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남불교탐방-⓻ / 승찬대사와 도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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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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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중국영남불교탐방-⓻ / 승찬대사와 도신대사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12:58 pm

승찬대사와 도신대사

사진1: 석가모니불로부터 30조, 달마로부터 3조 승찬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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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로부터 법을 이어 받은 혜가대사는 주로 두타행을 하면서 달마선법을 널리 유포했다는 말을 전회에서 한바 있다. 지금도 태국이나 스리랑카 미얀마 등지에 가면 두타행을 하는 상좌부 권 비구들이 있다. 이들은 삼림인 정글에 살면서도 마을로 탁발을 다닌다. 또한 계행을 철저히 지키면서 수행생활을 하는 것이다. 인도에서 마하가섭존자가 그렇게 했듯이 두타행의 참뜻을 잘 준수하면서 주로 관법(觀法)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런 전통은 중앙아시아인 서역에도 그대로 전해져서 주로 동굴 사원에서 이런 두타행을 했다. 사막지대인지라, 암벽 같은 데에 굴을 파서 수행했다. 둔황석굴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하지만 중국에는 한 때, 두타행의 의미가 다소 잘못 와전되어 무조건 행각하면서 탁발하는 것을 두타행으로 잘못 인식한 적도 있었다. 이런 풍습으로 인하여, 지금도 중국에서는 머리를 기르고 행각하는 일군의 승려들을 볼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런 풍경은 어제 오늘 생긴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우리나라라고 해서, 이런류의 행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본다.

중국에서 선종이 형성되기 까지는 이런 저런 우여곡절이 있었으며,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혜가 대사처럼 두타행을 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멸불(滅佛=3武1宗의 法難)의 난세에서 취한 호법(護法)의 자구책이기도 했다. 이제 승찬 대사의 이야기를 해보자.

감지승찬(鑑智僧璨510一606) 대사는 중국 선종불교의 제3대 조사이다. 제2조 혜가대사의 문하에서 수년간 불학을 연마하고 심인(心印)을 받아서, 3조가 되었고, 원적하기 전에 제자 도신에게 의발(衣鉢)과 법을 전했다. 승찬 대사는 《신심명信心铭》을 저술, 후세에 전하고 있는데,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는 승찬 대사의 《신심명》과 내용이 근사한 우두법융(牛頭法融 594-657)》의 《심명心銘》이 있는데, 일부에서는 내용이 비슷해서 우두종의 초조 법융의 동일 저서란 설도 대두되고 있다. 아무튼 누구의 저서이든 간에 지금까지는 《신심명》하면 3조 승찬 대사의 운문체 게송 형식으로서 매우 수준 높은 깨달음의 내용을 압축해 놓은 선서로 전해오고 있다.

사진2:제4조 도신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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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4조 도신(道信580-651)대사는 3조 승찬 대사 문하로 11세에 들어가서 사미 때부터 10년간 불법공부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도신 대사의 성은 사마(司馬)씨로 알려져 있는데, 제자 홍인대사와 함께 이른바 동산법문이란 대 세력을 형성한 선종사의 중요한 초석을 놓으신 분으로 알려져 있다. 동산법문은 도신이 제자 홍인과 당나라 초기 황매현을 중심으로 종풍을 널리 선양한 것을 말한다. 선종사에서는 이 동산법문을 분수령으로 선종이 중국 땅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차회에서 오조 홍인대사를 소개할 때 상세히 다뤄보기로 하자. 필자는 몇 년 전에 중국 황매현의 4조가와 5조사를 직접 가본 바, 선풍이 지금도 진작되고 있었고, 현재 중국선종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을 봤다. 중국 남방불교를 탐방하면서 4조사 5조사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6조 혜능을 다루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4조와 5조를 다뤄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 선종의 맥을 3조사, 4조사, 5조사와 6조의 남화선사에서 이어가고 있었으며, 이 사찰들을 중심으로 중국 현대 선종의 법맥이 전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는데, 근대에는 전부가 허운 대사로 부터의 뿌리였다. 허운 대사는 120세까지 tf면서 중국 근현대 중국 선종의 큰 나무와 같은 분이다. 그 분의 가지와 그늘이 중국 현대 선종의 데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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