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인생을 설계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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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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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우리는 무엇을 가지고 인생을 설계하나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8-25, (금) 5:50 am

<1>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전공과목과 선택과목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이 무엇이냐고 묻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유추(類推)하기는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인생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확정된 규범도 없다. 그야말로 각자도상(各自途上)이다. 자기가 알아서 살아가야 하는 인생이다.
사람이 사는 행로(行路)에 대하여 묻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얻기는 더욱 어렵다.
사람마다 세계관(世界觀)이 다르고 가치관(價値觀)이 다르고 인생관(人生觀)이 다르고 걸어가는 방향(方向)과 목적(目的)이 다르기 때문에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 사람마다 태어난 고장이 다르고, 부모가 다르고, 사회환경이 다르고, 가정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살아가는 태도 역시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인생은 이런 것이라고 확정적인 정답을 유추해내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삶에는 ①기회(機會) ②도전(挑戰) ③희극(喜劇) ④비극(悲劇) ⑤사랑 ⑥슬픔 ⑦모험(冒險) ⑧행운(幸運) ⑨미학(美學) ⑩투쟁(鬪爭) ⑪가치(價値) ⑫몰가치(沒價値)가 함께 뒤섞여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現實)에는 자연현상(自然現象)에 대한 전관적(全觀的)이며 통시적(通時的)인 관점(觀點)이 존재하고, 또 그것을 논리적 체계에 담은 이론체계(理論體系)도 존재한다. 그에 반대되는 관점과 논리도 존재한다. 실례를 든다면 땅덩이는 둥글다거나 네모나고 편편하다는 관점이 그것이다. 이와 같이 현상을 보는 관점이 다르기 때문에 인생에 대한 일률적인 규범을 전제해서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관점의 논리화(論理化)를 통해 체계화(體系化)되고 질서화(秩序化)된 온갖 관념적(觀念的) 구조(構造)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기 때문에 꼭 이것이어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없다.
세상을 언 듯 보기에는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자기 멋대로 아무런 구애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적(實際的) 현장은 그렇지 않다. 오랜 역사와 진화과정을 겪어오면서, 국가(國家)마다, 사회(社會)마다 많은 선각자(先覺者)들에 의해 자연현상(自然現象)이 여러 차례 이론화(理論化)되고 논리화(論理化)됨으로써 각각 다른 사고방식과 윤리(倫理)의 구조(構造)와 체제(體制)를 갖추었기 때문에 대단히 복잡하다. 따라서 기존의 체제와 구조에 순응하기 위하여 사회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조건(條件)들을 갖추지 않으면 평탄한 삶을 영위하기가 매우 어렵다.
137억 년 전에 발생한 빅뱅과 때를 같이하여 태양계(太陽系)에 등장한 지구촌에서 시간과 공간을 점유하고 한시적인 삶을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은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는 자율운행시스템에 적응하며 자기의 인생을 설계하면서 로드맵을 작성하고, 그 로드맵에 맞추어 무엇을 먼저 하고 무엇을 다음에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되는 입장에 서게 된다.
첫째로 선택해야 하는 것은 ①다양하게 분화(分化)된 학문체제(學問體制) 가운데에서 하나를 선택하여 자기의 전공(專攻)으로 확정하는 일이다. 두 번째로 선택해야 되는 것은 ②다양한 이데올로기 가운데 자기의 성정(性情)과 형편에 알맞은 것을 하나 선택하여 자기의 주체적 의지로 상정하는 일이다. 세 번째로 선택해야 되는 것은 ③우주의 생성과 세계의 번영(繁榮)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이론체계(理論體系)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다.
자기가 선택한 ①전공(專攻)과 ②이데올로기와 ③세계관(世界觀)과 하나 되는 중심개념(中心槪念)을 상정(想定)한 연후에는 과감하게 현실세계로 뛰어들어야 한다.
그러면서 ④마음 편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하고 ⑤그곳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고, ⑥인생을 함께할 동반자(同伴者)를 선택해야 하고, ⑦지혜와 신뢰로 자기의 인생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멘토를 선택하여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경험과 실력을 쌓아야 한다.
이와 같은 다양한 선택 중에서 ◆젊은이들의 의지를 사로잡는 학문체제(學問體制)와 ◆보편적인 감성을 갖춘 사람의 의식(意識)을 사로잡는 이데올로기와 ◆사람의 정신세계를 좌우하는 이론체계(理論體系)를 원용하여 자기의 인생을 설계하는 동시에 자기가 앞으로 걸어갈 방향(方向)과 좌표(座標)를 상정(想定)하여 ‘나의 길’을 바로 세우게 된다. 뿐만 아니라 만물제관(萬物諦觀)에 도달하여 모든 사물을 바로 보고, 바른 생각을 하고, 바른 말을 하고, 바른 직업을 갖고, 바른 사명을 추구하고, 본심에 의지해서 정직하게 살아가는 동시에 인간 좌절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도(道)를 찾아야 한다.

