전진으로 조선불교의 사상에 일종의 새로운 모습을 열었다. \n\n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청년운동의 수확이 아니오. 조선불교의 교단 전체의 운동인 동시에 청년운동에 미친 바 영향이 또한 적지 아니함을 부언하여 둔다.
본인은 우리 조선불교청년회의 현황 보고에 대한 시간을 절약하고 여러분의 기억을 강하게 하기 위해 「조선불교청년회 연혁개요」라는 인쇄물을 배포하였다. 그 인용문을 읽어주시기 바라며, 본인은 우리 청년회 연중행사의 몇 가지를 부가하여 여러분께 말씀드리고자 하노라.
첫째, 당회의 정기총회는 3월중 경성에서 소집되고, 모든 운동과 사업에 대한 토론과 결정이 정기총회에서 이루어진다.
둘째, 우리나라에서 매우 유행되고 있는 경기는 축구, 야구, 테니스와 같은 것이므로, 당회는 이러한 종류의 경기를 주로 하여 체육에 대한 훈련과 회합을 자주 가진다.
세째, 당회는 하계를 이용하여 각 지방의 순회 강연, 강습, 등을 열어 교리와 불교청년운동에 대한 선전을 행한다.
네째, 당회는 불타 탄생 기념축제를 음력 4월 8일 봉행하되, 선전문, 강연, 연극, 연등, 빈민 초대, 등의 여러가지 형식으로 전국적으로 성황을 이룬다. (필자가 현대 한글로 다듬어 위의 인용을 소개하였다.)

도진호는 대회 참석자들에게「조선불교청년회 연혁개요」를 배포하여 조선불교 청년회의 현황을 아래와 같이 소개하였다:
조선불교 청년운동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융희 3년 (서기 1909년) 3월 경남의 범어사, 통도사와 대원사의 청년대표 13인과 전남의 송광사와 화엄사의 청년대표 27인이 화엄사의 보제루에서 회합하여 청년회 발기에 대한 사항을 협의하였고, 영호남의 유수한 사찰의 불교청년 59인이 서기 1911년 6월 15일 경남 하동 쌍계사 팔영루에서 조선불교청년회 창립식을 거행하였다. 당회의 목적은 친목연락과 학문연구에 있고, 당회는 이후 10년간 조선불교 유신운동에 상당한 활동을 보였다.

서기 1919년 춘 3월로부터 조선불교 청년운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자는 공감대가 있었고, 전국불교 청년대표 257인이 동년 6월 22일 경성 조선선종 교당의 대강당에서 조선불교청년회 창립식을 거행하였다. 전자와 후자의 명칭은 동일하지만, 두 조직은 그 목적과 성질에 있어 다소의 차이를 가졌다. 전자는 남방의 불교에 한하고, 후자는 전국적이다. 양적으로 대소만 상이할 뿐만 아니라, 후자의 목적 및 사업의 거의 전부는 조선불교의 유신운동을 통해 세계불교운동의 전선을 촉진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회는 조선불교유신회라는 별개기관을 특설하고 한국불교의 교정과 쇄신을 추진하였다. 동회가 최근 10년간 유신운동의 전초선상에 분주한 결과, 조선불교는 유신 역사의 일면을 드러냈다. 작금 동회가 추구하는 목적과 사업이 조금씩 성취되어가고 있어, 그 목적과 사업이 멀지 않는 장래에 크게 이루어질 것이다. (필자가 현대 한글로 위의 인용을 다듬어 소개하였다.)

각 분과위원회 회의가 7월 23일 오전 9시 속개되었고, 전체회의가 오후에는 있었다. 행사 주최측은 불교청년회관에서 오후 6시 반부터 시작하는 파티를 개최하여 각국 대표들과 지역 유지들을 초청하였다. 불국사 석굴암의 본존인 석가불상의 존영이 대회 회의장 중앙에 봉안되었고, 일본 대표 1인은 석굴암의 존영과 봉안의 유래를 대회 참석자들을 대상으로 설명하였다. 도진호는 그 일본 대표의 요청으로 조선 경주 불국사를 로마자로 표기하였고, 그 글씨는 대서특필되어 그 존영의 옆에 걸렸다.
각 분과위원회 회의가 7월 24일 오전 9시 진행되었다. 행사 주최측은 오후 6시반부터 각국 대표 초청 만찬회를 개최하였다. 대회는 7월 25일 오전 9시 속개되었고, 각 분과위원회와 전체회의 (총회) 가 7월 25일 있었다. 대회는 7월 26일 오전 9시 속개되었고, 당일 오전에는 전체회의가 있었고, 당일 오후에는 폐회식이 있었다. 폐회식은 송가, 각국 대표자의 말씀, 의장의 폐회사, 주최측의 인사말, 그리고 송별 노래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주최측은 당일 오후 6시부터 대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송별 만찬회를 개최하였다.

