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을 신봉하는 불교도 / “우리는 어쩌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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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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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불법을 신봉하는 불교도 / “우리는 어쩌면 좋아요”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10, (금) 5:33 am

불법을 신봉하는 불교도 / “우리는 어쩌면 좋아요”

1. 성장의 한계

1968년에 결성된 로마클럽은 경제성장이 환경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성장의 한계’를 통해 세상에 알렸다.
1972년에 발간된 ‘성장의 한계’는 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성장의 한계’가 세상에 나온 후 ‘자본론’ ‘종의 기원’ ‘성서’등과 함께 세계를 뒤흔든 책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오늘날까지 환경문제에 관한 고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로마클럽 보고서는 세계 모형을 바탕으로 경제성장과 관련된 비판적 분석을 가했는데, 크게 다섯 가지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했다.
첫째 인구 문제로서, 인구는 계속해서 연 2.1%로 증가하는 데 반해 식량 산출량은 인구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한다.
둘째 공업생산은 연 5%씩 증가하는데, 자본재가 없어지는 속도는 공업의 성장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셋째 식량 수요의 지수적(指數的) 성장은 인구증가의 직접적 결과이기 때문에 지구의 모든 땅이 활용된다 하더라도 결국 인구를 먹여 살릴 식량 생산은 한계에 이를 수밖에 없다.
넷째 재생 불가능한 자원의 사용 속도는 인구나 공업성장 속도보다 빠르게 증가해 마침내는 고갈될 수밖에 없다.
다섯째 인구와 공업 활동의 영향을 받아 갈수록 지구의 환경오염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이 다섯 가지 문제를 종합해 이들은 현재의 성장 추세가 계속 변하지 않는 한 앞으로 100년 안에 성장의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보았다. 즉 유한한 지구 환경에서 인구증가, 공업화, 환경오염, 식량감소, 자원고갈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면 성장은 한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보고서가 발간된 뒤 비록 지구의 미래와 기술의 기여도를 지나치게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1970년대 이후 환경오염에 대한 세계적인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로마클럽은 1974년에,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다시 세상에 내놓았다.
다음의 인용문이 이 보고서에서 주장하는 내용의 특성을 보여 준다.
"연못에 수련(水蓮)이 자라고 있다. 수련이 하루에 갑절로 늘어나는데 29일째 되는 날 연못의 반이 수련으로 덮였다. 아직 반이 남았다고 태연할 것인가? 연못이 완전히 수련에게 점령되는 날은 바로 다음날이다."

불법(佛法)을 신봉하는 불교도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많은 사람들이 왜 ‘성장의 한계’를 언급하며 ①인구문제 ②공업생산 ③식량수요 ④자원사용 ⑤환경오염 문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그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의 마련에 힘을 쏟고 있는지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1)기계론(機械論)과 환원론(還元論)의 원리(原理)에 맞춰 삶의 세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2)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 또한 환원론과 기계론에 근거를 둔 ①물리적 체제 ②정신적 체제 ③사회적 체제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간파하려고 들지 않는다.

불교도들은 인구증가나 환경오염과 같은 당면한 문제들을 철저하게 간파하고자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의 변화와 사회 변동에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는 듯하다. 달리 말하면, 세계를 리드하는 세계관(世界觀)과 사회를 움직이는 학문체제(學問體制)에는 크게 관심을 쏟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세계관과 학문체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는 증거는 21세기를 리드하는 환원론과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메카니즘을 공부하는 불교지도자가 희귀하다는 것으로 입증된다. 오늘을 사는 불교도들은 세계를 리드하는 세계관과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은 세속적(世俗的)인 것으로 치부하는 동시에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그러다보니 세계의 동향에 어둡고 사회 변동에 둔감하며, 급격한 사회 변동 시기에 사회를 향하여 적절한 메시지를 발표하지 못한다.

불교 수행자(修行者)들의 거의가, 주관적인 판단으로는 대상을 초극(超克)하는 '절대적 마음'은 쉽게 찾을 수 없다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수행자들은 평상심(平常心)이 무엇인가를 간파하고자 '행위의 대상(對象)'을 파지(把持)해 나간다. 다시 말하면 대상을 파지하기 위해 ①표상(表象)과 ②법(法)을 직시(直視)하며, 되도록 표상은 제외하고 법을 사유(思惟)한다. 그런데 왜 자기 눈앞의 법(존재)와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은 무시해도 무방하다는 것인가?

표상과 법을 직시하자고 강조하면서도 왜 현대의 세계를 이끄는 물상(物象)에 따른 세계관과 사회를 리드하는 학문체제는 거들 떠 보려 하지 않는가. 표상과 법을 사유(思惟)하면서 세계관과 학문체제를 무시하는 태도는 잘못된 불교의 이상주의(理想主義)와 초월주의(超越主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복잡한 현실로부터 벗어나 죽림(竹林)에 칩거하고자 하는 경향으로 바뀌면서, 세계를 리드하는 ①기계론과, 사회를 리드하는 ②메카니즘을 등한시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세계를 리드하는 원리와 사회를 구성하는 메카니즘이 무시되어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세계를 리드하는 원리와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은 17세기부터 20세기까지 줄기차게 가감되는 실험의 과정을 거쳐 오늘의 인류를 이끌어 나가고 있고, 기계론은 현대문명을 견인한 우수한 이론일 뿐만 아니라 21세기를 이끌고 가는 시대적 기린아(麒麟兒)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불교도들은 21세기의 실상과 정황을 바르게 파악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오늘을 사는 불교도들은 불법을 보다 철저하게 배우며 믿고 따르게 하기 위하여, 겸해서 (1)세상을 리드해 나가는 이론체계와 (2)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의 내용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세계를 리드하는 원리(原理)와 사회를 이끌고 나가는 메카니즘을 모르면, 세상 사람들에게 유익한 메시지를 보내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당하게 된다.
왜냐하면 불교도들이 하는 행위나 쓰는 말이 세계를 이끄는 원리와 사회를 리드하는 메카니즘과 소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일상적인 언행이 오늘의 시대적 정황으로부터 멀리 벗어나 있음은 물론 세상과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계를 움직이는 원리와 사회를 리드하는 학문체제를 모른다는 것은 한강에서 평생을 살아 가야할 물고기가 한강의 환경이나 수질(水質)에 관해서 아는 것이 없다는 것과 동일하다. 한강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는 물고기가 한강의 환경과 수질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금방 어려운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 것처럼,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알아보려 하지도 않은 채 무작정 이 세상을 구습에 매인 채 머물고만 있다가는 효과적 전법포교나 참된 수행의 길(앎)마저 낭패를 보기 마련인 것이다. 사회 현상에 관한 앎이 없이 자기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 가겠다는 것인가?

