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살은 어찌하여 이 몸을 보호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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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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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보살은 어찌하여 이 몸을 보호하는가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15, (수) 9:00 am

보살은 어찌하여 이 몸을 보호하는가

마음이 번거로우면 세상이 다 번거롭습니다. 마음이 밝고 깨끗하면 세상 또한 밝고 깨끗해지는 사실을 우리 불자들은 다 이해하고 계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도, 우리는 그 무엇인가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보살이 바라밀다를 행하는 것은 마치 깊은 물에 빠진 사람이 죽은 송장을 붙들고 큰 바다를 헤쳐 나오는 것과 같지만, 위험한 곳에서 벗어났으면 그 송장을 업고 다닐 일은 아닙니다. 당시의 절박한 상황을 벗어나는 방편으로 사용했으면 그만 놓으라는 것이지요.

그런가 하면, 병고를 소멸하고자 할 때는 부정(不淨)한 것이라도 먹어야 하고, 최소한의 양식으로 최대한의 삶을 사는 수행자들도 목숨을 부지하고자 하면 고기라도 먹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부처님 말씀 가운데에도 ‘대중의 뜻이라면 소도 잡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한 생명을 통해서 수없는 생명이 살아날 수 있는 것을 비유 설법으로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합니다. 결국, 우리가 집착하는 대상은 본래 집착할 수 없는 것이며, 그곳에는 불길 같은 고통과 괴로움 뿐인데도 거기에 치우치고 얽매이고 빠진다는것이 얼마나 애처롭고 초라하며 어리석은 일인가를 말씀드리고자 함입니다.

“불자들이여, 보살은 항상 몸을 보호하나니, 왜냐하면 몸을 보호하지 아니하면 생명이 온전하지 못하고, 생명이 온전하지 못하면 이 경전을 쓰거나, 받아 지니거나 읽고 외우고 다른 이에게 전하고 그 뜻을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보살은 마땅히 몸을 보호하여야 하며, 그런 뜻으로 보살이 온갖 나쁜 유루를 여읠 수 있느니라. 불자들아, 물을 건너기 위해서는 배나 떼를보호하고, 길을 떠나려는 사람은 말을 보호하고, 농사짓는 사람은 거름을 보호하고, 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독사를 보호하고, 재물을 위하여서는 전다라를 보호하고, 큰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장수를 보호하여 기르고, 추운 사람은 불을 보호하고, 문둥병 들은 이는 독약을 구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도 그러하여, 비록 이 몸에 한량없이 부정한 것이 가득 찬 줄을 알지마는,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대열반을 받아 지니기 위해서 잘 보호하여 모자람이 없게 하느니라.”

