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자소암 婆子燒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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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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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파자소암 婆子燒庵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26, (일) 10:43 am

파자소암 婆子燒庵

수시 쌍으로 거두고 쌍으로 놓으며 전체로 죽이고 전체로 살리니 세 번 손바닥으로 때리고 세 번 몽둥이로 침은 상賞도 있고 벌罰도 있으며, 한 번 절하고 한 번 우는 것은 나음도 없고 못함도 없도다. 오체五體를 땅에 던져 절함이여 흰 뼈가 산처럼 이어져 있고, 두 주먹이 허공을 휘두름이여 자주빛이 하늘을 찌른다. 그러므로 설두가 말하였다.
-전오방은 해가 비치고 하늘이 밝음이요 후오방은 구름이 일어 비가 내림이니, 그대가 만약 바로 알면 다섯 번 몽둥이로 때려 주겠노라.-
◎손바닥으로 때리건 몽둥이로 때리건 때리는 것은 똑같은데 어째서 상이 있고 벌이 있다고 말했을까요? 때리는 가운데 상이 있고 벌이 있는 줄 분명히 알아야지, 그렇지 않으면 때리는 본뜻은 절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불법에 대해 법담을 하다가 상대방이 참으로 법담을 잘할 것 같으면 잘한다고 감사히 절을 하고도 잘못할 것 같으면 잘못한다고 가슴을 두드리고 울고 하는 것이니, 표면적으로는 절하는 것은 그 사람을 칭찬하는 것이고, 우는 것은 그 사람이 잘못되어서 슬퍼 운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절한다고 나을 것도 없고 운다고 못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이겠습니까? 손바닥으로 때리고 몽둥이로 치는 가운데 상이 있고 벌이 있는 것을 분명히 알면, 절하고 우는 것에 우열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동시에 첫머리에 말한 '쌍으로 거두고 쌍으로 놓으며 전체로 죽이고 전체로 살린다'는 뜻도 알 수 있습니다.

앞의 다섯 번 때림과 뒤의 다섯 번 때림前五棒後五棒은 출처가 있는 말입니다. 설봉스님이 하루는 어떤 스님이 자기를 찾아오는 것을 보고 쫓아나가 무조건 몽둥이로 다섯 번을 때려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스님이 '제가 무슨 허물이 있기에 느닷없이 이렇게 다섯 번 때리는 것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설봉스님이 또 다섯 번을 몽둥이로 때려 주었습니다. 여기에 아주 깊은 뜻이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설두스님이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앞의 다섯 번 때림은 해가 비추고 하늘이 밝음이요, 뒤의 다섯 번 때림은 구름이 일어 비가 내리는 것이다. 네가 만약 이 뜻을 바로 안다면 내가 다시 다섯 번을 몽둥이로 때려 주겠다.
이것은 설두스님이 실지에 있어서 설봉스님이 몽둥이로 그 스님을 때린 뜻을 분명히 알고 하는 말입니다. 이 뜻을 바로 알면, 앞에서 내가 말한 뜻을 전체 다 알 수 있는 동시에 이 뒤에 거론하는 법문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뜻을 모르면 앞뒤 전부를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본칙 옛날 어떤 노파가 한 암주庵主를 공양하였는데, 이십년이 지나도록 한결같이 여자에게 밥을 보내어 시봉하게 하였다. 어느날 여자를 시켜 암주를 끌어안고 '바로 이러한 때에는 어떠합니까?'라고 묻게 하였다. 그렇게 하자 암주가 말하였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를 의지하니 삼동三冬에 따뜻한 기운이 없구나.
여자가 돌아가 노파에게 그대로 전하니, 노파가 '내가 이십년 동안 속인놈을 공양하였구나!' 하고 암주를 쫓아내고 암자를 불태워 버렸다.
◎이것이 종문에서 유명한 '파자소암婆子燒庵'이라는 공안입니다. 늙은 할망구가 암자를 불사르고 암주를 쫓아낸 법문인데, 피상적으로 볼 때는 그 암주가 공에 빠지고 고요함에 머물러서 沈空滯宿 죽는 것만 알았지 참으로 살아나 자재한 것을 몰랐기 때문에 할망구가 '속인' 놈이라고 꾸짖으면서 쫓아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정말 그렇게 본다면, 할망구가 그 암자를 불사르고 암주를 쫓아낸 뜻도 영 모르거니와 또 그 암주가 -마른 나무가 찬 바위를 의지하니 삼동에 따뜻한 기운이 없도다-라고 한 뜻도 절대로 모르는 것입니다. 그 참뜻은 저 깊은 데 있습니다.
누구든지 공부를 해서 그 할망구가 암자를 불 지르고 그 암주를 쫓아 낸 뜻을 확실히 알면 일체법과 모든 공안에 조금도 막힘이 없이 전체를 다 통달하게 됩니다.
이 공안은 그렇게 아주 깊은 법문이어서 선종에서도 중대하게 취급하는 것입니다. 피상적 관찰로는 이 법문의 뜻을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내가 이 공안에 대해서 한 마디 평을 하겠습니다.