간단하게 말해서, 이 세상을 잘 살아내려면, 세상에 대한 확실한 앎을 손에 쥐고 삶을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현실주의(現實主義)와 이상주의(理想主義), 형이상학(形而上學)과 형이하학(形而下學)이 어떻게 다른가 하는 내용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올바른 불법(佛法)을 깨달아 올바른 삶을 영위해 나가기 어렵다. 앎이 없이는 구체적인 삶이 올바로 진행되지 않는다. 세상사를 모른 채 세상을 잘 살고자 드는 것은 넌센스다.

세상의 이치와 사회의 메카니즘을 알기 위해서 이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자녀 교육에 심혈을 쏟고 있지 않은가.
불교도들은 로마클럽처럼, 세계를 이끌고 가는 정치 지도자들과 사회를 이끌고 나가는 문화 창조클럽을 향해서 메시지를 내놓지 않고 있다. 로마클럽은 세계를 흔드는 메시지를 발표하는데, 한국불교는 왜 그와 같은 메시지를 세상에 내놓지 못하는가? 세계를 보는 안목이 부족하고 사유(思惟)의 범주(範疇)가 비좁아서 그러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거대한 세계를 다(多)와 일(一)로 상정하는 동시에 전체(一)와 부분(多)이 상즉상입(相卽相入)하고 보편성(普遍性)과 특수성(特殊性)이 원융회통(圓融會通)하는 유기체(有機體)로 인식하는 불교야말로 빼어난 통찰지(洞察知)를 갖추고 있다.
그런데 왜 오늘의 인류(人類)에게 긴요한 메시지를 내놓지 못하는가? 불교도들은 그 이유를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불교도들은 착실하게 불법만 믿고 따르면 그만이라는 아주 소박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불교도들처럼 소박한 마음으로 일관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생각'을 내가 해낼 수 있는가를 궁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혹자는 ①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와 ②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에 대하여 구체적인 설명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을 비웃기도 한다. 앎이 부족한 사람을 무시하는 경우가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가.

대체로 한국의 기독교도들은 불교신자들이 불교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고 신앙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투철하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오인하여 깔보고, 비아냥된다. 얼마나 비웃는지 모른다. 불교도들은 상식과 경우에 맞지 않은 언행을 일삼는 무리를 만나게 되면 피해 가면 그만이라고 말한다. 이치에 어긋나는 언행을 일삼는 무리를 만나면, 피하지 말고 올바른 가르침을 베풀어 어리석은 무리들을 계도해야 한다.
'똥이 무서워 비켜 가냐 더러워서 비켜 가지'라고 하며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던 사이에 우리 사회의 이 곳 저 곳에 이교도(異敎徒)들이 걷는 길의 폭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모른다.

우리는 불교의 교리를 열심히 공부하는 한편으로, ①세계를 움직이는 이론과 ②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에 관심을 갖고, 그것들의 구조와 근간을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①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말과 ②지근거리에 있는 친인척에게 '삶에 따른 세계의 구조와 운행원리'를 자세하게 들려 줄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불교를 믿는 이웃에게 진실로 필요한 메시지를 들려 줄 수 없게 된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불교를 믿도록 포교를 하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의 실상과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이웃사촌이 아들을 대학에 보내게 되었을 때, 전공을 무엇으로 선택했으면 좋을지 몰라 허둥거린다면, 자연과학은 이러 이러한 것이며, 인문과학은 이러 이러한 것이니, 먼 장래를 내다보고 전공을 선택하라는 귀띔을 해준다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불교인들은 이 세상의 모든 정보를 잘 파악하고 난 다음에 올바른 길이 어떤 길인가를 친절하게 알려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이 중생 제도를 올바르게 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전공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몰라 목마른 학생에게 바른 전공과목 하나 일러주지 못하고서야 어떻게 중생을 제도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오늘을 사는 불교지도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한 메시지를 들려 줄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을 향해서 시의에 적절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성찰과 미래의 비전이 동행하는 새로운 출발을 결행할 때가 오늘이라고 귀띔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무엇을 선택하여 어떻게 하라는 구체적인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세계를 다른 관점에서 보고 달리 해석하는 이교도에게 '불교의 유기체론적(有機體論的) 세계관'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교의 세계관에 입각하여 불교의 가치관 인생관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이 많은 할머니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앉아서 '천수경'만 외우고 있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21세기 글로벌(global)시대이다. 세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오지에서 침묵은 금이라는 말을 앞세우고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불교의 본 모습은 세상에 깊이 참여하여 많은 사람들과 섞이고 나누면서 함께 밝은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가장 높고 넓은 정신적 자유'를 지향하는 종교가 불교인데, 왜 이다지도 세계와 사회를 향하여 로마클럽처럼 세상에 유익한 메시지가 한번쯤 오롯한 불교수행자들의 탁마모임에서 또는 결제나 해제에서 질문과 답변으로 나올 만도 하건만 왜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2. 과거의 성찰(省察)

1972년에 로마클럽은 '성장의 한계'를 발표하여 세계 각국 지도자들을 각성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G7의 정상들과 각국 지도자들은 로마클럽의 메시지를 반박했다. 세계 각국은 앞으로 더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명분을 걸고 로마클럽의 메시지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로마클럽은 몇 해 뒤에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무크지를 통해 새로운 메시지를 내놓았다.

