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佛法) 전하는 일이면 때려도 맞고 총 앞에도 당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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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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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불법(佛法) 전하는 일이면 때려도 맞고 총 앞에도 당당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13, (월) 7:44 am

불법(佛法) 전하는 일이면 때려도 맞고 총 앞에도 당당
-자비인욕보살 청담스님-

본래 참을 일 화날 일도 없는 공(空)사상 실천
노스님들 모시고 간 해외순례서 인욕정신 발휘
목숨 위협하는 빨치산에게도 부처님가르침 전파
이교도 땅에서 포교했던 ‘부루나 존자’와 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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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반세기 동안 불교의 유신과 정화를 바탕으로 하는 중생제도와 호국염원의 성취를 위하여 노심초사하시던 청담 큰스님! 실로 큰스님의 칠십 평생은 고난과 인욕으로 일관된 굽힐 줄 모르는 원력과 지칠 줄 모로는 보살행의 생애였습니다.” 상좌 현성스님이 은사 청담스님을 그리워하며 쓴 추모 글의 일부다. 범행스님은 청담스님을 일러 ‘인욕의 그 거봉(巨峰)’으로 칭했다.

불교에서 인욕(忍辱)은 대승의 실천사항인 6바라밀중 하나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이 여섯 가지는 우리나라 불교에서 가장 중요시하는 보살의 실천행이다. 생사 고해를 건너 이상향인 열반의 세계에 이르는 실천수행법이다. 인욕은 무엇인가? 흔히들 화가 나도 참고 서운한 일이 있어도 넘어가는 것을 인욕이라고 한다. 금강선원장 혜거스님은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기분이 나쁘지 않고 나를 모함하거나 곤경에 빠뜨려도 원망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인욕바라밀을 성취한 것”이라고 했다.

공(空)의 원리에서 인욕을 바라보아야한다. 대승불교의 핵심사상인 ‘공’의 원리에 따르면 모든 것은 인연에 의해 생겼다 멸하는 연기적 존재다. 공의 원리에 의하면 인욕은 애초 성립하지 않는다. 모든 현상은 흘러가는 물, 떠다니는 구름처럼 실체가 없다. 나를 때리고 욕하는 것 역시 실체하지 않는 허상이다. 그러니까 애초 서운하고 화날 일이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기뻐할 것도 좋아할 것도 없다. 그래서 범인(凡人)의 입장에서 인욕은 화가 나도 참는 것이지만 대승보살도 측면에서는 애초에 화(火)같은 것은 없다. 진불선원장 설우스님은 “중생심에서 목구멍까지 올라온 것을 참는 것은 인욕이 아니다. 그것은 중생의 무명에 의한 착각에서 자기를 괴롭히는 불빛과 같다. 그걸 참는 것을 인욕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인욕이 아니다. 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마음 다스리는 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청담스님의 인욕은 대승의 보살도 그 자체다. 청담스님의 인욕 일화는 수도 없이 전해온다. 전 불국사 주지 범행스님의 생전 회고다. 범행스님은 청담스님과 아주 많은 시간을 안국동 선학원에서 보냈다. 스님은 “청담 큰스님과 동고동락을 한 시간을 따진다면 나는 분명 으뜸 서열에 속할 것”이라고 할 정도다. 그렇게 오래 무탈하게 두 스님이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청담스님의 인욕 때문이었다. 범행스님은 “뜻만 같이 했을 뿐 청담 큰스님과 나의 성질은 정 반대였다. 나는 좀 단도직입적인 데가 있어 때때로 침을 놓는 발언을 잘했지만 청담 큰스님은 달랐다. 늙고 젊음을 따짐이 없이 상대방이 뭐라 든 응~ 응~ 하는 분이었다. 남들이 아무리 싫은 소리를 해도 골을 낸다거나 안색을 변하는 일도 없이 상대방의 말이 끝나도록 ‘응응’ 하는 분이었다. 참 지독하다면 지독하게 잘 참아내고는 했었다”고 회고했다. 정화를 주도했던 동산스님, 효봉스님, 금오스님을 모실 때도 청담스님의 인욕행은 두드러졌다. 세 스님은 청담스님보다 연배가 많은, 당시 비구계 최고 고승이며 원로였다. 범행스님은 “동산 효봉 금오스님과 같이 계실 때 보면 위의 세 스님은 벌컥 할 때가 많았지만, 청담스님만은 한결같이 감정을 격하게 표출하는 일이 없었다. 무서운 인욕이었다”고 회고했다.

동산 효봉스님을 모실 때 일화는 청담스님이 직접 일기로 남긴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정화를 통해 비구종단을 결성한 이듬해인 1956년 한국불교계는 처음으로 세계불교도대회에 참석한다. 세 스님 모두 비행기는 난생 처음 타고 해외도 처음이었다. 특히 동산, 효봉스님은 연로해서 마지막 해외여행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모시는 제자와 신도들은 혹시 출국을 못할까 조바심이 났다. 장소도 다름 아닌 부처님께서 태어나고 불교를 전파하고 열반한 인도와 네팔이었으니 그 여행에 대한 기대가 보통 남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종단이나 한국이나 당시는 세계 최빈국으로 제대로 된 항공편도 없고 통역 인력도 없었다. 해외 사무소를 둔 번듯한 기업도 없을 때였으니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도 장담 못 할 정도로 모든 사정이 형편없었다. 대회에 맞춰 가기로 했다가 효봉스님의 여비와 여권 준비가 늦는 바람에 함께 떠나지 못하게 됐다. 그러자 신도와 상좌들이 청담스님 탓을 해 그 원망을 다 받아야했다.

