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문장만 듣고(무량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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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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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한 문장만 듣고(무량스님)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24, (금) 8:30 am

한 문장만 듣고(무량스님)

수덕사에 도착해서 계단을 올라가다 보니 저 앞에 일주문이 보이는데, 내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보살님이 그 앞에 서 계셨다. 일주문 앞에 앉아 기와를 팔던 화주 보살님이신데 너무 직설적으로 말을 하시는 분이라 지금처럼 무기력한 상태에서는 만나기가 두려웠다.

그래서 일주문 옆으로 돌아 슬그머니 도망가려고 했다.
-무량스님, 오셨어요? 이리로 와서 얘기 좀 해요!- 화주 보살님이 기어이 나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짓을 하셨다.
하는 수 없이 보살님 옆에 가 앉았더니, 느닷없이 자신의 인생역정을 들려주셨다. 보살님은 그날따라 왜 자기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신 것일까. 보살님은 스무 살도 되기 전부터 사람들과 멀어지고 싶어 혼자서 부산의 산동네에 사셨다. 그러다가 아직 개발되기 전인 1970년대의 제주도에 가서 어떤 스님이 계시는 작은 암자의 토굴집에서 살며 1년을 보냈다. 그러나 스님과 문제가 생겨 여러 번 다투면서 마음고생을 하게 되었고, 그 와중에 불교가 도대체 무엇인지 배우고 싶어졌다.
드디어 '발심'을 하게 된 것이다. 보살님은 무턱대고 그 유명한 성철스님을 찾아 갔다. 성철스님을 뵌 마지막 속인이 된 셈이였는데, 정작 이 보살님은 성철스님을 뵈려면 먼저 3천배를 해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스님이 계신 절 앞에서 제자들이-하셨습니까?-하고 묻자, "예"라고 대답하고 쭉 걸어갔다. 보살님은 스님의 처소까지 가는 길에 빛이 깔려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성철스님이 보살님에게 물었다.
무슨 질문이 있나?
저는 서예를 배워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알고 싶습니다.
보살님은 다들 그렇게도 만나고 싶어하는 성철스님 앞에서 바보같이 엉뚱한 질문을 하고야 말았다.
그러나, 성철스님은 보살님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다.
보살은 공부할 사람이니 화두나 들어 봐라. 옛날에 중국의 동산대사가 옷을 만들려고 삼베의 무게를 재고 있었다. 그때 누가 갑자기 나타나서 부처가 무어냐고 물었다. 그는 삼베 서 근이라고 대답했다. -이게 무슨 뜻이냐?-
"감사합니다."
그 자리에서 보살님은 마구 웃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번뇌와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던 자신의 내면이 텅 비워지면서 행복한 본래의 자기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내 평생 필요한 것은 이것뿐이구나!- 단순한 진리를 깨달은 보살님은 경봉 스님이 계시는 극락암으로 가서 시봉을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듣자 내 마음이 답답하게 막혀 왔다. 사실 나는 삭발을 하고 지난 10년간 매일 발우공양을 하면서 절, 기도, 참선을 반복하여 수행해 왔다.
단체생활, 혼자서 하는 수행, 만행, 염불 등의 온갖 방법을 거치면서 수행의 길을 걸어 왔건만 아직까지 어떤 상태에도 도달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안거를 하고 만행까지 하고 온 터였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을 잃고 방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보살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화두만 하나 들었을 뿐인데 '그것'을 얻은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엇일까?
내 마음 속에는 '이 뭐꼬?' 라는 화두만 남았다. 나는 그 상태로 암자로 돌아가서 석 달을 보냈다. 어떤 행위에도 집착하지 않은 채, 새벽 두 시에 일어나 밤 아홉시나 열시까지, 가끔 화장실에 가고 끼니 챙겨 먹는 일 이외에는 참선만 했다. 이제까지 기계적으로 해 오던 수행과, 이렇게 꽉 막힌 상태에서 의문 하나만을 가진 채 수행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였다. 생각으로 만든 질문이 아니라 마음으로 만든 진짜 의문을 품고 정진했다.

그 해 여름이 끝날 무렵, 숭산스님을 다시 만났다. 나는 보살님의 이야기와 사연을 말씀드렸다.
스님, 한 문장만 듣고 깨닫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수행정진은 골프 치는 것과 같다. 아주 강한 사람은 한 번의 샷으로 골인시킬 수 있지만, 방향이 분명하지 않으면 공이 멀리 있는 덤불 속으로 간다. 힘이 약한 사람은 방향은 바르지만 힘이 부족하여 조금씩만 나아간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치고 또 다시 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눈을 떼지 말고 그 방향만 바라보고 계속 간다는 것이다.

(출처 - 무량스님 수행기 왜 사는가 中에서 / 아비라카페 알맹이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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