성장의 한계를 발표한 로마클럽은 발전주의를 앞세워 지금과 같은 속도로 자연을 착취해 나간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지구 전체가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예고를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1972년에 발표된 '성장의 한계'를 읽지 못했다. 유신을 준비하느라 분주했기 때문에 로마클럽의 메시지 따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없었다. 유신정권이 무너진 다음에도 연이어서 군사정권이 들어서는 바람에 로마클럽의 메시지를 읽을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30년이 지난 뒤에야 로마클럽의 메시지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는 부랴부랴 '21세기위원회'를 만들면서 '지속발전가능위원회'라는 이름을 내걸고 뒷북을 쳤다. 30년 전의 메시지를 그 시점에서 바로 읽지 못하고 30년이 지난 뒤에서야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는 '성장의 한계'를 지적한 로마클럽의 의도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발전하는 역사만이 옳은 역사라고 외치고 있다.
오늘도 역사주의와 발전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로마클럽의 경고를 무시하며 ①효율적 생산 ②치열한 시장 ③극심한 경쟁을 뚫고 발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로마클럽이 제기한 그대로 발전지속 가능한 지혜롭고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맹목적인 발전주의만 외치며 달려가고 있다.

지금과 같은 방법론을 들고 계속해서 발전주의를 목에 걸고 자연을 착취하며 앞으로 돌진하면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어낼 것인지 깊이 사량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새로 출범한 정부 여당의 테크노크랫은 1960년대의 건축기술을 원용하여 자연 질서를 바꾸려는 계획에 골몰하고 있다. 대운하 계획을 세워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자연 질서를 교란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 높은 산맥을 가르고 물길을 휘돌리다보면, 태풍이나 엘리뇨보다 더 무서운 재앙이 뒤따를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는 듯 해 보인다.

자연 질서를 무시하고 발전을 추구하다가는 성장의 한계를 뛰어넘어 수습할 수 없는 재앙을 불러들이게 되리라는 메시지가 로마클럽에서 발표한 내용이지만, 세계 각국의 정치지도자들은 발전주의를 목에 걸고 가시적인 성과를 올려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고자 목적달성에만 급급해 왔다. 그 같은 발전계획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 로마클럽의 충고였다.

이제야 국민들은 발전주의를 내걸고 지금과 같은 속도로 발전을 추구하거나 자연을 착취해 나간다면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내일을 조망할 수 없는 위기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스로 달리 유지능력을 찾지 못하면 결국 급격한 사회변동과 이에 합당한 대체방법이 없어, 이런 좌절의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세계2차 대전이 종식된 후 많은 독립 국가들이 탄생했으나 근대화를 시작한지 60년 만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동시에 정착시킨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는 칭송을 받고 있지만, 빠른 기간에 달성한 그만큼 시간이 지날수록 빈틈과 허점이 들어나 보완할 점이 갖가지라는 사실 또한 숨길 수 없다.

지난 60년 동안, 변법개조(變法改造)를 통해 옛것은 낡은 것으로 치부하여 불태워 버리고 서구 사회로부터 모든 제도와 문화를 수입하여 일시에 실행에 옮기는 정책을 썼기 때문에 고유문화와 전통사상으로부터 멀리 떨어지게 된 것이 사실이다.

변법개조에서 더욱 앞으로 나가 전반서화(全般西化)만이 살길이라는 판단(判斷)하에 모든 것을 서구(西歐)의 것으로 대체(代替)하여 빨리빨리 추진했기 때문에 우리의 고유문화(固有文化)가 무엇인지조차 가려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의 살림살이는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고 할 수 있다. 앞면은 화려하지만, 뒤뜰로 나가 보면 질서가 없고 규범이 없다. 국민들이 믿고 추진 할 수 있는 통합적 가치체계도 없으며 정체성 또한 희박하다.

무엇이 우리의 고유문화이고 무엇이 외래문화(外來文化)인지, 무엇이 정통(正統)인지 쉽게 분별할 수 없다. 통합적인 세계관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데다가 철학이 빈약하다. 목표와 비전이 불확실(不確實)하다.

서구의 사조(思潮)와 동양사상(東洋思想)이 마구 뒤섞여 있어서 뒤죽박죽이다. 이와 같은 혼돈(混沌)의 실상은 붉은 화염에 싸여 자취 없이 사라진 대한민국 국보1호인 숭례문이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서구인들은 17세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손에 쥐었다. 우리는 21세기에도 패러다임을 알려고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서구인들은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청산하고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을 마련했으며, 합리주의를 정착시켜 근대화를 추진했다. 18세기에는 민주주의를, 19세기에는 산업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지속적인 근대화를 추진했다.

우리는 1948년에 서구의 방법론을 수입하여 근대화에 착수했다. 그러나 우리의 근대화는 서구화로 일관했다. 근대화가 정상적으로 추진되지 못했다. 전근대적(前近代的) 사고방식(思考方式)을 척결(剔抉)하지 못하고 그대로 둔 채, 과학주의(科學主義)와 합리주의(合理主義)를 덮어 씌웠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에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데, 겉면에다 합리주의를 치장했다.

그렇거나 말거나, 어떻든 우리는 근대화를 시작한지 60년 만에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정착시켰다.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근대적 사고방식을 뒤섞든 말든, 우주 만물의 이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이 통일성을 이루든 말든,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서구화를 추진했다.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따지는 관행이 보편화 되었다.

