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티베트 불교를 가다-⑧ / 부처님의 말씀과 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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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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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동 티베트 불교를 가다-⑧ / 부처님의 말씀과 대장경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6-11-29, (화) 8:17 am

부처님의 말씀과 대장경

동 티베트 불교를 연재하면서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 놓은 경전 이야기를 조금 하고 넘어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불교에 있어서 대장경은 매우 중요한 보전(寶典)이다. 모든 종교는 종교마다 그 종교의 경전어가 있고, 경전이 있는데, 불교에는 크게 상좌부의 빨리어 대장경, 대승불교의 한역장경과 티베트 대장경이 그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팔만대장경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 대장경은 한역대장경의 범주에 속한다고 하겠다. 빨리어 대장경은 팔리어로 씌어진 불교 경전의 총칭이다. 그런데 이 팔리어란 발음 이야기부터 좀 해 보자. 팔리어는 본래 문자가 없이 말만 있는 언어이다. 한역에서는 파리문대장경(巴利文大藏經)、또는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으로 표기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빠리불전(パーリ仏典) 또는 빠리어불전(パーリ語仏典)、빠리성전(パーリ聖典)이라고 쓰고 있다. 영어권에서는 팔리 캐논(Pāli Canon)이라고 표기해 오고 있는데,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팔리어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일제 때 부터이다. 한국근대불교학이 시작된 것은 일본을 통해서였지만, 본격적인 현대불교학을 접한 것은 해방 이후에 20여년이 지난 60년대로서, 서구의 현대불교학을 접하고서 부터가 아닌가 한다. 70년대 80년대 초중반 까지만 해도 팔리어는 생소했던 경전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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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은 패엽이나 대나무에 새겨진 경전으로서 천이나 상자에 넣어서 보관하는데, 책의 형태로 만들어지기 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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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년대 이후에 남방권에 가서 연수하거나 공부하고 돌아와서, 팔리어, 빨리어, 빠알리어로 발음해야 한다면서 다들 자기들이 주장이 옳다고 우겨 되는 것을 본적이 있다. 엄격히 따진다면 정확한 발음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말이라는 것은 발전하고 진화하는데, 2600년 전의 발음이 지금도 꼭 그대로일 것이라는 것은 착각이다. 하지만, 그래도 근사치가 있는 것은 맞는 말이다. 파리어, 빠리어와 같은 일본식 발음은 거리가 멀고, 팔리어 파알리어, 빨리어, 빠알리어 등은 비교적 가까운 발음이라고 본다. 그런데 언어란 사회적 약속인데, 표기함에 있어서 통일성이 있어야 한다. 아직 우리 불교학계에는 빨리어 산스크리트어 등에 대한 표기안이 통일 되어 있지 않는 상태이다. 언젠가는 통일 표기안이 나오리라고 믿으며, 현재로서는 팔리어 빨리어 등으로 표기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독자들의 이해가 필요하다고 보는데, 내가 경험한 바로는 빨리어로 표기하는 것은 남방 불교에서의 발음과 큰 차이가 없다고 본다.

