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불교-2 캄보디아의 보물, 앙코르 왓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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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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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캄보디아 불교-2 캄보디아의 보물, 앙코르 왓 사원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3, (금) 8:44 am

캄보디아의 보물, 앙코르 왓 사원

사진1: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앙코르 왓 사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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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공중에서 본 앙코르 왓 사원 주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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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이 앙코르 왓(Angkor Wat)이다. 아마도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건축물이 아닐까 한다. 앙코르 왓은 처음에는 힌두교 사원이었지만, 나중에는 불교사원이 된 특이한 사연을 갖고 있는 종교사원이다. 앙코르는 지명이다. 앙코르는 크메르 왕국의 수도였는데, 산스크트어인 ‘나가라(Nagara नगर)에서 온 말로 ’도시‘란 뜻이다. 앙코르 시대는 802년 자야바르만 2세(Jayavarman II)부터 시작됐는데, 크메르 힌두 군주로서 스스로 신왕(god-king)이라고 불렀는데, 이 절대 군주국은 14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1351년 아유타야 왕국(Ayutthaya 1351-1767)에 무너졌고, 1431년에는 시암의 약탈로 많은 인구가 남쪽의 롱벡이란 데로 이주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한동안 앙코르 도시는 앙코르 왓 사원과 함께 숲속에 묻히고 말았다. 동남아시아 최대의 호수인 톤레사프 호의 북쪽으로 시엔 랩(Siem Reap) 시가 바로 앙코르 왓이 있는 지역이다. 인도고고조사국(印度考古調査局 Archaeological Survey of India)에서 1986년과 1992년 사이에 발굴을 수행해서 지금의 모습을 찾았는데,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고 관광객들이 물밀 듯이 몰려들고 있는 관광지다.

앙코르 왓(사원)은 캄보디아 보물일 뿐 아니라, 전 세계불교(힌두)의 기념물이다. 이런 대형 종교건축물을 건립한 크메르 왕국을 알아보자. 크메르 왕국은 힌두-불교 왕국이었다. 크메르 왕국은 푸난(부남)왕국(68-550)과 첸라(Chenla 진랍眞臘) 왕국(550–706)을 거쳐서 성장한 왕국이다.

사진 3: AD 900년대 크메르 왕국(붉은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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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라오스 베트남 태국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 강국이었다. 크메르 왕국의 최대 유산은 앙코르 왓(사원)과 바이욘(Bayon) 힌두 불교 혼합사원 유적이다. 바이욘 혼합사원은 12세기 후반 자야바르만 7세에 의해서 세운 앙코르 톰(Angkor Thom) 유물군 가운데 있는 대승불교사원이다. 크메르 왕국의 최 전성기에 세웠던 건축물로 건축기술과 건축미학은 세계적이다. 자야바르만 2세는 스스로 전륜성왕(轉輪聖王)이라고 선언하고 왕중왕(王中王)이라고 생각하면서 앙코르 왓을 짓기 시작했다. 앙코르 왓의 건축 양식은 인도 남부 드라비다 건축에서 기원한다.

사진4:인도 타밀나두 주의 마두라이 미낙시 암만 사원(Meenakshi Amman Tem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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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인도 마디아프라데시 주의 카주라호에 있는 자가티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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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 왓 사원 건축은 인도 중부와 남부의 힌두와 불교 건축 양식에서 영향을 받았고, 인도에서 건축 기술자들이 와서 작업을 한 것이다. 인도 힌두-불교 건축 양식에 대한 사전 지식을 전제하고 이 건축물을 감상해야 한다. 앙코르 왓은 수미산을 상징화 한 건축물이다. 수미산(須彌山)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세계의 중심에 솟아있다는 상상의 산으로 황금과 은, 유리, 수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의 중턱에는 사천왕, 정상에는 제석천이 있다고 한다. 또한 힌두신화의 데바(신)이 사는 신궁(神宮)으로 상정하고 세운 건축물이다.

자야바르만 7세(Jayavarman VII 1125–1218, 재위1181-1218)는 불교도 왕으로서 거의 40년간 재위하면서 앙코르 톰(Angkor Thom)과 바이욘 혼합사원을 건축했다. 13세기가 되면 앙코르 왓은 테라와다(상좌부)의 사원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16세기부터 정글 속으로 방치되기에 이른다.

13세기 중국 원(몽골)나라 주달관(Daguan Zhou 周達觀, 1266–1346)은 원 성종 테무르 칸 때의 관료로 원나라 사신으로 당시 캄보디아와 앙코르 사원을 둘러보고 여행기 진랍풍토기(眞臘風土記)를 썼다. 그는 1296년 8월에 앙코르에 도착, 그곳에 1년간 머물면서 당시 그곳을 통치하고 있던 인드라바르만 3세의 곁에서 1297년 7월까지 머물면서 기록을 남겼다. 그의 저서는 현재 크메르 제국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기록에는 바이욘과 바푸욘, 앙코르 왓에 대한 기록이 나오며, 당시의 풍습과 일상생활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서양인으로서는 포르투갈의 가톨릭 안토니오 다 막달레나(Antonio da Magdalena) 신부가 1586년에 앙코를 방문했다고 죽기 전 한 역사가에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19세기 중반 프랑스의 박물학자이며 탐험가인 앙리 무오(Henri Mouhot 1826-1861)에 의해서 대중에게 알려지게 됐다.

사진6: 앙코르 왓을 발견하여 대중에게 알린 프랑스 탐험가 앙리 무오(Henri Mou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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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앙코르 왓 유적은 흙과 식물들로 뒤덮여 있었고 이들을 제거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됨과 동시에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냈으나, 캄보디아 내전과 크메르 루주(1975-1979년) 기간 사이에 일부 유물이 유실되고 다소의 상처를 입었으나, 1992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필자는 2003년과 2004년에 앙코르 왓을 방문한 바 있다. 캄보디아 불교를 소개하면서 앙코르 왓(사원)은 더 소개하기로 하겠다.

해동영한 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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