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불교 부흥 보니 쇠락 한국불교 떠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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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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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중국불교 부흥 보니 쇠락 한국불교 떠올라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25, (수) 12:40 pm

손안식 전 중신 상임부회장의 제27차 WFB중국대회 참가기
중국 중앙 및 지방정부의 불교 및 불교문화재 보존, 복원 정책에 큰 감동​​​

WFB 창립이래, 중국 본토에서 최초로 부처님 중지(中指) 사리 봉안 된
법문사에서 성대한 개회식 열려, 30개국 6백여 대표와 5천여 사부대중 참석

스님들로 구성된 공연단이 불교 중국 전래와 서역 구법승들의 활동을 연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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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불교계에 몸담아서 활동했던 지난 일들이 하나하나 주마등처럼 나의 뇌리를 스친다. 그 가운데서도 세계불교도우의회(WFB)와의 인연을 생각하면 실로 감회가 새롭다. 청담 금오 동산 효봉 큰 스님 등이 1956년 네팔 카트만두에서 개최된 WFB 대회에 참가하시고, 국제 불교 교류의 필요성을 절감하여 가입하신 단체이다.

WFB 네팔 대회는 1950년 스리랑카에서 창립된 이래로 네 번째로 개최된 대회였다. 큰스님들은 이때 네팔대회에 참가하시고 많은 것을 느끼고 경험하셨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불교계의 인재양성을 위한 종비생(宗費生) 제도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닌 것으로 안다. 이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떨리고 그 분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 분들의 노력과 안목으로 조계종이 WFB에 가입하였고, 나중에는 신도회에 이관하여 신도회가 WFB 활동을 하도록 하셨다. WFB를 신도회에 이관한 후에도 승속이 함께 활동했으나, 10.27 법난이후 WFB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게 된다. 여기서 자세한 진상을 논하기에는 적절치 않으나, 법난으로 인하여 종단이 혼란에 빠지면서 WFB는 신도회의 영역에서 멀어지게 된다. 큰 스님들이 처음 가입하셨던 이름이 WFB Korea Regional Center이다. ‘세계불교도우의회 한국본부’가 공식 명칭이다. 지금도 이 단체는 존속하지만, 조계종이나 신도회하고는 무관한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명칭을 추적하면 이 단체가 지금 어디에 가있는지 알 것이다. 신도회에 몸담았던 한 사람으로서 미결사항으로 남아 있는 가장 부끄럽게 여긴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계불교도우의회 한국본부’를 환원시키지 못하고, 할 수 없이 ‘조계종 신도회’ 이름으로 재 가입하여 활동하게 된 일이다.

김의정 회장 재직 시에, 재 가입하여 김의정 회장이 본부 부회장에 선출되고 2012년 제 26차 대회를 조계종과 함께 주관하여 개최했다는 데에 큰 보람을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는 1990년 제17차 WFB 대회를 개최하고 제 26차 대회를 개최했으니 WFB 64년 역사에서 두 번 개최한 셈이다. ‘90년 대회는 조계종과 신도회가 함께 참여하였고, 본인은 한국대회조직위원회 사무차장으로 활동했다.

지난 2012년 여수 대회에서는 조계종과 신도회 지부가 공동으로 주최했는데, 세계불교대표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대회여서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사실, 이번 중국대회에는 참가하려는 생각이 없었으나, 신도회 집행부에서는 참석을 못할 형편이라고 해서 부득이 신도회를 대표해서 이번 중국대회에 참가하기로 결정을 하게 됐다. 중국본토에서는 WFB 창립 이래 처음으로 개최되는 대회여서 의미가 클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WFB에 일찍 가입되어 있었지만, 중국 국내의 여러 사정으로 인해서 대회를 개최할만한 입장이 아니었으나, ’90년 한국 대회 때는 당시 중국불교협회장인 조박초 회장을 비롯한 대표단이 참석한 바 있다. 당시 노태우 정부에서는 북방정책의 일환으로 중국과의 수교를 앞두고 있었고, WFB 한국대회는 한-중간에 중요한 윤활유 역할을 했었다. 지나간 이야기이지만 당시 기념책자에 달라이 라마의 메시지를 게재했었는데, 중국대표들은 곤혹스러워했었다. 지난 2012년 여수 대회에서도 다람살라의 망명정부 대표가 참석한 것을 두고 중국대표단이 ‘꼬장’을 부린 사건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역사란 이런저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진행되는 것이지만, 정말 아슬아슬한 사건들이었다.