대회 3일째 (7월 23일) 부터 각 분과위원회의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각국의 대표단은 전문위원을 각 분과위원회에 파견하여 그들의 제안에 대한 구체안을 설명하고 그 제안이 가결되도록 역설하였다. 그렇지만, 도진호는 혼자서 다섯 분과위원회에 모두 출석하여 각 위원들을 대상으로 본인이 제안한 안건을 상세히 설명하고 각 구체안을 각 분과위원회에 제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 제안들을 서면으로 대신 제출하였고, 그가 제안한 한 안건은 준비 소홀로 보류되었다.

도진호는 각 분과위원회와 전체회의 (총회) 에서 제안되고 의결된 안건들을 상세히 소개하였다. 대회 참가자들은 5개의 분과위원회를 구성하였고, 각 분과위원회는 각종 의제를 논의하였다. 제1분과위원회는 주로 교육과 교화에 관한 의제를, 제2분과위원회는 주로 사상문제에 관한 의제를, 제3분과위원회는 주로 사업 및 경영에 관한 의제를, 제4분과위원회는 주로 조직과 재정에 관한 의제를, 그리고 제5분과위원회는 주로 사회문제에 관한 의제를 논의하여 의결하였다.

제1분과위원회는 여덟가지 안건을 논의하였고, 도진호가 제안한 한가지 안건을 보류하고, 도진호가 제안한 한가지 안건을 포함하여 다른 일곱가지 안건을 통과시켰다. 가결된 일곱가지 안건은 (1) 불교정신을 기조로 학교교육사업을 진흥케 할 안건, (2) 불교주의의 여자고등교육을 보급 촉진케 할 일, (3) 각 불교청년회는 예술부를 개설하여 불교예술의 진흥을 도모할 일, (4) 불교의 정신을 일반 청년에게 철저히 이해시킬 방법 여하, (5) 에스페란트어를 불교청년운동에 채용할 안건, (6) 불교교화운동의 일반 대중화에 노력할 안건, 그리고 (7) (도진호가 제안한) 불교기본성전의 편찬 및 번역의 안건이었다. (도진호가 제안한) 세계 불교대학 설립운동의 안건은 보류되었다.

제1분과위원회는 첫번째, 세번째, 네번째 안건의 세부 사안도 토론하여 의결하였다. 제1분과위원회가 논의하여 통과한 첫번째 안건의 세부사안은 일곱가지로, (1) 각종 교육기관의 설치를 도모하는 안건, (2) 기성 불교주의 교육기관을 원조하는 동시에 내용의 개선에 노력하는 안건, (3) 종립대학의 종합을 계획하는 안건 (4) 각종 학교의 교원을 양성하는 기관을 설치하여 각종 학교에 불교신념을 가진 교원을 배치하는 안건, (5) 각종학교 교원에 대하여 자주 불교강습회를 개최하여 불교신념의 함양을 도모하는 안건, (6) 각종학교에 불교청년회와 불교여자청년회의 설치를 촉진하는 안건, 그리고 (7) 불교교육운동의 연락통일을 도모하기 위해 불교교육협회를 설치하는 안건이었다.

제1분과위원회는 세번째 안건을 논의하였고, 네개의 부서를 설립하여 불교예술을 진흥시킬 것을 결의하였다. 네개의 부서는 문학부, 미술부, 영화부, 음악부였다. 첫번째, 위원회는 문학부를 논의하였다. 각 불교청년회의 문학부는 각종 불교문학잡지를 발행하고, 기존의 문예협회와 제휴하고, 불교문학의 창작자들이 현대 문학인들로부터 불교정신의 표현을 배우도록 한다. 문학부는 불교에 관심이 있는 문학자들을 위해 각종 좌담회를 개최하고, 현재 출판되어 있는 불교문학작품들을 그들에게 소개한다. 문학부는 각 청년 문학인으로 하여금 불교문학잡지 및 일반잡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작품을 발표시키고, 그가 발표한 작품을 비평하는 모임을 개최한다.