21세기로 접어들자, 밀레니엄세대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비전과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떻게 발전하고, 어떻게 관계 맺고, 어떻게 교육 할 줄 몰라 우왕좌왕 하고 있다.

과거의 성찰과 새로운 비전이 동반된 지혜로운 출발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도 한다. 내 것 네 것을 따지지 말고 과거의 성찰을 통해 새로운 비전을 만들고, 미래로 통할 수 있는 소통의 통로를 열지 않으면 지속적인 발전을 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회 구성원들은 입만 열면 자유(自由)와 평등(平等)을 언급한다. 이와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 역시 자유와 평등이 프랑스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이념이라는 것은 기억하지 못한다. 자유, 평등 가운데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기존의 가치체계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은 자유(自由)를 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에 반해서 진보적인 성향을 갖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사람들은 개혁을 주장하는 동시에 평등(平等)을 보다 중요하게 강조한다.

자기의 관점이 옳다고 믿는 사람들이나 강력한 삶의 의욕을 가지고 있는 외향적인 사람들은 자유를 크게 외치며 자신의 입장을 우(右)라고 언급한다.
자유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역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평등을 주장하며 자신의 입장은 좌(左)라고 언급한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기들 스스로 우가 아니면 좌, 좌 아니면 우를 생각하며 삶을 이끌어 간다. 좌가 되었건, 우가 되었건 자기의 관점에 집착하지 않고 유연한 태도를 견지하며 사회통합을 주선해 나가야할 사람들이 두 갈래로 나뉘어 갈등을 빚는 것은 아름아운 일이 될 수 없다. 가치를 보는 관점의 차이에 따라 분열로 가는 것은 좋은 일이 일어날 조짐(兆朕)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다양한 가치 가운데 자기의 성향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일이나, 입장의 변화에 따라서 관점을 달리하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자기와 같지 않고 다르다는 이유로 대립각을 높이 세우고 타협을 멀리한 채 극렬한 투쟁으로 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될 수 없다. 자유를 주장하며 우로 가든, 평등을 주장하며 좌로 가든, 경제적인 패러다임과 기본적인 개념이 어떻게 다른가는 알고 있어야 한다.

우파의 경제적 패러다임은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다. 생산과 성장을 목표로 하는 동시에 경쟁적인 시장중시모델을 원용하게 된다. 다시 말하면 경제구조의 우파는 자본주의적 입장을 끝까지 고수하기 때문에 거대기업이나 대자본가만이 살아남게 된다. 따라서 우파적 경제구조의 결론은 양극화라고 할 수 있다.

생산과 성장을 추구하며 경쟁적인 시장중시모델을 원용하는 우파적 경제패러다임으로 끝까지 가노라면 대기업을 위시한 극소수의 대자본가와 다수의 서민인간으로 양극화되고, 결국에는 극부와 극빈으로 분할되기 마련이다.

권위주의를 선호하는 빅브라더들이 90%에 해당되는 부를 소유하게 되어 있다. 자본의, 자본에 의한, 자본가를 위한 경제 체제가 자본주의의 본령이다. 우선적으로 자신이 서 있는 입지가 우(右)라고 주장해온 사람들의 이해를 살피기 위해서, 우(右)를 선택하여 곧장 걸어가노라면 결국 어느 지점에 도달하게 되는가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우를 선택한 사람들은 자유를 외치며 자본주의를 들고 경제발전을 지향하여 국제화되고 세계화된 자본시장으로 달려 가야한다. 자본시장을 향해 달려간다는 것은 대자본가들이 득실거리는 무한경쟁의 세계로 돌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자본시장은 세계화된 열린 시장이다. 세계화를 외치며 자유를 부르짖던 1992년을 출발점으로 해서 우리의 금융시장을 살금살금 파고 들어온 실세는 세계적 메이저급 대자본가들이다.
다시 말하면 엄청난 자본을 갖고 있던 미국 월가의 실세들이 우리의 금융시장을 향해서 발진했다. 우를 외치면서 시장경제를 지향하여 달려간 사람들이 도달한 실제적인 장소는 무한 경쟁이 실현되는 세계화된 자본시장이다.
그렇다면, 1992년부터 무한 경쟁이 실현되고 있는 세계화된 자본시장의 실제적 정황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의 주식시장이 개방되고부터 세계적인 메이저급 대자본가들의 달러가 유입되기 시작해서 2011년 현재까지 들어온 달러는 실로 엄청난 액수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금융시장에 외국의 메이저급 자본가들로부터 들어온 달러가 상당하다는 것이다.
외국에서 들어온 자본이 우리의 금융시장에서 거둬들이는 이익금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막대한 금액이다. 그렇다면, 우리 시장에 들어온 외국의 자본은 어느 나라의 자본인가? 그것은 두 말 할 것 없이 미국에서 들어온 자본이다. 그리고 그 미국 자본의 주인은 유대인이다.

유대인 자본가들이 스위스에 있는 은행에 보관하고 있는 금값만 4700조 달러라고 한다. 이 말이 실감이 되지 않으면, 600억불에 달하는 빌 게이츠의 재산이 전체 유대인 재산의 0.001%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도 유대인들 재산이 얼마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은 다음에 기록된 자료를 검토해 보면 실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세계 7대 메이저급 곡물회사는 (1)카일 (2)ADM (3)콘아그라 (4)콘티넨탈 그래인 (5)루이 드뢰피스 (6)분게 (7)앙드레 등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에서 (1)카일을 제외한 모든 회사의 경영자가 유대계이다.
세계 7대 메이저급 석유회사는 (1)Exxon (2)Mobil (3)Gulf (4)Royal Duth Shell (5)Texaco (6)Socal (7)British Petroleum 등인데 이 가운데 5개 회사의 사주가 유대인이다.

