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2) 스리비자야 시대 불교와 의정법사-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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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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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인도네시아-2) 스리비자야 시대 불교와 의정법사-①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4:58 am

스리비자야 시대 불교와 의정법사-①

전회에서도 소개했지만, 스리비자야 왕국은 매우 강성한 국가로서 힌두와 불교가 함께 왕성하게 발전했던 종교국가였다. 스리비자야는 산스크리트어 발음으로는 스리비자야인데 표기는 Srivijaya 또는 Sri Vijaya라고 쓰고,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는 스리위자야라고 하며 Sriwijaya라고 쓴다. 타이어로는 스리 위차이(Ṣ̄rī wichạy)로 발음하고 쓴다. 대체로 붙여서 ‘스리비자야’라고 하는데, 'v'브이 발음을 ‘위’바름으로 하기 때문에 ‘스리비자야’나 ‘스리위자야’라고 양쪽으로 사용해도 무난하다고 본다. 스리비자야 왕국의 특징은 인도네시아의 여러 도서와 말레이반도와 인도차이나 반도에 까지 영역이 미치는 제해권을 가진 왕국이었다. 힌두교가 아직 영향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8세기에서 12세기 사이에는 불교가 압도적으로 발전되고, 스리비자야 국은 불교의 센터 역할을 했다. ‘스리’란 말의 뜻은 ‘행운’ ‘번영’ ‘행복’이란 뜻이며, ‘비자야’는 ‘승리’ ‘탁월’ 이란 의미를 갖고 있다. 스리비자야 왕국이 불교국가로서 불교센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당나라 승려인 의정법사(義淨法師)에 의해서이다. 그는 671년 약 6개월간 이곳에 머물게 되는데, 인도 날란다 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길에도 이곳에 들려 상당기간 있었으며 후에 다시 방문해서 25년간 이곳을 왕래하면서 머물렀다는 기록이다. 또한 수마트라 팔렘방 근처 케두칸 부킷에서 1920년 화란의 한 고고학자에 의해서 발견된 케두칸 부킷 비문(Kedukan Bukit Inscription)에 의하면, 서기 682년경에 씌어진 것인데, 이웃 국가들인 자바, 캄부자와 참파 등과의 라이벌적인 관계이긴 했지만, 스리비자야 왕국은 이 지역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사진1: 수마트라 섬 팔렘방 근처의 케두칸 부킷에서 발견된 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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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스리비자야 왕국의 주된 관심은 당나라와의 무역이었고, 스리비자야 왕국은 당나라와는 물론 송나라와도 무역협정을 맺어서 부를 이루는 것이 목적이었다. 벵골의 불교 왕조였던 팔라 왕조와는 무역뿐 아니라 종교 문화 교류를 했었고, 마찬가지로 중동의 이슬람의 칼리프 국들과도 교류했다. 강성했던 스리비자야 왕국은 여러 요인이 있었겠지만, 자바, 마자파힛 제국들의 확장으로 인해서 존재가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700년의 왕업이 무너진 것이다. 당나라 의정법사는 스리비자야 왕국만이 아닌 스리비자야 왕국이 들어서기 전인 7세기 무렵 멜라유 왕국(Melayu Kingdom末羅瑜國)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수마트라 잠비 지역에는 큰 규모의 불교사원에서 많은 비구들이 공부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진2: 7세기 수마트라 잠비에 있었던 불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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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비자야 왕국의 불교 자료를 제공하고 있는 의정 법사에 대해서 소개하기 전에 먼저 스리비자야 왕국과 종교 문화교류를 했던 벵골의 불교왕국 팔라왕조에 대해서 잠깐 살펴보자.

사진3: 인도 팔라왕조(보라색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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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왕국(Pala Empire 8-12세기)은 고대 인도의 불교 황제 국가였다. ‘팔라’란 말은 인도 프라크리트어(속어)로 ‘보호자’란 뜻을 갖고 있다. 영역은 지금의 방글라데시와 인도동부 지역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 시대에는 벵골과 인도 동부지역인 비하르(보드가야 사르나트 등 불교성지가 속해 있는 지역)는 안정되고 번영을 구가했다고 하는데, 이 시대의 불교는 대승불교와 바즈라야나(금강승 밀교) 전통이었다. 이 시대에 큰 불교사원인 소마푸라 마하비하라(Somapura Mahavihara)가 창건되고, 날란다(Nalanda)불교대학과 비크라마쉴라 (Vikramashila) 불교대학이 최전성기를 누릴 때이다. 팔라 왕국의 경제문화적인 영향력은 멀고 넓은 지역과 영역에 영향력이 미쳤고 이로 인한 무역 네트워크 형성과 지성(종교문화)은 히말라야에서 동남아시아에 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아랍 국가들은 이 시대 인도 아 대륙에서 팔라 왕조는 가장 자비스러운 나라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스리비자야 왕국은 팔라왕국과의 깊은 교류에 의해서 불교왕국으로 발전한 것이다. 팔라 왕국이 세운 소마푸라 마하비하라는 8세기에 세워진 사원으로서 현재는 그 유적만이 존재하는데, 인도동부 西 벵골지역에서 가까운 방글라데시에 위치하고 있다. 198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방글라데시의 ‘파하르푸르’라는 지역에 위치한 이 사원은 팔라왕국의 제2대 왕인 다르마팔라(재위 781-821)에 의해서 세워졌는데, 상당히 큰 규모였던 것으로 티베트 소스에서 전하고 있다.

사진4: 방글라데시 파하르푸르에 있는 소마푸라 마하비하라(대사원) 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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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왕조는 확실하게 불교황제 국가였는데, 왕의 이름 뒤에는 반드시 ‘팔라=보호자’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이것은 불교를 보호하고 장려하는 보호자=후원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팔라왕조가 불교왕권 국가였기에 동남아시아에 있는 인도네시아인 스리비자야 왕국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 당나라 의정법사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진5: 의정법사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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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6; 7세기 의정 법사 구법여행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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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법사(Yijing 義淨 635–713)는 중국 당나라 때 승려이다. 속명은 장문명(Zhang Wenming 張文明)이다. 25년간 스리비자야 왕국에서 머무른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스리비자야 왕국 뿐 아니고 중국과 인도 날란다 대학 사이를 오가면서 여러 왕국들에 대한 정보도 기록하여 전해주고 있다. 그는 다수의 산스크리트어 텍스트를 중국어로 번역했으며, 인도 날란다학풍을 중국에 도입하는데 큰 역할을 했는데, 중국에서는 그의 공식 칭호를 삼장법사의정(Tripiṭaka Dharma Master Yijing三藏法師義淨)이라고 부른다(계속).

해동영한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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