각 불교청년회의 미술부는 각종 전람회를 개최하고 각종 도서관을 설치한다. 각 불교청년회의 영화부는 우수한 종교영화를 선정하여 회원들에게 추천하고 반종교적 작품을 배격하고, 기성 영화사와 제휴하여 문부성과 공동으로 좋은 불교영화를 제작하고, 종교영화제작소를 설립하고, 우량작품을 순회하면서 상영하고, 영화기의 설치를 촉진한다. 각 불교청년회의 음악부는 불교음악연구회를 설립하고, 집회의 전후에 집회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불교음악을 연구 그리고 연습시키고, 기성 일본어와 영어 찬불가 가운데 각 불교청년회에 적절한 수 편의 찬불가를 선정한다.

제1분과위원회가 논의하고 결의한 네번째 안건의 세부사안은 다섯가지로, (1) 신념있는 지도자의 육성을 도모하는 안건, (2) 불교강연회 및 강습회를 자주 개최하는 안건, (3) 기본성전 및 청소년에 대한 독서물, 기타 팜프렛 등의 간행을 도모하는 안건, (4) 불교예술을 촉진시키며 이를 통해 불교정신을 이해시키는 안건, 그리고 (5) 국가가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각종 교육기관과 제휴하여 불교 이해를 도모하는 안건이었다.

제2분과위원회는 하나의 안건을 논의하여 통과시켰다. 가결된 안건은 대승불교의 견지로 현대 제사조의 비판 및 지도정신의 표명에 관한 안건이었다. 제2분과위원회는 세가지 세부사안을 논의하여 통과시켰고, 그 세가지 세부사안은 (1) 각 불교청년회에 현대사조연구회를 설치하고 각국 불교청년회 본부에 통일기관을 설치하는 안건, (2) 오류가 있는 불교비판에 대해 각종 글과 언론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하여 불교의 참된 정신을 표시하는 안건, 그리고 (3) 현대적 방법을 사용하여 불교 교리를 항상 실생활에 응용하는 안건이었다.

제3분과위원회는 열가지 안건을 논의하여 가결하였다. 가결된 열가지 안건은 (1) 각국의 불교청년회간 연락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잡지의 간행에 관한 안건, (2) 각 불교청년회에 소년단과 일요학교의 경영을 장려할 안건, (3) 불교청년회 간부 육성의 안건, (4) 각 불교청년회는 불교의 국제적 사업에 대하여 정신적 또는 물질적 원조를 적극 추진하기 위한 안건, (5) 각 불교청년회는 체육기관의 시설을 장려하고 상호연락을 지키고 경기교환 등을 도모하는 안건, (6) 불상, 불화, 그리고 불교의 존엄을 훼손시키는 일체의 영리 및 오락 행위를 각종 글과 언론을 통해 방지하는 안건, (7) 구미 각국으로부터 동양 제국을 여행하는 사람들을 위해 불교여행 안내서를 간행하는 안건, (8) YMBA (불교청년회) 와 YWBA (불교여자청년회) 의 자구를 각종 사전에 삽입시키기 위해 각 사전출판사와 교섭할 안건, (9) (도진호가 제안한) 세계종교연맹의 창설을 제창하는 안건, 그리고 (10) (도진호가 제안한) 인도, 중화민국, 그리고 기타 불교 제국에 본회의 경과를 문서로 보고하고 불교청년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범태평양 불교청년회 연맹) 참가를 적극 권유하는 안건이었다.

제3분과위원회가 논의하고 통과시킨 첫번째 안건의 세부사안은 여덟가지로, (1) 잡지의 기본 언어는 일어와 영어 두 개의 언어로 하는 안건, (2) 잡지는 년 2회 발행하는 안건, (3) 잡지의 정가는 50전 (25센트) 이내로 하는 안건, (4) 잡지의 명칭은 『불교청년』으로 하는 안건, (5) 잡지의 내용은 각국의 불교청년회의 활동상황을 주로 하는 안건, (6) 각 불교청년회의 간부가 구독을 적극 권유하는 안건, (7) 각 불교청년회는 잡지 1부씩 본부로 기증하는 안건, 그리고 (8) 잡지의 편찬과 발행은 실행위원에 일임하는 안건이었다. 동 분과위원회는 네번째 안건의 세부사안으로 인도대보리회, 일미문화학회, 불교아동박물관, 일독불교협회, 그리고 기타 사업을 논의하여 의결하였다.

