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남불교탐방-⓺ / 달마대사의 전법수제자, 혜가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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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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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영남불교탐방-⓺ / 달마대사의 전법수제자, 혜가대사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12:55 pm

달마대사의 전법수제자, 혜가대사

사진1: 소림사 가람구조 평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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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가 동아시아 불교에 끼친 전설은 지대하고도 신령스러운 면이 없지 않다. 남인도의 한 비구삼장이 중국으로 건너와서 이렇게 후대에 영향력을 행사할 줄은 달마대사 자신도 몰랐을 것 같다. 소림사는 북위 시대(495년)에 처음 건립되었기에, 소림사는 달마대사가 오기 전에 이미 존재했고, 달마대사는 광동성에 발을 디딘 이후, 양조(梁朝)의 남경을 경유하여 이곳 소림사에 이르게 되었다. 달마대사의 성격으로 봐서 그는 낙양이나 서안에도 가보고 싶었겠지만, 일단 소림사에서 석장을 놓고 주석하게 되었다. 물론 달마대사는 말년에 낙양 서안을 거쳐서 하서회랑을 통과하여 타림분지의 오아시스 나라들을 둘러보고 파미르(총령) 고원을 넘어서 인도로 갔다는 전설은 어쩌면 맞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회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남인도 출신의 달마대사가 중국에서 처음부터 명성을 얻는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중국불교계는 서역 출신들이 한전(漢傳) 역경불교(譯經佛敎)를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달마대사가 내건 기치는 인도의 선정(禪定) 불교였다. 사실, 선정불교는 불교의 본질이다. 아마도 당시 중국에서는 한전 역경에 의한 교학불교(敎學佛敎)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음은 불문가지의 일이다. 달마대사의 눈에 비친 중국불교의 모습은 뭔가 불완전해 보일 수가 있었고, 인도의 원형불교와도 다소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지 않나 추정된다. 다시 소림사로 돌아가서 담론을 전개해본다면, 소림사는 북위 시대 인도에서 온 상좌부 비구 붓다바드라(Buddhabhadra 跋陀)에 의해서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소림사가 속한 등봉시의 옛 기록에 의하면 붓다바드라는 서역 여러 나라를 주유하고 운강 석굴 등을 거쳐서 464년에 낙양에 와서 주로 《십지경론 十地經論》을 강설했고, 효문제는 법문을 듣고 매우 존경했다고 한다.
그는 상좌부 불교를 전파한지 30여년이 지나서야, 숭산 소실산에 와서 머물렀고, 북위 효문제(孝文帝467-499)의 명령으로 495년 소림사를 건립했다고 한다. 붓다바드라가 인도에서 왔다고는 하지만, 중앙아시아의 그레코불교(그리스인) 출신일수도 있음을 배제할 수 없다. 붓다바드라 자신도 무술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당시로서는 승려들이 어느 정도 무술에 조예가 있을 수밖에 없었는데, 서역에서 중국에 이르는 길은 도둑과 강도 등이 수시로 출몰해서 행인들을 괴롭히는 것은 다반사였기에 호신용으로 무술을 익혔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 하나 당시는 전쟁이 자주 있었던 시기이므로, 그가 젊었을 때 군병이었을 수도 있는데, 지금의 관점으로 당시의 비구(빅슈=승려)들을 봐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의 조선시대를 상상해 보자. 사명대사는 문무를 겸전한 승려였다.

우리는 소림사가 선종의 조정(祖庭)이란 면만 부각하여 기억하려고 하지만, 사실, 소림사의 초기에는 붓다바드라의 중국인 제자 혜광이 인도 세친보살의 《십지경론十地经论》을 역경하고, 《사분율四分律》에 의한 사분율종을 형성했다. 이런 사정으로 미루어 보면, 소림사는 처음부터 대승불교나 선종사찰이 된 것이 아니고, 소승 상좌부에서 출발했음이 확실해 보인다. 이후, 북위 효명제(527) 효창3년에 석가모니불로부터 28대인 보리달마가 소림사에 당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소림사는 붓다바드라가 창건하여 달마대사에 이르러서 신도가 모여들고, 승려가 많아지면서 가람 또한 점차 늘려 나간 것이다. 혜가(慧可487-593) 대사가 보리달마로부터 불조의 혜명을 전수받아서 소림사는 차츰차츰 선종의 조정으로 변모해 갔고, 이후 북주 무제의 멸불(滅佛)을 만나 훼손되었다가 다시 복원되기도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지금도 소림사에 가보면 중국 조동종 소속 사찰로 되어 있는데, 중국에서의 조동종은 선종 5가7종 가운데 하나이다.