동경 마닐라 태국을 거쳐 우여곡절 끝에 인도에 갔지만 이번에는 한국에서 데려간 통역이 사라졌다. 말도 통하지 않고 여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도움을 청할 한국 대사관도, 기업도 없는데 항공편마저 끊어져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두 노스님은 젊은(?) 청담스님을 원망했다. 두 노스님 간에 입장이 달라도 원망은 청담스님이 들었다. 그렇다고 감정이 실린 원망은 아니었다. 정화를 함께 했으며 워낙 친밀한 관계다 보니 허물없는 대화가 오간 것일 뿐이었다. 효봉스님은 “동산 청담 두 스님이 금년에 삼재라 고난은 불가피 하지만 공연히 두 틈에서 고생만 죽도록 한다”고 농담을 던지고 청담스님이 웃으며 “우리 양인이 삼재에 들게 된 것이 효봉스님 때문 아닙니까”해서 세 스님이 파안대소 하는 식이었다. 어쨌든 한 달 간의 해외여행 동안에 겪은 곤경 속에서도 청담스님은 군말 없이 두 스님을 모시고 무사히 대회를 마치고 귀국한다. 당시 청담스님은 종회의장으로 55세였다

주변 어른을 모실 때 참는 것은 인욕의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 자기보다 나이나 지체가 낮거나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욕을 듣거나 심지어 손찌검을 당한다면 상황은 어떨까. 정화운동이 한창일 때 대처승에서는 스님뿐만 아니라 신도 가족들까지 나서 비구승과 대립했다. 특히 정화운동을 주도한 청담스님은 주 견제 대상이었다. 다시 범행스님 회고다. “대처 측 신도와 권속인 젊은이들이 막대기를 들고 나와 때려도 안색 한번 변하는 일이 없이 그대로 맞고 참는 것이었다.”

1960년 11월 종단을 부정하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조계사에서 승려대회가 열렸을 때 청담스님은 대중이 운집한 대웅전에서 정화가 무엇이며 종단을 지키지 못하면 순교를 각오해야한다는 요지의 법문을 하고 있었다. 그 중간에 한 젊은 비구가 갑자기 앞으로 나와 청담스님 뺨을 때렸다. 스님은 그러나 미동도 않고 하던 법문을 마쳤으며 대중들은 동요 않는 청담스님을 보며 끝까지 법문을 경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목숨을 내놓기로 각오한 6비구가 대법원에 들어가 할복으로 종단을 지켜내고자 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청담스님이 그 젊은 비구승을 혼내거나 감정에 흔들렸다면 대중들은 실망해서 자리를 떠나거나 대회는 난장판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냥 맞기만 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맞고 참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바른 법 즉 정법을 전하기 위함이다. 같이 힘으로 물리력으로 맞서면 싸움이 된다. 폭력으로 맞서지 않는 것은 이쪽의 바른 법을 상대방에게 전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때리고 욕을 해도 그대로 당하고 있으니 상대방이 물러난다. 그 때 청담스님은 다가가 대화로 정화 취지와 정법을 들려준다. 청담스님의 이러한 모습은 부처님의 십대제자 부루나 존자를 그대로 닮았다.

중생구제 실천 ‘보살도’ 그 자체
부루나 존자는 과격한 이교도들이 사는 땅으로 포교를 가기 전 부처님으로부터 몇 가지 질문을 받는다. “그들이 너를 욕하고 험담하며 때리고 목숨을 위협하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묻는 질문에, 부루나는 “욕하면 때리지 않아 감사하며 때리면 찌르지 않아 감사하며 목숨을 앗아가면 모욕감으로 자결하는 사람도 있는데 내가 애쓰지 않고도 목숨을 끊게 해주어 감사하다고 여기겠다”고 답한다. 부루나에 의해 이교도의 땅은 500명의 우바이 우바새가 500사찰을 건립하는 불교나라로 바뀐다. 부루나존자가 ‘설법제일’인 것은 말을 잘해서가 아니라 인욕행을 실천했기 때문이다. 청담스님이 문경 봉암사에서 결사정진할 때 빨치산이 쳐들어와 포악했던 이교도들 마냥 대중들을 모두 죽이겠다며 위협하는데 청담스님은 빨치산을 앞에 놓고 불교를 가르쳤다. 총 죽창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차분히 부처님 법을 전파하는 스님에게 감복한 빨치산은 잡았던 스님을 풀어주고 떠났다.

보시 정진 지계도 지키기 쉽지 않지만 사람의 근본 감정을 거스르는 인욕은 가장 지키기 힘들다. 덕 높고 도력 높은 스님들 중에 화내고 섭섭함을 쉽게 표출하는 경우를 적지 않게 목격한다. 그런 점에서 청담스님은 한 치의 흔들림 없는 보살행, 성인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국대 부총장을 역임하고 미국에서 평생 포교했던 오법안스님은 1972년 조선일보에 청담스님의 인욕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진리구현과 정의실현을 무력이나 완력으로 이룩할 수가 없다. 조용히 한 생각을 꾸준하게 밀고 나가는 인종(忍縱)의 길이다. 인종은 굴종이나 굴복이 아니다. 자기 생각을 영원히 실천하는 구도의 일념인 것이다.”

청담스님의 인욕은 참음 억누름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널리 알려 중생을 구제하고자 고민하고 실천하는 보살도였던 것이다.

청담장학문화재단ㆍ불교신문 공동기획-[불교신문3111호/2015년6월10일자]-박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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