착어 천 길 얼음 위에 붉은 해가 밝고 밝으며 일곱 자 지팡이 밑에 푸른 구슬이 구르고 구른다.
◎이 뜻을 알면 할망구가 암주를 쫓아낸 뜻도 알 수 있는 것이고, 또 암주가 답한 뜻도 알 수 있습니다. 참고적으로 역사적인 일을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당나라 고종황제의 황후인 측천무후則天武后는 고종이 죽고난 뒤 자기 아들까지 죽여 버리고, 여자로서 천자 노릇을 한 사람입니다. 또한 불교를 숭상해 현수賢首대사가 수계하던 해 천하에 영을 내려 그 해에는 선수대사 한분 이외에는 아무도 스님을 만들지 말라고까지 칙령을 내린 사람입니다. 그런 측천무후가 대당大唐에 큰스님이 많기는 많지만 그 가운데 누구를 골라 국사國師로 삼아야 할지 막막하였습니다. 생각다가 전국에 영을 내려 큰스님을 몇 분 모셔오라고 하였는데, 그때 추천된 스님으로 오조 홍인대사의 제자인 신수神秀대사와 혜안惠安선사 두 분이 계셨습니다. 신수대사는 홍인스님 문하의 상수제자上首第子로서 지식이 출중하였지만 자성을 깨치지 못하여서 무식한 육조스님에게 의복과 발우를 빼앗기고만 분이고, 혜안스님은 일자무식이지만 수행에 전념하여 실지로 자성을 깨친 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두 스님을 궁중에 청해 목욕탕에 들어가 목욕을 하시라고 하고서는, 궁녀 가운데 가장 얼굴이 예쁜 궁녀 두 사람을 뽑아 옷을 발가벗기고 -목욕하는 스님의 몸을 씻어 주라-고 분부했습니다. 궁녀들이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쳤지만 천자의 어명인데 어떻게 거역할 수 있습니까? 할 수 없이 명령을 따라 각각 가서 스님의 몸을 골고루 씻어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하고서 측천무후는 목욕탕에 구멍을 뚫어 놓고 그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두 여자가 각기 스님의 몸을 구석구석 씻어 드리자 신수대사는 음심이 동하는데 혜안스님은 아무리 몸에 닿고 하여도 절대로 동하지 않았습니다. 이 광경을 구멍을 통해 환히 보고 있던 측천무후가 도력을 스스로 확인하고서는 "산에 올라가 보아야 다리의 힘을 알고, 물 속에 들어가 보아야 키가 크고 작음을 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숭산 혜안스님을 국사로 모시고 어디를 가든 항상 가마에 모시고 다녔다고 합니다.
이 일을 두고 위산스님은 -목욕간에서 젊고 앳된 여자가 몸을 씻겨 줄 때는 쇠로 만들어 놓은 부처님도 진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다-고 평하였습니다. 참으로 확철히 깨친 도력 있는 스님이 아니면 절대로 동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앞의 공안에서 그 암주는 "마른 나무가 찬 바위를 의지하니 삼동에 따뜻한 기운이 없도다"라고 하여 음심이 절대로 동하지 않는 마음을 드러냈는데, 그 할망구는 어째서 속인놈이라 꾸짖으면서 암자를 불사르고 암주를 쫓아냈을까요? 또 측천무후는 왜 두 스님 가운데 음심이 절대로 동하지 않은 스님을 국사로까지 모셨을까요?

