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남불교탐방-9 / 6조 혜능대사와 보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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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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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중국영남불교탐방-9 / 6조 혜능대사와 보림사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1:04 pm

6조 혜능대사와 보림사

사진1: 중국 광동성 남화선사에 봉안된 6조 혜능대사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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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조 혜능대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구구한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지만, 혜능대사는 우리에게 항상 새롭게 해석되는 여지를 갖고 있는 분이다. 일반적으로 혜능(慧能 638~713)대사는 당나라(618~907)시대의 선승이며 선종(禪宗)의 제6조이자 남종선(南宗禪)의 시조로 추앙받는 분이다. 6조 대사 또는 조계대사(曹溪大師)라고 하며, 시호는 대감선사(大鑑禪師)이다. 혜능을 한자로 중국에서는 혜능(惠能)으로 쓰기도 한다. 속성은 노씨이며, 지금의 광동성에서 태어났는데, 집이 가난하여 일찍이 나무를 시장에 내다 팔아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어느 날 《금강경 》강송을 듣고 발심하여 황매산 오조 홍인 문하에 들어가서 오조의 의발을 전수받고, 동산법문을 계승했다고 말하며,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見性成佛)’을 내세워 중국불교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 불교의 물줄기를 크게 바꿔 놓은 분으로 알려지고 있다.

혜능대사가 어떻게 오조대사의 의발을 전수받게 되었는지에 대해선,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스토리이지만, 간단하게 요약하면, 오조 홍인의 수제자인 신수 대사의 게송(시)을 보고, 혜능이 답한 것을 5조 홍인이 보고 혜능이 견성했음을 인정, 법통을 이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선종에서는 금과옥조와 같은 전설인지라 그대로 믿는다는 전제하에서 두 고승의 게송을 우선 살펴보자.

神秀의 게송(詩)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몸은 보리수요 마음은 명경대와 같으니)
時時勤拂拭 莫使有塵埃(때때로 부지런히 닦아서 때가 끼지 않도록 하자)

慧能의 게송(詩)
菩提本無樹 明鏡亦無臺(보리수는 본래 나무가 아니며 명경 또한 대가 없으니)
本來無一物(佛性常清淨) 何處有塵埃(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불성은 항상 청정한데) 어디에 때가 끼리요)
대강 이런 게송들인데, 5조 홍인대사는 혜능이 신수보다 더 견성에 접근한 것으로 본 것이다.

사진2: 6조대사가 대를 자른다는 6조감죽도(六祖砍竹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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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혜능은 미처 구족계(具足戒)도 받기 전에 의발을 전수받고, 시기질투를 피해서 야반삼경에 남쪽으로 피신을 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유랑의 길을 떠나게 된다. 6조 대사는 광동성으로 왔고, 지금의 광주시에 있는 광효사(光孝寺)란 절의 법회에 참석하여, 깃발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필자는 광주시 대불고사의 해상실크로드 심포지엄 초청으로 광효사와 보림사 등지를 탐방했다.

사진3: 6조 대사가 깃발 논쟁을 벌인 광주시 소재 광효사에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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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대사가 이곳 광주 광효사에 온 것은 676년인데 그때는 법성사였다. 나중에 광효사로 개칭했는데, 이후 광효사는 광주시의 4대 총림이 될 정도로 유명하며, 이미 혜능 이전에 건립되어 2천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이다. 처음엔 남방(인도 실론)에서 비구들이 와서 머물렀고, 중국의 승려들이 인도구법을 떠나기 전, 이곳 광효사에서 범어(산스크리트어)를 먼저 익히고 나서 뱃길을 나섰다. 당나라 의정법사나 신라의 혜초 법사도 이곳 광효사에서 머물면서 인도구법여행을 준비한 것이다. 필자는 광주시내 중심가 요지에 위치한 대불고사의 초청이었지만, 광효사는 6조 대사와 관련된 사찰이어서 감회가 새로웠다. 아무튼 혜능대사는 법성사에서 소주 대범사에 이르러 강설을 베풀고, 조계 보림사에 이르러서 오랫동안 주석하면서 선종을 크게 펴게 된다.

이제 혜능대사의 선법(禅法)에 대해서 알아보자. 한마디로 혜능대사의 선법은 정혜위본(定慧为本)이다. 정혜를 근본으로 삼는다는 말이다. 정혜란 바로 부처님의 선법이다. 혜능대사의 돈오(顿悟)도 별다른 것이 아니다. 혜능대사에 의하면 누구나 각성(覺性)을 근본적으로 다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번뇌란 본래 없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혜능은 직접 각성을 증득하는 것이 바로 돈오란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혜능은 먼저 무렴위종(無念为宗)을 세워야 한다고 했으며, ‘불법재세간(佛法在世间)이니, 불리세간각(不离世间觉)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비록 견문각지(见闻觉知)를 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공적(空寂)하다는 것이다. 혜능대사는 자성(自性)에 귀의해서 진불(眞佛)로 돌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스스로에게 귀의하여 자득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달마이래로 선종에서는 《능가경楞伽经》에 의지했고, 제4조 도신 조사에 이르면 《金刚经》도 소의로 삼았다. 혜능대사는 스스로 단경을 남겼는데, 원적 후에 《六祖大师法宝坛经》을 제자들이 발행했다. 줄여서『단경壇経』이라고도 말한다.

사진4: 6조 혜능대사가 주석했던 보림사(현재 남화선사로 개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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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대사는 보림사에 주석하면서 문하에 수많은 제자들을 남겼고, 혜능 선법은 남북 2종으로 분립했다. 북종은 자칭 7조로 불린 하택 신회(荷澤神會688-758)에 의해서 하택종(荷澤宗)이 성립했다. 혜능선법의 남종은 남악회양(南嶽懷讓677-744)문하에서 홍주종(洪州宗)이 생겼다. 청원행사(青原行思 671-740)와 석두희천(石頭希遷700-790)문하에서 석두종(石頭宗)이 출현했다. 혜능문하에서 남북2종이 분립한바, 하택 신회가 본래 신수의 북종선의 지위를 얻었지만, 하택신회 이후 법맥은 소멸하고 말았다. 하지만 남종문하에서는 하북에서 임제종, 강서에서 조동종, 호남에서 위앙종, 광동에서 운문종 강소에서 법안종이 분출하여, ‘일화개오엽(一花開五葉)“ 이 되었고, 선종은 조선과 일본에 전해졌으며, 21세기인 현재는 구미에 까지 전파되었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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