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쌀 자루가 무거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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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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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아직도 쌀 자루가 무거운가?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25, (토) 8:49 am

아직도 쌀 자루가 무거운가?

경허 선사와 만공 스님이 탁발을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만공 등의 쌀 자루에는 쌀이 가득했다. 길은 먼데 몹시 무겁고 피곤했다. 선사가 만공을 돌아보며 말했다.
“무거우냐?”
“예”
“그러면 내가 무겁지 않은 방법을 가르쳐 줄테이니 너도 따라 하거라.”
그러자 만공은 귀가 솔깃하여 “예, 스님” 하며 대답했다.
선사는 마침 물동이를 이고 지나가는 젊은 아낙네의 양귀를 잡고 입을 맞추었다.
“에그머니나!”
여인은 비명을 지르고 물동이를 떨어뜨리고는 마을로 달려갔다. 이 소문이 곧 마을에 퍼지고 급기야는 몽둥이를 든 마을 사람들이 두 사람을 잡으려고 뛰어나왔다.
“저 땡중 놈들을 잡아라!”

선사는 이미 저 멀리 도망가고 있고 어안이 벙벙하던 만공은 놀라서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뛰기 시작했다. 온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두 스님을 마을 사람들은 따라올 수가 없었다. 이윽고 마을을 벗어나 산길로 접어들자 경허 선사가 말했다.
“아직도 무거우냐?"
“그 먼 길을 어떻게 달려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 내 재주가 어떠냐? 무거움도 잊고 그 먼 길을 단숨에 달려왔으니 말이다.”

유명한 이 선화(禪話) 역시 무애자재한 행위를 통해 제자에게 심법(心法)의 이치를 깨닫도록 하는 경허 선사 특유의 심지법문(心地法門)이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혹시나 깨치지 못하고서 먼저 막행막식(莫行莫食)하는 무애행부터 흉내내는 자가 있다면 그는 불법을 비방하는 자일 뿐이다. 그래서 경허 스님의 제자인 한암 스님은 스승을 불이법(不二法)을 체득한 세상에 드문 선지식으로 찬탄하고, 스승의 무애행이 큰 깨침에서 나온 것이며 범부 중생이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것이기에 함부로 따라해서는 안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즉 “화상의 정법의 교화(法化)를 배움은 옳으나 행위와 언동(行履)을 배워서는 안된다”(경허집)고 강조했다.
물론 단순히 파계(破戒)했다는 이유만으로 경허 스님의 무애행을 비판하는 것 역시 마치 ‘대통같은 소견으로 비방하는’ 단견에 불과하다. 큰 코끼리는 토끼 길에 노닐지 않고, 큰 깨달음은 작은 절개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위의 선문답은 무겁고, 가볍다고 하는 우리의 느낌이 한 생각에서 비롯되었음을 일깨우고 있다. 무겁다는 생각이 있지 않다면 전혀 무겁지가 않은 것이다. 마음 속에 ‘한 물건(一物)’도 없다면 무겁다거나 두렵다는 생각이 발붙일 자리가 어디 있겠는가.

이 선문답은 2조혜가 스님이 달마 대사를 찾아가 “마음이 불안하니 안심(安心)의 가르침을 주십시오” 라고 법을 청했을 때, 달마 대사가 안심법문을 베푸는 장면과 흡사하다. 달마 대사가 “너의 그 불안한 마음을 가져오너라. 너에게 안심을 주리라”고 했을 때, 혜가 스님은 “마음을 찾아 (팔까지 자르며) 보아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달마 대사는 “나는 이미 너를 편안케 하였다”고 일깨우는 장면이 그것이다.
불안한 마음, 무거운 마음, 두려운 마음 그 어떤 마음이든 찾아본들 찾을래야 찾을 수 없다. 마치 신기루나 아지랑이 처럼 잡을래야 잡을 수 없는 물건 아닌 물건이다. 이 마음이란 것은 ‘토끼 뿔’이나, ‘거북 털’처럼 허깨비로만 존재한다. 어디 그뿐인가, 보고 듣고 감각하는 대상들 역시 허망한 것이다. 그래서 금강경은 “일체의 함이 있는 법(有爲法)은 꿈과 같고 환상과 같고 물거품과 같으며 그림자 같으며 이슬과 같고 또한 번개와도 같으니, 응당 이와같이 관할지니라”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불안하고 무겁고 두려운 마음으로 허둥대거나 고통스러워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죄는 본래 자성이 없고 마음따라 일어나니(罪無自性從心起) 마음 만일 없어지면 죄업 또한 사라지네(心若滅時罪亦亡). 죄가 없어지고 마음도 소멸하여 두 가지가 텅 비어지면(罪亡心滅兩俱空) 이를 이름하여 참다운 참회라 한다(是則名爲眞懺悔).”

우리가 매일 외우는 천수경의 게송 역시 이러한 도리를 극명하게 일러주고 있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마음, 번뇌는 싫고 보리(菩提)는 좋다는 생각, 나와 너라는 생각, 마음과 대상이라는 이분법을 함께 텅 비워버리지 않는한 우리는 만공 스님이 들고 뛰었던 저 무거운 쌀 자루를 내려놓을 기약이 없다.
옳고 그르다는 모든 분별심을 ‘쉬고 쉬고 쉬어가며 내려놓다(休休休放下)’ 보면 혜가 스님처럼 안심을 얻을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 믿고 들어가야 한다.

(출처 - 푸른바다 김성우 / 아비라카페 알맹이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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