염-, 밀암 걸선사가 염하였다.
이 노파는 안방이 깊고 멀어서 물샐 틈 없으나, 문득 마른 나무에 꽃을 피게 히고 찬 바위 속에서 불꽃이 일게 한다. 이 스님은 외로운 몸이 멀고멀어서 익히 큰 물결 속에 들어가되, 하늘에 치솟는 조수潮水를 한가히 앉아서 끊고 바닥에 이르러도 한 방울 물도 몸에 묻지 않는다. 자세히 검토해 보니 목에 쓴 칼을 두드려 부수고 발을 묶은 쇠사슬을 깨뜨림은 두 사람에게 다 없지 않지마는 불법을 말할진대 꿈에도 보지 못하였다. 내가 이렇게 평론함은 그 뜻이 어디로 돌아가는가?
한참 묵묵한 후에 말하였다. -한 묶음의 버들가지를 거두지 못하니 봄바람이 옥난간 위에 걸쳐놓는다.-

◎파자婆子가 사는 곳은 참으로 깊고 깊어서 부처도 들어갈 수 없고 조사도 들어갈 수없고 물 한 방울, 바람 한 점 들어갈 수 없으나, 바짝 마른 나무에 꽃을 피게 하고 차가운 바위 속에서 불이 나게 하는 그런 기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또 그 암주는 큰 바다에 나가 노는 것을 좋아하여 하늘 닿는 물결 속에서도 아무 힘들이지 않고 저 바다 밑바닥에 이르러도 몸에는 물 한 방울 묻지 않는 그런 기술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사람이 그렇게 훌륭한 법을 가지고 있어 감옥에 들어가도 유유히 나올 수 있는 재주를 가지긴 했지만 불법은 꿈에도 알지 못하는 멍텅구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선 마지막에 -한 묶음의 버들가지를 거두지 못하니 봄바람이 옥난간 위에 걸쳐 놓는다-고 송을 읊으셨습니다. 이 마지막 구절의 뜻을 알면 노파가 암자를 불사른 뜻도 알 수 있고, 암주가 말한 뜻도 알 수 있고, 또 밀암스님이 이 공안에 대해 평한 뜻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밀암선사의 이 법문에 내 한 마디 붙이겠습니다.
착어-, 교묘함을 희롱하여 졸렬함이 됨이여, 귀하고 또 천하다.

◎잘한 것이면 끝가지 잘한 것이어야지 어째서 잘한 것이 졸렬하게 되고, 귀할 것 같으면 끝까지 귀해야 할 텐데 어째서 귀하지 못하고 천하게 된다 했을까요?

송-, 중봉 본선사가 송하였다.
삼동三冬의 마른 나무는 봄볕을 만났고 푸른 꽃받침 찬 꽃송이는 맑은 향기를 토한다. 흰머리 노파가 인정이 없어 차갑게 꽃나무를 보고 스님을 곡哭한다.

◎삼동 아주 추울 때 바싹 마른 나무는 봄볕을 만나 살아나고, 파랗게 잎 피고 꽃잎이 붉게 물들어 참으로 좋은 향기를 뿜어냅니다. 머리 허연 노파는 인정이 눈꼽만큼도 없어 아주 냉정한 차디찬 눈으로 꽃과 나무를 보고서 가슴을 두드리면서, 아이고, 아이고- 하고 울더라고 곡했습니다. 이것이 노파와 암주의 그 법문을 잘 표현한 것입니다.

착어-, 큰 상賞 밑에는 반드시 용감한 장부가 있다.