사바세계를 살아가는 우리는 ‘젊음’, ‘ 건강’, ‘ 목숨’을 최고라 생각하고 거기에 너무 집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태어난 생명체가 언제까지나 젊음과 건강, 목숨을 유지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에라, 모르겠다.’하는 심정으로 지금 망가뜨려야 할까요? 젊음, 건강, 목숨이 소중하지만 영원한 것이 아닌 줄 알아야 하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함부로 사용하거나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살은 어찌해서 이 몸을 보호해야 할까요. 이 몸이 한량없이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줄은 알지만, 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수행을 닦는 데는 이 몸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몸을 보호하지 아니하면 생명이 온전하지 못하고, 생명이 온전하게 보존되지 못하면 자신이 해야 할 바라밀다, 보살행, 자비행, 선행, 난행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보살은 몸을 보호하며, 그런 뜻으로 온갖 나쁜 업을 여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물을 건너가려면 배나 뗏목을 보호해야 하고, 길손이 되어서 길을 떠날 때는 말을 보호해야하며, 농사를 짓는 사람은 거름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독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독사를 보호하고, 문둥병 걸린 이가 독약을 구하는 것처럼 보살도 그러하여, 비록 이 몸에 한량없이 부정한 것들이 가득 찬 줄 알면서도 수행자의 길을 걷는 데 이 몸이 필요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옛날 정비공장이나 소방서에 걸려 있던 ‘닦고, 조이고, 기름 치자.’라는 말처럼, 사바세계가 이런 세상인 줄 알지만 젊음, 건강, 목숨에 대해 우리는 끊임없이 다짐하고 확인하고 인식함으로써 닦고, 조이고, 기름치는 행위를 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몸이 소중하고 귀하다고 해서 망가질세라 벌벌 떨며 모시고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어제와 오늘, 내일이 냇물과 강물, 바다처럼 이어져 있지만 결코 어제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시간이고, 오늘도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움직여 저편으로 가고 있습니다. 어제와 내일이 오늘을 저버리고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젊은 시절과 노년을 오늘의 모습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음을 생각해보면, 절대 미루지 말고 오늘을 열심히 살고자 노력해야 합니다. 건강할 때 건강을 지키듯 젊었을 때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불빛은 밝을 때 밝아지는 것일까요, 어두울 때 밝아지는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어쩌면 보살행을 하기에는 요즘이 제일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좋은 일 하자고 세상이 험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혼돈과 혼란으로 범벅되고 탐욕과 애착, 무명과 갖가지 번뇌로 가득 차 있는 이 오탁악세에 우리가 할 일이 오히려 더 많을 것이며, 이곳이야말로 내가 마땅히 보살행을 닦을 만한 곳이라는 겁니다. 만일 중생에게 총명과 지혜가 가득 차 있고, 이 세상에 선지식이 가득 차 있다면 이런 곳에서는 보살행을 닦을 이유가 없는 것이지요.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내가 하고, 누군가 짊어져야 할 짐이라면 내가 짊어지려고 하는 것이 보살행 아니겠습니까.

얼마 전 티베트를 갔을 때의 일입니다. 진흙탕 길을 갈 때는 조심조심 가더라도 진흙물이 자동차 앞 유리에 범벅으로 튀었지만, 맑고 깨끗한 물을 지나갈 적에는 차를 세게 몰고 가더라도 물이 그다지 튀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응용해 생각한 것이 ‘잘못되기로 하면 진흙탕 길을 아무리 조심히 가도 진흙을 범벅으로 뒤집어쓰지만, 맑고 향기로운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보살도는 아무리해도 세상에 그렇게 잘 드러나지 않더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곳이 내가 살만한 곳이라 생각하고, 또 사바세계가 이런 세상인 줄 알았으면 거기에 ‘나’를 세우려고 하지 말고, ‘나’를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몸뚱이도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줄 알지만, 번뇌 망상이 일어나지 않는 열반의 길을 걷는 데는 이 몸이 필요하기 때문에, 또 물을 마시려면 이 컵이 필요하기 때문에 컵에 물을 담게 된다는 그 마음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허망하지 않으면 그 사람을 일러 보살이라고 합니다. 모든 부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런 말법시대에 태어났다 하더라도 마음을 청정히 가꿔 허망함이 없어지면 그대가 하고 있는 모든 몸짓이 보살행’이라 했습니다. 보살행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원효스님 말씀처럼 어려운 일을 능히 행하는 분이 부처님이고, 또 우리네 어버이처럼 스스로 즐거움을 접을 줄 아는 분이 성인이지[難行能行尊重如佛自樂能捨信敬如聖], 성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불교를 조금 더 알고 덜 아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몸이 영원하지 못하고 늘 100년도 못 살고 바꾸고 또 바꿔야 하지만, 그나마 인간만큼 오래 살고 자기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이들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런 때에 닦고 이런 때에 다듬지 않으면 언제 다시 이 몸을 받아서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많은 이들이 실생활 속에서 부처님 불법제자가 되고, 또 다가오는 53일의 화엄산림법회에도 함께 할 수 있기를 바라며, 이 몸이 부질없고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 있는 줄은 알지만 그래도 몸을 온전히 하여 흔들림 없는 수행자의 길, 불자의 길을 걸었으면 합니다. 성불하십시오

(출처 - 정우스님 / 아비라카페 알맹이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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