사진2: 중국선종 제2대조사 혜가, 북송 때, 석각(石恪)이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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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가(487-593)대사는 승가(僧可)라고도 불렀는데, 속명은 희광(姬光)이었다. 호를 신광(神光), 호뇌인(虎牢人)이라고 했고, 선종 제 2조사로서, 당 덕종은 대홍선사(大弘禪師)라 시호를 내렸고, 정종보각대사(正宗普覺大師)와 더불어서 대조선사(大祖禪師)란 시호가 있고, 탑명은 대화지탑(大和之塔)이라고 했다. 혜가대사는 유학과 불법에 정통한 학자로 알려져 있다. 처음엔 30세 때, 낙양 용문향산(龍門香山)의 보정선사에게 출가하였고, 40세에 숭산 소림사 달마 문하에서 6년간 수행하여 달마의 심법(心法)을 얻어서 법을 계승하게 되었다. 달마대사의 제자는 수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제자가운데서 담림(曇林)과 혜가는 우의가 돈독했고, 담림은 도적을 만나서 팔을 하나 잃었는데, 혜가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이에 담림을 팔이 하나 없는 무비림(無臂林)이라고도 칭했는데, 혜가단비구법(慧可斷臂求法)의 고사(故事)는 와전된 전설로 일려진 바, 담림은 주로 역장(譯場)을 담임하여 경교(經敎)에 밝았고, 혜가는 선관(禪觀)에 전심했지만, 이들은 결코 다르지 않았다는 기록이다. 달마대사가 원적한 후에는 담림은 안양현 등지에서 《승만경》을 강설했고, 혜가는 달마선법(達摩禪法)을 주로 전수했다. 한데 혜가가 펼치던 달마선법을 마어(魔語)라고 모함을 받고, 관부에서도 박해를 가하자, 혜가는 주춤할 수밖에 없었고, 574년 북주 무제의 멸불 때에는 담림과 함께 경론을 보호하는데 힘썼고, 577년 북제가 망하자, 혜가는 산으로 은거하고, 승찬에게 이심전심의 법을 전하고 북주 선제가 불교를 회복하자 다시 수도로 돌아왔으나, 한 사찰에 고정하지 않고 여러 사찰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전법활동을 했는데, 불교가 위협을 받고 유생들의 모함과 질투를 받아서 관부에서 하옥한 593년에 원적에 들고 말았다.

사진3:라오스 비구들이 탁발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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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가대사는 《능가경楞伽經》을 문하에 강설했지만, 경의 장절주소(章節註疏)의 문자에 집착하지 않는 현리(玄理)에 집중했고 교법(敎法)에 경을 활용했다. 달마선법의 선종을 중히 여겼고 교는 다소 아래로 본 것은 사실이었고, 특히 수행 상으로는 달마대사의 두타행(頭陀=dhūta)을 따랐다고 한다. 혜가대사는 마을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달마선법을 유전시켰으며, 당나라 초기에 이르러서 하나의 종파로 형성되기에 이르렀는바, 세상 사람들이 이를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진4: 일본에서 한 승려가 거리 탁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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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혜가대사의 생애를 대강 살피면서, 알 수 있는 키워드는 달마선법, 《능가경》, 두타행 등인데, 달마선법은 인도불교의 선관(禪觀)이며, 《능가경 Laṅkāvatāra Sūtra》은 붓다가 나바나왕(羅婆那王)의 권청(勸請)에 의하여 부처님과 마하마티(대혜) 보살과의 사이에서 생긴 가르침을 설명하는 내용인데, 스리랑카 섬의 한 성(城)이 배경이 되고 있다. 《능가경》은 대승불교 중에서도 후기에 속하는 것으로서 여래장사상(如來藏思想:모든 인간은 여래와 같은 본성을 구비하고 있다는 입장)에 입각하여 그 이전의 여러 학파의 설을 풍부하게 채택하고, 이들 학설이 종교경험과 어떻게 맺어져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는 점에서 귀중한 불교 경전으로 여겨지며 특히 초기의 선종에서 중시되었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선종의 텍스트로 매우 중요시 여기는 경전이다.

두타행은 인도에서는 삼림비구의 수행생활을 말했다. 부처님 십대제자 가운데서 마하가섭을 두타제일이라고 칭했는데, 이것은 비구가 도회지의 사원이나 마을 보다는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는 삼림의 암자에서 조용히 은거 수행하면서 삼의일발로 탁발하는 비구의 생활에서 일컬어진 용어인데, 선승에게는 매우 어울리는 수행방법이다. 그런데 중국에는 이 의미가 잘못 전달되어서 행각걸식(行腳乞食)의 출가인(出家人)의 뜻으로 와전되어 머리를 기르고 수행하는 행각승을 칭하기도 했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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