제4분과위원회는 다섯가지 안건을 논의하여 통과시켰다. 그 다섯가지 안건은 (1) 불교청년회 집회에는 삼귀의문을 독송할 안건, (2) 불교청년회의 연중행사로 부처님 오신 날 (4월 8일), 성도일 (12월 8일), 범태평양불교청년회 기념일 (7월 21일) 을 서양력에 근거하여 개최할 건, (3) 전문가에 의뢰하여 불교청년회 공통의 마크와 회기를 제정할 안건, (4) 불타의 탄신 연도를 서력 기원전 566년으로 결정하여 채택할 안건, 그리고 (5) 서력 1934년 석존 성탄 2,500년을 기념하는 국제적 축제를 행할 안건이었다.

제5분과위원회는 세가지 안건을 토론하고 통과시켰다. 그 세가지 안건은 (1) 불교청년회로서 행할 세계평화촉진운동에 관한 안건, (2) 세계종교연맹의 운동으로 세계불교평화운동을 강조할 안건, 그리고 (3) 오계의 참 정신에 기초하여 사회정화운동을 일으킬 안건이었다. 그 가운데 첫번째 안건의 세부사안은 네가지로, (1) 강연, 도서, 영화, 등을 통해 불교의 평화정신을 철저히 보급하는 사안, (2) 평화문제에 관한 회의, 정치적 기회, 그리고 필요에 응하여 성명서를 발행하는 사안, (3) 다른 평화운동단체와 협조하여 그 의사를 명료하게 하고 이를 철저히 도모하는 사안, 그리고 (4) 국제불교청년연맹 사업의 하나로 본 문제의 연구, 조사, 운동에 관한 사업을 오로지 관장하는 부서를 설립하는 사안이었다.

대회 참가자들은 전체회의 (총회) 에서 열가지 안건을 토론하고 통과시켰다. 그 열가지 안건은 (1) 국제불교청년회 (범태평양불교청년회 연맹) 설립에 관한 안건, (2) 불교청년회를 발전시킬 적당한 조직 경영 및 경제적 기초 확립의 방향 여하, (3) 불교청년회 공통의 지도 강령 확립의 안건, (4) 차기의 대회는 석존 탄신 2,500년을 기념하여 1934년 일본의 동경에서 개최할 안건, (5) 대회기념 잡지 창간의 안건, (6) 본 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정신적 물질적 원조를 해준 허버트 클라크 후버 (1874-1960) 제 31대 미국 대통령 내외에게 감사장을 대회의 이름으로 발송하는 안건, (7) 대회 주최자, 대회 임원 및 각 신문사에 대회의 이름으로 감사 결의, (8) 일본인 묘지 참배 및 하와이 각 섬의 자선병원을 위문하기 위해 대표자 파견 또는 위문장을 발송하는 안건, (9) 의장이 낭독할 본 대회 성명서의 안건, 그리고 (10) (국제불교청년회 설립을 위한) 실행위원을 결정하는 안건이었다.

그들이 총회에서 논의하여 통과시킨 첫번째 안건의 세부사안은 세가지로, (1) (범태평양불교청년연맹)의 조직은 하와이 대표 위원의 원안에 따르는 안건, (2) 그 조직의 영문 타이틀은 The Pan-Pacific Federation of Young Buddhists’ Associations 으로 하는 안건, 그리고 (3) 실행위원이 그 연합 조직의 설립을 구체화하는 안건이었다. 그들은 일본대표 전원은 실행위원이 되고, 그 가운데 동경과 요코하마 주재 대표는 중앙위원으로 되고, 미국, 하와이, 그리고 조선 대표 1인은 각국의 지방주임이 되고, 각국 불교청년회는 기타 위원들을 추천한다고 결의하였다.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의장이 대회를 마무리하면서 7월 26일 총회에서 낭독한 성명서 전문은 다음과 같다: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종료에 즈음하여, 우리들은 1주일에 걸쳐 청년 불교도들의 입장에서 장래의 세계평화와 인류의 행복에 관해 열심히 토론을 하였고, 본대회를 통해 소기의 성과를 얻는 점을 매우 다행으로 생각한다.

이와 동시에 본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가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다시 말해서, 세계의 평화운동을 전개하면서1928년 런던에서 체결된 불전 (不戰) 조약 (Kellogg-Briand 협정) 의 실현에 부단히 노력하는 후버 대통령 (재임 1929-1933) 을 모시고 있는 국가에서 개최되었다는 사실은 실로 불가사의한 인연으로, 우리들은 본 회의의 이름으로 심심한 경의와 감사를 (미국과 후버 대통령에게) 바치는 바이다.

