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불교탐방-8 / 5조 홍인대사와 동산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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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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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영남불교탐방-8 / 5조 홍인대사와 동산법문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1:01 pm

5조 홍인대사와 동산법문

사진1: 5조 홍인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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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 홍인대사는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흔히 6조 혜능대사 이야기를 하면서 홍인대사의 극적인 의발전수와 전법을 우리는 귀에 익도록 듣고 또 들었고, 불문에 들어온 분들이라면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스토리이다. 중국 선종의 홍인대사와 6조 혜능대사 이야기가 한국불교에 얼마나 영향을 미쳤으면 우리에게 강하게 각인되어있는가를 상상이 간다. 선종 일변도 그것도 혜능대사 이야기가 아니면 불교가 아닌 것처럼 되어 버린 한국불교의 획일성은 어딘지 우리 불교의 균형을 깨는 일이 되고 말았다.

달마문하의 제자들인 혜가 승찬 도신 홍인 혜능을 말해야 하고, 선을 논해야 불교를 하는 것처럼 되어 버린 우리불교의 자화상을 냉철하게 비판적 분석과 함께 어떤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방 상좌부의 승가공동체나 비구들의 율장과 니까야 경전 등을 우리는 다시 재점검하여 받아들여야 하고, 티베트의 금강승 불교 특히 중관 유식의 교리와 철학의 신 해석을 재도입하는 것과 티베트 라마들의 승가공동체생활과 보살행, 달라이 라마 성하의 전법포교 활동 등을 냉정하게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학문적으로도 일본 불교학문체계에 치중되어 있는 방법론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중국의 선종 불교의 핵심 조사인 홍인 대사를 팩트 차원에서 일단 탐구해 보자. 홍인(602-675)대사는 5대조사로 화려하게 등극되어 있는데, 그는 원적 후에는 대만선사 (大満禅師)란 시호를 받았다. 또한 법우(法雨)란 탑호(塔號)를 받기도 했다. 5조 홍인대사는 호북성 황매현 출신으로, 성은 주(周)씨였다. 12세에 도신대사의 문하에 들어갔는데, 《楞伽師資記》에 따르면 7세였다고도 한다.

나중에 황매현의 빙무산(東山)에 머물면서 교화선도(敎化先導)에 전심전력해서, 중국선종의 본류가 된 동산법문을 발전시켰다. 동산은 서산과 대칭되는데, 사조 도신이 황매현 쌍봉산에 주석하였는데, 쌍봉산은 서산이 되고, 오조 홍인이 머물렀던 빙무산은 동산이 되어서 여기서 편 제자들과 일반인들에게 편 전법포교 활동을 동산법문이라고 부른다. 오조 홍인대사가 동산에서 주석하면서 크게 활약했기에 이른바 동산법문이라고 부르고, 또 달마 이래, 선법이 크게 확장되는 결정적 게기가 되었기에 선종사에서는 이렇게 동산법문이라고 하면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오조 홍인대사는 《수심요론修心要論》이란 저서를 남겼다고 하며, 제자 가운데는 법통을 이은 혜능 말고도 수제자 대통신수(大通神秀) 대사가 있는데, 신수는 북종선의 조사가 되었지만, 대가 단절되고 말았다고 보는 것이다.

신수대사는 교종(敎宗)을 따르는 분이고, 북종선인 점수선(漸修禪)을 닦는 분으로 혜능의 남종선인 돈선(頓禪)보다도 하열의 선처럼 되어 있는데, 사실 신수대사는 혜능대사보다 학식이 더 풍부했고, 이 분 또한 선의 경지가 높았던 고승이었다. 한국불교에서도 신수대사는 별것 아닌 것처럼 되어 버렸고, 북종선의 점수선을 닦는 하열의 조사쯤으로 매도해 버렸다. 중국에서 벌어진 남북종선(南北宗禪) 간의 차이와 남종선 우위의 관점에서 하택신회(荷沢神会)의 설을 따른 것이었다. 심하게 말하면 하택 신회의 일방적인 획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2: 북종선 제6조 신수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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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과연 북종선의 신수대사는 우리가 경계하고 폄하해야할 분인가를 다시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보는데, 옥천신수(玉泉神秀606-706)대사는 속성은 이씨로 중국선종에서는 북종선의 6조로 추앙 받는 분이다. 신수대사는 13세에 출가하여 주로 교학을 닦다가 늦은 나이인 50세에 이르러서 기주 황매현 5조 문하로 들어갔다. 《전법보기伝法宝紀》에 의하면 신수대사는 56세시, 일시 환속했다는 기록과 함께 10년간의 활동이 비밀에 쌓여 있다는 설을 기록했는데, 남종선파에서 공격하기 위해서 후대에 악의적인 조작기록이 아닌가 한다. 이후 절을 스스로 건립하고 94세시에는 당나라 고종 이치의 황후였던 측천무후(則天武后624~705 당나라 제7대황제)의 초청을 받았고, 중종, 예종에 걸쳐 3대 황제의 국사로 활약했다.

사진3:측천무후(武則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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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대사는 6조 혜능 대사 보다도 왕실에서는 더욱 존경을 받았던 것이다. 당대의 고승이 아니었다면 국사로 임명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혜능대사의 제자로 제7조라고 자칭했던 하택신회가 혜능을 높이기 위해서 신수를 비판한 결과이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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