◆젊은이들의 의지를 사로잡는 학문체제(學問體制)
㉮물리적 원리를 원용한 <물리적 체제>에는 건축공학(建築工學) 광산학(鑛産學), 광학(光學), 교통공학(交通工學), 구조역학(構造力學), 금속공학(金屬工學), 기계공학(機械工學), 농업공학(農業工學), 도시공학(都市工學), 산업공학(産業工學),생명공학(生命工學), 석유공학(石油工學), 소프트웨어공학, 시스템공학, 신뢰성공학(信賴性工學), 원자력공학(原子力工學),응용공학(應用工學), 의공학(醫工學), 인간공학(人間工學), 자동차공학(自動車工學), 재료공학(材料工學), 신소재공학(新素材工學), 전기전자공학(電氣電子工學), 조선공학(造船工學), 컴퓨터공학, 항공우주공학(航空宇宙工學), 해양공학(海洋工學), 화학공학(化學工學), 환경공학(環境工學)등이 있다.
㉯정신적 원리를 원용한 <정신적 체제>에는 정신분석학(精神分析學),아동심리학(兒童心理學),행동발달학(行動發達學), 심리학(心理學) 등이 있다.
㉰사회적 원리를 원용한 <사회적 체제>에는 문학(文學), 언어학(言語學),미학(美學),역사학(歷史學),철학(哲學),경영학(經營學),경제학(經濟學),고고학(考古學),과학학(科學學), 관광학(觀光學),국제관계학(國際關係學),기록관리학(記錄管理學),도시학(都市學),무역학(貿易學),미래학(未來學),법학(法學),부동산학(不動産學),북한학(北韓學),사회복지학(社會福祉學),사회학(社會學),여성학(女性學),인류학(人類學),정치외교학(政治外交學),지리학(地理學),행정학(行政學),환경학(環境學) 커뮤니케이션 등이 있다.

①이처럼 다양한 학문체제 중에서 전공과 부전공을 선택하여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앞길이 열리지 않는다. 오늘의 동향과 내일의 전망을 고려하면서 전공을 잘 선택해야 한다.


◆보편적인 감성을 갖춘 사람의 의식(意識)을 사로잡는 이데올로기
감각주의(感覺主義) 개인주의(個人主義) 객관주의(客觀主義) 경험주의(經驗主義) 계몽주의(啓蒙主義) 공산주의(共産主義) 과학주의(科學主義) 관념주의(觀念主義) 권위주의(權威主義) 기계주의(機械主義) 기회주의(機會主義) 낙관주의(樂觀主義)
낭만주의(浪漫主義) 물질주의(物質主義) 민족주의(民族主義) 민주주의(民主主義) 박애주의(博愛主義) 법치주의(法治主義) 보수주의(保守主義) 비관주의(悲觀主義) 사회주의(社會主義) 신비주의(神秘主義) 실용주의(實用主義) 실존주의(實存主義)
염세주의(厭世主義) 이기주의(利己主義) 이상주의(理想主義) 인도주의(人道主義) 자연주의(自然主義) 자유주의(自由主義) 정통주의(正統主義) 제국주의(帝國主義) 직관주의(直觀主義) 초월주의(超越主義) 쾌락주의(快樂主義 합리주의(合理主義)
허무주의(虛無主義) 현실주의(現實主義) 환원주의(還元主義) 회의주의(懷疑主義)

②이데올로기를 선택하여 자기화하는 노력은 자기의 이념(理念)을 세우는 과정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념이 없이는 자기를 굳건하게 세워나갈 기둥을 마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정신적(精神的) 체계(體系)를 좌우하는 다양한 이론체계(理論體系)

