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불교-4 캄보디아 불교를 해외에서 지킨 마하 고사난다 상가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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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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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캄보디아 불교-4 캄보디아 불교를 해외에서 지킨 마하 고사난다 상가라자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3, (금) 8:52 am

캄보디아 불교를 해외에서 지킨 마하 고사난다 상가라자

사진1: 크메르 루주 기간 상가라자를 역임한 마하 고사난다 큰 스님(1929-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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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승가는 현재 마하니카이파(대중파)와 탐마윳파(보수 전통)가 공존하면서 캄보디아 승가를 구성하고 있는데 이것은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이 캄보디아로 귀국해서 국왕에 취임하면서 전통적인 두 개 파의 승가를 구성하도록 한 것이다. 크메르 루주 기간 캄보디아 불교 승가는 엉망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 기간 캄보디아 승가를 지켜 낸 분은 마하 고사난다 비구 큰 스님이시다. 마하 고사난다(Maha Ghosananda) 상가라자(종정) 비구 큰 스님은 크메르 루주 기간과 공산주의 정부 후 과도기간에 해외에서 캄보디아 승가의 상가라자(종정)로서 캄보디아 불교를 이끌었던 분이다. 특히 마하 고사난다 종정 큰 스님은 해외에서 매년 캄보디아 평화행진을 진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마하 고사난다는 메콩 강 삼각주 평원에서 농부 가정에서 태어났다. 8세 때부터 절에 가서 템플 보이로 비구들의 심부름을 했는데, 눈여겨 본 비구들이 승가에 입문하는 것을 권유하여 14세 때, 사미계를 받고 사원 학교에서 중.고등 과정을 마치고 프놈펜과 바탕방 사원대학들에서 대학과정을 마치고 인도 나바(新) 날란다 대학에서 빨리어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학승이다. 그는 인도에서 일본산 묘법사 창종주 후지 스님에게도 대승불교를 사사받았고, 캄보디아 전 상가라자였던 추언 낱(Chuon Nath 1883–1969) 대장로 큰 스님에게서 불교뿐 아니라 캄보디아의 정체성을 배웠다. 추언 낱 종정은 크메르어를 보존하신 분이다.

사진2:캄보디아 문화촌에 있는 故 추언 낱 상가라자 조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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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언 낱 종정 스님은 프랑스 식민지하에서 크메르(캄보디아) 정신을 지킨 분이다. 민족불교와 크메르 언어를 보존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던 분으로서, 빨리어와 산스크리트어에서 많은 단어를 가져 오는데 심혈을 기울이신 분이다. 마하 고사난다 스님은 이런 분에게서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이다. 마하 고사난다는 1965년 태국 남부 태국 삼림명상전통 사원에서 아잔 담마다로 대선사 문하에서 명상수행을 했는데, 그 무렵 캄보디아는 베트남 전쟁 후, 내란에 휩싸였고 사회체제가 붕괴됐다. 1978년 삼림명상사원에서 타이-캄보디아 국경 난민 캠프로 가서 그들을 도왔다. 수년간 비구의 모습을 보지 못했던 캄보디아 난민들은 환영했고, 그는 이들에게 불교를 가르쳤다. 킬링필드에서 가족을 잃은 많은 난민들은 마하 고사난다 비구 큰 스님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했다.

마하 고사난다 큰 스님은 포스트 공산 캄보디아시기에 매우 중요한 인물로 부각되었는데, 그는 캄보디아 국가 재건과 캄보디아 불교 소생에 크게 기여하신 분으로, 1980년 유엔(UN) 망명 캄보디아 대표가 되었다. 1979년 폴 포트 정권이 무너졌을 때, 오직 3천명의 비구만 살아있을 정도였는데, 3년 전인 1976년 6만 명의 비구가 3천명으로 줄어들었던 것이다. 마하 고사난다는 타이-캄보디아 국경에 절을 세우고, 타이 군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수계를 주어 캄보디아 비구를 양성했다.

1980년 마하 고사난다는 타이-캄보디아 국경 난민 고아들을 돌본 미국출신 피터 로렌스폰드(Peter L. Pond)목사(1933-2000)와 함께 캄보디아 평화를 위한 종교간 미션 기구를 만들었고, 전 세계에 살아남아 있는 수백 명의 비구와 비구니들을 규합했다. 태국 군부는 수천 명의 난민들을 캄보디아로 강제 송환하려는데 항의데모를 주도했다. 1988년 마하 고사난다는 프랑스 파리에서 캄보디아 승가 상가라자(종정)로 선출되었고, 캄보디아 승가가 정식으로 구성될 때 까지 임시로 지위를 맡는 다는 조건으로 수락했다. 이 무렵 캄보디아에서는 텝 봉 비구스님이 베트남 배경에 의한 캄푸치아 민주공화국에 의해서 1981년 캄보디아 연합승가 명의상의 수장으로 임명되어 있었다. 1992년 마하 고사난다 종정스님은 캄보디아 정신과 재건을 위한 담마이에트라(Dhammayietra) 평화행진을 시작했다. 16일간 125마일을 평화-생명을 위한 행진을 벌였는데, 마하 고사난다는 연례행사로 몇 차례 계속했다. 그는 ‘캄보디아의 간디’로 불렸다. 1995년, 1996년과 1997년 3년 연속 캄보디아에 평화를 가져온 공로로 노벨평화상 후보자로 오르기도 했다. 그는 미국 필라델피아에 캄보디아 사원을 건립했고, 활동하다가 2007년 노샘프턴에서 입적하셨다.

사진3: 앙코르 왓을 순례하고 톤레사프 호수 가에서 필자(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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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영한 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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