빨리어에는 성전이라는 뜻도 있어서, 빨리라는 말 자체가 빨리 삼장(Tipiṭaka)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전적으로 빨리 문헌은 빨리, 즉 삼장과 앗타까타(aṭṭhakathā), 즉 주석서 둘로 분류하기도 했다. 빨리어에 대한 원류는 여러 학설이 있는데, 대체로 마가다 지방의 방언으로 알려져 있지만, 일부에서는 서부 인도의 평민계층에서 쓰던 속어(俗語)라고도 한다. 고타마 붓다는 상류계층의 언어인 산스크리트어(범어)가 아니라 이 평민계층의 언어인 빨리어로 설법하였다고 하는데, 사실 고타마 붓다는 생전에 지금의 뭄바이 쪽에는 가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소카 대왕은 마우리아 왕조의 왕으로 등극하기 전에는 인도 서부 지역의 태수로 있었고, 아들 마힌다는 서부 지역에 있을 때의 부인에게서 낳은 자식인데, 그가 실론(스리랑카)으로 불교를 전파했는데, 그때 서부 지역의 방언인 빨리어 삼장이 전해졌다는 설이다. 하지만, 삼장이란 1년 2년에 암송되어지는 경전이 아니다. 경율을 외우고 암송하여 구송해 내려면 평생 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므로 빨리어 삼장은 마가다에서부터 있어 왔던 경전체계라고 봐야 한다. 아무튼 머릿속에 외워서 구송으로 전수한다는 것은 정말 힘겨운 일이고 몇 백 년 동안 구송(口誦)으로 스승에서 제자에게로 이어지는 이 전통은 너무나 위대하고 엄숙한 종교행위였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실론에서 빨리어를 신할라 문자로 마른 야자 잎에 표기하여 패엽경의 형태로 바뀌게 되고, 동남아시아의 여러 나라 말로 역경되었던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이 빨리어 삼장은 실론에서 오랫동안 보존 유지되어 왔었는데, 기원후 5세기 무렵이 되면 인도에서는 모든 불교 경전이 산스크리트어화 해서 빨리어 경전을 찾아 볼 수 없었다. 남인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붓다고사 같은 인도출신 학승도 실론에 와서 위숫디마가(청정도론=淸淨道論)란 주석서를 빨리어로 저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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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고사가 세 권의 청정도론을 켈라니야 왕립 대사원의 주지스님에게 헌정하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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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역대장경은(漢譯大藏經)은 후한(後漢)에서 원대(元代)에 이르는 약 1천년 동안에 걸쳐 산스크리트 원전(原典)으로부터, 때로는 서역(西域)의 여러 지방에서 번역된 경전이나 논서(論書)를 중심으로, 혹은 중국 불교인의 손으로 이루어진 주석서나 연구서 및 위경류(僞經類)를 포함해서 편집한 것으로서 대소승의 경률론(經律論)이 모두 포함되어 있고 분량도 가장 많으며 불교 연구에 있어서 불가결의 자료일 뿐만 아니라 인도불교와는 다른 독자적인 발전을 한 중국불교 연구의 근본자료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남북조(南北朝)·수(隋)·당(唐)의 각 시대를 통해 모두 수집되어 여러 차례에 걸쳐 경전목록(經典目錄)이 작성되었으나 경률론의 삼장이 일괄적으로 개판(開版)된 것은 971년 송(宋)의 태조에 의해 이루어진 송판(宋版)의 제1회 《촉판대장경(蜀版大藏經)》이 최초이며, 그 후 중국·한국·일본 등지에서 20여 회에 걸쳐 개판이 이루어져 그때마다 증광(增廣)되었다.

대장경은 한문계대장경, 서하문(西夏文), 일문(日文), 장문계(藏文系大藏经=티베트), 몽문(蒙文), 만문(滿文)과 파리삼장(巴利三藏=상좌부 빨리대장경), 태문(傣文=태국) 대장경 등이 있는데, 영어와 한글대장경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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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의 세라사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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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세라사원에서 어린 사미 라마들이 경전 인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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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사원에 보관된 목판 티베트 대장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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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대장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눠진다. 칸쥬르와 탄쥬르로 나누는데, 칸쥬르는 주로 불설(佛說) 경전류이고, 탄쥬르는 주로 조사들의 논술 및 주석서를 집대성해 놓은 것들이다. 본래 세라 사원은 티베트 라사에 있는 사원이지만, 1959년 인도로 망명한 티베트 라마승들이 인도에도 세라사원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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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인도에 설립한 세라사원에서 공부하는 학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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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명 티베트 라마들은 인도에서 세라사원의 학통을 이어 가고 있다. 이들은 티베트 대장경을 공부하고 있는데, 사실상 티베트 불교학습의 최 일선 기지라고 하겠다.

보검=해동세계불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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