①가이아 이론(Gaia Theory)
영국 과학자 J.러브록이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는 이론.
'지구는 살아 있다'는 가설로서 공간적으로는 대기권과 암석권과 생물권을, 시간적으로는 지구의 생명이 태어난 시간부터 현재까지를 포함한다. 가이아(Gaia)란 공간적 시간적 경계를 가지는 하나의 실체이며, 바로 이것이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가이아이론은 1978년 영국 대기과학자 J. 러브록이 '지구상의 생명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표하면서 제기되었다.
러브록은 생물이 지구환경에 미치는 영향이 생물계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하고, 지구를 생명체에 의해 조절되는 하나의 유기체로 보았다. 따라서 지구는 외부와 교류하면서 외부의 조건이 변화하더라도 스스로 내부조건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생물계와 무생물계가 상호작용하여 안정된 체계를 이룬다고 주장한다.
가이아이론에서 제시하는 증거들은 대부분 지구가 일정한 환경을 유지한다는 사실들과 관련되는데 가이아론자들은 이처럼 일정한 환경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생물의 작용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생물이 사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대기 중 산소가 일정한 양으로 오랫동안 지속되어 왔다는 것, 대기온도 역시 생물이 얼어 죽지 않고 지금까지 살 수 있도록 유지되어 왔다는 것, 그 밖에 바닷물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되어 왔다는 것 등을 그 증거로 들고 있다.
지구가 능동적으로 생물이 살기에 적합하도록 환경을 조절해 왔다는 가이아이론은 과학적 성격을 벗어난 해석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지구 환경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되는 현 시점에서 지구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하고 지구 생명을 보는 거시적 시각을 새롭게 마련했다는 데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②양자론((quantum theory)
M,플랑크의 양자가설을 기초로 하여 정립된 이론.
양자론(量子論)은 양자역학을 기초로 하여 물리현상을 밝히고자 하는 이론으로서 양자이론(量子理論)이라고도 한다.
1900년 M. 플랑크가 공동(空洞) 안의 복사에너지 분포식을 제창한 이후, 물리량의 값의 불연속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고전물리학과 대조적인 시도가 거듭되다가 비로소 일관된 이론체계, 즉 양자역학이 완성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고전물리학과는 대치되는 이들 시도와 이론체계 전체를 양자론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양자역학 이전의 시도 전체를 특히 전기양자론(前期量子論)이라고 한다. 현재 양자론은 소립자·원자핵·천체·원자분자과정·양자유체·고체·자성(磁性) 등의 연구, 양자광학·양자전자기학·양자역학의 기초론 전개 등, 양자현상(양자론이 대상으로 하는 현상)에 관한 광범위한 분야로서 발전하고 있다. 이들 분야를 총칭하여 <양자물리학>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다. 플랑크의 분포식 이후 A. 아인슈타인은 진동수 인 빛에너지가 에너지양자 는 플랑크상수)의 값을 취한다고 가정하여 광전효과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제안하였다. 또한 N.H.D. 보어는 수소원자 내 전자의 궤도로서 고전물리학에서 주어지는 연속무한개 중에서 궤도의 작용(운동량을 운동의 1주기에 걸쳐 좌표로 적분한 것)이 플랑크상수의 정수배가 되는 것만이 전자의 정상상태로서 현실적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수소원자의 안정성과 복사·흡수되는 빛의 스펙트럼을 이끌어냈다. W.K. 하이젠베르크는 이 보어의 원자모형에서 출발하여 25년 양자역학의 행렬표시, 즉 행렬역학에 도달하였는데, 이 이론에서는 물리량을 직접 어떤 기초적인 소량(素量;기초량), 즉 양자의 정수배로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좌표와 운동량 사이에 주어진 새로운 관계, 즉 교환관계라는 양자조건에 바탕을 두고 이끌어냈다. 한편, L.V. 드 브로이는 1923년 전자에도 파동성이 있다는 것을 예측했으나, E. 슈뢰딩거는 26년 이 전자의 파동성을 전자가 퍼텐셜작용을 받고 있는 경우까지 확장하여 파동역학에 도달하였다. 여기서는 물리량이 플랑크상수를 포함한 연산자로 되어 있으며, 에너지나 작용의 비연속성은 그 결과로서 도출된다. 그 뒤 행렬역학은 파동역학과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제시되었다.
양자물리학으로 총칭되는 여러 방면의 발전에 대해서는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그러나 양자전자기역학처럼 장(場)의 양자론에는 이론 자체에 고유한 난점이 있으며, 양자론의 다음 이론에 대한 모색이 때때로 이루어졌으나, 양자역학을 넘는 이론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③유기체론(有機體論)
화이트헤드가 언급한 이론. 유기체론(有機體論 organicism)은 생체론이라고도 한다. 생명현상의 기본은 부분과정이 편제(編制)되어 그 계(系)의 고유한 평형 또는 발전적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는 생명론적 또는 생물학방법론적 입장. 유기체론은 기계론과 생기론의 대립을 계기로 발전했다. L. 버털랜피, J.H. 우저, A. 메이어, W.E. 리터, E.W. 베일리 등에 의해 1928년 전후부터 1940년대에 걸쳐 강하게 주장되어 현재에도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유기체론자에 의하면 기계론은 위와 같은 생명현상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며, 생기론은 유기적 전체성을 중요시하지만 그것을 형이상학적 요인에 따라 설명하기 때문에 자연과학의 방법론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이에 비해 유기체론에 있어서 생명현상은 유기체의 물질과 과정이 어떤 특정한 결합상태·질서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어서 그 계에 갖추어지는 특성(Systemeig-enschaften)이라고 한다. 버털랜피의 유기체론에서는 유동평형(流動平衡)과 계층구조의 개념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기계론적 패러다임과 유기체론적 패러다임
인간조직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시장에 나와 자기의 관점이 바람직한 관점이라고 목청을 높여 외치고 있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우리의 정치판을 보면 시장바닥보다 더욱 시끄럽니다. 바야흐로 무질서의 천국이다. 정치판보다는 그래도 시장 사람들의 관점이 한 차원 높다. 목소리가 큰 시장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략 다음과 같은 몇 가지의 관점으로 요약된다.(1)조절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인간조직을 기계적으로 정비해야 된다.(2)지속 가능한 발전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한다.(3)일관된 관점의 논리화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체계적 학습>을 통해 의식화해야 한다.(4)가치관과 믿음을 중시하는 관점에서 문화를 유기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5)이해의 충돌을 막을 수 있는 힘을 비축하기 위해 <정부시스템>을 강화해야 한다.
시장에서 토로되는 관점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기계론적 패러다임>과 <유기체론적 패러다임>으로 크게 나뉜다. (1)(3)(5)는 기계론적 패러다임, (2)(4)는 유기체론적 패러다임에 예속된다. 그런데 일반인들은 기계론적 패러다임이 무엇인지 잘 모르고 있다. 더구나 해체주의를 밟고 일어선지 얼마 되지 않은 <유기체론적 패러다임>을 알 까닭이 없다. <인간조직>이라는 말을 쓰게 된 계기를 살펴보자. 17세기 이전에는 <인간>이라는 말 자체를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더구나 <인간조직>이라는개념 자체가 형식화되지 못했다. 인간조직이라는 개념이 형식화된 시기는 17세기 이후부터다. 다시 말하면 데카르트와 뉴턴이 형식화한 <기계론적 패러다임>으로부터 비롯된다. 데카르트가 인간중심주의를 부르짖기 이전에는 신중심주의가 판을 쳤다. 그때만해도 신에 비해서 인간 존재는 비교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따라서 <인간>에 대한 가치규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인간조직을 기계에 비유한 관점은 17세기, <기계론적 세계관>을 형식화한 이후 300년 동안 서구문화를 지배해 나온 기계론적 패러다임과 인간중심주의에서 뿌리를 찾아야 한다. 데카르트와 뉴턴이 기계론적 세계관을 논리적 체계에 담아 형식화하지 못했다면 현재와 같은 서구사회는 인류 역사에 등장할 수 없었다. 데카르트와 뉴턴의 <기계론적 세계관>이야말로 이 지구의 방방곡곡을 일깨웠으며 엄청난 파급효과를 끼쳤다는 점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데카르트와 뉴턴의 기계론적 패러다임과 인간중심주의가 21세기로 들어서 도전을 받게 되었다는 점이다.<장의 이론>을 비롯한 소산구조, 시스템이론, 유기체론적 패러다임의 등장으로 인해 적용성의 한계를 노출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특히 유기체론적 패러다임으로부터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다.우리는 이제 우리 사회와 기업조직에 대한 우리 인식이 어디로부터 연유되었는가를 돌이켜 보아야 한다. 그와 동시에 기계론적 세계관과 유기체론적 세계관의 차이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천착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21세기에는 세계의 질서가 새롭게 재편될 것이라는 예상도 가져 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선적으로 <기계론적 패러다임>과 <유기체론적 패러다임>이 어떻게 다른가를 알아야 한다.기계론적 패러다임은 세계가 <기본적인 부품>들로 구성된 <기계 시스템>으로 인식하는 관점이다. 다시 말하면 거대한 세계가 기계와 같이 부분과 부분으로 조립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다.유기체론적 패러다임은 세계가 마치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뇌와 세포와 조직과 기관들처럼 서로 서로 뗄 수 없는 유기적인 연관성을 갖고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살아서 움직이는 생명처럼 세계를 보는 것이 유기체론적 패러다임이다.유기체로적 패러다임에 의한 <생명의 세계>를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 <도>가 필요하기 때문에 서구인들이 자주 도를 묻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의 세계를 파악하는 데에 있어서는 논리적 체계가 아닌 <직관적 인식>이 긴요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직관인식>을 길러주는 <도>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사회유기체론사회란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생물)로서 스스로 움직이고 생각한다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사회란 실제로 존재하며 개인은 사회라는 커다란 울타리에서 보호받고 사회라는 울타리가 만들어낸 법칙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는 논리가 전제된다. 이러한 논리를 바탕으로 한 많은 전체주의 국가에서 이 논리를 이용해 개인의 요구는 묵살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에게 끊임없는 희생을 요구하게 된다. 사회를 위해 개개인의 요구와 목적이 무시 될 수도 있는 난점(難點)이 있다.다소의 단점이 있지만 이러한 논리를 바탕에 깔고 있는 국가들은 때로는 국민들이 일치단결(一致團結)하여 무서운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위력을 발휘하기도 한다.이와 반대되는 사회 명목론은 사회(예를들어 국가, 단체 등)란 개인과 개인이 모여 같은 목적을 위해 이룬 하나의 허상이라는 논리에서 출발한다.
사회는 개인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개인과 개인이 서로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계약을 통해 이루어 진다는 논리로 사회라 불리는 커다란 공동체의 존재를 부정한다. 사회라는 커다란 울타리보다는 개인이라는 객체를 더 중요시 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이론과 관련된 사상으로는 현재의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여러가지 논쟁이 있지만 이 두가지 이론의 공통점은 사회와 개인사이에서 어떠한 것에 비중을 두고 그것을 어떻게 이 사회에 적용시켜 아직 사회에 관한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을 찾아내느냐가 공통점 아닌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이상 사회과목을 전문으로 했지만 허접한 은둔형 외톨이의 대답이었습니다.