록펠러와 로스차일드가 합작하여 세운 은행은 세계의 경제를 좌우할 만큼 거대한 능력을 갖추고 있는데, 이들 모두가 유대인 은행이다. 세계 경제는 오래 전부터 몇 사람의 환전꾼들에 의해 조종되어 왔으며, 이들의 정체는 '프리메이슨'이라는 오랜 전통의 유태인 비밀조직이라고 한다.
프리메이슨의 시조는 로스차일드 가문으로 이들은 2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막대한 이득을 챙겼고 1929년 미국대공황과 1997년에 한국의 IMF도 일으켰다는 설이 있다. 우리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지향하여 우로우로 가다보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어 있는 나라가 있고, 만나야 될 사람이 있다. 그 나라는 바로 미국이요 만나야 할 사람은 유대인이다.

지난 2000년 10월 포브스지(誌)가 발표한 미국의 4백대 자산가 가운데 유태인은 64명(16%)이나 된다. 유태인의 인구비율(2.5%)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지난 18년간 FRB(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으로 세계경제를 좌우해 나온 앨런 그린스펀을 비롯해서 M&A의 달인인 시티그룹의 샌 포드 웨일,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AIG의 모린스 그린버그, 메트라이프의 로버트 벤 모세, 리만 브라더스의 리처드 풀스, 골드만 삭스의 헨리 폴슨 회장 등이 모두 성공한 월가(Wallstreet) 유태인들이다.

FRB는 상업어음의 재할인이나 공개시장의 조작으로 각 지구의 금융통제를 맡고 있는데, 세계 여러 나라는 FRB가 공개수수료를 얼마만큼 올리고 내리냐에 따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다시 말하면 FRB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의 금융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FRB는 사립은행의 집합체인데 FRB의 소유자는 록펠러, 골드만 삭스, 로스차일드 등의 유태계 재벌이다. 실제로 미국의 ‘Yellow Page’(업종별 전화번호부)를 보면 ‘연준’은 정부기관(란) 아닌 민간기업 란에 있다. 로스차일드가의 금융 지배력은 유럽에만 국한되지 않고 대서양 건너 미국에서도 엄청난 힘을 발휘했다. 바로 FRB를 통해서였다. 미국 유태계 은행들은 국제적으로 연대하기 때문에 순이익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시티, BOA, J.P.모간 체이스, 와코비아, 웰스파고 등등 미국 5대 은행은 체이스 맨하탄과 J.P. 모건 등의 유태 재벌이 직영하고 있으며 BOA(뱅크 오브 아메리카)는 유럽의 로스차일드와 제휴하여 많은 지원을 받고 있다.

유태인 파워는 언론계에도 막강하다. 20세기 들어와 미디어의 위력은 날로 확대되고 정치도 여론에 의해 움직이며 이 여론도 결국은 언론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언론은 모든 국가권력을 압도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특수기관으로 성장했다. 미국 언론계의 유태인은 전체 종사자의 6%에 불과하지만, 유태 언론인이 사회적 영향력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이들이 거의 모두 주요매체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유태 언론인의 27%는 워싱턴 포스트(WP), 월스트리트 저널(WSJ), 뉴욕타임즈(NYT), 타임, 뉴스위크 및 CNN, CBS, NBC, ABC 등 TV 4사에 종사하고 있다.

유태 언론인들은 여론을 만들고 확산하는 위치에 있는 주필, 정치평론가, TV 뉴스쇼 제작진 등의 요직에 분포되어 있기 때문에 소수 정예의 특성을 갖고 있다. 뉴욕 타임즈, 월 스트리트 저널도 친유태계 언론이다.

방송의 경우 윌리엄 페일리(CBS 사주), 앤드류 랙(소니뮤직 최고 경영자), 레오나드 해리 골덴슨(ABC 사주)등이 유태 언론의 중추다. AP, UPI, AFP, Reuter 등 세계 유수의 통신사들이 모두 유태인 소유이다.

할리우드 ‘7대 메이저 영화사’ 중 파라마운트, 20세기 폭스, MGM, 워너 브러더스, 콜롬비아, 유니버설이 유태인이 설립한 영화기업이다.

자유주의와 자본주의를 목에 걸고 세계화된 시장으로 진출하는 사람이 한 두 사람 있다고 하더라도, 세계메이저급 유태인들이 득실거리는 미국의 월가에 진입하여 어마어마한 대자본을 상대해서 경쟁을 뚫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제 우리는 날고뛰어도 유태인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자유와 평등, 우파와 좌파라는 개념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대두되었는가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Weishupt)와 일루미나티(Illuminati Freemason)를 기억하지 못하고 지내면서 자유와 평등을 논하고, 우파와 좌파로 나뉘어 우격다짐을 반복하고 있다. 자유와 평등, 우파와 좌파가 언제 어디에서 어떠한 경로를 통해서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고 나서 싸움을 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우파와 좌파의 연원은 무엇인지 자세하게 알지 못하면서 자유다, 평등이다. 우다, 좌다 하고 우격다짐을 해서는 안 된다.

합리주의와 평등주의를 근본 사상으로 내세워 많은 호응을 얻었던 일루미나티의 모토(Motto)가 바로 자유, 평등이었다. 자유를 지향하고 우파라고 외치면서도 아담 바이스하우프트와 일루미나티를 모르는 사람이 우리의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upt)와 일루미나티(Illuminati)를 기억하지 못하면서도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선거철만 되면 자기는 자유를 사랑하는 우파라고 외치면서 빨갱이와 공산주의는 안 된다고 외친다. 자칭 우파라는 사람들은 좌파를 가리켜 빨갱이라고 질타한다.

1830년대 프랑스 혁명을 일으켰던 일루미나티(Illuminati Freemason)가 처음 사용했던 말이 공산주의(Communism)인데, 일루미나티는 18세기 독일의 바바리아 지방의 한 대학에서 창설되었다. 이 조직의 창설자가 1748년에 유대인 교수의 아들로 태어난 아담 바이스하우프트(Adam Weishupt)였다.

