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티베트 불교를 가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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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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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동 티베트 불교를 가다-①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6-12-12, (월) 9:30 am

불국정토가 어디인가?

이 세상에 불국정토가 있을까? 불국정토란 상상속의 세계이지 현실세계는 아닐 것이다. 모든 종교의 이상향은 항상 관념적인 상상의 세계이기에, 우리가 불교에서 말하는 극락이니 정토니 하는 세계 또한 이런 이상향의 관념세계가 아니겠는가. 대개 불자들은 실제 불국정토가 있다고 한다면 모두들 한번쯤 가보고 싶어 할 것이다. 이 세상에 그런 곳이 정말 있는지 의아해 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울 것임에 틀림없다. 하기야 내 마음이 항상 정토에 있다는 자세로 임한다면 그 자체가 불국정토 세계이겠지만, 그런 마음을 유지한다는 근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무리 척박한 환경에서도 종교적 신앙심이나 신념으로 어떤 원을 세운다면 어떤 악조건의 실상세계에서도 가능한 일이 되지 않겠는가.

(사진1:티베트지도, 노란색 부분은 티베트 자치구이며, 붉은 색 부분은 중국내에서의 티베트민족 자치주인 쓰촨 성과 칭하이 성이다. 윈난성과 간쑤성에도 티베트 족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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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불교역사를 공부하면서 이런 경험을 수없이 해 왔다. 부처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부처님은 불국정토 역사를 창조하시고 실제로 승가를 운영하셨던 분이다. 부처님은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신 전지(全知)한 분이었기에 그 법력과 신통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성인이셨다. 석존 본인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제자들도 항상 기쁜 마음으로 스승을 따르면서 하루하루를 보람 있고 뭔가 정신적 성장이 있는 삶을 영위했다. 스승은 수시로 법문을 하셨고, 세상과 우주에 대해서 차원 높은 철리를 설파하셨다, 그런가하면 평범한 일상사에 대해서도 두루두루 제자들을 일깨워주는 담론을 하셨다. 팔만장경의 이야기가 다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하나도 버릴 것이 없는 주옥같은 보석이다. 그래서 제자들은 스승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다음에도 스승의 말씀을 되새기면서 지켜가고자 결집회의를 개최해서 스승의 말씀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물론 구송(口誦)의 방법이었지만, 스승의 말씀은 정확했다.

세월은 흘러서 이런 회의를 3차에 걸쳐서 마가다국에서 하게 되고, 마가다 국(國) 만이 아니라 여러 지역과 해외에 까지 전파하기로 했다. 얼마나 장한 일인가. 그때의 비구장로들은 이런 전법활동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해 내고 있었다. 이후 부처님의 가르침은 점점 영역이 확대되어서 사방으로 퍼지게 되었고, 불국토(佛國土)가 되어 갔다. 한데 때로는 불길한 운수를 만나서 불법이 훼손되고, 가사가 걸레가 되고, 스님들은 속복을 입어야 하는 법난(法難)을 당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불교의 역사는 쌓이고 불법의 깊이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밀지(密旨)를 깨닫게 하여 불교는 하나의 굳건한 성처럼 견고해져 가는 것이다.

나는 3년여에 걸쳐서 동 티베트를 다니면서 보고들은 이야기를 엮어보려고 한다. 3년 동안 장기 체류한 것은 아니고 길게는 한 달 짧게는 10일 정도의 일정으로 6회 정도 돌아 다녔다. 자연스럽게 티베트 불교에 눈이 가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나의 소속 본업이 불교라서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데 우선 하고 싶은 말은 이곳에 불국정토가 있었다는 결론이다. 자기 땅에서 살아가면서도 당국의 눈치를 봐야하고 종교적 생활에 통제를 받고 온갖 제약을 받지만, 그래도 불교적 신념하나로 밀고 나가는 티베트인들의 불심에는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존경심이 생겼다. 4천 미터의 고원에서도 불심은 피어나고 있었다. 인도 마가다국에서 2천 6백여 년 전에 45년간 설법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은 이렇게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어 깜박거리고 있었다.

(사진2: 윈난성 리짱에서 샹그릴라로 향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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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는 윈난성 수도 쿤밍에서 다리 리짱을 지나서 샹그릴라로 갔다가 험준한 고원을 넘어서 스촨성으로 편입된 캉딩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캉딩은 간쯔 티베트족 자치주(甘孜藏族自治州)의 행정중심지이다. 캉딩에서 쓰촨성 성도인 청두(成都)로 나와서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순서이다. 금년 봄에는 청두에서 간쯔 야칭스와 오명불학원 까지 갔다가 다시 청두로 돌아왔고, 2014년에는 간쑤성과 칭하이성에 있는 티베트 사원 등을 답사했다.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면서 동 티베트 불교기행을 엮어 가려고 한다. 동 티베트는 자연 환경이 너무 아름답고 싱그러웠다. 정말 지상에 이런 곳이 있는가 할 정도로 청정 무공해 지역이고, 티베트족의 불심은 깊기만 했고, 이곳이 바로 불국정토였다. 여름이지만, 해발 고도 5천 미터에는 눈이 쌓여 있고, 빙설이 녹은 물은 지칠 줄 모르고 흘러 내렸다. 정말 이런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전쟁이니 평화니 하는 말은 필요 없을 정도로 순박한 삶을 살아가는 자연인들이었다.

(사진3: 샹그릴라에 있는 티베트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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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고원에 어떻게 불교가 전파되었을까. 티베트인들은 넓은 영토와 높은 고원을 마다하지 않고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디라도 탑과 절을 세우고 라마들이 옴마니 반메훔을 염송하면서 불심을 파종해 나갔다. 나는 2천년대 초에 티베트 라싸를 두 번 정도 가 본적이 있다. 그리고 90년대부터 달라이 라마도 친견해 왔다. 하지만, 동 티베트는 지난 3년간에 걸쳐서 다녀봤는데, 정말 지치지 않는 식상하지 않는 비경이면서도 티베트족과 티베트 불교를 이해하고 습득하는데 정말 값진 터전이었다. 나는 인도 같은 데에서 티베트인들을 만나는데, 젊은 세대들은 티베트를 모른다. 인도 땅에서 티베트의 디아스포라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들보다도 내가 더 티베트의 속살을 보고 티베트의 진실을 알게 된다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마음이 착잡하다.

달라이 라마도 20대에 티베트를 떠났고, 티베트를 기억하는 망명 라마들도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인도에서의 티베트 불교는 확실하게 티베트인들을 중심으로 이식되어 있고, 티베트 불교는 인도를 통해서 서구로 퍼져나가서 전파되었다. 지금 티베트 본토나 중국령 티베트 자치주에는 티베트 불교가 활성화되어 있고, 티베트어 사전과 한문으로 된 장전사전(藏傳辭典)으로 티베트 불교를 공부하는 라마들이 많았다. 인도에 있는 티베트 라마들은 한문을 모른다. 하지만, 중국에서 자란 젊은 라마들은 인도의 티베트 불교사원이나 대학에서 한문사전을 활용해서 공부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신기하게 생각했지만, 이것은 티베트 불교에게 현실이 되고 있다.

나는 ‘동 티베트 불교를 가다’라는 주제를 내세웠지만, 이 글은 단순히 동 티베트 풍토기를 다루는 것이 목적이 아닌 동 티베트 지역의 티베트 불교를 답사하면서도 인도의 티베트 불교 서구의 티베트불교도 붓 가는대로 소개하고, 동 티베트의 역사 문화도 경우에 따라서는 소개하는 형식으로 글을 엮어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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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검:(해동세계불교연구원장 http://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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