④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
하이젠베르크가 밝힌 이론. 불확정성원리(不確定性原理)는 양자역학의 기초를 이루는 원리로, 어떤 관측가능량(觀測可能量)을 정확히 측정하면 다른 관측가능량의 값에 관한 지식에 필연적으로 불확정성(不確定性)이 생긴다는 원리.
1927년 독일의 하이젠베르크가 양자역학의 일반 형식을 이용하여 이러한 결과를 이끌어냄으로써 양자역학적 기술의 물리적 의미를 명백히 하였다.
원자나 소립자 등의 미시적 세계의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측정하면, 입자의 상태가 동일하더라도 이 2개의 물리량의 측정값은 어느 일정한 값으로서 주어지지 않고 여러 값이 각각 일정한 확률로서 얻어지는 흩어짐을 나타낸다. 이때 흩어짐의 크기(정도) 사이에는 정해진 관계가 있다고 하는 것이 이 원리이다. (마) 시스템이론:프리죠프 카프라가 주장하는 이론

⑤시스템이론 (systems theory)
전체를 이루고 있는 각 요소간의 유기적인 관련에서 전체를 파악하려는 이론. 생물학·공학·경영학·사회학 등에서 사용되어 왔던 전통적인 분석방법이나 연구방법에서는 연구대상의 구성요소간의 상호의존관계에 대한 인식이 불충분하였다. 그 때문에 구성요소를 따로따로 분리하여 각 요소의 움직임이나 작용을 독립적으로 분석하여 그 연구대상 전체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구성요소간에 상호의존관계가 있을 때에는 그 방법으로 연구대상 전체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인식이 생물학·공학을 비롯하여 여러 연구분야에서 생겨 연구대상의 구성요소간의 상호의존관계를 명시적으로 분석하려는 새로운 사고가 생겼다. 이 사고방식이 시스템이론이며, 시스템적 접근법 또는 시스템분석이라고도 한다. <시스템>이라는 말은 보통 ① 구성요소가 복수로 이루어져 있으며 ② 그 구성요소가 서로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상호의존관계에 있을 때 사용한다. 시스템이론은 생물학·공학·경영학 등의 연구분야에서 강조점의 차이는 있으나 연구대상 전체를 이해하기 위해 구성요소간의 일정한 관계를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하는 기본적인 접근법이나 사고방식은 같다. 시스템이론의 사고방식을 경영학이나 관리공학(管理工學) 분야에서 예를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생산부문·영업부문·경리부문의 3부문으로 되어 있는 어떤 기업에서, 지금 제품의 재고정책(제품의 종류와 재고량)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분석하고 있다고 하자. 생산부문에서는 제품당 생산비를 되도록 싸게 생산하기 위해 소수 제품을 대량 생산하려고 할 것이다. 영업부문에서는 매상을 늘리는 것이 목표이기 때문에 고객의 수요에 즉시 응할 수 있도록 여러 제품의 대량생산을 바랄 것이다. 경리부문에서는 자본운용을 유효하게 하기 위해서 재고비용을 줄이려고 할 것이다. 이 때, 생산·영업·경리의 3부문은 제품의 재고정책에 관해서 서로 상반된 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러나 재고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기업의 3부문은 각각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서로 관련되는 존재이므로 기업 전체의 시스템으로 볼 때, 최선의 재고정책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어떤 한 부문의 목적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부문의 정책을 명시적으로 분석하여 기업 전체의 목적을 최선으로 하는 재고정책을 실시해야 한다. 한편, 여러 연구분야에서 발전해 온 시스템이론을 통합하여 그 연구방법론 자체를 연구대상으로 하는 <일반시스템이론>이라는 연구 분야도 있다.