WFB 본부 집행이사인 이치란 박사의 전언에 의하면, 이런 식의 중국의 횡포를 본부 집행 이사회의에서 따지려했지만, 중국 본토에서 WFB 대회 개최란 명분 때문에 이런 사건들은 묻히고 말았다고 했다. 중국불교의 위상을 고려해서, 중국본토에서의 WFB 대회가 개최됨으로 인한 상징효과를 의식했던 것이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했지만, 사실 지금 불교는 중국 영역에서 크게 확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WFB 본부나 거의 대부분의 회원국이나 지부에서는 중국 개최를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이렇게 해서 중국 섬서성 바오지(寶鷄) 시에서 개최하게 된 것이다.

나는 지난 10월 14일 인천 공항을 출발해서 북경을 거쳐 서안 공항에 도착하였다. 서안 공항은 이미 WFB 대회에 참가하러 온 대표들이 많이 보였고, 대회 조직요원들이 친절하게 우리 일행을 맞이하면서 안내했다. 준비를 잘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안내 요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중국불교의 활발한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뿌듯했다.

서안은 옛날부터 여러 왕조의 수도였고, 우리에게는 장안(長安)이라고 알려진 곳이라서 감회가 새로울 뿐이었으나, 대회 장소는 바오지 시(市)여서 서안에서 미니버스로 3시간 정도 이동해야 했다. 장안 구경은 다음에 하기로 하고, 일단 우리 일행은 바오지 시로 향했고, 5성급인 완푸(萬福) 호텔에 도착하자 미리 준비한 명찰과 기념품과 방 키를 주는 것이었다. 이번 대회는 바오지 시 정부와 법문사가 후원한 대회였다.

법문사는 그 규모가 어마어마한 사찰이었다. 다음 날인 15일은 대표단이 도착해서 등록하는 날이고 다만, 본부 집행이사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나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방에서 쉬면서 저녁에 주최 측에서 비구와 비구 스님들로 구성된 불교전래와 서역구법승들의 활동을 묘사하는 문화공연을 감명 깊게 감상하였다.

개회식이 열린 법문사 부처님 중지(中指) 사리탑 광장 앞에서, 좌로부터 본부 집행이사 이치란 박사, 필자 손안식(신도회 상임지도위원장), 두 사람 건너 연합회 지부 김기준 회장, 한국문화복지포럼 지부 염정호 사무총장 등과 기념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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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중지(中指) 사리를 봉안한 법문사에서 개회식 후 기념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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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은 개회식이 법문사에서 있기 때문에 아침 일직부터 움직였다. 지난 여수 대회에 참가했던 분들을 다시 만나니 반갑기 그지없었다. 다들 여수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칭찬해줘서 마음이 뿌듯했다. 세계대회는 불교도들의 친선 모임이기도 하지만, 국위도 선양할 좋은 기회이다. 한국에서는 WFB 대회가 두 번 열렸기 때문에 한국불교를 알리는 데는 상당한 효과를 봤다고 생각한다. 지난 여수 대회 때, 외국 대표들은 지리산 화엄사나 송광사를 둘러보고서 정말 깊이 감동하는 모습이었다. 한국불교문화의 우수성이라고 하겠다.

최근에 불거진 도박사건 폭로는 이런 한국불교의 참 모습에 찬물을 끼얹는 불행한 일이다. 나는 이번 중국대회에 참가하여 중국불교의 활발한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우리 불교계에 대한 비애감 같은 것을 느꼈다. 이번 제27차 세계불교도우의회(WFB)대회는 중국 중앙정부의 적극적인지지아래 바오지 시 지방정부와 법문사가 후원해서 성대하게 개최되었다. 국가와 종교는 밀접한 관련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정교분리의 원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국가에서 보호하고 후원하는 종교가 된다면 더욱 좋은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한국은 종교다원주의니 뭐니 해서 불교의 위상이 점점 축소되어가는 것 같아서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번 중국대회를 보면서, 중국정부의 불교보호와 후원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더욱 절실했다.

개회식이 열린 법문사는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컸다. 정문에서 부처님 중지 사리가 모셔진 사리탑 본전 건물까지는 미니 전기 자동차를 타고 가야할 정도로 3km나 되는 거리였다. 또한 광장은 몇 십 만 명이 운집해도 여유가 있을 정도로 넓었다. 개회식이 진행된 나마스테 홀에는 5천여 사부대중이 입추의 여지없이 참석하여, 성대한 개회식이 열렸는데, 중국불교협회 회장 전인(傳印) 법사는 90노객이면서도 정정한 모습으로 법어를 하셨고, 한국불교와도 인연이 깊은 법문사 주지 학성(學誠) 스님이 환영사를 했다.