이같이 믿는 우리들은 전세계에 만연한 계급투쟁의 모습에 자못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세계경제의 불황이 놀랄만큼 다수의 실업자를 내고 무산자의 신음이 도처에 퍼져있는 것은 인류의 일원으로 많은 책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우리들은 보다 좋은 사회의 건설에 공헌할 결의를 보이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이라고 통감하고 있다.

생각하건테 금후의 세계는 각국 민간에 있는 좋은 의견을 증진시키고 각 종교도의 관대한 애타적 정신을 촉진시키지 않으면, 평화와 인류의 행복을 초래하기 불가능하다고 믿는 바이다.\n\n본대회에 참가한 각국 대표들은 귀국한 이후 될수 있는대로 각국에서 노력을 행하는 동시에 본 회의에서 통과한 결의의 전부를 진실하게 실천하기를 성명하는 바이다. (필자가 독자들을 위해 현대어로 다듬어 위의 성명서를 인용하였다.)

각국 대표들을 위한 차담회가 7월 27일 오후 3시까지 개최되었고, 대강연회가 당일 오후 7시부터 중앙중학교 대강당에서 개최되었다. 2,000명 이상이 그 강연회에 참석하였다. 대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 가운데 8명의 연사들이 선발되었다. 7명의 연사들과 더불어, 도진호도 본인이 가지고 간 영역본 『조선불교』를 사용하여 2,000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였다. 한 일본 대표는 불교와 막스주의를 주제로, 그리고 또 다른 한 일본대표는 종교생활을 주제로 강연을 하였다.

대회 참가 의의
도진호는 본인이 제1회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에 한국 대표로 참석한 의의를 두가지로 요약하였다. 첫째, 그는 중앙중학교 대강당에서 현지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불교의 우수성을 당당하게 피력하였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둘째, 그는 그가 하와이로 가지고 간 한국불교 관련 다수의 도서들을 하와이에서 배포하여 현지에서 한국불교를 소개하였다는 사실에 매우 의미를 두었다.

그가 하와이로 가지고 간 도서들은 한문 『금강경』, 희방사에서 발행된 한글 『진여법계』, 희방사에서 발행된 『훈민정음』, 영문판 『조선불교』, 조선불교 중앙교무원에서 1929년 8월 29일 발행한 『조선사찰 31본산사진첩』, 그리고 월간 『불교』였다. 그는 한문 『금강경』 1권을 하와이 도서관에 기부하였고, 한글로 쓰여진 『진여법계』 1권을 한인교민단 총부에 그리고 1권을 하와이 도서관에 기부하였다. 그는 『훈민정음』 1권을 한인교민단 총부에 그리고 1권을 하와이 도서관에 배포하였다.

그는 대회 참가자들에게 영문판 『조선불교』 500권을, 하와이 도서관에 1권을, 하와이 대학에 5권을, 하와이 한인 동포들에게 30권을, 그리고 각 신문사에 20권을, 그리고 하와이 미술관에 5권을 배포하였다. 그는 각국 대표단에 『31본산 사진첩』 40권을, 하와이 한인 각 단체에 6권을, 하와이 도서관에 1권을, 하와이 미술관에 1권을, 그리고 주드 미국령 하와이 총독 (재임 1929-1934) 에게 1권을 주었다. 그리고 월간 『불교』 200권을 하와이 한인 동포 및 각 단체에 배포하였다.

그는 한국에서 하와이로 가지고 온 도서들을 하와이 한인 단체들과 한인들에게 배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의 보고서에서 그가 만난 하와이 한인들과 그들을 대상으로 무슨 활동을 하였는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와이는 독립운동의 거점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그가 만난 하와이 한인들은 직?간접적으로 독립운동과 관련을 맺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그의 보고서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그리고 그가 만난, 한인들을 의도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우리는 추정할 수 있다.

도진호가 하와이를 방문하였던 1930년 무렵, 하와이 한인사회는 기독교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놓여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와이로 이민을 오기 전 불교를 믿었지만 기독교 이민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와이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한인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교회에 나가지 않는 한인들도 하와이에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조국에서 온 승려 도진호를 매우 반겼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가 한글로 쓰여진 월간 『불교』 200권을 하와이 한인 각 단체 및 한인들에게 배포하였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그는 하와이에 머무는 동안 하와이 한인들을 광범위하게 만났다고 우리는 추정해볼 수 있다.

김법린 (1899-1964) 은 한국불교의 대표로 도진호를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에 파견한 것을 매우 높게 평가하여, “(조선불교청년회가)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에 성공적으로 조선대표를 파견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불교청년회를 부흥시킨 이후의 특기할만한 쾌사였다.”라고 하였다.

