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고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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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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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고찰(1)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19, (일) 1:02 pm

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배경과 비판적 고찰(1)
성원 스님

서론
1903년에서 1905년 사이에 하와이로 이민을 온 약 7,300명의 초기 한인 이민자 가운데, 하와이로 이민을 오기 전 한국에서 불교를 믿었던 이민자들도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하와이에 이민을 왔을 때, 중국과 일본 불교 사원들이 하와이에 이미 상당수 있었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일부는 중국과 일본 사원들에서 불교 신행생활을 했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의 한인 불교 신자들은 기독교로 개종하여 한인 기독교 교회들을 다녔을 것이다. 하와이 한국불교는 한인들의 하와이 이민과 더불어 시작되지 않았고 대원 스님이 1975년 하와이에 도착하여 대원사 (현 무량사)를 개원하고 하와이 교민을 대상으로 포교를 하면서 시작되었다.

일본대학 예술과를 1925년 봄 졸업한 쌍계사의 도진호 스님 (b. 1889) 은 1930년 7월 7일 서울을 출발하여 7월 9일 요코하마에 도착하였고, 7월 11일 일본의 요코하마 항을 출발하여 7월 18일 하와이의 호놀루루 항에 도착하였다. 스님은 정토진종 서본원사파 하와이 별원 불교청년회가 주최한 범태평양 불교청년대회 (7월21일-26일) 에 한국대표로 참여하였고, 그 인연으로 조선문고 설립과 한국불교 포교를 위해서 1931년 8월 21일 하와이로 이민을 왔다. 하와이에 도착한 이후 하와이에 고려선사를 창건하였다고 스님 자신이 주장한 것 같지만, 필자는 그 주장의 진위를 입증할 구체적이고 객관적 자료와 확실한 증인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도진호 스님이1931년 하와이에 이민을 오기 이전인1910년 한일합방이 체결되면서, 개화파로 활약하였던 봉은사의 월봉 스님이 일본을 거쳐 하와이에 들어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일본 유학 출신으로 월북작가 홍명희 (1880-1968) 의 집안인 마곡사 스님이 하와이를 거쳐 1942 년부터 1943년까지 하버드 대학 박사과정에서 공부를 하다가 2년후 병으로 요절하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도진호 스님의 경우를 제외하고, 자료의 부족으로, 필자는 월봉 스님과 홍명희 집안의 마곡사 스님의 구체적인 활동 내역을 찾아볼 수 없었다. 6.25 전쟁이 종료된 이후, 이종욱 스님 (1884-1969), 등은 1953년 9월 하와이에서 열렸던 제3회 세계불교도대회에 참가하였다.

도진호 스님은1931년 하와이에 온 이후, 언젠가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고, 1940년대에 기독교 신자로서 하와이를 중심으로 사회활동과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였다. 비록 도진호 스님이 하와이에 도착한 직후 한인 교민들을 대상으로 가정 법회를 보았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을 수 있지만, 스님이 고려선사를 창건하여 교민을 대상으로 불교를 포교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현재 없다. 이런 측면을 고려해볼 때, 미주 한국불교는 1964년 미국에 입국하여 구체적으로 포교 활동을 전개한 경보 스님 (1914-1996) 으로부터 사실상 시작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미주 한국불교는 올해 (2014년) 에는 한국불교가 미국에 전래된 지 50년을 맞이한다.

남가주 소재의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 아시아 목회 연구원은 남가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한인 기독교 교수들인 유의영, 김찬희, 이창수, 등에게 의뢰하여 1981년 한인 의식 구조를 조사하였다. 그 조사에 의하면, 남가주 한인 가운데 개신교 신자는 64.8%를, 천주교 신자는 9.3%를, 그리고 불교 신자는 5.3%를 차지하고 있다. 김찬희는 한국에서1986년 미국으로 이민을 가는 한인들의 41.6%가 개신교 신자였고, 12.3%가 천주교 신자였다고 주장하였다. 한국 내의 기독교인은 한국 전체 인구의 25%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때, 한국 전체 인구 비례에 비해서 훨씬 많은 수의 기독교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개신교와 천주교에 포함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은 46.1%를 차지하고 있고, 그 46.1%의 절대 다수는 불교 신자였을 것이다. 위의 조사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듯이, 한인 기독교 신자 비율은 미국에서 약 23.2% 증가하였고, 한인 천주교 신자 비율은 미국에서 약 3% 감소하였고, 절대 다수의 불교 신자들은 미국에서 기독교로 개종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한인 이민 1세들을 위한 미주 한국불교의 포교는 실패했다.

김찬희는 클레어몬트 신학대학원은 1977년 한인 목회자의 재교육 차원에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최초로 시작하였고, 남가주의 풀러신학대학원은 현재 가장 활발히 그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미주 한국 기독교와 다르게, 미주 한국불교계에는 한인 이민1세 승려들과 재가 지도자들을 체계적으로 재교육시키는 프로그램이 전무하다. 서울 동산불교대학의 로스엔젤레스 분원으로 1997년 9월21일 개원한 LA동산불교대학에 연원을 두고 있는 로스엔젤레스 관음사의 로메리카 불교대학이 미국 전역에서 유일무이하게 재가 포교사를 양성하기 위하여 한국어 프로그램으로 운영되고 있을 따름이다. 한국 이민 1세 승려들과 재가 지도자들을 체계적으로 (재)교육시키는 한국어 프로그램과 더불어, 미주 한국불교는 미국인 승려들과 재가 지도자들 그리고 한국 이민 1.5세와 2세 승려들과 재가 지도자들을 체계적으로 (재)교육시키는 영어 프로그램을 빠른 시일 안에 설립할 필요가 있다.

