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티베트 불교를 가다-② / 티베트어를 사용하는 백족의 고향 다리(大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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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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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동 티베트 불교를 가다-② / 티베트어를 사용하는 백족의 고향 다리(大理)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6-12-12, (월) 11:07 am

티베트어를 사용하는 백족의 고향 다리(大理)

우리는 티베트 하면 히말라야를 생각하고 수도인 라사를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달라이 라마가 떠오른다. 티베트는 중국한자문화권에서 옛날에는 토번(吐蕃)이라고 불렀다. 최근 중국에서는 서장(시짱 西藏)이란 말을 더 선호한 것 같다. 그것은 중국 측에서 보면 티베트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티베트는 지리적으로 몇 개 권역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동 티베트라고 하면 캄 지역과 일부 암도 지역을 말한다. 이 지역은 지금 반 이상이 중국의 쓰촨성과 칭하이성에 편입되어 있다. 일부는 윈난성과 간쑤성에 포함되었다.

사진1: 티베트는 지리적으로 몇 개 권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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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는 대체로 네 지역으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라사를 중심으로 한 중앙지역, 인도네팔에 가까운 창 지역, 서부 티베트 지역 그리고 동 티베트 지역이 그것이다. 동 티베트라고 하면 캄(康巴 캉바) 지역으로 티베트의 동쪽 지역을 말한다. 중화민국(1939~1949) 시기에는 대부분 지역이 시캉 성(西康省)이었다.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군사적으로 점령되어 시캉 짱족 자치구(西康省蔵族自治区)로 바뀌었다가 1955년에 쓰촨성으로 흡수되었다. 캄 지역은 50개 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현재 쓰촨성(16주), 윈난성(3주), 칭하이성(6주), 티베트 자치구(25주)로 나뉘어 있다. 여기서 중국과 접경을 이루고 있는 동 티베트 지역은 항상 중국과 긴장관계를 유지해 왔다. 창 지역이나 서부 지역 그리고 중부 지역은 중국과는 너무나 먼 거리여서 옛날부터 중국과 직접 부딪치기에는 거리가 멀었지만, 동부 티베트는 중국과 닿아 있어서 항상 중국과의 외교문제 뿐만이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서로 교섭이 있었고, 한 때는 차마고도(茶馬古道)를 통해서 차와 말을 교환하기도 했다.

나는 이번 ‘동 티베트를 가다’에서는 먼저 윈난성 쿤밍에서 부터 여행을 시작한 것을 정리하려고 한다. 사실, 티베트는 워낙 지역이 넓어서 한꺼번에 다루려고 하면 너무나 벅찬 영역이 되고 만다, 외부인들에게는 티베트라고 하면 라사가 있는 중앙티베트만을 생각하기 쉬운데, 동 티베트는 티베트를 구성하는 매우 중요한 지역이다. 지금은 쓰촨성 성도인 청두에서 라사로 가는 천장선(川藏線)고속도로가 뚫려 있어서 쉽게 접근이 가능하지만,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쓰촨성 청두에서 라사로 통하는 길은 험준한 산길이었다. 그래서 대개 라사에서는 암도 지방인 칭하이성의 시닝을 경유했다. 옛날부터 이 길은 당번고도라고 해서, 당나라 문성공주가 토번 왕에게 시집가는 길이었다. 당나라 이전부터 이 길이 뚫려 있어서 토번과 중국과의 간선 주도(主道)였다. 《삼국지》에도 나오지만, 쓰촨성은 옛날 촉나라로서 장안(長安)에서 길이 험하기가 심해서 잔도(棧道)를 설치할 정도였다고 알려져 있다. 또 청두에서 티베트로 가는 길은 더욱더 험해서 갈 수 없는 길이다. 쓰촨성 청두에서 몇 십 km만 서쪽으로 나가면 산이 높아지고 티베트 고원의 동부지역이 나타난다. 고대시대부터 수천 미터의 티베트 고원에서 살기 시작한 티베트족들은 티베트고원이 지속되는 정동(正東)방향인 청두지역과 동북과 동남방향으로 전진하다보니, 지금처럼 중국 쪽에 깊숙이 들어와서 살게 된 것이다. 미얀마 쪽으로 간 티베트족은 버마평야지대에 살면서 유목민에서 농사를 짓는 정주민이 되어서 오늘날 버마족이 되었다고 한다. 버마어와 티베트어가 같은 뿌리에서 나온 같은 어족(語族)이다. 티베트어와 버마어를 집중해서 들어보면 유사성이 있음을 알게 된다. 몽골어와 만주어 등이 우리말과 어족이 같은 이치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면 같은 뿌리의 어족도 이렇게 먼 친척이 되어버리고 거기에 종교가 전연 달라지면 더더욱 멀어지게 된다.