⑥이원론(二元論)
세계는 정신과 물질로 형성되었다는 데카르트의 이론.
이원론 (二元論 dualism)은서로 환원 불가능한 독립된 2개의 실체(實體) 또는 원리를 인정하고, 그 두 원리로부터 일체의 사상(事象)을 설명하는 입장으로서, 일원론 및 다원론과 대립된다.
철학사상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이원론은 R. 데카르트의 물심이원론, 즉 사유(思維)를 본성으로 하는 정신과 연장(延長)을 본성으로 하는 물질의 실재적(實在的) 구별이다. 이에 의해서 정신으로부터 독립한 객관적 자연의 존재가 승인되어, 일체의 자연현상은 연장과 운동에서부터 기계론적으로 설명되고, 정신(의식)은 인식 주체로서의 독자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즉 근대철학의 기본적인 틀이라고 할 수 있는 주관과 객관의 이원론이 확립된 것이다. 그러나 물심이원론은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心身問題) 하는 문제에 만족할 만한 해답을 찾지 못해 이원론 극복의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가장 오래된 형태는 빛과 어둠, 하늘과 땅, 선한 신과 악한 신 등의 대립을 원리로 하는 신화적·종교적 이원론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형이상학에서는 이세계설(二世界說)로 나타나는데 플라톤의 이데아계(界)와 감성계(感性界), G. 라이프니츠의 가능계(可能界)와 현실계, I. 칸트의 예지계(叡智界)와 현상계(現象界) 등의 구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⑦환원론(還元論)
서구의 과학자들이 정립한 이론. (1)부분 부분의 합이 전체이며 (2)전체는 부분으로 환원되고 (3)부분은 전체로부터 분리 가능하다는 관점이 환원주의의 골격이다. 환원주의에 의해서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인 (1)물리적 체계 (2)정신적 체계 (3)사회적 체계가 탄생된 것이다.기계주의와 환원주의가 적용성의 한계를 나타냄으로써 3세기 동안 유지해 나온 (1)물리적 체계 (2)정신적 체계 (3)사회적 체계가 흔들리게 되었다는 점이다.
학문의 기본적인 원리가 적용성의 한계를 노출하게 됨으로써 일체의 학문이 새롭게 재편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다.사람들은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도 한다. 관점과 패러다임을 바꾸자면 기계주의와 환원주의를 불태워 버려야 하는데 그와 같은 일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 없다. 문제는 교육이다.우리는 적용성의 한계를 노출해버린 학문체계를 후예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⑧기계론(機械論)
서구의 과학자들이 정립한 이론. 기계론 (機械論 mechanism)은 사실과 현상의 생성변화에 대하여, 시간적으로 앞선 것과 뒤진 것을 구분 지을 경우, 앞선 것이 뒤진 것을 결정하고 지배한다고 하는 견해와 거꾸로 뒤진 것이 앞선 것을 결정하고 지배한다는 견해의 두 가지가 있다. 즉 생성변화를 필연적인 인과관계로 보는 견해와 목적개념에 의한 견해이다. 기계론은 정신적인 것을 포함한 세계의 모든 현상의 생성변화를 전자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철학상의 입장이다. 이에 대해 후자의 관점에서 세계의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것이 목적론(目的論)이다. 따라서 기계론은 목적론과 대립한다. 또 기계론은 역사적으로는 고대의 레우키포스·데모크리토스·에피쿠로스·루크레티우스 등에, 근세에는 홉스·스피노자·라메트리·돌바크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엄밀한 인과관계로써 자연을 이해하려고 하는 근세물리학으로 대표되는 자연과학의 성과로 보더라도 기계론은 물질적인 세계에 대해서는 확실히 유효하지만, 유기적 현상이며 인간의 자유의지와 같은 정신적 사상에 대해서는 충분히 그 성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칸트처럼 기계론의 성립범위를 물질계로 제한하고 정신계에는 목적론이 성립한다는 사고방식도 나와 있다.