1990년 미국 상무부 인구 센서스를 비교하여 2010년의 한인인구 구성을 예상해볼 때, 우리는 전체 한인 가운데 35세 이상의 한인 절대 다수는 한국 출생이고, 35세 이하의 한인 절대 다수는 미국 태생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는 미국 태생 한국인들을 위한 불교포교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새로운 이민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한국 출생 불자들을 주 대상으로 포교하는 미주 한국불교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런 측면에서, 필자는 미국불교를 조망하여 미주 한국불교의 당면과제를 진단하기 위해서 본 논문을 집필하였다.

한국에서 불교를 신행한 한인 이민자들은 이민 국가인 미국에서도 본인이 신행한 한국불교를 신행하고 있다. 우리는 전혀 다른 문화 그리고 사회적 환경에서 나서 자란 미국 태생 한국인들에게 그들의 조상들이 신행한 한국불교를 강요할 수 없다. 그들은 새로운 형태의 미주 한국불교를 요구할 수 밖에 없다. 미주 한국불교의 포교방향이 이민자들을 위한 불교포교에서 미국 태생 한국인들을 위한 불교포교로 바뀌지 않으면, 미주 한국불교의 전망은 매우 비관적이다. 따라서 필자는 본 논문에서 첫번째로 미주 한인 이민사를 개괄하여 독자들이 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그리고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도록 소개하였고, 두번째로 미주 한국불교를 개괄적으로 그리고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그리고 세번째로 미주 한국불교를 세가지 범주로 나누어 구체적으로 소개하였고, 마지막으로 미주 한국불교의 당면과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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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 스님은 현재 군종교구장으로 봉직하고 있는 정우 스님을 은사로 통도사에서 출가하였고, 동국대학과 서울대학에서 불교학과 철학을 수학하였고, 위스콘신 주립대학과 동경대학에서 불교학과 인도철학을 연구하였다. 위스콘신 주립대학에서 불교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후, 인도에 소재하는 티베트 망명 데붕승가대학에서 티베트 불교를 연구하였다. 로스엔젤레스 근교에 위치하고 있는 웨스트 대학에서 동아시아 불교 (한국불교)를 그리고 하와이 주립대학에서 불교와 한국철학으로 후학을 지도한 후, 현재는 코스탈 캘로라이나 대학에서 세계종교와 아시아종교를 가르치고 있다.

본 논문에서 미주 한국불교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할 때, 필자는 『미주현대불교』 사장인 김형근이 제공한 자료에 많이 의존하였다는 사실을 밝혀둔다. 필자는 김형근 사장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Jinwol Lee, “Daewon Sa Buddhist Temple,” in Hawaii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Buddhists, ed., Unity in Diversity: Hawaii’s Buddhist Communities (Kaneohe, Hawaii: Hawaii Association of International Buddhists, 1997), pp. 41-60; 그리고 Chanju Mun, “Ven. Daewon Ki and Peacemaking,” Chanju Mun, ed., Mediators and Meditators: Buddhism and Peacemaking (Honolulu: Blue Pine, 2007), pp. v-xxv. 『불교』 제 10호 (1925년 4월 1일) 의 「불교소식」 (p.47) 참조. 친란이 창종한 정토진종에는 현재 조그마한 파들이 있지만, 그 종단은 동본원사파와 서본원사파로 양분된다. 동본원사파는 대곡파로 불리워지고, 동본원사파의 본사는 동본원사이다. 서본원사파는 본원사파로 불리워지고, 본파로 약칭된다. 본원사파의 본사는 서본원사이다. 필자는 도진호가 조선문고를 하와이에서 설립했다는 어떠한 기록과 증언도 확보하지 못했다. 「우리 뉴-쓰」, 『금강저』 제19호 (1931년 11월 1일): p. 77; 김광식, 「최남선의 『조선불교』와 범태평양불교청년회의」, 『새불교운동의 전개: 성찰로 본 20세기 우리 불교』 (서울: 도피안사, 2002), pp. 232-261; 「업경대」, 『금강저』 제20호 (1932년 12월 8일): pp. 64-65; 그리고 불학연구소 편, 『한국근현대 불교사연표』 (서울: 대한불교조계종교육원, 2000), p. 394. 「업경대」, 『금강저』 제20호 (1932년 12월 8일): pp. 64-65; 그리고 불학연구소 편, 『한국근현대 불교사연표』 (서울: 대한불교조계종교육원, 2000), p. 394. 김도안, 「미주 한인사회의 불교활동」, 한미동포재단 편, 『한미동포재단 미주 한인이민 100년사』 (로스엔젤레스: 미주 한인이민 100주년 남가주기념사업회, 2002), p. 185. 전게논문, p. 186. 불학연구소 편, p. 70. 필자는 자료의 부족으로 세계불교도대회의 특성을 그리고 이종욱 스님 이외에 누가 그 대회에 참석하였는 지를 고찰할 수 없었다. 김찬희, 「미주내 한인 개신교회 100년의 발자취」, 한미동포재단 편, p. 164. 본 논문에서 미주 한인 기독교를 다룰 때, 필자는 김찬희의 전게논문을 전적으로 참조하였다. 전게논문, pp. 167-168. 김도안 편, 『대한불교 조계종 LA관음사 30주년 기념 30년사 총연감』 (로스엔젤레스: LA관음사, 2004), pp. 165-169. 본 논문에서 미주 한인인구 통계 자료를 인용할 때, 필자는 전적으로 유의영의 「미주 한인의 인구학적 특성」 (한미동포재단 편, pp. 131-148) 을 참조하였다. 김영목의 「초기 미주 한인 이민사」 (한미동포재단 편, p. 4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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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4일; 옮긴이-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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