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주한국불교의 인터넷 사이버 개척 모험

BUTTON_POST_REPLY
lomerica
전체글COLON 427
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미주한국불교의 인터넷 사이버 개척 모험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8, (수) 12:07 pm

미주한국불교의 인터넷 사이버 개척 모험

지난 1년을 회고한다.

미국에 한국이민이 시작된 것은 19세기 말경부터라고 한다. 하와이에 처음 발을 디딘 이후,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와 남가주지역인 나성(羅城)에 자리를 잡게 되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소수에 불과했고, 한국전쟁이후 1960년부터 본격적으로 미주이민이 시작됐다고 본다. 이민사회가 형성되면서 본국문화와 종교 또한 함께 오는 것은 일반적이다. 모든 이민사회의 현상으로서, 종교가 함께 따라오게 되는 것은 이민사회의 공통된 현상이다. 미주한국이민사회에 종교가 부상된 것은 1879년대이다. 미주기독교의 역사는 더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으나 불교의 경우, 1970년대부터가 아닌가 한다. 이 무렵 본국에서도 불교는 급성장하는 불교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조선조 5백년간의 긴 억압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불교는 을사늑약으로 소생의 기회를 잡았으나, 오히려 왜색화(倭色化)하는 폐습을 낳게 되었다. 말하자면 일본불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하여 대처육식(帶妻肉食)을 합법화하여 한국불교의 청정성을 훼손시켰다. 일본불교의 승려들은 대처승인데, 피식민지불교의 승려는 독신 청정승려(尼)이다 보니, 온갖 회유와 사계(詐計)에 의해서 조선 승려들을 타락시켰던 것이다. 해방이후, 일부 독신청정 비구승들은 일제에 의해서 양산(量産)된 대처를 절에서 추방해야만 하는 투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것이 이른바 불교정화운동이다.

1970년대라고 하면 한국불교는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고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고 있었다. 동시에 종권다툼의 조짐이 보이기는 했지만, 한국불교는 한국사회의 종교지형에서 어느 정도 막강한 교세를 형성하면서 해외의 이민사회에 까지도 어느 정도 눈을 돌릴 수 있는 여유가 생겼고, 동시에 미주에도 이민의 수가 급속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제 무대를 미주로 돌려보자.

이민인구가 증가함에 따라서 종교인구 또한 증가하기 마련이고, 미주 한국사회에 불교인구도 자연스럽게 증가했다. 이렇게 해서 나성에는 달마사, 수도사, 관음사가 창건되고, 여타 다른 몇 개의 한국 사찰이 등장하게 된다. 관음사와 함께 옆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격세지감이 든다. 그 때 미주 한국불교의 터를 닦기 위해서 개척자 역할을 하셨던 큰 스님들은 이제 다 열반하시고 안계시지만,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오늘의 미주 LA 한국불교가 과연 존재할 수 있었을까 생각한다. 큰 스님들은 오직 신심과 불제자로서의 열의 하나만을 가지고 일신의 노고를 돌보지 않고 포교에 최선을 다하셨던 분들이다. 그 분들의 활동과 의지를 생각하면 불교권에 가까이 있으면서, 나는 해 놓은 것이 뭔가 하고 항상 반성하면서 참회하고 뭔가 해보려고 의지를 불태우지만, 현재 미주 한국불교의 상황은 너무나 힘든 모습으로 변해 버렸다.

이제 다시금, 미주 한국이민 사회에서 불교활동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보살정신이 아니면 어렵다. 생활도 힘든 상황에서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포교활동을 한다는 것은, 정말 모험이다. 물론 발로 뛰는 포교활동도 필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 사이버 포교 또한 중요한 포교수단이다. 사실은 사이트 하나 운영하는데도 너무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늘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는 불자로서의 한생을 살아왔던 도리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인터넷 사이버 포교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모험이 아닐 수 없다. 아직 넷트웍이 크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 하지만 가세해 나감을 보면서, 더욱 열중을 멈출 수가 없다.

