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자 화두, 왜 대혜식 제치고 몽산식 따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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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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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무자 화두, 왜 대혜식 제치고 몽산식 따르나?”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19, (일) 8:26 am

“무자 화두, 왜 대혜식 제치고 몽산식 따르나?”

윤창화 대표 ‘한암-용성 세미나’서 한국 선문 몽산 ‘무자화두 참구 경향’ 비판
“경허·만공·전강·성철 등 몽산식 참의 따랐고, 한암은 대혜식 참구법 따랐다” 주장

전통적인 화두선이라고 해서 그 방식이 유일한 것이 아니다. 간화선을 제창했던 ‘대혜종고(1089~1163) 스타일’이 있고, 그로부터 150년 쯤 뒤에 출현한 원대의 선승 ‘몽산덕이(1231~1308?) 스타일’이 있다.

선문의 대표적 화두인 조주의 무(無)자 화두의 참구 방식을 놓고 엇갈린 두 화두참구 스타일은 과연 어떻게 다른가?
대혜종고의 스타일은 무자화두 참구법에 대하여 “망념이 일어날 때는 오로지 이 ‘무(無)’라고 하는 한 글자를 참구하라(妄念起時 但擧簡無字)”고 하여 단순히 무자(無字)를 참구하라는 방식이다. 이것을 단제무자참구(單提無字參句, 오로지 말을 참구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 몽산덕이가 제시한 스타일은 새로운 방법인 전제참의(全提參意) 방법이다. 이 방식은 “일체 함령은 모두 불성을 가지고 있는데 어째서 조주는 ‘無(없다)’라고 했는지 그 뜻을 참구하라(一切含靈 皆有佛性 趙州因甚道無 意作?生)”는 것이다.

이렇게 두 화두참구 스타일은 확연히 다르다. 전자는 단순히 무(無)자를 참구하라는 것이고, 후자는 그 방법으로는 의단을 형성하기가 쉽지 않으니 그 뜻을 참구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근대 한국불교의 대표적인 선승이자 간화에서 활구참구를 강조했고 원만한 수행을 위해 교학과 계율도 중시했던 조계종의 초대 종정 한암선사(漢岩重遠 1876~1951)는 어떤 방식을 따랐을까?

환속 전 한암의 상수제자인 탄허스님을 시봉했던 윤창화(민족사 대표) 선생은 지난 4월 24일 열린 2015년 오대산 월정사-대각사상연구원 학술세미나 ‘용성과 한암, 그 지성의 원류를 찾아서’에서 ‘간화의 두 가지 방법과 한암선(漢岩禪)’이라는 제목의 발제를 통해 “한암은 몽산 덕이가 아닌 대혜종고의 간화 스타일을 따랐다”고 밝혔다.
“몽산의 전제방법이 우리니라에 들어온 것은 고려 후기이며 이후 우리나라 간화선에는 단제무자방식(대혜식)과 전제무자방식(몽산식)이 공존, 혼재했거나 또는 대혜식이 몽산방식에 흡수되어 결국 몽산 일변도로 정착되었다”고 전제한 윤창화 대표는 “조선의 휴정, 근세의 용성도 대혜식보다는 몽산식을 더 따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경허, 만공, 전강, 성철 선사 등 대부분의 선승들이 몽산의 ‘조주인심도무’를 무자화두참구방법으로 적용, 권유하고 있고 특히 퇴옹성철선사도 ‘조주가 무라 했는데, 어째서 무라 했나? 이렇게 하는 게(것이) 화두하는 근본이야’ 또 그냥 ‘무~’하거나 그냥 ‘마삼근’하면, 그건 화두하는 방법이 잘못된 거야('화두공부하는 법')라고 하여, 몽산의 전제방법인 ‘조주인심도무’를 강조하고 있다”고 소개한 윤 대표는 “그러나 간화선을 창시한 대혜선사는 이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으며, ‘망념이 일어날 때는 다만(오로지) 이 하나의 무자를 들라’고 하여 오로지 단제참구방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것은 단제의 참구방법이 활구이고, 그리고 활구를 통해야만 교학적, 의리선적인 깨달음에 빠지지 않고 올바른 수승한 깨달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주장했다.
윤 대표는 이어 “간화선을 도입시킨 고려 보조지눌은 [간화결의론]에서 참의(參意)와 참구(參句)에 대하여 ‘요즘(보조 당시)에는 참구방법을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거의가 화두를 뜻풀이로 이해하는 참의방법을 택하고 있다. 이것은 화엄교학을 통하여 이해하는 것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 참구로써 의단을 깨뜨려 직접 일심을 깨달아 반야를 광대하게 발휘하는 사람과는 같은 격으로 논할 수 없다’고 하여, 참의는 사구(死句)이고 참구는 활구(活句)이며 또 참의보다는 참구방법으로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소개했다.
윤 대표는 또 “한암은 조주의 무자를 참구만하라‘는 논조이고 ’어째서 조주가 무라고 했는지를 참구하라‘는 말은 일체 없다. 따라서 한암 선사는 대혜의 단제방법을 택하고 있고 몽산의 전제방법은 수용하지 않았다”고 결론지었다.
이날 윤창화 대표의 경허, 만공, 전강, 용성, 성철 선사의 선수행법이 참의, 즉 의리선에 가깝다는 내용을 뼈대로 한 발제는 세미나장에서 열띤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구참 납자이기도 한 월정사 주지 정념 스님과 동국대 교수 보광 스님, 선학자인 김호귀 교수 등이 윤 대표의 논문에 대해 각각의 견해를 밝히는 등 세미나장을 달궜다.
윤창화 대표는 “간화선 정통 맥을 잇고 있다고 자부하는 한국의 선문이 간화선의 제창자이자 완성자인 대혜종고의 참구 방법을 따르지 않고 대혜종고와 수평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후대의 인물 몽산덕이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것은 잘 납득이 되지 않는다”면서 “우리 선문에서도 이제 이 문제에 대해 공론화하여 정통에서 벗어난 간화정맥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의 이번 발제는, 한국의 선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돈점 논쟁에 버금가는 논쟁거리가 될 전망이다. 2년 전 경허 관련 논문을 발표해 불교계 안팎에 큰 논쟁의 불씨를 일으켰던 윤 대표의 이번 논문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2015-04-28 미디어붓다 이학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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