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相 없이 문화 포교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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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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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소리 없이 相 없이 문화 포교 40년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6, (월) 8:38 am

소리 없이 相 없이 문화 포교 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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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포교의 기수 반영규 거사
1970년대 ‘자비의 소리’ 발간 4쪽 포교 전단지 폭발적 인기
아함경 읽고 부처님 가르침에 눈떠 찬불가 100여곡 작사, 도심속 음악회 ‘붓다콘서트’ 열어

“찬불가는 제 염불이고 서원입니다. 부처님의 법음을 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문화 포교죠. 제대로 아는 불자들은 많지가 않아요. 현재 찬불가는 사찰 합창단의 전유물로 되었죠. 이게 우리 불교문화의 현실입니다. 좀더 많은 사람들이 찬불가를 통해 불교를 제대로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서원입니다”

작사가 반영규 선생(83)은 자신의 서원을 이렇게 말한다. 불법을 알리기 위해 문화 포교에 반평생을 바친 반 선생. 그는 지난 40년간 찬불가 100여 곡을 작사했고, 최초로 청소년들을 위한 ‘붓다의 메아리’ 공연을 열고, 불교문서포교지 ‘자비의 소리’를 발행하며 그의 전법 서원을 실천해 왔다.

도심 속 ‘붓다콘서트’를 열다
팔순을 넘긴 지금에도 문화 포교에 대한 그의 서원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좋은 벗 풍경소리(회장 덕신스님)와 함께 매달 전석 무료 붓다콘서트를 개최하고 있다. 지난 해 7월 시작된 붓다콘서트는 ▷다함께 노래를 ▷법문이 있는 이야기콘서트 ▷찬불가 작사 작곡자 초대 ▷작은 사찰 합창단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매 회 350여 관객들이 참석하는 등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는 늘 도심에서 상설 불교 콘서트를 열고 싶어하던 반 선생의 바람이 반영된 것이다.

“찬불가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정기적으로 찬불가 음악회를 열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하고 있었어요. 재정적인 면에서나 인력적인 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주변 도움도 받고 사비를 들여 과감하게 시작을 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관객들이 크게 호응을 해주니 참으로 기쁘고 고맙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붓다콘서트는 시작부터 여유롭지 못했다. 공연비용을 줄이고 줄여도 최소 600여 만원 가량의 경비가 드니, 현재로선 적자를 면치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어려움보다는 더 큰 미래를 보고 이 콘서트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관람료를 받을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에게 불교 음악을 알리려는 점에서 무료 콘서트를 여는 게 중요합니다. 또 출연진에게도 무료 공연을 부탁하기보다는 적게나마 출연료를 주고자 하는 걸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출연자와 관객 모두를 만족시키며 상생할 수 있도록 하는 공연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반 선생은 붓다콘서트를 불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공연으로 만들고 싶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콘서트를 알 수 있도록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그는 사비를 들여 붓다콘서트 로고가 새겨진 배지 1천 개와 오프너 1천 개를 제작해 배포하며 붓다콘서트 알리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열린 음악회는 누구나 한번쯤 보고 싶어하는 공연이잖아요. 그런 공연처럼 우리 붓다 콘서트도 누구나 보고 싶어하는 불교인의 축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공연을 시발점으로 불교 음악을 살릴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이 콘서트를 보러 오고 대중들이 동참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야죠”
“세상에는 많은 불자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문화에 관심을 가진 불자들도 많겠죠. 100만원 후원자 100명만 모아도 우리 불교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 불자들이 문화 포교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문화 포교의 서원을 세우다-
반영규선생은 재가불자로 문화 포교에 뛰어든 지 40년여 년이 되었다. 절에 나가기는 했지만 기복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날 접하게 된〈아함경〉등 불교 서적을 통해 부처님 법의 위대성에 눈뜨기 시작했다.
“당시 종로 일대 서점에서 불교 서적을 접하게 됐어요. 부처님 법이 이렇게 좋은 줄 그때야 알게 됐죠. 문제는 대부분의 서적들이 일본어로 돼 있다는 거였어요. 우리 글로 된 포교문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렇게 시작된 것이 ‘자비의 소리’ 입니다.”
당시 편집ㆍ출판 사업을 하고 있던 반영규 선생은 문서포교를 결심하게 된다. 1973년 1월 혜일 스님의 글 ‘버릇 세계’가 실린 ‘자비의 소리’ 첫 호가 탄생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4쪽짜리 포교 전단지 1만 5천 장은 전국 사찰과 군부대 교도소 등에 배포됐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각 사찰에서 전단지를 보내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이후 ‘자비의 소리’는 최대 5만 장까지 인쇄 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그즈음 반 선생은 찬불가를 통한 포교에도 박차를 가한다. 노래만큼 좋은 포교가 없다고 생각하던 그는 작사를 시작했고 작곡가 故 서창업 선생 등이 곡을 붙였다. 서울대 작곡과에서 공부한 신예 작곡가 서창업 선생은 이를 계기로 찬불가 작곡의 길로 들어서는 계기가 되었다.
반 선생 창작곡은 다양하다. 청소년들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붓다의 메아리’를 비롯해 ‘뉘우치오니’ ‘산사의 봄’ ‘날마다 좋은 날’ ‘자비의 나라’ ‘무상계’ ‘사래밭 아리랑’등의 창작은 물론 교성곡 ‘사바의 바다’ ‘불 밭에 피는 꽃’ 오페라 ‘나무꾼과 선녀’ 등도 창작했다. 박범훈 前 중앙대 총장과 김회경씨가 곡을 붙이기도 했고 김영임 등의 가수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지금까지 작사한 노래만도 100 여곡이 넘는다.
재가불자 작사가로서 찬불가 운동에 참여한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반영규 선생으로 불교 음악사적인 측면에서도 크게 주목 받는 인물 중 한 명이라 말할 수 있다.

현대불교신문에서 옮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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