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남불교탐방-③ / 달마대사 고향, 인도 칸치푸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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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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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중국영남불교탐방-③ / 달마대사 고향, 인도 칸치푸람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12:44 pm

달마대사 고향, 인도 칸치푸람

나는 그동안 중국에 여러 차례 다니고 이곳저곳 사찰도 제법 방문해봤지만, 이번 광동성 지역과 광주시 방문에서 인도(실론)불교의 중국전파인 해상실크로드 불교에 대해서 여러모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게다가 약 2개월간 남인도를 중심으로 여행을 끝내고 광동성 방문을 하게 되어서 더욱더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인도여행에서 타밀나두의 칸치푸람을 직접 방문, 달마대사에 대한 기록이나 행적을 추적했기에 감회가 새로웠다. 달마대사의 고향으로 알려진 칸치푸람은 타밀나두 주도(州都)의 첸나이에서 3시간 정도 가는 거리였다. 지금은 힌두교 일색이었고, 불교의 흔적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힌두교의 성지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성지로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사진1: 타밀나두 칸치푸람에 있는 에캄바레스와라르 힌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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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살펴보면 이곳 칸치푸람은 팔라와 왕조(Pallava dynasty 3세기-9세기)의 수도였다. 팔라와 왕조는 한동안 남인도의 강대한 왕조였고,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동남아시아에 지대한 정치 문화 종교적 영향을 미친 남인도 왕조였다. 팔라와 왕조는 힌두교와 불교를 동시에 숭배했던 왕조였고, 나중에는 힌두교에 비중을 더 둔 것으로 보고 있다. 팔라와 왕조가 건국되기 전에는 불교가 힌두교 보다 더 왕성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칸치푸람은 기원후 1세기에서 5세기까지가 불교의 전성기로서 인도불교 역사상 위대한 고승들이 배출된 곳이기도 하다.

아리야데바(आर्यदेव Āryadeva:170-270 제바(提婆), 디그나가(दिग्नाग Dignaga:480-540 陳那), 붓다고사(Buddhaghosa: 5세기 경 覚音)와 다르마팔라(Dhammapala, 護法)등 고승이 이곳 칸치푸람에서 배출되었다. 그렇지만, 중국의 선불교와 관련해서 볼 때, 가장 유명한 고승은 단연 보디 다르마(Bodhidharma 覺法 5-6세기)이다. 달마대사는 팔라와 왕조의 한 왕의 셋째 왕자로 알려져 있는데,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팔라왕조는 불교와 힌두교를 동시에 숭상했고, 동남아시아에 불교를 전파했다. 달마대사가 중국에 온 것만은 분명하며, 고승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달마대사와 함께 들어 온 것이 소림쿵후(少林功夫)이다.

사진2: 남인도 팔라와 왕조(6-9세기) 영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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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치푸람의 불교는 상좌부가 주류 불교였고, 실론과의 관계는 밀접했다고 한다. 칸치푸람의 상좌부 불교는 동남아시아에 전파되었는데, 특히 버마와 태국의 몬족에게 전해졌다. 지금의 버마나 태국 불교 이전에 몬족들에게 상좌부 불교를 전했다. 몬족은 미얀마의 민족으로 대부분 몬 주, 바고 구, 이라와디 삼각주와 타이-미얀마 경계를 따라서 살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초기부터 거주하던 민족의 하나인 몬족은 미얀마와 타이에 상좌부 불교를 전파하였다. 몬 문화는 버마 문화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동부의 몬족은 일찍이 오래전에 시암(태국)사회에 흡수되었고 서부의 미얀마의 몬족은 마찬가지로 동화의 압력에 직면해 있다고 보는데,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며. 미얀마에서 몬족은 몬어와 문화 자치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몬족 사용자는 현재 100만 명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사진3:버마 남부 태국 국경 근처에 살고 있는 몬족의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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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족은 기원전 1500년경에 동남아시아에 도달했다고 여겨지는데, 현재의 동남아시아의 소수민족으로서는 최초라 생각되고 있다. 기원전 300년쯤에 수완나품 왕국을 건국했고, 기원전 200년쯤에는 아소카 왕이 보낸 불교 전도자에 의해 상좌부 불교를 받아드렸다고 한다. 그러나 몬족은 그 이전부터 해로에 의한 불교와의 접촉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몬족은 그 후에도 1000년경까지 동남아시아에서 번영했고, 몬 문자 등을 개발해 선주(先住)의 문명 민족으로서 동남아시아에 군림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너무나 초라한 소수 민족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몬어는 이른바 몬 크메르어파에 속하고 데바나가리(인도) 문자계의 몬 문자라고 하는 독자적인 문자를 가지고 있다. 몬 문자는 크메르 문자와 함께 말레이 반도나 도서부를 제외한 동남아시아의 문자의 형성에 큰 역할을 하였고, 버마 문자, 란나(태국 북부) 문자 등의 바탕이 되었다고 한다. 다시 칸치푸람으로 돌아가 보자. 이처럼 칸치푸람은 불교의 센터 역할을 했던 것만은 분명하고, 이런 불교적 배경에서 보디 다르마는 중국에 불교를 전파했다고 보여 진다.

