벵골불교-2 불교박해와 살아남기 위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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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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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벵골불교-2 불교박해와 살아남기 위한 투쟁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5:58 am

불교박해와 살아남기 위한 투쟁

사진 1:치타공 지역의 마헤쉬칼리 섬의 불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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벵골은 지금 인도와 지리적으로 갈라져 있다. 동쪽은 처음엔 동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다가 독립했다. 파키스탄이 인도와 분리할 때, 동쪽 벵골은 종교적 이유에서 동파키스탄으로 분리되었는데, 이 지역에 무슬림이 많았기 때문이다. 서벵골은 힌두교도가 많아서 인도로 속하게 되어서 같은 언어와 풍속을 지닌 벵골은 이렇게 갈라서고 말았다. 브리티시 인디아의 유산이다. 서구열강은 인도만이 아니고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에게 악영향을 남겼다. 우리나라도 결국 서구열강에게 배운 일본이 조선반도를 식민지로 지배하다가 해방되자마자 좌우 대립의 희생양이 되어서 결국 분단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벵골은 분단국이나 다름없다.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갖고 있으면서도 브리티시 때문에 종교란 이유로 분리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고 말았다. 이 분리과정에서 종교적으로 큰 피해를 본 종교는 불교이다. 그나마 인도 땅에서 인도불교라고 할 수 있는 벵골불교는 두 동강나고 말았다. 서 벵골은 캘커타가 중심이며, 동 벵골은 다카가 그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동쪽 벵골인 방글라데시는 현재 제2의 도시인 항구 도시 치타공이 불교의 중심지이다.

특히 이 지역에는 바루와(Barua) 성(姓)을 가진 불교도들이 집성(集姓)을 이루면서 불교를 신봉하고 있다. 주로 방글라데시 평원에서 사는 종족이다. 아라칸족의 연대기에 의하면 이 종족은 이 지역에서 5천년 이상을 살아오고 있다고 한다. 치타공은 한 때, ‘차이티야그라마’라고 불렀다. 10세기에는 대승불교의 중심역할을 했고, 모그족은 불교도로 인식되어 왔다. 라카인족 또는 아라칸족(Arakanese)은 미얀마의 민족으로 현재 라카인 주(아라칸 주)의 해안 지역을 따라 많이 살고 있다. 그들은 아마도 미얀마 총 인구의 4% 혹은 그 이상을 구성하는 것으로 생각되나, 정확한 통계 수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라카인족은 또한 방글라데시의 남동부, 특히 치타공 주에 살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구릉지대에 사는 아라칸 족 후손들은 최소한 16세기 이래로 그곳에 정착했고 마르마족으로 불린다. 이들은 아라칸 왕국이 치타공 지역을 지배할 때 이래로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아라칸 족 후손들은 북쪽으로 인도의 트리푸라 주까지 퍼져 있고 이들의 존재는 아라칸 왕국이 트리푸라까지 지배했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라카인족은 주로 상좌부 불교를 믿고 버마족, 샨족, 몬족과 함께 미얀마 4대 불교 민족의 하나이다. 라카인 문화는 버마 문화와 유사하지만 지리적으로 아라칸 산맥에 의해 미얀마 본토와 분리되어 있고 남아시아와 더 가깝기 때문에 인도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다. 인도 문화의 흔적은 문학, 음악, 요리를 포함한 라카인 문화의 많은 측면에 남아있다. 라카인족은 버마어의 옛 형태인 아라칸어를 사용한다. 여전히 대체로 표준 버마어와 상호 이해가 가능하다. 현대의 아라칸의 문자는 약간의 단어의 차이를 제외하고는 표준 버마 문자와 본질적으로 같다.

사진2: 아라칸 족이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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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루와들은 라즈반시라고 부르는데, 폐망한 왕족의 후예들이라고 알려지고 있다. 이 지역은 빨리 텍스트에 마짓마데사로 알려져 있다. 벵골어를 구사하는 바루아 성을 가진 사람들도 불교도이지만, 인도유럽어족인 아리안언어인 벵골어를 사용한다. 아삼지역에도 바루와 성을 가진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아삼 힌두 브라만들로 통한다. 바루와란 말은 ‘바루’라고 하는 위대한의 뜻과 ‘아랴’란 귀족의 뜻을 갖고 있다. 그들이 모그족으로 알려진 것은 그들의 뿌리가 마가다이기 때문이다. 바루와 성을 가진 불교도들은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대승불교를 신봉하고 일부는 힌두교를 믿었다. 버마의 아라칸 승 왕이 보드가야에서 귀국길에 치타공에 들렸을 때, 바루와 사람들은 버마와 실론의 상좌부와 접촉을 갖고 상좌부 불교로 전환하게 되었다. 1892년 크리파샤란 마하스타비르 비구에 의해서 캘커타에 불교단체를 설립하고 그는 회장에 취임했다. 이렇게 해서 벵골불교는 성장하게 되었고, 실론 출신 아나가리카 다르마팔라가 1917년 치타공을 방문했을 때, 9세의 소년은 그에게 감화를 받고 나중에 성장해서 유명한 빨리어 교수가 되었는데 그가 드위젠드라 랄 바루와 교수이다.

현재의 방글라데시 불교는 버마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과 벵골어를 사용하는 바루와 성을 가진 벵골인들로 구성되고 있다. 1947년 벵골은 종교적 정치적 이유로 국경이 분리되면서
1971년 독립국가가 되었지만, 민족분단이나 다름없는 운명을 맞고 말았다.

방글라데시는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불교국가였지만, 졸지에 이슬람국가로 변신하고 말았다. 겨우 치타공 지역에서도 인구의 12%만이 불교도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불교사적으로 본다면 방글라데시는 결코 가볍게 볼 나라가 아니다. 벵골은 보드가야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벵골의 불교도들은 부처님은 생전에 방글라데시를 방문했다고 믿고 있다.

사진3: 몇 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무슬림들의 불교도와 힌두교도에 대한 잔악행위를 중단하라고 인도의 비구들이 데모 행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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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다카 부근에서 아소카 석주를 발견했고, 두 개의 비문을 발견했다. 산치대탑 건립에 방글라데시에서 헌납했다는 기록을 봐서 기원전부터 방글라데시 지역에 불교가 이미 널리 퍼져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기원전 아소카 대왕 시대부터 12세기 까지 벵골에서 불교는 매우 강하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인도 아 대륙의 다른 지역이 힌두와 무슬림에 무참히 무너졌을 때에도 이 지역은 마지막 까지 불교가 살아남았었다고 한다. 기원후 3세기의 나가르주나 비문에 따르면 벵골은 불교가 크게 흥성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도불교가 무참히 짓밟히고 사라질 때, 실오라기와도 같은 생명선을 이어간 불교도들이 바로 이 지역의 소수민족과 바루와 성을 가진 사람들이다. 간혹 국제 불교회의에서 이들의 호소와 처지를 듣고 보노라면 같은 불교도로서 자연스럽게 동정이 가고 안타가운 심정을 갖게 된다. 한 때 불교가 주류 종교였던 이들 나라에서 불교의 운명을 보노라면 결코 남의 나라 일 같지가 않기 때문이다. 한국불교는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할 때가 다가온 것이 아닌가 하고 고만해 볼 때가 있다. 아무리 문화재가 많고 역사가 유구하고 전통사찰이 있다고 한들, 승려가 없고 불교도가 소수로 전락한다면 불교의 운명은 어떻게 되겠는가.

이치란 박사
해동불교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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