⑨진화론(進化論)
다윈이 주장한 이론. 동식물의 종들은 서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 단순한 형태로부터 복잡한 형태로,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완전한 것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생물학 이론이다.
과학으로서의 진화론의 확립은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온 때부터다.
다윈은 지금 세계에 있는 동식물의 수많은 종들은 본래부터 그런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니고, 생물체가 주위환경에 적응하여 살아나가는 과정에서 단순한 생물체가 보다 복잡한 생물체로 발전하고 수많은 종으로 갈라져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⑩창조론(創造論)
창조론(創造論, Creationism)은 인간, 삶, 지구, 우주가 신이나 뛰어난 존재의 <초자연적인 개입>에 의해 신비로운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을 의미한다.
이 '개입'은 완전한 무에서의 창조일수도 있고, 이전에 있던 혼돈에서의 질서의 출현일 수도 있다. 현대에는 (기독교인들에 의해), 진화론이나 천체물리학, 기타 자연 세계의 기원에 대한 관점이 있는 과학적 관점과 대립되는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독교와 유대교의 창세기 경전과 이슬람교의 코란에서는 세상의 기원에 대해 묘사하면서 유일신이 세상을 창조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를 과학 이론인 생명체의 진화론과 대립되는 관점에서 창조론이라고 부르는데, 엄밀하게는 과학 이론과 종교적 믿음이라는 전혀 다른 가치 체계를 같은 위치에 놓고 비교한다는 점에서 오해의 소지가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에게 있다.
생명의 창조론을 과학으로 증명하려는 노력 역시 이뤄지고 있는데 이를 창조과학이라고 부른다. 또한 더욱 발전된 형태의 창조과학으로서 지적설계운동도 대두되고 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이에 대해 정해진 결론을 위해 증거를 취사 선택한다며 인정하지 않고 있다. 또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창조론을 학교 정규 교과 과정에 반영하는 문제가 재판으로 비화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생명의 진화와 우주의 생성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받아들이지만 그 이면에 신의 개입이 존재한다고 믿는 경우도 있으며, 성서에 적혀있는 내용은 과학적 진실이 아니며 단지 신앙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⑪원자론(原子論)
그리스 철학자들이 주장한 이론. 자연은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미립자(원자)와 진공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기본적 자연관의 하나. 원자론이라고도 한다. 원자설은 자연의 연속설에 대한 불연속설, 목적론에 대한 기계론, 관념론에 대한 유물론의 입장에 서 있다. BC 5세기 그리스의 레우키포스와 그 제자인 데모크리토스가 처음 제창했다. 이오니아의 탈레스 등의 일원론이 엘레아학파의 파르메니데스에 의해 논리적 비판을 받고 세계는 균질하며 불변한다고 주장한 후, 현실적인 생성소멸을 옹호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이 다원론이며, 원자는 파르메니데스의 <존재>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불변의 실체를 지니고 있으나 크기와 형상만 다를 뿐이라고 했다. 무수한 원자는 공허한 공간을 움직이며 충돌에 의해 갈고리훅처럼 기계적으로 결합 또는 분리되어 세계의 여러 변화가 생기는 것이며, 물체의 차이는 다만 원자와 그 배열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고대 원자설은 부분적인 변경, 예를 들면 기계적 결합 대신 I. 뉴턴의 역학이론, 여러 종류의 형상 대신 J. 돌턴의 구상이론(球狀理論) 등을 받아들이면서도, 똑같은 실질을 지닌 불가분·불변의 원자라는 기본개념을 계속 유지해왔다. 이 설은 관념론적 원소론자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반대에 부닥쳐, 고대에는 에피쿠로스와 그 학파가 도덕철학의 기초로서 계승했을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이 풍미했던 중세기의 이슬람 및 유럽에서도 원자설은 쇠퇴했지만, 미립자 개념만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에도 잠재적으로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스콜라학자들이 자연의 최소입자(minima)에 대해 여러가지로 논의했다. 미니마는 그 자체의 성질을 지니며, 물체의 변화는 구성 미니마의 내적 변화에 따르므로 원자와는 다르지만, 시대가 지남에 따라 원자설과의 혼돈이 일어났다. 르네상스시기에는 인문학자들에 의한 고대원자설의 번역과 소개로 입자설 및 원자설이 유행하게 되었다. 1649년부터 프랑스의 사제 P. 가상디에 의한 에피쿠로스학설의 활발한 소개는 E. 토리첼리에 의한 진공 발견(1643)과 함께 원자설 보급에도 기여했으며, R. 보일 등에게 강한 영향을 미쳤다. 원자와 거시적 물체 사이에 비교적 안정된 입자집합을 상정한 보일의 입자철학은 훗날의 원자설·분자설에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한편, 고대에 원자설과 대립되었던 원소설은 화학반응 사이에도 변하지 않고 보존되는 것이 있다고 화학자들이 생각하기 시작함으로써 원자설에 접근해갔다. 즉 네덜란드의 D. 제네르트가 4원소에 대응하는 4종의 원자 또는 입자를 상정한 것이 그 예이다. 그러나 원소설과 원자설의 완전한 결합은 4원소설을 불식한 근대적 원소설이 탄생한 후에 이루어졌다. 1803년에 영국의 J. 돌턴은 A.L. 라부아지에의 여러 원소에 원자를, 화합물에 분자(복합분자)를 대응시켜 각각 상대무게를 산출하였다. 여기서 비로소 이종(異種)원자의 규정이 거의 실증적으로 무게에 의해 확립되었다. 그 결과 철학적 경향이 우세했던 이제까지의 원자설은 과학이라는 명칭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라부아지에의 원소설과 함께 화학을 새롭게 일변시켜 풍성한 성과를 올리게 되었다. 스웨덴의 J.J. 베르셀리우스는 정확한 원자량을 결정하려는 노력을 여러 해 동안 계속했다. 그러나 분자 중의 원자수를 결정할 만한 일관된 근거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배수비례의 법칙 등의 방증에도 불구하고 원자설에 대한 의문이 과학자들 사이에서 일어났으며, 원자량 대신 당량을 사용하는 학자도 나타났다. 1811년 홑원소 물질에서 다원자분자를 상정함으로써 J.L. 게이뤼삭의 기체반응의 법칙과 원자설을 조화시킨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은 이 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실증성이 결여되었다. 이 시대에 새로 대두한 유기화학에서 원자량의 불확정성 때문에 하나의 화합물에 대해 분자식이 여러 가지로 정해지는 혼란이 생겨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860년 독일의 카를스루에시(市)에서 개최되었던 국제화학자회의의 폐회 후 배부된 S. 카니차로의 논문은 아보가드로의 분자설에 실증성을 부여하고 마침내 원자량 문제에 결말을 내렸다. 그 결과 원자가(原子價) 개념이 명확해졌으며, 1869년 유기화학구조론의 발전, J.L. 마이어·D.I. 멘델레예프 등에 의한 주기율의 발견 등이 있었다. 멘델레예프는 여러 원소의 화학적 성질과 물리적 성질은 원자량에 따라 주기적 의존성을 지닌다는 것을 밝혔는데, 이것은 돌턴이 시작했던 원소와 원자와의 통일을 명실공히 완성한 것이다. 그러나 그 본질 해명은 20세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원자설은 다른 분야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특히 기체분자운동론은 화학의 한 학과를 만들었으며 그 적용에 의한 브라운운동의 해명은 원자설을 확고히 했다. 19세기 말의 전자 및 방사능의 발견으로 시작된 20세기의 원자과학은 불가분·불변이라고 생각해왔던 원자가 내부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다른 것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밝혀냄으로써 원자설을 역사적 개념으로 바꾸는 한편, 자연의 한 계층으로서의 원자의 존재를 증명했고, 원자와 물질에 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깊게 해주었다.