버마족이 상좌부의 빨리어에 능통하고, 티베트족이 산스크리트어를 티베트어로 번역한 대승밀교의 적통종가가 된 것을 보면 흥미로울 뿐 아니라, 이들 사이에 어떤 동질감이 있음을 느끼게 된다. 글을 엮어 가면서 티베트에 대한 소개는 차차로 하겠으며, 일단 여행출발지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전개해 보자. 2015년 초가을인데, 방콕에서 윈난성 성도인 쿤밍으로 날라 갔다. 태국 북부지역인 치앙라이와 치앙마이에서 불교회의가 있어서, 회의를 마치고 방콕 수완나품 국제공항에 가방을 맡겨놓고 쿤밍으로 날라 가서 징홍이란 곳으로 갔다. 징홍은 태국과 미얀마와 가까운 지역이고, 이곳엔 타이족이 살고 있는데, 이곳에는 타이식 상좌부 불교가 제법 많았다. 이 지역은 또 보이차 생산지역이라서 차가 많이 생산되고, 지금도 보이차는 유명한 상품이다.

사진2: 징홍 보이차 가게에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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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간 리서치를 하고 다시 쿤밍으로 와서 다리와 리짱(丽江)을 거쳐서 샹그릴라로 향하기로 했다. 쿤밍에서 쓰촨성 청두로 가지 않고, 쿤밍에서 버스를 타고 다리(大理)로 향했다. 다리는 윈난성에 속한 도시라서 쿤밍에서 버스가 많았다. 다리시는 중국 윈난성 다리 바이족(白族) 자치주에 있는 현급시 정도이다. 다리는 옛날부터 남조와 대리국의 수도였다. 남조(南詔)는 당나라 때 티베트 버마족이 지금의 윈난(雲南) 지방에 세운 왕국이다. 바이족(白族)은 중국의 소수민족의 하나로,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15번째인데, 하얀색을 숭앙하며, 중국티베트어족에 속하는 바이어(白族語)를 사용한다고 한다. 서서히 티베트의 모습이 나타나는 곳이 다리이다. 쿤밍이나 징홍 같은 곳에는 티베트 불교가 진출하지 못했지만, 이곳 다리까지 티베트 불교가 진출했다. 이곳 다리에는 중국불교와 티베트 불교가 공존하였고, 라사불교의 영향권에 들었던 것이다. 나중에 이곳에는 무슬림까지도 진출했고, 차마고도의 중간 집산지이기도 했다. 징홍이나 보이지방의 보이차가 이곳에 도착하면, 여기서 일단 멈춤을 하고 중간상인들은 이득을 취하고 이 차들을 다시 티베트로 운송하는 역할을 했다.

티베트인들은 높은 고원에 살기 때문에 채소나 과일이 귀해서 비타민 섭취가 약했다. 그리고 야크 고기 등을 먹어야 했기에 항상 소화가 더디고 뱃속이 더부룩해서 불편했는데, 중국에서 온 이 차를 마시면서 이런 불편함이 해소되었다. 더욱이 야크 젖과 함께 끓여서 마시니 너무나 좋았던 것이다. 티베트 고원에서는 유목민에서 왕실과 귀족층 그리고 사원에서 까지 이 중국에서 생산된 차는 생명필수품이 되어 버렸다. 중국은 차를 주고 티베트의 말을 바꿔서 가져오는 형식이었다. 차마고도를 통해서 이뤄지는 이 차 무역은 중국과 티베트 간의 문화교류이기도 했다. 물론 지금이야 한족(漢族)들이 다수이지만, 이곳이 백족의 고향이기에 백족의 자치주로서 문화가 살아있다.

사진 3: 大理古城의 오화루(五華樓)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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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는 너무나 아름다운 지역이었다. 뒤에는 적당한 산이 높이 솟아있고, 앞에는 제법 크고 맑은 호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주로 다리고성을 관광하면서 지냈지만, 정말 오래오래 있고 싶은 정감 넘치는 옛 성이었다. 이제는 성안이 전부 가게들로 이뤄져 있지만, 정말 한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이다. 아쉬운 것은 한국식당이 생겼다가 없어졌다가 한다는 것이었는데, 여행 안내서에는 분명 표시가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그곳에 가보면 보이지가 않았다. 한국음식이 먹고 싶어서 30분씩 두 번이 가서 이리저리 헤매기만 했던 일이 새삼 기억에 떠오른다. 중국뿐만이 아니고 세계 여러 곳에 가보면 한국식당이 성업을 이루는 곳이 있는가 하면, 이곳처럼 생겼다 없어졌다하는 곳이 있는데, 여행가서 들뜬 기분으로 무작정 시장조사도 해보지 않고 차리는 것보다는 차분하게 결정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지만, 어디를 가나 한국인은 한국음식을 가끔은 먹어야 기운이 나고, 특히 김치를 먹어야 한다. 며칠은 견디지만, 일주일만 지나면 하다못해 라면이라도 먹어야 입맛을 잃지 않기 때문이다.

고성 뒤편으로 가니 백족들의 토속 종교가 있었는데, 이름이 성황묘(사원)였다. 주로 죽은 사람들을 천도하는 의식을 주로 집전하고 있었다.

보검=(해동세계불교연구원장 http://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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