이미 이때는 중국 남인도와 실론 간에 무역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우리는 중국 동진의 법현 법사가 인도구법을 마치고 실론까지 가서 범본 율장(화지부)을 구해서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중국으로 귀환한 것을 기억한다. 중구 광동성 지역에 가면 비단 보디 다르마 선종 초조(初祖)만이 아닌 남인도와 실론에서 많은 삼장비구들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전에 이미 불교가 이 지역에 전해진 것으로 중국 불교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광주시의 광효사(光孝寺)는 범어학(산스크리트어)을 익히는 어학원이 있었다고 한다. 대개 해로로 인도에 가는 인도 구법승들은 이곳 광주주시 광효사나 나부산에서 산스크리트어를 1년 정도 익히고 인도네시아의 팔렘방에 가서 2년 내지 3년 정도 어학과 인도철학의 기초 중급 과정을 마스터하고 인도의 날란다사원대학에서 심화과정을 이수했다고 한다. 달마대사가 이곳 광주에 발을 디딘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아마도 추측건대 달마대사는 경율론(經律論) 삼장에 능통한 고승이었지만, 그는 정학(定學=명상)에 더 관심을 가졌던 분이라고 추측해 본다.

보디 다르마가 중국에 온 연대가 확실하지 않아서 정확한 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5세기에서 6세기 사이로 본다면 중국에는 전송((前宋)이라고 알려진 유송(刘宋朝;The Liu Song dynasty420-479CE)이 있었고, 다음은 남북조 시대 양조(梁朝 Liang dynasty 502-587)가 있었다.

사진4: 전송인 유송(420-479)의 지도(회색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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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남북조 시대의 양조(502-5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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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무제의 치세는 48년이란 긴 기간이었고, 그동안 내정을 정비하여 구품관인법을 개선했고 불교를 장려하여 국내를 안정시켰으며 문화를 번영시켰다. 대외관계도 비교적 평온하여 약 50년간 태평성대를 유지하여 남조 최전성기를 보냈다. 또한 무제의 맏아들인 소명태자가 편찬한《문선》은 후세에까지 전해지는 훌륭한 문헌이다. 무제의 50년에 걸친 치세 후반에는 불교에 너무 심취하여 스스로 동태사(同太寺)에 여러 번 투신이라는 것을 행해서, 신하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무제를 되찾아 왔기에 국고가 크게 궁핍해질 정도로 불교를 후원한 왕이었다고 한다.

보디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온 고승이었기에 양 무제는 당연히 만났을 것이고, 자신의 단순한 불교후원을 자랑한 나머지 달마대사의 진정한 법문을 일아 듣는 데는 한계가 있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처럼 남쪽에는 유송과 양나라가 있었다면 북쪽에는 북위(北魏,386-534)가 있었다. 북위는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에 선비족 탁발부에 의해 화북에 건국되어 남북조 시대까지 이어진 왕조이다. 국호가 위(魏)였기 때문에 전국 시대 위나라와 삼국 시대 조조의 위나라와 구별하기 위해 북위라고 불리고 있다. 또는 후위(後魏), 탁발씨(拓跋氏)가 지배했다고 하여 탁발위(拓跋魏), 원씨(元氏)가 지배했다고 하여 원위(元魏)라고도 한다.

사진6: 중국 남북조 시대의 지도. 파란색이 북위(386-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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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는 439년경 북부 중국을 통일하고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정책을 폈다. 특히 한나라에 이어서 불교를 중국에 착근(着根)시키는데 확고한 정책을 폈다. 중국불교는 북쪽에서는 서역의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왔고, 남쪽은 해상실크로드를 통해서 중국에 전파되었는데, 남북에 들어 온 불교의 양상이 조금 달랐다고 본다. 북쪽에는 한나라 이후 중앙아시아와 북부 인도에서 교학불교가 중국에 전해졌다. 이에 반해서 남쪽은 남인도와 실론 불교가 전해졌는데, 기본적으로 부파불교인 상좌부가 주로 전해졌고, 나중에는 대승불교도 전해졌지만, 적어도 달마대사가 올 무렵에는 남인도 상좌부가 주류를 이뤘다고 본다.

사진7: 달마대사의 고향 인도 타밀나두의 한 힌두사원에 모인 힌두 승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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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남인도는 힌두교가 주류 종교이다. 첸나이를 비롯해서 칸치푸람은 힌두교 승려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서 힌두 승려들의 옷은 불교의 비구들의 가사와 비슷했다. 익서은 아마도 불교에서 힌두교로 대체대면서 불교 비구승가의 영향을 많아 받았다는 증거가 아닐까 하고 필자는 상상만을 하면서 달마대사의 고향 칸치푸람을 뒤로 할 수밖에 없었다. 종교사회란 냉정하기가 그지없음을 인식했다. 아무리 전성기를 누린 종교도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고 다른 종교로 대체될 수 있다는 진리를 생각하면서, 우리 한국불교의 상황을 생각하니 아찔했다.

해동 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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