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남불교탐방-④ / 달마대사의 중국행

BUTTON_POST_REPLY
lomerica
전체글COLON 425
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중국영남불교탐방-④ / 달마대사의 중국행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12:48 pm

달마대사의 중국행

사진1: 동남아시아 도서(島嶼)지도, 왼편 서북쪽에서 남동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는 섬이 팔렘방이 있는 수마트라이다.
4youngnam01.jpg

달마대사는 중국선종불교의 초조이다. 달마대사의 인도 이름은 보디 다르마인데, 법명이다. 여기선 편리하게 달마대사로 부르자. 달마대사는 남인도에서 배를 타고 동남아시아로 향했는데, 첫 기항지는 인도네시아의 팔렘방이었다. 팔렘방은 인도와 동남아시아와의 해상무역로에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했다. 달마대사가 이곳에 들릴 때는 이미 불교가 이곳에 알려져 있었다. 달마대사는 팔렘방 자바 발리 말레이시아를 경유해서 중국에 닿기 전에는 마지막으로는 남월(베트남)을 들려서 광동성으로 갔다. 이 때 남월은 광동성에 속해 있었다. 달마대사는 상좌부 불교에도 정통했지만, 중국이 이미 서역을 통해서 대승불교를 수용했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다. 달마대사가 대승불교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던 것은 당연하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닿기 전에 달마대사는 이미 인도에 대승불교가 확산되고 있어서 이에 대한 지식도 상당했음은 당연지사다. 말레이시아의 전설에 따르면, 달마대사는 대승불교이론과 무술을 중국에 가져왔다고 하는데, 동남아시아에서 유행하는 시랏이라는 권법을 전해줬다고 한다.

사진2:한 베트남의 무술인이 인도네시아의 전통 칼인 골록과 함께 묘기를 보여주고 있다.
4youngnam02.jpg

시랏 권법은 남양방신술(南洋防身術)이라고 하는데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보르네오, 싱가포르, 태국과 필리핀 등지에서 유행했고, 지금도 무술권법맥(武術拳法脈)이 이어지고 있다. 아무튼 달마대사는 광동성에 도착하자, 양무제와의 문답이 이루어졌고, 서로 계합하지 못한 관계로 달마대사는 소림굴로 가서 면벽(面壁) 9년간 참선만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어느 날 제자 혜가를 만나서 심인(心印)을 그에게 전해주고 육로로 파미르 고원을 넘어서 인도로 귀환했다는 스토리이다. 달마대사 이야기를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중국 남방지역의 영남불교를 논하면서 달마대사를 빼놓고서는 이야기가 안 되기 때문이다. 달마대사가 중국 영남지역인 광동성에 처음 발을 디디기도 했지만, 그가 창종한 중국 선종불교의 맥을 계승한 돈오선의 6조 혜능대사가 바로 이 광동성 광주 지역에서 돈선(頓禪)을 펴서, 결국은 달마대사의 법맥이 이곳 광주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사진3: 해상실크로드 및 대불사 비로전 낙성식을 맞아서, ‘선수실천방법’이란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필자 보검법사(우에서 두 번째).
4youngnam03.jpg
4youngnam03.jpg (22.88 KiB) 582 번째 조회
달마대사가 광동성에서는 정착을 못하고 바로 소림굴로 가서 9년 면벽 후에 혜가에게 심인을 전해주었고, 3조 4조를 거치면서 5조 홍인의 동산법문(東山法門)의 법맥을 이은 6조가 결국은 광주지역인 보림사에서 법석을 펴서 오늘날 중국 선종불교를 확산시켰다. 그동안 중국불교가 다소 침체한 듯 했으나, 중국불교는 이제 다시 활발하게 부흥하고 있었다. 중국불교가 나무아미타불 불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토불교가 민중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지만, 중국불교는 13종의 전통에 따라서 선불교와 교학불교와 정토염불과 진언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선불교도 5가7종의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달마대사가 주석했던 소림사, 이조사(二祖寺) 삼조사(三祖寺) 사조사(四祖寺) 오조사(五祖寺)등이 건재하고 6조 혜능대사가 거의 평생을 주석했던 보림사가 남화선사란 이름으로 지금도 건재했다.

중국영남불교를 논하면서 이제는 6조 대사를 소개할 수밖에 없다. 중국 영남불교하면 광동성의 보림사 6조 대사를 빼놓고서는 실마리가 풀리지 않을 정도이다. 6조 대사는 홍인문하 동산법맥을 계승해서 심인을 받아서 야반에 남쪽으로 향하다가 결국에는 광주시에까지 이르게 되고 광주시 광효사란 곳에 이르러서는 깃발논쟁이란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깃발이 흔들리는 것이 마음이냐 바람이냐는 논쟁에서 혜능은 마음이 움직이면 깃발이 흔들리고 마음이 흔들리지 않으면 깃발도 흔들리지 않는다는 유심주의(唯心主義)를 내세웠다. 일체(一切)가 유심조(唯心造)란 심학을 내세운 것이다.

사진4: 6조 혜능대사가 깃발이 흔들리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마음이 흔들려서 깃발이 흔들린다는 일체유심조를 내세웠던 광주시 광효사에서 필자.
4youngnam04.jpg

혜능대사의 일화가 유명한 광효사에는 달마대사가 오기 전에도 이미 남인도와 실론에서 삼장법사와 비구들이 와서 머물렀던 곳이다. 남인도에서 지약삼장이란 큰 스님이 이곳에 와서 한동안 주석했고, 산스크리트와 빨리어를 강습시켰다고 한다. 해상실크로드를 타고 인도로 구법여행을 갔던 중국의 스님들은 인도로 떠나기 전에 이곳 광효사에서 1년 정도 어학을 먼저 배운 다음에 인도네시아의 팔렘방으로 가서 2-3년간 예비과정을 마친 다음 인도로 들어갔다고 한다. 신라의 혜초 스님도 인도구법여행을 가기 전 이곳 광효사에 머물렀음은 당연하다. 우리는 인도구법을 갔던 스님들이 아무 준비도 없이 간 것 같지만, 이렇게 어학을 어느 정도 연마한 다음에 인도행을 한 것을 보면 옛날이지만 상당히 현명한 준비과정이라고 할 것이다. 이것은 의정법사가 대표적이다.

의정(義淨, 635-713)은 중국 당대의 학승으로 37세 때 광주를 떠나 수마트라 팔렘방등을 거쳐 인도에 도달하여 범어와 성론(聲論)을 배웠다. 694년 귀국하여 남해제국과 인도에 체재하여 얻은 견문을 살려 불교의 상황, 승니(僧尼)의 생활, 일반 풍토생활 등을 상세히 기록하였는데, 그 책들이《남해기귀내법전(南海寄歸內法傳)》과《대당서역구법고승전(大唐西域求法高僧傳)》이다. 이 책은 당시의 인도 및 동남아시아 등지의 사정이 상세하여 문화교류사상 귀중한 자료이다.

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BUTTON_POST_REPLY

다시 돌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