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계소집성ㆍ의타기성ㆍ원성실성 / 원순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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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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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변계소집성ㆍ의타기성ㆍ원성실성 / 원순스님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19, (일) 10:19 am

변계소집성ㆍ의타기성ㆍ원성실성 / 원순스님

삼성 가운데 변계소집성은 망상으로서 없지만, 의타기성은 인연에 속하니 있는 것입니까?
답 : 이 두 가지는 능과 소로 서로 생겨나게 하나 모두 자기의 실체가 없다.
왜냐하면 망상으로 인해 이름과 모양을 세우고, 이름과 모양으로 인해 인연을 세우기 때문이다.
만약 망상이 생기지 않았다면 어찌 이름과 모양이 있겠으며, 이름과 모양이 있지 않다면 인연 자체가 공한 것이다.
이것은 만법이 이름과 모양을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능가경」 게송에서는 다음 내용과 같이 말하였다.
비유하면 수행하는 일과 같아서 한 곳에서 여러 경계 나타나지만 수행처에 여러 경계 없는 것이니 망상의 참모습도 이와 같다네.
이것을 풀이하여 보자. 이 게송은 망상인 변계소집성을 타파하니, 이것은 마치 이승이 모든 관행을 닦는 것과 같다.
만약 파랗다는 생각을 지어 관할 때에 천지만물 모두가 파랗지 않음이 없으니, 파란색이 없는 곳에서 파란색을 보는 것은 마음이 변화함으로 말미암기 때문이니, 한 가지 색의 경계에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모습이 같지 않다.
비유하면 범부가 허망하게 생사를 보는 것 또한 생사가 없는 곳에 허망하게 생사를 보는 것이다.

이것을 「능가경」의 게송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비유하면 여러 가지 백태와 같아 망상으로 많은 색을 나타낸다네. 색이다 아니다의 구별 없으나 인연으로 일어나서 그리 보이네.
이 게송은 인연으로 일어난 의타기성을 타파하는 것이니, 이것은 마치 백태가 낀 눈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와 차별이 있어서 다른 것과 같다.
헛것으로 보이는 것은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니, 이는 인연으로 일어난 법이다. 이러한즉 망상의 바탕은 공하고 인연은 무성으로 곧 원만하게 구경의 일법을 성취하니, 이것은 마치 눈 밝은 사람이 깨끗한 허공을 보는 것과 같다. 하물며 하나의 진심에서 다시 더 망념으로 존재할 것이 있겠는가.

문 : 이 삼성 가운데 몇 가지 법이 가법이고 또한 실법입니까?
답 : 「식론」에서 다음 내용과 같이 말하였다.
변계소집성은 망상이 세웠으므로 가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자체의 모습이 없으므로 거짓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의타기성은 진실로 있기도 하고 거짓으로 있기도 하다. 의타기성은 많은 인연이 모여 서로 이어지는 분위의 성질이 있으므로 임시로 존재하는 가유라고 설하나, 또 다른 면으로 심심소와 색이 인연해서 생겨나므로 실유라고 설한다.
만약 실법이 없다면 가법 또한 없으니, 가법은 실법이라는 인에 의지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원성실성은 오로지 실법으로 존재하니 의타기성의 인연에 의지하지 않아도 베풀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을 풀이하여 보자. 변계소집성은 이름이 있고 실체가 없어, 허망한 분별로 세워지니 가법이라 할 수 있다. 법의 실체를 이야기하나 이미 어떤 모습이 없어 거짓도 아니고 진실도 아니다.
토끼뿔과 같이 거짓이나 진실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반드시 어떤 실체가 있음을 의지하여 전체와 부분으로 구분되는 법 위에 가법이나 실법을 세우기 때문이다.
의타기성의 가유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는 많은 인연이 모여 만들어지는 가유이니, 이것은 마치 병이나 화분, 유정물 등이 어떤 요소가 모이고 쌓여서 법이 된 것과 같다. 이것은 많은 요소의 법이 일시에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만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라도 만들어진 것은 거짓이다.
둘째는 서로 이어짐으로 있는 가유이니, 이것은 마치 과거와 미래 등의 세상에 오직 인과가 있다는 것과 같아, 서로 이어져 지속되는 성품이다. 많은 법이 많은 시점 위에서 하나의 가법을 세우니 이것은 마치 부처님이 “옛날 사슴 왕이 지금의 내 몸이다”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다.
오온에 의지해서 찰나에 멸하는 것이 비록 몸으로서 실제 있더라도 이것은 많은 법이 상속하여 임시로 하나의 유정물을 세워 지금에 있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셋째는 분위로서의 가유이니, 이것은 마치 마음과 상응하지 않는 법이 분별로 자기의 위상을 갖는 것과 같으므로 모두 임시로 존재한다. 하나의 시점에서 하나의 법 위에 세워지니, 이것은 하나의 색 위에서 유루라 하여 볼 수 있거나 상대할 수 있는 것과 같다.
또한 명색 등도 모두 하나의 법 위에서 가유로 시설되기 때문이다. 만약 그것이 모두 실제라면 응당 많은 실체가 있어야 한다.
憤(분)과 恨 등은 모두 이 가유에 속하나 심ㆍ심소와 색법은 인연의 종자에서 생기므로 실유라고 말한다.
또한 변계소집성과 의타기성과 원성실성은 동일한 성품이니 하나의 성품으로 곧 무성이다.
왜냐하면 변계소집성은 실제의 어떤 모습이 없고, 의타기성은 생겨난 것이 없으며 원성실성은 결정된 성품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해심밀경」에서는 “눈병 난 사람은 변계소집성과 같고, 파란색이나 노란색이 나타남은 의타기성과 같으며, 병이 없는 깨끗한 눈은 원성실성과 같다”고 하였다.
「섭론」에서는 “비유하면 분별성은 뱀과 같고 의타기성은 등나무 끈과 같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색ㆍ향ㆍ미ㆍ촉의 네 가지 경계를 반연하여 등나무 끈을 분석한다면 단지 네 가지 모습만을 볼 뿐, 따로 등나무 끈을 보지 못한다. 등나무 끈은 단지 색ㆍ향ㆍ미ㆍ촉의 모습일 뿐이기 때문에 등나무 끈이 실제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네 가지 경계를 벗어난 다른 곳에 달리 등나무 끈이 있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섭론」의 게송에서는 다음 내용과 같이 말하였다.
등나무 줄 뱀이라고 알았을 때
끈이라는 사실 알면 뱀이 없다네
만들어진 끈의 인연 알 수 있다면
끈과 뱀의 실체를 알 수 있도다.
만약 등나무 끈의 성품을 분석하여 공한 것임을 알았다면 곧 이것을 예로 삼아 등나무 끈에서 허망하게 뱀이라는 생각을 냈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같다.