◎용맹한 장수가 큰 싸움에서 이겨야만 큰 상을 타는 것이지 싸움에서 겁이나 달아나는 사람은 상을 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송-, 허당 우선사가 송하였다.
-무쇠 벽을 활짝 여니 구름이 조각조각 떠돌고 검은 산을 차내니 달이 둥글고 둥글다.- 그 가운데 명암이 서로 침해하는 곳은 하늘 밖에 머리를 내밀어도 누가 보아 알리오.

착어-, 은은한 향기는 화로 속에서 나오고 솔솔 부는 맑은 바람은 자리 위에서 일어나네.

염-, 박산 내선사가 수창 경선사에게 공부할 대 수창선사가 최후에 물었다.
-노파가 무슨 수단과 안목을 갖추었기에 갑자기 집을 불사르고 스님을 쫓아내었는가?-
"황금에 빛을 더하였습니다." 하니, 수창선사가 인가하고 법을 전하였다.

착어-, 탁한 기름에 다시 젖은 심지를 꽂는다.

결어-, 대중은 말해 보라. 노파가 집을 불사른 것은 상이냐 벌이냐? 상이라고 하면 암주를 저버리고 벌이라고 하면 노파를 끌어 묻는 것이다. 여기에 초군정안超群正眼을 갖추어서 골수를 철저하게 보면, 암주를 위하여 설욕할 뿐 아니라 노파와 더불어 경축하는 것이다.
필경에 어떻게 이 소식을 통할 것인가?(한참 묵묵한 후에 말씀하셨다.)
암두가 긍정하지 않음이여 덕산의 맏아들이요 극빈유나가 쫓겨남이여, 홍화의 참 제자로다. (크게 할을 한 번 하고 내려오시다.)

◎대중 여러분, 그럼 말씀해보십시오. 노파가 암자를 불사른 것이 상입니까? 벌입니까? 상이라고 하면 암주를 저버리는 것이고 벌이라고 하면 노파를 끌어 묻는 것입니다. 여기에 초군정안超群正眼을 갖추어서 골수를 철저하게 보면, 암주를 위하여 설욕할 뿐 아니라 노파와 더불어 경축하는 것입니다. 그럼, 필경에 어떻게 이 소식을 통하겠습니까?
암두스님은 덕산스님의 상수제자지만 평생 덕산스님을 긍정치 않고 -우리 스님은 아무것도 모른다-고 늘 욕만 했습니다. 흔히들 암두스님이 참으로 덕산스님보다 도와 덕이 높아 자기 스승을 아무것도 아니라고 부정한 것으로 보는데, 그렇게 보면 암두스님을 잘못 본 것입니다. 암두스님이 덕산스님을 늘 부정하고 욕한 것은 덕산스님의 뜻을 바로 알고 그 법을 바로 전해 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또 극빈유나는 흥화스님 밑에 있을 때, 법문에 대해 대답을 잘못 했다고 하여 대중공양을 하도록 벌을 받았습니다. 다음날 극빈유나가 돈을 내어 공양을 준비하고 같이 참여하려 하자, 흥화스님은 -네가 비록 공양은 내었지만 참석할 자격이 없다-하고는 몽둥이로 때려 쫓아버렸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극빈유나는 출세할 때 흥화스님의 법을 이었습니다.
이렇게 앞의 법문을 총결산하였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량복탁思量卜託으로 이런가 저런가, 상인가 벌인가를 따져서는 지옥에 들어가길 화살같이 할 것입니다. 오직 참선 공부를 부지런히 하여 확철히 깨쳐야 이 뜻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량복탁이나 문자의 해석으로는 영원토록 이 법문의 뜻을 모르고 맙니다. 설사 알았다 해도 그것은 이 법문의 본뜻과 아득히 어긋나고 맙니다. 어떻게 해야 확철히 깨칠 수 있겠습니까?
암두가 긍정하지 않음이여, 덕산의 맏아들이요
극빈유나가 쫓겨남이여, 흥화의 참 제자로다.

(출처 - 본지풍광 파자소암 성철큰스님 / 아비라카페 알맹이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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