⑫이기론(理氣論)
유교의 세계관. 우주현상과 인간의 도덕실천 문제를 이(理)와 기(氣)로써 설명한 형이상학적 이론. 이(理)는 모든 사물과 관련된 법칙·원리 또는 이치·도리로서 모든 사물을 지배하는 일체의 법칙성으로 형이상자(形而上者)이고, 기(氣)는 직접 감각할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사물의 구체적 성질로서 형이하자(形而下者)이다. 우주의 모든 현상은 이·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기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인 동시에 통합될 수 없는 관계로, 그 관계를 파악하는 이해방법의 차이에 따라 다양한 학설들이 전개·발전되어 왔다. 중국의 이기론중국사상사상(中國思想史上) 이와 기의 관계를 둘러싸고 많은 논쟁과 탐구가 진행되어 왔다. 이는 사물의 법칙성을 나타내는 개념으로서 선진(先秦)시대부터 사용되었으며, 기도 고대 이래 사물을 형성하고 그것에 생명을 부여하는 가스형태의 물질이라고 생각되어 중국인에게는 매우 친숙한 것이었다. 특히 도교(道敎)나 중국의학에서는 체내를 돌아다니는 기가 고르지 못하기 때문에 병이 생기며, 그 기를 조절함으로써 장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처음으로 기를 자각적으로 철학체계에 편입시키고 기의 존재론을 만들어낸 사람은 북송(北宋)의 장재(張載;橫渠)이며, 기에 대하여 이를 세우고 이와 기를 통해 세계를 받아들이려고 한 사람은 같은 시대의 정이였다. 정이는 이(理)란 기(氣)가 현상(現象)하는 세계 속에서 그것을 지탱하며 질서를 잡아주는 존재라고 하면서, 이러한 이를 구명(究明)하는 것이 학문의 요체라고 보았다. 그는 아직 이·기의 관계에 대하여 정밀한 분석을 가하지는 않았으나, 그를 계승한 남송(南宋)의 주희(朱熹;주자)는 이와 기의 성격 및 그 관계를 깊이 사색하여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철학을 대성하였다. 주희에 의하면, 이는 형이상의 것이고 기는 형이하의 것이므로 서로 완전히 다른 것이지만, 이가 있으면 기가 있고 기가 있으면 이가 있는 것으로, 단독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양자의 관계는 <불리부잡(不離不雜)>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기가 운동성을 갖는 데 반하여 이는 무위이고 기의 운동에 편승해서 거기에 질서를 부여할 뿐이다. 특히 주희는 이기론이 심성론과 연결됨을 중요하게 여기고, 인간의 마음을 성(性)과 정(情)으로 나누어, 이에 해당하는 성은 오로지 선하고(純善) 기에 해당하는 정은 선하기도 하고 악하기도 한 것(有善有惡)이라고 하였다. 여기에서 이·기의 가치문제를 따지게 되었고, 이는 존귀하며 기는 비천한 것이라는 가치관이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이러한 가치관은 봉건신분제릍 옹호하는 철학적 토대로 작용하여 후세 학자들의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명(明)나라의 왕수인(王守仁;陽明)은 이·기의 관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으나, 전습록(傳習錄)에서 <이는 기의 조리(條理), 기는 이의 운용(運用)>이라고 하는 이기일체관(理氣一體觀)을 표명하였다. 또한 같은 시대의 나흠순(羅欽順;整庵)이나 왕정상(王廷相) 등은 이보다도 기를 세계의 근원으로 보고 이의 실체화를 비판하였고, 청(淸)나라의 대진(戴震)도 이의 실체화에 반대하고 이를 사물에 내재하는 조리라고 하였다.

⑬중연화합생기론(衆緣和合生起論)
불교의 세계관. 우주만유를 일대연기(一大緣起)로 보는 불교교리의 하나. 법계무진연기(法界無盡緣起) 또는 법계무애연기(法界無碍緣起)라고도 한다.
화엄종(華嚴宗)을 중심으로 성립·발전되었다. 법계의 우주만물은 각기 하나와 일체가 서로 연유(緣由)하여 있는 중중무진(重重無盡)한 관계로, 어느 하나도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만유를 동일한 수평선 위에 두고 볼 때 중생과 불(佛), 번뇌와 보리(菩提), 생사와 열반(涅槃) 등과 같이 대립적으로 생각하던 것도 실제는 모두 동등한 것이어서 만유는 원융무애(圓融無碍)한 것으로 있게 된다.
화엄종에서는 일즉일체(一卽一切)를 일체즉일(一切卽一)이라 주장하고, 하나의 사물은 그대로가 전 우주라는 뜻에서 한 사물을 연기의 법으로 삼고 있다. 이것이 우주성립의 체(體)요, 힘인 동시에 그 사물은 전우주로 말미암아 성립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사상은 불교연기론의 극치로서 법상종(法相宗)의 아뢰야식연기(阿賴耶識緣起)와 법성종(法性宗)의 진여연기(眞如緣起) 등과 같이, 우주연기의 주체를 한 사물이나 이체(理體)에 국한하지 않고 그 하나하나를 만유의 합당한 모습으로 말하는 것이 특징이다.
화엄종의 교리인 사법계(四法界)·십현연기(十玄緣起)·육상원융(六相圓融)·상입상즉(相入相卽) 등은 모두가 법계연기를 설명하는 화엄사상의 골자이다. 이 중 사법계는 현상과 본체와의 상관관계를 사법계(事法界), 이법계(理法界), 이사무애법계(理事無碍法界), 사사무애법계(事事無碍法界) 등 4가지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다.