1997년 9월 21일 로메리카불교대학을 개교하면서 당시 웹페이지는 대학운영을 위한 페이지로 2001년 12월에 buddhisttimes.org로 개설했었다. 하지만 웹 관리에 전문성을 갖출 수 없어 미흡했던 관계로 제로보드를 이용한 게시판 운영에 불과했었다. 그간 웹 서버 회사를 통해 별반 진전이 없었던 우리의 도메인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진할 수 있을 기회를 엿보며 부실했던 웹 사이트의 활성화 방법을 찾던 중, 2006년 6월 14일 State of California 교육청은 한미불교봉사회-부설 종속기구인 "Lotus University-America Buddhist College"를 종교(면세) 교육기관으로 정밀 확인하고 이를 등재했다. 전반 적합성을 점검 확인한 후 school code #20333을 부여한 것이다. 그리고 추가하여 2006년 9월 26일 Intensive English Language Program을 위한 과정 "Lotus University - Foreign Language Academy"로 School Code: N/A, Application #: 20902를 받게 되어, 그 이후 대학원연구과정(국제 전법사 등급학위 수여)에 대한 수업개설을 08년 가을학기부터 우선 한국 사이트에서부터 출범키로 협의(한국 사이트)하고, 08년 7월 1일부로 이치란 박사를 본 대학-부학장 겸 외국어 아카데미 원장-으로 정식 임명 발령했다. 이러한 연혁을 통해 09년까지는 로메리카불교대학 과정을 거쳐 배출된 미주지역 현지 조계종 일반포교사는 80명에 이르게 된 것이고, 이들은 모두 LA포교사단에 소속하고 있다. 하지만 로메리카불교대학은 09년 2월 7일 8회 졸업생 4명 배출, 포교사고시 응시 2명 1명(김평진) 합격을 끝으로 이후 신입학생 전무로 정규 출석과정은 휴강상태에 이르게 되어, 인터넷-사이버를 통한 통신교육 강화를 위해서 추가로 lotus-america.org웹을 하나 더 2009년 6월부터 개설했다. 그러나 도안스님 입적(06년8월) 4주년이 지난 뒤에는 예상 밖의 한미불교봉사회-회관건물 명도 문제로 관음사측 건물-부설; 불교대학교육관 사용도 불가하여 2011년 6월 15일 이후 자동 퇴거케 되어, 그 후 2012년부터는 인터넷-사이버를 통한 통신교육을 위주로 한 교육과정(편제)만 본격적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경이후 2013년 6월부터 지금의 웹페이지(buddhisttimes.org/lotus-america.org)를 이용한 화면공간-한미불교봉사회(문서출판포교) 및 로메리카불교대학(Cyber강좌) 용도구상에 본격적으로 몰두하면서, 2013년 11월부터 buddhisttimes.org는 “Lotus-붓다의 메아리”로 인터넷불교 언론매체 성격으로 본격화하고, lotus-america.org는 한미불교봉사회와 로메리카불교대학의 한미불교-봉사센터 및 세계불교-사회교육매체(Cyber) 기능의 본격화사업으로 구분을 확정했다.

2014년 3월, 미국을 잠시 다녀가면서 만난 이치란 박사는 나에게 웹페이지 편집관리 소질기능을 최선의 길로 활용해, 나갈 방도는 인터넷-불교 언론매체를 활성화 해나가는 길 뿐이라고 하면서, 새 길을 여는데 동지적 의기를 투합했다. 그리고 나는 2014년 4월 고국을 방문하고 이치란 박사의 안내를 통해, 한국불교 인터넷 웹언론 관계자들을 두루 만나, 실태를 살펴볼 생각으로 교계의 변화를 가장 일선에서 체감하는 불교 언론계를 방문하기 시작했다. 미디어 붓다의 이학종 기자, 불교닷컴의 서현욱 기자, 현대불교신문의 최정희 편집이사님 등을 차례로 방문하여 참으로 유익하고 좋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 분들의 진단도 역시 한국불교는 겉잡을 수없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말씀이었다. 무슨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참으로 걱정스럽다는 말씀을 이구동성으로 해주었다.

