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 있는 장수가 복 있는 장수만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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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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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덕 있는 장수가 복 있는 장수만 못하다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25, (토) 5:10 am

덕 있는 장수가 복 있는 장수만 못하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한마디로 힘, 능력으로 살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체력이나 재력, 지식 등의 개인적인 능력도 있고, 사회가 제도적으로 만들어 놓은 지위에 따른 능력도 있습니다. 제도적인 것은 아니지만 집안에서도 창고 열쇠를 지니는 사람, 시어머니 혹은 며느리가 갖는 힘, 선후배 간의 지위에 따른 힘도 있고, 인기를 얼마나 끄느냐에 따른 힘도 있지요.
그런데 사실 그와 같은 힘은 참으로 허망한 것입니다. 어느날 하루 아침에 아무런 힘이 안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재력이 특출한 재벌도 망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가 없지요. 그런 것을 볼 때 왜 그런지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대체 능력은 그대로 다 지니고 있는데도 왜 무너질까요?
출가하기 전 우리 동네에 재래식으로 종이공장을 하는 사람이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우리 동네는 200 여 호 되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그 사람이 해마다 몇 마지기씩 논을 샀습니다. 해가 더해질수록 더욱 많은 논을 사는 것을 보고 동네 청년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계산을 하는 겁니다.
앞으로 몇 년 후에 저 공장이 이 동네 땅을 다 살 수 있을까?-라고 하는 말을 듣고, 제가 저도 모르게 "복이 있으니까 그렇지, 복이 다 하면 잘 뻗어가던 호박 넝쿨이 가을 서리 맞아서, 혹은 호박만 하나 열려도 멈추는 것처럼 될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로부터 얼마 뒤 그 종이공장이 망했습니다. 내가 괜히 안 해야 할 말을 해서 망한 것 같아서 뜨끔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그 때부터 '공장을 하다보면 세월이 흐를수록 재력이나 기술력도 늘 테고, 여러가지 능력이 더 생길텐데 저 공장이 왜 망했을까.' 고민했습니다. 그러면서 '능력 이외의 다른 힘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요.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 보이는 능력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부 능력을 키우기 위해 평생을 애쓰고 살잖아요. 학생이 공부를 하는거나 직장인이 돈을 버는 거나 건강을 위해 운동하는 것이 다 자기 나름대로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능력으로 되는 일에만 매달리며 사느라 복력의 세계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음악가들 중에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 시켜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인터뷰한 경우도 보았습니다만, 그 몇 배를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자식교육에 너무 극성을 부려서 스트레스가 심한 나머지 자식이 가출하여 인생을 망쳐 버리는 사람도 많이 봤습니다.

-될 성 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 속담 역시 능력 이전에 복력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말입니다.
한편 -용맹 있는 장수가 지혜 있는 장수만 못하고, 지혜 있는 장수는 덕 있는 장수만 못하고, 아무리 덕 있는 장수라도 복 있는 장수만 못하다.-는 말이 있는데 일리 있는 말입니다.

옛날에 어떤 임금 밑에 유난히 복이 많은 이가 있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외교문제도 쉽게 해결되고, 지방에서 난리가 나도 그 신하가 나서면 쉽게 진정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복 많은 신하를 둔 것을 고마워 해야 하는데, 오히려 시기 질투심이 난 임금님이 신하를 궁지에 빠뜨릴 계책을 세웠습니다. 궁중에 있는 보석을 신하의 집안에다 보관해 달라고 맡기고는, 신하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장수를 시켜서 보석을 빼앗아오게 하였습니다. 보석을 빼앗긴 신하는 걱정 근심으로 밥을 먹지 못하였습니다. 시아버지가 진지를 못 드시자, 몸보신을 시켜 드리려고 신하의 며느리가 시장에 가서 잉어를 사왔습니다. 그런데 잉어 뱃속에 보석이 들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버님 몫으로 사온 것인지라 며느리가 밥상에 잉어와 함께 보석을 같이 올립니다.
어떻게 된 연유인가 하면 보석을 훔쳐간 사람이 강을 지나다가 넘어져서 보석을 빠뜨렸는데 그것을 잉어가 먹고 결국은 복 많은 신하의 집에 오게 된 것입니다. 보석을 임금님에게 바치니 임금님이 결국 '복 있는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고 생각합니다.

복을 지으면 언제든지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신하 또한 전생부터 열심히 복을 지었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복을 짓기보다는 복을 받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나무를 한 번 보십시오. 겉으로 보면 나무기둥, 가지, 잎, 꽃, 열매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다가 아닙니다. 땅 속에 더 중요한 뿌리가 있잖아요, 그런데 평소에는 뿌리가 있다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꽃이 필 때는 꽃을 보고 좋다고 하고, 열매를 거둘 때는 열매만 거둬들이면서 좋다고 합니다. 나무에 큰 영향을 주는 뿌리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멋진 꽃을 볼 수도 있고, 튼실한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나무를 심을 때 뿌리가 뻗어갈 자리를 생각하지 않고 심으면 결국 나무는 죽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건축물을 지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빌딩을 짓는 데 기초공사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무너지게 됩니다. 기초 공사가 바로 복력의 세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력을 튼튼하게 하지 않으면 능력 이상의 것을 하거나 혹은 능력과 상관없이 무너지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세계를 잘 모릅니다.
어려서 딱지치기, 구슬치기 하면서 놀 때는 동네에서 딱지와 구슬을 제일 많이 가지고 있는 저보다 한 살 더 먹은 동네 형이 제일 부자인 줄 알고 부러워 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이 어느 날 학교에 가서 공부 한다며 그것을 나에게 다 주었습니다. 그 때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는지 상상도 못했고, 이해가 안 됐지요. 이와 같이 세상에는 능력뿐 아니라 복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력도 다 하게 되면 타락하게 되므로 계속 복을 짓고 살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능력이고 복력이고 세속적인 욕심으로 사는 것은 다 쉴 수 있어야 합니다.

어릴 때는 어른의 세계를 모르고 살듯이 중생 소견으로는 능력의 세계만 생각하지 복력과 수행력의 세계를 모릅니다.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되고 안 되는 것을 다 쉬기 위해서 마음을 닦습니다. 그래야만 다 이루어집니다. 되고 안 되고가 있다는 것은 항상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해서 계속 윤회하는 삶을 삽니다.
되고 안되고는 태어나고 죽은 윤회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숙명통이 열리면 전생에 어떻게 살았는지 내생에 어떻게 살 것인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위에 있던 것이 아래로 내려올 때 방향을 생각하면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래서 현재를 보면 과거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래에 어느 쪽에 있을지는 지금 살아가는 방향을 보면 압니다. 올라가는 삶을 살고 있으면 다음에 저 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래서 과거 일을 알고자 하면 현재의 삶을 보고, 미래 일을 알려면 현재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렇게 중생의 삶은 비슷비슷한 욕심 속에 살고 있으니까 알 수 있는데, 수행인의 삶은 예측할 수 없다고 합니다.

(출처 - 정락스님 / 아비라카페 알맹이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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