③인생을 경영해야 하는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이상 언급한 13종의 이론체계 중에서 자기의 성정에 어울리는 하나를 선택하여 자기의 정신 속에 상식으로 체계화해야 한다. 왜냐하면 세계관이 빈약하면 자기의 중심개념(中心槪念)을 새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이론체계들을 모두 무시해버리고, 자기의 견해를 중심으로 인생을 경영하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정체성(正體性)이나 당위성(當爲性)이 확립되지 않는 독단적인 견해로는 사회성(社會性)이 미약하기 때문에 창조론이든 중연화합생기론이든, 하나를 선택하여 자기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밖에 없다. 전미개오(轉迷開悟)를 위해서 하나를 선택하는 방법이 현명한 방안이라고 할 수 있다.

<2> 자기가 살아갈 곳, 자기가 할 일, 동반자, 멘토를 선택해야

세상을 먼저 살아본 선배들은 인생의 각 방면에서 귀중한 경험을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뒤에 오는 후배에게 자기의 경험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지 않는다. 그것은 부모나 형제자매도 마찬가지다. 무엇에 대하여 구체적인 질문을 던지면 네가 살아 보고, 네가 겪어보면 다 알게 된다고 말한다.
다양한 학문체제 중에서 분자생물학이나 전자공학이나 생명공학이나 신소재공학 중에서 무엇을 선택하면 좋겠느냐고 물어도 확답을 들려주지 않는다. 유장한 삶을 경영하기 위해 자본주의나 민주주의나 합리주의나 근본주의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하고 물어도 답변을 회피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누구나 무엇을 선택하여 내 앞의 삶을 풍요롭게 가꿀 것인가 하는 문제를 안고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다양한 ①학문과 ②이데올로기와 ③이론체계 가운데 각각 하나를 선택해야한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자기의 세계관과 가치관과 인생관에 따라 무엇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자신이 한번 선택한 다음에 자기가 선택한 그것이 자기의 본질과 합당한 것인가를 살펴보게 된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自己)의 본질(本質)이 어떤 것인지 모른다. 자기의 본질을 명확하게 모르는 입장에서 수수께끼를 풀 때처럼 어림셈으로 자기의 본질은 이러할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하면서 대상을 선택하게 된다.
선택된 대상이 자기의 본질과 영합하지 않을 때는 방황하게 된다. 뒤늦은 선택을 두 번 세 번 반복하게 된다. 때문에 대상의 선택에 앞서, 자기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명확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인생(人生)을 설계(設計)하는 자기(自己)의 본질(本質)은 무엇일까?
자기의 본질을 파악하기 우해서 생명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고, 자기의 신체적 구조의 75%를 점유하고 있는 물의 정체를 알아야 하며 나머지 25%를 구성하고 있는 내유신령(內有神靈)과 외유기화(外有氣化)의 원융회통(圓融會通)을 파악해야 한다.

자기의 전공(專攻)을 선택한 연후에는 그것과 연관성이 있는 이데올로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자연현상을 체계적으로 해설한 이론체계를 각각 선택해야 한다. 전공과 이데올로기는 자기의 인생과 아주 밀접한 연관성을 띠게 되기 때문에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세계관에 대한 이론체계를 하나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중요한 세 가지를 선택한 다음에는 ④마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해야 하고 ⑤그곳에서 살면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고려(考慮)하고, ⑥인생을 함께할 동반자(同伴者)를 생각하고, ⑦지혜(智慧)와 신뢰(信賴)로 자기의 인생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멘토를 결정하여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실력을 쌓아야 한다.

④마음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곳을 선택하기는 매우 어렵다. 21세기는 이미 세계화가 구현된 시대이기 때문에 5대양 6대주 중에서 어느 곳을 선택해도 문제가 없다. 미주지역을 선택하든 유럽대륙을 선택하든 자기의 발길이 닿는 대로 선택하여 삶의 기반을 닦으면 그만이다.

⑤그곳에서 무슨 일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은 자기의 전공과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제조업을 가든, 큰 기업체의 종사원으로 들어가든, 인연 따라 자기의 할 일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⑥인생을 함께할 동반자(同伴者)를 선택하는 일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요즈음 그 사람이 갖추고 있는 조건(條件)을 보고 동반자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는데, 조건보다는 그 사람의 인품이나 교양이나 삶의 태도를 보고 동반자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대기업의 아들딸을 선택한다고 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돈이 많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은 집안의 아들딸을 배우자로 선택해도 좋지만, 철학이나 수준 높은 가치관을 갖춘 인품이 고결한 대상을 골라 배우자로 삼는 것이 기나긴 인생을 영위해 나가는 데에는 보다 현명한 선택이 되지 않을까.

⑦지혜(智慧)와 신뢰(信賴)로 자기의 인생을 이끌어 줄 수 있는 멘토를 한 사람 결정하여 현장에서의 실질적인 실력을 쌓아가는 방법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멘토의 곁에서 항상 가르침을 받고, 자기가 걸어야할 방향과 목표를 제시해 주는 멘토는 항상 지남(指南)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제 남아있는 것은 불굴의지로 도전(挑戰)하는 길만 남아 있다고 본다.
모든 것을 다 갖추었다고 해도 현장에 뛰어들어 밀려오는 파도를 해치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굳건한 의지와 용기가 없으면 인생은 그것으로 그만이다.
자기의 앞으로 밀려오는 ①기회(機會) ②도전(挑戰) ③희극(喜劇) ④비극(悲劇) ⑤사랑 ⑥슬픔 ⑦모험(冒險) ⑧행운(幸運) ⑨미학(美學) ⑩투쟁(鬪爭) ⑪가치(價値)를 인생이라는 하나의 용광로에 담아 용해하면서 시간과 공간을 합목적으로 유용하게 활용해 나가는 길로 매진하지 않으면 성공적인 인생으로 나갈 수 없게 된다. ♣

글: 김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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