바이스하우프트는 1772년부터 모교 잉골슈타트(Ingolstadt) 대학에서 종교 철학과 주임교수로 재직하면서 프리메이슨의 조직법을 모방, 발전시켜 일루미나티조직을 만들었다.

일루미나티는 기독교 전통에 따른 제도에 반항하면서 자유사상을 불러일으킨 철학적 비밀 단체이다. 일루미나티는 예수회와 프리메이슨(Freemason)을 모방하여 엄격한 동지애와 비밀 엄수를 강조했다. 잉골슈타트에서 시작된 이 조직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1779년에 바바리아(Bavaria)지방을 장악하고 유럽 각지로 퍼져나갔다.

바이스하우프트의 중심세력은 프랑스에 세워진 프리메이슨 총종단에 침투해 패권을 장악했고, 미라보 후작(Marquis de Mirabeau-1786)은 자코뱅 파리대학에 일루미나티 종단을 세우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자코뱅파가 되었다. 프랑스에 뿌리를 내린 일루미나티는 프랑스 혁명을 조종했다. 프랑스의 혁명 구호가 자유와 평등이었다.

좌를 향하여 달려가면 어떤 곳에 도달하게 되는가. 우리나라 지식인들은 솔직하게 말해서 좌가 무엇인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이데올로기가 다른 남과 북으로 갈려 있는 정치적 상황인데다가 자본론(資本論)을 읽을 만한 형편이 되지 못했다.
다시 말해 '잉여가치'가 무엇이며, 왜 그것을 평등하게 분배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마르크스라는 이름만 입에 올려도 그냥 놔두지 않았다.

경제학을 공부하거나 정치학을 공부하거나 간에, 자본주의 이론과 사회주의 이론을 가감 없이 다 읽고 난 연후에, 그 다음 적용의 문제점과 옳고 그름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세계와 질서를 보는 관점이 바르게 열리지 못하게 되어 있다.

다시 말하면, 관점이 열리지 못했다는 말은 사고와 지식이 열등하고 편협하고 비좁다는 뜻이다. 지식과 사고가 열등하다는 것은 무지한 사람에 예속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어떻든, 자기가 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따라서 좌를 향하여 좌로좌로 가노라면 중국과 북한이 있으며, 그보다 더 뒤에는 구소련체제가 있다.

거기에서 더욱 깊이 들어가면 1846년에 공산주의자동맹을 창건했으며, '자본론'을 쓴 마르크스가 앉아 있다. 마르크스 또한 유태인이다.
좌파의 경제적 패러다임은 노동주의다. 좌파는 경제적 약자를 위한 분배와 복지를 지향하며 통제적인 경제모델을 원용하고 있다. 고위당직자, 빼어난 기술자, 배경이 좋은 고위당직자들이 자본을 쥐고 있다. 지금은 폐망했지만 구소련 공산당의 주요 요원들 대부분이 유태인이었다.

이제는 좌의 경제방법으로 살려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본다. 왜냐, 좌로 갔던 사람들의 오늘날 운명은 구소련체제의 붕괴로 모두 망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시대에서, 좌로 가던, 우로 가던 마지막으로 만나게 되는 사람은 유태인이다.

우가 되었건, 좌가 되었건 간에 '성장의 한계'에 도달한 것은 확실하다. 19세기부터 성장과 발전을 추구해 나온 근대문명이 21세기를 흔들고 있지 않는가.
오늘의 위기는 1972년에 로마클럽에서 주의를 환기하고자 했던 '성장의 한계'를 백안시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G7이 모이든, G20이 모이든, 환원주의적이며 기계론적인 세계관을 새로운 세계관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발전주의를 수정하지 않으면 당면한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이에 대한 대안으론, 다시 말하면 환원론적 세계관을 유기체론적 세계관으로 전환하는 동시에 더 이상 자연을 착취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굳게 해야 한다.

3. 미래의 비전

관왕지래(觀往知來)라는 말이 있다. 지나간 과거를 잘 살펴보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가 추구해 나온 근대화가 올바르게 달성되었는가를 냉철하게 판단해 보아야 한다.

1948년부터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청산하고 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하고자 노력했지만 아직도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다. 서구의 여러 나라들로부터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을 받아들였지만 합리주의를 몸에 익힌 사람은 많지 않다.

프랑스의 정치혁명을 계기로 해서 일어난 민주주의와 영국의 산업혁명을 딛고 일어난 산업주의를 동시에 수입했지만 아직도 민주주의와 산업주의를 완전히 구현했다고 말 할 수 없다.

1948년, 대한민국을 세운 요인들은 근대화와 서구화를 동일한 개념으로 인식했다. 당시의 정치인들은 서구화와 근대화를 동일한 개념으로 판단하고 근대화를 시작했기 때문에 근대화와는 거리가 있는 서구화를 추진했다.

서구화를 하루 속히 앞당기기 위하여 우리의 고유문화와 전통사상을 멀리했다. 건국 초기의 정치가들은 하루 빨리 서구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변법개조(變法改造)와 전반서화(全般西化)를 동시에 결행했다.

17세기에 일어난 패러다임과 정상과학을 통해서 합리주의가 발생했으며, 18세기에 프랑스에서 일어난 정치혁명을 근원으로 해서 민주주의가 발생했고, 19세기에 영국에서 발발한 산업혁명을 근원으로 하여 산업주의가 발생했다는 역사적인 사례들을 돌아볼 겨를이 없이 ①합리주의와 ②민주주의와 ③산업주의를 한 솥에 넣고 뜨거운 불로 끓여버렸다. 비유를 하자면, 밥과 국을 따로 따로 마련할 수 있는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모든 재료를 한 솥에 넣고 고열로 끓여서 바닥에 깔아버렸던 것이다.