문 : 내가 반연되는 영상을 보는 것이 의타성으로 있다면, 응당 의타성의 진실된 ‘나’가 있습니까?
답 : 의타성의 ‘나’라는 상은 인연에 의지하여 생겨나니 단지 의타기성의 환유인 법으로 실제의 ‘나’가 아니다. 그것을 허망하게 집착하여 ‘나’로 삼기 때문에 이를 망집이라 한다.
여기에 두 가지 겹쳐지는 모습이 있으니 하나는 ‘나’라는 상이 인연에서 생겨난다는 입장에서 어떤 힘이 마음을 생겨나게 할 수 있으니, 이것은 있는 것으로 의타기성의 법이라 한다. 그러나 또 하나는 여기에 들어맞지 않는 집착된 법의 측면에서 변계소집성이라 하니, 이것은 없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마치 사람이 어두워진 길가의 돌을 가축인 소로 잘못 알았을 때, 돌의 실체가 없지 않은 것과 같다.(또는 길가에 떨어져있는 새끼노끈을 뱀으로 보는 허망함)
내가 반연된 인연을 보는 것은 의타기성의 모습으로 있으니, 마치 돌이 본래 소가 아니나 허망한 마음으로 집착하여 소로 삼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집착된 소는 그 실체가 전혀 없으니 이것은 ‘나’로 보여지는 모습이 본래 ‘나’가 아니나 허망한 마음으로 집착하여 ‘나’로 삼는 것과 같다.
그러나 집착된 ‘나’는 그 실체가 전혀 없는 것이다. 단지 집착할 수 있는 마음만 있고 집착된 ‘나’는 없다.
이것은 돌이 있는 곳에 반연되어진 돌은 있으나 집착된 소가 없는 것을 말한다. 보여지는 모습 위에 반연된 법은 있으나 집착된 ‘나’는 없다.
또 비유하여 말하면 남쪽에 사는 어떤 사람이 낙타털을 알지 못했으나 일찍이 어느 곳에서 거북이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 뒷날 우연히 낙타털을 보았으나 낙타털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허망하게 낙타털을 거북이털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여기서 눈앞에 보여진 낙타털은 있으므로 의타기성의 법과 같다. 그러나 낙타털 위에 거북이털은 없는데 허망한 마음으로 거북이털이라 하였으니, 이것은 실제의 ‘나’라고 집착된 법과 같다.
그러므로 논에서 “일체의 사물과 마음의 작용으로 일어난 법이 훈습된 힘으로 말미암아 변하는 것은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인연으로 생겨나기 때문에 의타기성이라 한다. 또 하나는 이것에 의지해서 두루 짐작하고 생각하여 허망하게 ‘있고 없음과 같고 다름과 갖추거나 갖추지 않았다’는 등에 반드시 어떤 실재가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니, 이를 변계소집성이라 한다”고 하였다.

[마음을 바로 봅시다. 원순스님 역해]
흐려져가는 망심과 집착으로 인해 다시 불퇴전의 마음을 잡고 원성실성 바로 우리의 본성(本性)찾아 \n불성(佛性)으로 들어가기를 원 하나이다.
보디삿트와 합장 원공법계제중생자타일시성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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