중국불교에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의 입김이 작용하는 것 같았으나, 공산당 정부 출범 이전부터 출가하여 수행해 오신 전인 법사를 전면에 등장시키는 것을 보니, 불교의 자주성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듯했다. 전인법사는 중국 5가 7종 선불교 전통의 마지막 법맥을 계승하신 대선사인 허운(虛雲:1840-1959)노화상의 제자 가운데 한분이다. 허운 노화상은 중국근대 선종의 고승으로서 조동종 제47대, 임제종 제43대, 운문종 제12대, 법안종 제 8대, 위앙종 제8대의 법맥을 계승한 분이라고 한다. 그는 120세까지 생존하면서 중국 전통불교를 마지막까지 지켜낸 역사였다고 하는데, 이런 분의 제자를 전면에 내세워 중국불교의 정통성을 은근히 천명하는듯했다.

중국불교는 한전불교(漢傳佛敎)와 장전불교(藏傳佛敎)로 대별되는데, 한전불교는 역경불교라고도 할 수 있으며, 장전불교는 티베트 불교를 말한다. 선종불교는 중국산 불교 종파라고 할 수 있는데, 전인법사는 한전불교와 선종불교를 합친 상징적 인물이라고 했다. 장전불교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젊은 판첸라마도 등장시켜 축하 메시지를 발표했다.

이어서 WFB 회장 메시지, 중국 정부인사와 스리랑카 대통령 축사, 각국 불교 대표 축사 등이 있었으며, 한국에서는 조계종 대표가 불참한 관계로 한.중.일 불교협회의 차원에서 한국불교종단협의회 부회장 자격으로 변춘광 천태종 총무원장이 축사를 했다.

WFB 27차 본회의, 좌로부터 필자(손안식 신도회 상임지도위원장), WFB 집행이사 이치란 박사, 진월스님(동국대 경주), 남궁성 원불교교정원장님, 진각종 대표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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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문사(法门寺:陕西省宝鸡市扶风县城北)는 동한말년(东汉末年)에 창건되어 현재 1700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부처님의 중지(中指)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중국정부는 1950년 WFB 창설 이래 처음으로 중국 본토에서 개최한다는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한 듯 했다. 중국은 기원전후 후한 명제 때 서역을 통해서 불교를 수용한 이래, 불교는 중국의 문화와 문명의 중추로서 깊이 침잠되어 중국의 정신문화를 창조해 왔다. 중국불교 2천년 역사 이래 몇 차례의 불교탄압과 폐불(廢佛:3武1宗의 法難) 사건이 있었고, 현대에 와서는 프롤레타리아 문화혁명(1966-1969)기간 불교사원을 파괴하고 승려들의 옷을 벗기기도 했지만, 현재 중국 중앙정부나 각 지방 정부는 불교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여 선양하는데, 입장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17일은 오전 8시부터 WFB 27차 총회와 WFBY(청년회) 17차 총회가 각각 개최됐다. 집행이사회에서 통과된 5개의 신입회원 지부 가입을 승인했으며, 8명의 WFB 집행이사를 선출한 바, 한국대표로서는 이치란 박사가 지난 2012년 제26차 여수 대회에 이어서 재 선출되었다. 오후에는 각분과위원회별 회의가 개최됐으며, 이어서 ‘불교와 공익자선’이라는 주제로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야간에는 각분과위원회의 회의결과 보고가 있었다.

18일 오전 8시 폐회식이 개최되고, 바오지 선언문을 채택하고 각국 대표가 메시지를 낭독했다. 한국은 조계종 영담 스님이 한중불교친선협회장 자격으로 축하 메시지를 낭독했다. 차기 대회인 28차 대회는 대만의 불광산사에서 개최하기로 잠정 결정한 후, 공식대회를 마치고 오후에는 바오지 일대의 문화유적지를 둘러보고 저녁에는 문화공연을 감상하고, 19일은 시안(西安)의 대자은사와 장안성(城) 등을 관광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한국에서는 8개 지부에서 50여명의 대표가 참가했으며, 북한의 조선불교도연맹도 2명의 대표와 1명의 통역을 참가시켰다.

나는 이번 대회에 참가하면서 중국불교의 활발한 모습을 목격했다. 또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는 불교문화재 보호와 복원에 힘쓰고 있었다. 문화혁명기간에 불교와 여러 종교가 타격을 입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불교대찰(大刹)들은 그대로 존속되고 있었다. 불교가 다시 부흥되고 많은 국민들이 불교를 신앙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사이에 존재하는 나라이다. 지정학적인 논리를 떠나서라도, 3국은 불교가 주류 종교이다. 일본불교는 이미 안정권에 있고 중국불교 또한 과거의 영화를 되찾고 있는 차제에 우리 불교가 너무 걱정되었다. 갈수록 교세가 약화되어가고 있는 마당에 도박이 말이 되는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지난 40년간 신도활동을 하면서, 미력한 힘이나 애를 썼던 나 자신의 모습이 너무 초래해 보이는 것 같아서 할 말을 잊는다. 하지만 한국불교는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새로운 각오와 결의로 새로운 모습의 한국불교를 창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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