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친 이후의 수행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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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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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깨친 이후의 수행이 있습니까?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20, (월) 11:35 am

깨친 이후의 수행이 있습니까?

[문의]'오직 할 뿐'이라는 숭산스님 관련 서적을 읽다보니 큰 스님 일대기 중에 스님이 깨달은 이후에 한국전쟁에 복무한 후 고봉스님께서 '네 눈빛은 아수라와 같구나, 토굴수행을 해라' 하셔서 더 수행을 하였다는 내용도 보이고.. 전강스님과 송담스님도 깨닫는 것보다 깨달은 것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내용은 성철스님의 돈오돈수와 모순되는 것은 아닌지요..?
그리고 해운정사 홈페이지에 링크되어있는 진제스님-인터뷰(이것은 비교적 최신 것)을 보아도 깨친 이후에 수행을 더 하거나 다시 미혹에 빠지는 것은 제대로 못 깨쳐서 그렇지 깨달은 분상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명시적으로 말씀하신 바가 나오는 데 이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답변]불학연구소
좋은 인연입니다. 워낙 예민한 질문이라 답글이 늦었습니다. 혜량을 바랍니다.
질문의 요지를 다시 정리해 보면 이렇습니다. “깨달은 이후에 더 수행을 하였다는 것과 깨닫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하는 것이 돈오돈수와 모순되지 않느냐? 그리고 깨친 이후에 수행을 더 하거나 미혹에 빠지는 것은 못 깨쳐서 그렇지 깨달은 분상에서는 그런 일이 없다고 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질문은 수십 년 동안 한국 禪門에서 가장 열띤 논쟁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니만큼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번에 종단 차원에서 간행된 “조계종 수행의 길 - 간화선” 392쪽에 보면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나란히 소개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큰스님들 사이에서도 이 깨달음에 대해선 약간의 견해 차이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차이가 서로 대립하고 갈등할 그런 것은 아닙니다.
모두 부처님의 제자로서 조사선을 계승한 선사들입니다. 서로 존중하고 예우하면서 열심히 정진하는 가운데 그런 작은 차이는 충분히 극복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몇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깨달음”이라 할 때 그 깨달음에는 깊이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을 때 그것도 깨달음입니다. 하지만, 생활 속의 작은 깨달음은 말과 생각의 길에서 깨달은 것입니다. 그런 깨달음에는 아직 주관과 객관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知識 가운데 깨달음이란 말이지요.
그런데 이와 같은 知的 깨달음은 부처님께서 깨친 구경각(究竟覺)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새벽별을 보고 깨친 것은 정각(正覺),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라 하여 말 그대로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최상의 바른 깨달음이란 뜻입니다.

부처님의 깨달음 즉, 불교에서 말하는 정각(正覺)은 지식이 아니라 말과 생각의 길을 초월한 깨달음입니다. 이 깨달음은 주관과 객관이 하나 된 깨침입니다.
한 마디로 바르게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하면 더 깨달을 것이 없는 대지혜가 열리고, 오직 부처님 행(佛行)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이후 禪門에서 역대 조사, 선지식의 수행을 보면 크고 작은 깨달음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선종의 실질적인 정립자라 할 6조 조계 혜능 선사의 경우도 출가 전에 나뭇꾼으로 살 때 어느 집에 나무를 져다 주고 나오는 길에 누가 '금강경' 읽어 주는 소리에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이 나옵니다.
그리고 출가하여 다시 황매산의 5조를 찾아가 제자가 되어 다시 방아를 찧다가 야밤에 오조께서 '금강경'을 강설하는 것을 듣고 다시 큰 깨달음을 성취합니다. 이와 같이 6조 혜능선사도 '육조단경'에 보면 공식적으로 두 번의 깨달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간화선을 정립한 대혜 종고 선사의 공부 이력은 우리에게 중대한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대혜 선사는 젊어서 공부 중에 견처가 있어 여러 선지식을 친견하여 문답하여 보니 모두 다 인정을 해주었습니다.
그래서 몇 년간은 그 공부 경계에 만족하여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당신의 공부를 살펴 보니, 깨어 있을 때는 모든 것이 여여하지만, 꿈을 꿀 때 꿈에서 누가 좋은 선물을 주면 좋아 하고, 또 누가 몽둥이를 들고 때리려 할 때는 겁이나 벌벌 떨다가 깨었습니다.
대혜 선사는 스스로 냉정히 자기 공부를 점검하면서 '이 꿈에서도 공부가 부족한데 하물며 죽음에 이르러 어찌 여여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아직 공부가 덜 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반성하고 당대의 대선지식인 원오 극근 선사를 찾아 가서 공부를 점검해보니 역시 '아직 덜되었으니 공부를 더 하라'는 지적을 받고는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화두를 공부해 들어가 마침내 오매일여를 거쳐 확철대오를 하였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대혜광록).
간화선 수행법을 제창한 대혜 선사의 이와 같은 공부와 깨달음의 이력은 우리 후학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확철대오 이전에 수많은 깨달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나 대혜 선사와 같이 확철대오를 하게 되면 공부를 마치고 오로지 동체대비의 교화행을 할 뿐입니다. 이를 일러 佛行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조사선을 실질적으로 정립한 육조 혜능 선사나 간화선을 체계화한 대혜 종고 선사나 모두 몇 번의 깨달음을 겪었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몇 번의 깨달음을 얻더라도 부처님의 가르침과 같이 정각, 무상정등각, 구경각, 즉, 더 이상 깨달을 것이 없는 확철대오를 하게 되면 대지혜와 대자비가 본래 구족된 자기 성품을 보아 영원한 대자유인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선지식의 깨달음이나 법문에 대하여 의문을 갖기 보다는 그 치열한 공부를 배우려 하고 또 선지식의 공부를 통해서 스스로의 공부를 점검하고 더 분발하는 교훈으로 삼는 것이 좋겠습니다.

내 안에 모든 길이 이미 다 갖춰져 있습니다. 오직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여 번뇌 망상을 여의고 본래 구족된 대지혜를 성취하시길 바랍니다.
** 덧붙이는 말씀 : 혹 이 답글이 미진하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시면 더 좋은 답글도 환영합니다. 이 정보센터는 서로 탁마하는 사이버 도량입니다. - 불학연구소 합장.

[답변]이호준- 짧은 소견이지만 한자 적어보겠습니다.
불교의 깨달음은 오직 단박에 깨닫는 것입니다. 돈오점수는 없는 것이지요. 다만 돈오점수를 말하는 것은 돈오돈수에 이르는 과정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돈오돈수의 돈오는 제8 아뢰야식까지 타파한 구경각이기 때문에 더이상의 경지는 없다고 혜능선사부터 성철스님까지 일관되게 말씀하셨습니다. 돈오점수의 의미는 깨달음으로 가는 과정을 설명한 것일뿐이라 생각합니다. 성철스님은 돈오점수를 주장함은 외도라 단언하셨으니 그런 것이라 봅니다.
다만 참선을 꾸준히 하는 것은 돈오의 인연을 키워나가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선의 경지가 지극한 경지에 이르더라도 돈오는 아니며 지극한 경지에서 한발짝 더나가야 돈오이기 때문에 깨달음은 인연이 무르익은 순간에 단박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 말은 제 생각이 아니라 성철스님께서 선문정로에서 밝히신 뜻이라 봅니다.
(출처 - 불학연구소,이호준 / 아비라카페 알맹이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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