고국에서 되돌아온 나는 2014년 5월부터 본격적인 웹페이지 페이지 분류에 몰두하면서, 고국의 인터넷 신문에 게재된 정보를 입수하며 불교개혁과 바른 불교의 지향 점을 찾아 나섰다. 우선 이치란 박사로부터 새롭게 집필된 원고들을 수록하면서 교계 전반의 엄청난 기사들을 검색하고, 함께 공유할 글들을 올리는데 집중했다. 그러던 중 기존의 제로보드 게시판 사용이 6개월 정도 지나면서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했다. 보통문제가 아니었다. 올린 글들이 도대체 뜨질 않는다. 우왕좌왕하면서 서버에 접촉을 하면서 새 방법을 도출해야만 했다. 미국에선 제로보드를 가지고는 게시판을 이용하는 데는 한계점에 이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동안 누적한 글들은 몽땅 잃어버리고 만 것이고, 일부 부분적인 것은 백업해둔 관계로 다시 살릴 수가 있었다. 어쨌든 나는 다시 2014년 10월부터 서버에서 사용될 수 있는 게시판으로 그것도 웹 신문 용도에 맞는 게시판이 필요했다. phpBB가 적합했다. 한글 적용이 될 수 있는 phpBB Korea의 접속을 통해 사용법을 터득해야만 했다. 참으로 고마운 가르침들로 기간은 2개월 이상 걸렸지만 결국 해낼 수 있었다. 지금 모양의 웹 관리 게시판들이다. 그런데 또 문제는 발생한다. phpBB는 수백만의 사람들이 매일 phpBB를 사용하여 세계에서 가장 널리 활용되는 오픈 소스 전자 게시판으로 대규모 게시판 등 규모에 상관없이 게시판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능을 제공하지만, 관리방법에 서툰 나로선 처음엔 게시판마다 게시글 또는 뎃글들이 온통 마구잡이 광고성 글들로 쏟아져 들어온 것들을 제지할 줄 몰라서 곤욕을 치루기도 했고, 그로인해 웹페이지가 느닷없이 정지되는 등 여러 번에 걸친 관리능력의 숙달을 필요로 했다. 지금은 모든 게시판의 게시글 또는 뎃글에 대해 승인을 전제하고 있어 미리 통제할 수 있도록 관리되고 있다.

그래서 그간 부실했던 웹 체제를 정비하며, 결국 2013년 11월부터 본격적인 “Lotus-붓다의 메아리” 웹을 통해 불교대학 cyber운영과 한미불교봉사회 나아갈 바를 새롭게 모색하는 길에 인터넷을 활용하는 방안에 박차를 가해온 셈이다. 그리고 2015년 1월부터는 영문판전용의 웹페이지로 lotusbuddha.net를 추가하여 가동하게 된 것이다. 그러다보니, 올해도 10월에 접어들었고, 그간 지난 일들을 회고해 보니, 꼬박 2년 가까이 멈춤 없이 노력을 기우린 셈이다. 아직도 어설프긴 해도 방향을 잡아나가는 데는 이만큼이면 그런대로 구색을 갖춘 셈이라고 생각은 든다. 2015년 10월 현재 모든 게시판의 회원가입자는 2014년 12월 이후 게시판을 새롭게 교체한 후에 집결된 것으로 총 8천 6백명이 넘는 수치가 나온다. 약 10개월에 걸친 웹 게시판 회원 가입자들로써 통계된 것을 보면 적다고만 할 순 없다. 더욱 전진의 길을 내다보면서, 그간 불철주야 끊임없이 집필에 애써주신 이치란 박사님께 먼저 고마움을 표하며, 우리와 함께 할 보다 많은 필진이 서서히 태동할 것임을 기대해 보면서 보람을 찾고자 한다.

* 이글은 시사논단으로 싣고 있으나, 실은 미주한국불교의 인터넷 사이버 개척의 모험을 회고해 보는 글로써 올린 것이다.
웹마스터=제월 법사

BUTTON_POST_REPLY

다시 돌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