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남불교탐방-① / 해상실크로드불교의 관문 광주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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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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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중국영남불교탐방-① / 해상실크로드불교의 관문 광주불교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12:27 pm

해상실크로드불교의 관문 광주불교

사진1: 중국의 지도, 해상실크로드의 관문인 중국 광동성 광주지방은 인도불교의 전파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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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역사적으로 중국은 우리의 대국이었다. 불교적으로도 중국은 한반도 불교의 모델이었다. 불교는 중국에서 한반도로 전파되었다. 고구려 백제 불교가 중국 전진과 동진에서 전해졌는데, 인도불교가 중국불교로 변형된 불교를 받아 들였다. 우리에게 뭔가 혼돈을 주는 불교가 중국불교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인도의 원형불교와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인도의 원형 불교를 직접 접한 것은 20세기에 와서라고 생각한다. 현재 한국불교의 모습을 보노라면, 중국 불교, 그것도 중국 선종불교의 복사판 같은 한국불교이다. 중국불교는 서역에서 전해졌다.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한지 5백년 가량 지나서 전해졌는데, 이른바 서역이라고 알려진 중앙아시아 지역의 빅슈들에게 의해서 실크로드를 타고 들어 온 것이다. 후한시대이다. 물론 전한 시기나 진나라 때도 불교란 종교를 전연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인도(身毒)의 종교인 불교의 존재와 금인(金人=부처님)에 대해서 어렴풋한 지식을 가졌지만, 불교가 실제로 중국에 들어온 것은 후한 명제 때이다. 주로 파르티아(이란) 빅슈들에 의해서 불교경전이 한역(漢譯) 되었고, 나중에는 지금의 신강지역인 쿠처의 쿠마라지바 같은 인도 카슈미르에서 공부한 삼장 법사들이 번역에 동참했고, 나중에는 인도본토에서 점점 삼장(三藏) 법사들이 서안(장안)과 낙양 같은 도시에 진입함으로써 한역에 의한 한전불교(漢傳佛敎)가 형성된 것이다. 파르티아인 안식국(이란) 출신인 안세고 등의 ‘안(安)’씨 성을 가진 빅슈들이 한역을 주도했고, 북위시대에는 쿠마라지바 등 카슈미르에서 공부한 쿠처 출신과 인도 본토에서 대승 삼장들이 와서 번역을 한 것이다. 이상은 주로 북방 루트를 통해서였지만, 이른바 해상 실크 로드라고 하는 남부 루트를 타고 중국에 전법이 이뤄지게 된다. 대표적인 분이 보디 달마 대사이다. 비단 달마대사만이 아닌 다수의 인도나 실론 비구들이 해상을 통해서 중국에 왔고, 동진의 법현법사는 육로로 인도에 갔다가 해로로 중국에 귀환했고, 당나라 의정법사는 해로로 갔다가 해로로 귀환했으며, 신라의 혜초법사는 해로로 갔다가 육로로 중국에 돌아 왔다.

이번에 필자는 중국 광동성 성도 광주시 소재 대불사(大佛寺)의 초청으로 광동성 주도 광주시와 육조대사가 주석했던 보림사인 남화선사(南華禪寺)를 다녀왔다. 대불사는 달마대사가 처음 중국에 왔을 때, 머물렀던 사원이다. 이번 대불사에서 주관한 ‘연주일로(蓮洲一路)’란 모토와 ‘해상사주지로기영남문화절(海上絲綢之路 曁 嶺南文化節’이란 주제로 대불사 비로전 낙성법회와 포럼(세미나)을 개최했다. 대불사는 광주 지역의 최초의 사찰로서 해상 실크로드 불교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 사찰이다. 인도에서 보디 달마대사도 중국에 처음 왔을 때, 이 사찰에서 머물렀고, 의정법사나 혜초법사도 인도구법(印度求法)을 갈 때, 이 사찰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사진2: 소개 책자: 연개일로(蓮開一路, 연꽃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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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프로그램 책자: 연개일로(蓮開一路, 연꽃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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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광주 방문에서 보고 느낀 광동성 불교는 매우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광주시는 중국 남부 광동성 성도이자, 화남 전체의 행정중심지이다. 부성급시로서 성(省)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있는 큰 도시이다. 인구 1천1백만으로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서 중국의 제3의 대도시이다.

광동성은 고대에는 백월(百越)의 땅이었다. 진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하고 현재의 광저우에 남해군 번우현을 설치한 것이 시초가 된다. 진 제국의 붕괴 후, 한족 관료 조타(趙佗)가 남월국(南越国)을 세워 독립하였으나 전한의 무제에게 멸망했다고 한다. 한대에는 교주(交州)에 속하여 3국 중 오가 광주를 교주에서 나누어 통치하였다. 고대로부터 중국 남해무역의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는데, 당대에는 다수의 이슬람교도와 유대인이 거래를 위하여 들어 왔다고 하며, 오대십국시대에 광주는 남한(南漢)왕국의 수도가 된다. 해금정책을 취한 명대에도 광저우는 남해제국의 조공선 입항지가 되었고, 청대에는 광주만을 대외 개방하여 구미제국과 광동무역을 했다. 1841년 아편전쟁 때는 잠깐 영국군이 점령했고 1911년에는 쑨원이 광저우봉기를 일으켜 신해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하며, 위안스카이가 죽은 뒤 쑨원은 1921년 위에시 우산 남쪽 기슭에서 중화민국 대통령이 되어 광저우를 중화민국의 임시수도로 정했다고 한다. 1924년에는 군벌할거의 중국을 통일하기 위하여 국공합작을 행하여 황푸군관학교를 세워서 장제스가 교장이 되었고, 저우언라이가 정치부주임을 맡았다고 한다. 이때에 마오쩌둥도 농민운동강습회를 광저우에서 열었다고 하며, 1925년 쑨원이 죽은 뒤 장제스의 국민당은 공산당과 갈라졌고 1927년 공산당은 광주코뮨을 세웠으나 곧바로 국민당군의 침공을 받았다. 장제스는 1928년에 수도를 난징으로 옮겼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세워진 뒤에도 홍콩에 가까운 광저우는 중국의 대외무역항 역할을 하며 해마다 봄, 가을에는 광저우교역회(Canton Fair)를 열었다. 1979년 덩샤오핑이 대외경제개방정책을 취하자 선전, 주하이 등의 경제특구를 두게 된 광저우는 경제적으로 빠르게 발전하였다. 그러나 다수의 인구가 농촌에서 몰려들어 사회문제도 심각 하다는 지적이다. 이상이 광주의 간략한 역사인데,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 해상실크로드 불교의 관문이며, 중국 선종불교 남종선(南宗禪)의 출발지라고도 할 수 있다. 이번 광주 방문에서 주목한 것은 보디 달마대사와 육조 혜능대사였다.

사진4: 광동성과 광주시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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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5: 광주시의 관광 명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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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차례에 걸쳐서 시리즈로 이런 테마와 관련해서 탐방 기사를 작성하고자 한다. 사실, 중국불교에서도 광주 지역의 선종불교는 한국불교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는 관점에서 탐방, 소개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계속)

사진6: 대불사에서 개최된 세미나 필자(우측에서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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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선림원= 지도법사 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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