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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7-02-04, (토) 5:33 am 

가입일: 2016-11-29, (화) 5:4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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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상좌부 전통과 사회주의

사진1: 베트남 중국 태국 미얀마와 캄보디아로 둘러싸인 라오스 인민민주공화국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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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이념(사회주의)이 공존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드물다. 라오스가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인도차이나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내륙에 갇혀 있는 나라로서,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어 있어서 우선 답답한 느낌이 든다. 라오스는 전국토의 70%이상이 산지로 구성되어 있고, 라오스 내에서 움직이기도 매우 불편한 편이고 교통이 제대로 발달되어 있지 않다. 라오스 인구는 약 7백 만 명인데, 몇 개의 민족으로 구성된 다민족 국가라고 할 수 있겠다. 라오스 족이 55%, 끄므 족(克木人)이 11%인데 이 종족은 중국 56개 소수 민족 외에 속하는 중국 미식별 민족이다. 중국 남부 묘족 계통의 흐몽 족이 8%이며 그밖에 여러 민족으로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라오스 족이 반수 이상을 약간 웃돌고 있다.

사진2: 중국남부에 주로 사는 묘족으로, 중국남부에 3백만 명, 라오스에 50만 명, 베트남에 백만 명, 태국 15만 명, 미국에 30만 등 약 6백만 명 정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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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족은 중국 남부 운남성에서 남하한 민족으로서 태국 특히 태국 북동부와 연관이 있고, 언어적으로도 태국어와 가깝다. 라오스 역사상에 등장한 첫 나라는 란쌍 왕국이다. 란쌍왕국(Kingdom of Lan Xang 1354–1707)은 14세기 중반에 현재 라오스 북부와 중부 지역에서 생겨난 왕국이다.

사진3: 청록색부분이 란쌍 왕국이며, 처음 수도는 루앙프라방, 나중에는 비엔티안으로 옮겨서 18세기초까지 존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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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4: 수도 비엔티안에 있는 파 탓 루앙 사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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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란쌍 왕국을 세운 파눔 왕(1316–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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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스 불교는 현재 테라와다(Theraveda Buddhism) 불교이다. 란쌍 왕국은 1527년 포티사랏 왕이 불교를 국교로 삼았지만, 불교는 파눔 왕(1353-1372) 때부터 시작됐고, 이때부터 라오스의 마을에 불교는 깊이 자리 잡게 된 것이다. 라오스 불교는 이른바 라오스 저지대에 사는 라오족의 종교이다. 전인구의 55 %정도의 라오 족은 100% 테라와다 전통을 따르고 있다.
나머지 소수 민족은 ‘삿사나 피’라는 범신론적 신교(神敎)를 믿는다. 다신교적 물활론에 의한 샤먼 성향의 종교이다. 라오스 뿐 아니라 태국의 동부 이산 지역에서도 이 종교를 신봉한다. 라오스 인구의 30%가 이 종교를 믿고 있을 정도이다. 뿐만이 아니라 라오스 주변의 소수 민족들도 이 토속 종교를 광범위하게 믿고 있음이 일려지고 있는데, 이들은 동시에 친 불교적이다.

사진6: 삿사나 피 사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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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s06.png [ 84.02 KiB | 320 번째 조회 ]

하지만 라오스의 주류 종교는 불교이다. 라오스 불교를 전회에서도 대강 언급했지만, 라오스 불교는 몬족의 승려에 의해서 8세기 경 라오스 땅에 전해졌다. 그리고 란쌍 왕국 시대에 라오스 전 영토에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오늘날의 라오스 불교는 이 란쌍 왕국 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라오스의 역대 왕들은 불교의 강한 후원자들이였다.
1950년대 말, 공산주의 운동 단체인 ‘파텟 라오’는 승려들을 좌파로 전향시키고 승가의 지위를 민중사상과 태도로 전환하는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했다. 이런 노력으로 라오스 승가는 한때 이런 시대사조의 흐름을 외면할 수 없었고, 라오스 왕실과 전통성향의 비구들은 라오스를 떠나야 했다. 이런 정치 이념적 영향으로 승가도 보이지 않게 양분되는 현상을 나타나게 되었는데, 정교분리에 의한 친 왕실에 가까운 비구들과 친 파텟 라오 성향의 비구들이 생겨났다. 이런 현상은 미얀마도 어느 정도 유사한 성향이다. 캄보디아 베트남도 이런 맥락에서 오늘의 인도차이나 불교를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태국은 예외이지만 말이다.
1975년 라오스 인민 민주공화국이 들어설 때 까지. 라오스는 프랑스가 물러간 다음, 라오 이사라(자유 라오스) 운동과 내전이 교차하면서 입헌군주국인 라오스 왕국이 1047년부터 1975년까지 존속하는데, 1947년부터 1953년까지는 프랑스 보호국이라는 명분을 유지했다. 이 기간 동안 라오스는 파텟 라오 주의자들의 활동에 의한 내전을 겪으면서, 1975년 12월까지 존속하다가 라오스 군주국의 마지막 왕인 시사방 와타나(Varman Brhat Maha Sri Savangsa Vadhana 1907-1978) 왕은 파텟 라오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이후 공산정권은 수파누봉 왕자(1909-1995)를 명목상의 대통령으로 세우고 1991년까지 대통령직에 있게 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하고 내전을 겪고 나라가 혼란한 상황에서 많은 수의 비구들이 태국으로 이동했다.

사진7: 라오스의 마지막 왕 시사방 와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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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 라오스 공산정권이 세운 명목상의 대통령 수파누봉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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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 파텟 라오 성향의 비구들은 새로 구성된 라오스 연합불교승가협회에 참여해서 종교지배층이 교체되었다. 이런 갑작스런 승가지형의 변화로 수계체계에 문제가 발생하고 많은 사원들이 빈 절이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종교집회 또한 마을의 핵심 간부들의 눈총을 받게 되자 라오스 승가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1979년부터 정부는 전략적인 종교자유정책을 펴자, 라오스 불교는 구렁텅이에서 헤어나게 되었고, 비구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게 되었다. 1980년대부터 정치적 완화에 의한 경제개혁으로 사원에 공양을 자유롭게 하고 불교행사 또한 증가하게 된다. 1986년까지 통제되었던 불교축제도 3일에서 7일로 연장되고 수계식도 증가하게 되어 젊은 청소년들이 승가에 입문하는 숫자가 많아지고 있다.

사진9: 라오스 루앙 프라방 왕궁 앞에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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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os09.png [ 95.6 KiB | 320 번째 조회 ]


해동불교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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