마른날에 예고 없이 내려치는 천둥에 정신없이 쫓겨 가는 들개처럼 우리의 고유문화와 뿌리 깊은 전통과 유구한 역사를 무시한 채 사회적 규범들을 일시에 모두 뜯어 고치고 뜻도 모르는 서구의 축제에 놀아나고, 개념도 파악하지 못하면서 서구의 교육제도로 바꾸었다.

다시 말하면 서구 사회에서 300년 동안에 순차적으로 일어난 사회적 변동과 진화과정을 깡그리 무시한 채, 변법개조와 전반서화를 불시에 단행했던 것이다.
서구인들이 근대화를 시작한 후 300년이라는 세월을 투자해서 얻어낸 ①물리적 체계 ②정신적 체계 ③사회적 체계를 단도직입적으로 수용하여 기존의 학문체계를 없애버리고 서구의 것으로 일시에 대체했다. 뿐만 아니라 음악 미술 문학도 서구의 것으로 대체했다. 서구 사회에서 마련한 우주 만물의 이치와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의 원리가 어떤 것인지 알려고 하지 않은 채, 모든 제도와 문화를 서구로부터 받아들여 빨리빨리 실행에 옮겼다. 빨리빨리 바꾸지 못하면 개발도상국의 대열에 끼어들기 어렵다는 생각에서 모든 것을 바꾸었다. 불시에 천지개벽을 단행한 것이다.

서구인들은 17세기부터 전근대적(前近代的) 사고방식(思考方式)을 청산함과 동시에 데카르트와 뉴턴의 영향에 의한 패러다임의 등장을 통해 낡은 사고방식을 교정해 나갔으며, 정상과학을 중심개념으로 한 합리주의를 손에 들고 점진적인 근대화를 시작했던 것이다.

서구사회는 17세기부터 서서히 신중심주의적 사고방식으로부터 벗어나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새로운 패러다임의 등장을 계기로 근대화를 진행하여 체계적인 정상과학의 시대를 열었다.

정상과학의 시대가 열리게 되자 이를 바탕에 깔고 서서히 정치혁명을 일으켜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합리주의와 민주주의를 주축으로 해서 산업혁명을 일으켜 산업주의로 진화했다. 다시 말하면 17세기에는 합리주의, 18세기에는 민주주의, 19세기에는 산업주의를 일으켜 300년에 걸친 근대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런데 우리는 1948년에 합리주의와 민주주의와 산업주의를 서구사회로부터 동시에 수입하여 모든 것들을 빨리빨리 실현하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보니 정확한 개념이나 원리를 따져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모든 일들을 빨리빨리 실행하지 않으면 서구화를 단행할 수 없었다. 다시 말하면, 서구사회에서 근대화를 시작한 시기는 17세기였는데, 우리는 19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다음에야 근대화를 시작하여 급진적으로 사회변동을 일으킨 것이다.

근대화의 속도가 빠른 만큼 사회변동도 급격하게 일어났으며 농경사회적인 고유문화와 산업사회적인 현대문화가 충돌하는 와중에 모든 관점의 변화와 가치관의 혼란이 극심해졌다.

극동에 있는 3국 가운데에 중국은 동도서기사상(東道西器思想)을 중심으로 근대화를 단행했으며, 일본도 역시 자신들의 자존심이 걸린 화혼양재사상(和魂洋才思想)을 근간으로 해서 근대화를 추진했는데, 우리는 고유한 사상을 주축으로 세우지 못한 입장에서 전반서화(全般西化)를 단행했기 때문에 서구인들이 원용하는 세계관이나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을 아무런 여과 없이 원형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전반서화(全般西化)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서구인들의 세계관과 메카니즘을 수입해 들이기는 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환원주의와 기계주의의 원리를 파악하고자 하지 못했고,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을 수입했지만 다양한 학문체계를 소화하여 후대를 위한 교육을 올바로 진행할만한 교육체계를 갖추지 못했다. 왜냐하면 300년 동안에 일어난 서구의 사상과 주의 주장을 발생년도나 과정의 변천에 따라서 순차적으로 가르칠만한 교수가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들어서서야 미국으로 유학을 갔던 사람들이 귀국해서 사회를 움직이는 메카니즘을 구체적으로 교육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외국으로 나가지 못하고 국내에 있었던 사람들은 극심한 사회변동으로 인하여 서구인들이 정립한 기계주의와 환원주의적 세계관에 입각한 세계의 구조와 운행원리를 제대로 습득할 수 없었다.

따라서 서구화를 추진했음에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청산하지 못했으며 과학적 사고방식으로 전환하지도 못했다. 대다수 시민들은 귀신을 받들고 살다가 귀신을 내쫓는 축귀(逐鬼)의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화를 추진한지 6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우리나라 사람의 대부분이 조상귀신을 받들면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축귀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전근대적 사고방식과 새로 수입한 과학적 사고방식의 충돌은 극도의 혼란을 야기했다. 이와 같은 혼돈의 시기를 통해서 우리의 고유문화와 전통사상의 원형은 서서히 깨어지기 시작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공업사회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사회변동과 혼돈(混沌) 속에서 줄기차게 서구화를 추진한 결과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이 증장되기 시작했다.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서구화의 후기단계, 즉 탈서구화과정(脫西歐化過程)으로 접어들었다.