그는 또한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조선 대표의 귀환을 전기로 삼아, 조선불교청년회는 전전월중 임기총회를 개최하였다. 한편으로 국제불교청년운동의 정세에 호응하고, 다른 한편으로 조선불교청년회의 현황에 새 활력을 주기 위해, 내년 (1931) 봄 현 본?지회제를 연맹제로 재조직하기 위한 전조선불교청년대회의 개최를 결의하였고, 대회준비위원까지 선정하여 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중이다.”라고 설명하였다. 그의 설명에 비추어볼 때, 도진호의 범태평양청년불교대회 참석은 조선불교청년회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고 우리는 간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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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호, 「범태평양회기」, 『불교』 제75호 (1930년 9월 1일): pp. 6-8; 도진호, 「범태평양회기 (속)」, 『불교』 제76호 (1930년 10월 1일): pp. 6-12; 도진호, 「범태평양회기 (속)」, 『불교』 제77호 (1930년 11월 1일): pp. 31-39; 그리고 도진호, 「태평양대회기여」, 『불교』 제80호 (1931년 1월 1일): pp. 25-28. 조선불교청년회는 매년 3월 정기총회를 개최하였으므로, 필자가 3월 부분을 첨가하였다. 김태흡, 「조선불교의 서광」, 『불교』 제 71호 (1930년 5월 1일): p. 6. \n 전게기사. 김태흡,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에 대표 도진호 師를 송함」, 『불교』 제73호 (1930년 7월 1일): pp. 2-4; 그리고 김광식, p. 235. 김태흡, pp. 2-4. 도진호, 「범태평양회기」, pp. 6-8. 총 19페이지 가운데 마지막 3페이지를 제외한 영문 팜프렛인 Korean Buddhism and Her Position in the Cultural History of the Orient 는 이철교가 수집하고 김광식이 편집한 『한국근현대불교자료전집』 권 65 (서울: 민족사, 1996), pp. 515-532 에 수록되어 있다. 필자는 하와이 주립대학 도서관에서 그 소책자를 온전한 형태로 발굴하였다. 최남선의 『조선불교』는 『한국근현대불교자료전집』 권 65 (pp. 535-586) 에 수록되어 있고, 또한 『불교』 제 74호 (1930년 8월 1일): pp. 1-51에도 수록되어 있다. 도진호, 「범태평양회기 (속)」, 『불교』 제76호 (1930년 10월 1일): pp. 6-12. 필자는 위의 글을 참조하여 도진호가 7월 21일부터 22일까지 한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의 활약상을 본 논문에서 소개하겠다. 도진호가 발표한 영문 성명서의 한글판은 『불교』 제 76호 (p. 10) 에 수록되어 있다. 전게잡지, p. 11. 전게잡지, pp. 11-12. 전게잡지, p. 10. 전게잡지, p. 11. 전게잡지, pp. 11-12. 도진호, 「범태평양회기 (속)」, 『불교』 제77호 (1930년 11월 1일): pp. 31-39. 전게잡지, pp. 34-39. 제1분과위원회는 각 불교청년회는 당분간 현재 발행되어 있는 『신역 불교성전』을 채용하여 사용한다고 결의하였다. 세번째 안건의 세부사안 세가지는 단기간부양성강습회, 유학생파견, 그리고 팜프렛에 의한 지방 불교청년회의 간부 지도였다. 필자는 자료의 부족으로 범태평양불교청년회동맹의 구체적 활동 상황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제4분과위원회는 각국의 불교청년회는 국내의 각종 행사에서는 각국의 언어로 삼귀의를 봉행하지만, 국제행사에서 팔리어로 삼귀의를 봉행한다고 결의하였다. 필자는 자료 부족으로 조선불교청년회가 일본 동경과 경도에서 개최된 제2차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1934년 7월 18일 ? 23일) 에 조선대표를 파견하였는지 알 수 없었다. 성명서는 전게잡지 (p. 39)에 수록되어 있다. 도진호, 「태평양대회기여」, pp. 25-26. 전게잡지. 도진호는 최신호인 『불교』 제 73호 (1930년 7월 1일) 를 가지고 하와이에 갔을 가능성이 많다. 필자는 도진호가 지칭하는 하와이 도서관이 구체적으로 하와이의 어느 도서관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김법린, 「회고와 전망」, 『불교』 제 79호 (1931년 1월 1일): p.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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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5일; 옮긴이-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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