수준 높은 교육이 뒷받침됨으로써, 기왕 얻어낸 경제력과 정치력과 군사력의 증장과 함께 자기 고유문화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고자 하는 평가 조짐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극심한 사회변동 속에서도 높은 교육열과 계몽정신으로 지속적인 서구화를 추진한 결과 경제력 군사력 정치력의 성장을 도모하면서도, 자기 고유문화와 전통사상에 대한 자긍심을 갖춰야 하는 눈뜬 단계도 함께 열어나간 것이다. 자기 역사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상실했던 전통과의 유대를 모색하는 탈근대화(脫近代化) 과정으로 들어선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는, 전통과의 유대를 공고히 하는 동시에 사회적 관계의 와해에서 벗어나 자아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제력 정치력 군사력 증강과 민주주의의 정착으로 사회 전반에 탄력이 생기자 탈근대화의 후기단계에서 느끼게 되는 새로운 정체성에 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이제 21세기로 들어서서는 나는 누구이며, 우주 만물의 기원은 무엇이고, 내가 사는 세계는 어떤 세계인지 그에 관한 관심은 일단은 뒷전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이며, 인간이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규범, 도덕, 윤리가 무엇인가를 배우려고도 하지 않는다. 우로 가면 무엇을 만나게 되고, 좌로 가면 누구를 만나게 되는지 조차 구체적으로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다양한 직업과 각종의 기술이 발전하게 되자, 자기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찾아서 가족을 떠나 개별적으로 삶을 모색하는 사람의 수가 급증해졌다. 가족이 해체되고 개별화가 급속도로 진행되자 세계 도처로 이민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제는 정형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호주제도도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사회가 예전 같지 않다. 돈을 벌어서 잘 살면 그만이다. 힘을 비축하여 남보다 상위에 군림하는 것이 최상의 희망이다.

방법이야 어떻든 자신이 만족하는 성공만 하면 그만이다. 앞뒤도 좌우도 돌아보지 않는다. 위만 향하여 돌진할 뿐이다.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서, 나 자신의 영달과 성공을 위해서, 법, 윤리, 도덕 따위는 따지지 않는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모든 것은 끝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같은 현실에서 바른 길이란 무엇일까. 어디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 지금 이대로 20년만 앞으로 나가게 되면 이 나라가 어떻게 될 것인가. 누구도 책임의식 없이 그저 달리고만 있다.

새로운 비전이 제시돼야 한다. 지금 이대로 그냥 나가서는 안 된다. 발전으로의 지향이 올바른 가치관이 없이 앞으로만 돌진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다시 출발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지혜를 합하여 어디로 가야할지 잘 판단해서 슬기롭게 방향과 목표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

우로 가도, 좌로 가도 맨 끝에는 유대인과 얼굴을 마주하게 되어 있다. 이제는 좌로 갈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멸망하고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3의 길이 있는가? 제3의 길은 불확실하다. 그렇지만 우리는 과거의 성찰과 빛나는 비전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출발을 결행 해야만 할 시점에 놓여 있다.

4. 새로운 출발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정보화는 미래세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비전의 마련을 어렵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미래의 세계가 어떻게 얼마나 변화할지 예측과 전망을 어렵게 만든다. 시간과 공간의 변화는 세계를 조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할 포인트도 쉬지 않고 바꾼다. 문화의 발전에 맞춰 관점의 전환과 함께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경험의 가치'와 '감정의 가치'를 재정립하여 신선하고 의미 있는 문화콘텐츠를 창안하고자 노력한다.

시대적인 기류의 변화에 주의를 기우리며 관점과 논리체계가 전환되어 가는 21세기에 적응하고자 고정관념을 씻어낸다. 급격한 사회변동이 동반된 문명의 전환기에 불확실한 비전과 미약한 의지를 가지고 험난한 진로를 어떻게 열어나가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기도 한다. 변화를 반복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어떠한 변화를 모색해 나갈 것인가 하는 과제는 결코 가볍지 않다. 일차적으로 해야 될 일은 현대인들이 체계화한 '삶의 세계'를 구체적으로 검증하는 일이다. '관점의 논리화'를 통한 체계화된 세계관을 기대(基臺)로 했기 때문에 선진그룹이 정립한 '세계의 구조와 운행원리'를 우선 숙지해야 한다.

세계의 구조와 운행원리를 알지 못하면 문화를 창조하는 그룹과 대화를 나누기 어렵다. 20세기 전환기에 그랬던 것처럼 이분법적인 카테고리를 적용하거나 페러노이드를 경시하는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 문화를 이끌고 나가는 사람들의 곁으로 다가서기 어렵다.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갖춘 '삶의 세계의 구조와 운행원리'를 모른 채, 생명의 창발성(創發性)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기실 역동적인 활동은 기대할 수 없다.

현대물리학이 리드하는 오늘의 세계는 역학체계와 전체의 패러다임에 기저를 둔 유기체주의적(有機體主義的) 세계관이다. 전체와 부분이 상생하고 보편성과 특수성이 원융회통(圓融會通)하는 유기체주의적 세계관을 무시하면 이제는 도처에서 생명의 창발성을 일으키지 못한다.

또한 민중을 이끌고 나가야 할 입장에 서 있는 불교지도자들은 정상과학과 유기체주의를 도외시하면 세계와 존재에 관한 설명능력과 올바른 리더십을 발휘할 수도 없다. 따라서 문화 창조의 주류층에 접근하여 그들과 함께 섞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는 그룹들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숙지해야 한다.

우리는 새로운 차원에서 제대로 된 '근대화'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의지와 각오를 가지고 '현대화'를 결행해야 한다. 21세기에 결행하는 현대화는 우주 만물의 이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현대사회에 적합한 메카니즘을 적절하게 체계화해야 한다.

귀신을 섬기는 차원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비롯해서 비과학적이며 반합리적(反合理的)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불교의 현대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축귀(逐鬼)의 수준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전근대적 사고방식을 불태워 버리고 합리적인 사고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신사고(新思考)로 전환한 터전 위에 불교의 현대화(現代化) 생활화(生活化) 대중화(大衆化)를 추진해야 한다. 근대화되지 못한 바탕에서 불교의 생활화를 추진해 보아야 실효를 얻기 어렵다. 한국불교는 미래를 잃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부처님을 자기 멋대로 디자인해서도 안 된다.

♣2015.8.27. \ 운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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