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영남불교탐방-11 / 선종5가 법맥이은 허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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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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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중국영남불교탐방-11 / 선종5가 법맥이은 허운대사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2-04, (토) 1:15 pm

선종5가 법맥이은 허운대사

사진1: 중국선종 5가 법맥을 이은 허운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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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근대불교의 큰 별인 석허운(释虚云 1840-1959) 대선사는 속성이 소(蕭)씨로, 복건성에서 출생했다. 허운 대사는 중국 선종 5가의 법맥을 다 잇고 있는 근대 최고 선승으로서 큰 족적을 남긴 분이다. 조동종 제47대, 임제종 제43대, 운문종 제12대, 법안종 제8대와 위앙종 제8대의 전법심인을 계승한 고승이다. 중국선종 불교에서 이처럼 5가의 법맥을 한 몸으로 잇고 있는 선사는 없다고 보는데, 허운 대사의 일생의 족적을 보면 정말 그렇겠구나 하는 믿음을 갖게 된다.

사진2: 허운 대사의 일대기인 ‘허운 노화상의 족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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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중국영남불교를 탐방하기 전, 37년 전에 영국 유학시절 이미 영어판으로 된 허운 대사의 바이오그래피를 감명 깊게 읽은 적이 있었고, 너무 감동한 나머지 언젠가는 이 분에 대해서 보다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는 다짐을 한 바 있었다. 1970년대 까지도 한국에서는 허운 대사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고, 오직 당송 시대의 선사들만이 한국불교계에서 논의되던 시절, 영국에서 이런 정보를 갖게 된 것이다. 비단 허운 대사만이 아니었지만, 영어로 불교학 인도학 동양학에 눈을 뜬 것이다. 지금도 구미에서 연구해 놓은 불교학 연구는 우리가 모방하고 어떤 기준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근래에 중국에서의 불교학 연구 또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보며, 특히 중국불교에 대한 연구는 새로운 추진력을 얻어서 일취월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더욱이 허운 대사는 중국선종의 조정이라고 할 수 있는 보림사(현 남화선사)에서 오랫동안 주석했으며, 사리탑이 이 남화선사에 세워져 있다. 나는 직접 남화선사를 방문해서 참배한 바 있는데, 감회가 새로웠다. 근대 동아시아에서 허운 화상처럼 중국선종의 5가의 종풍을 이어받아서 하나의 허운 가풍으로 집약시켜서 중국선풍을 다시 부흥시켰다는 점이 너무나 뛰어나다고 하겠다.

허운 화상의 출생에 대해서는 양설이 있는데, 1840년생이냐 1846년생이냐 인데, 대체로 1840년생으로 통일된 것 같다. 허운 화상은 출가 이전인 17세 때, 전(田)씨와 담(谭)씨 성을 가진 여성과 결혼도 하였다고 한다. 1886년인 26세시에 복주 고산 용천사(福州鼓山涌泉寺)로 출가한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허운 화상은 120세를 살았으니 거의 100년을 승려로 수행생활을 한 셈이다. 여기서 중국선종 5가의 법맥을 이은 사정을 하나하나 일일이 열거할 수는 없지만, 출가이후 각 종파의 법맥을 이은 정안종사(正眼宗師)를 참배하여, 수법제자(受法弟子)가 된 것이다.

사진3: 6조 혜능대사와 허운 노화상이 주석했던 남화선사(보림사)에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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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운 화상은 출가 납자가 되어, 중국 전 지역을 거의 돌다시피 하면서 순례했다. 불교의 유명한 명찰과 4대 명산성지를 순례참배하면서 기도했다고 한다. 중국불교의 성지인 오대산은 삼보일배로 참배했고, 오대산에서는 지극정성으로 기도한 나머지 문수보살을 친견했다고 한다. 허운 화상은 보타산도 순례했으며, 티베트에도 들어가서 불적지를 돌아다녔고, 다닌 도중에 험한 곳에서는 죽을 뻔도 했다고 한다. 허운 화상은 사천성에서 티베트 인도에 이르렀는데, 운남성 쿤밍 다리 등지와 귀주성 등 강남.북을 망라해서 수행 편력했다고 한다. 19세기 중국불교의 이름난 고승은 물론 숨어 있는 도인들을 전부 만나고 또한 법맥을 계승한 것으로 전해진다. 허운 화상의 전기를 읽어보면 수십 년을 수행과 기도로써 일관한 것을 알 수 있다.

1911년에는 상해불교협회와 남경대동불교회의 대치를 조정하였고, 남경에서는 손중산을 만나서 불교진흥책을 건의하였으며, 북경에서는 원세개를 만났고, 중국 전역의 불교모임을 통합하여 중화불교 총회를 개최했다고 한다. 1920년에는 쿤밍의 서산화정사를 중흥한 것을 비롯해서 복건성 용천사, 광동성 곡강 남화사(보림사), 소주 운문사 등의 주지를 역임하면서 사찰을 중건했다고 한다. 1913년엔 중국 티베트 불교의 융합을 위해서 노력했다고 하며 티베트에 들어가서 제13세 법왕을 직접 만나서 회담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49년에는 북경에서 불교협회 창립의 준비위원회 결성에 노력하였고, 스리랑카에서 증정한 불사리와 패엽경을 받았으며, 1951년에는 묵언을 하면서 《능엄경현요楞严经玄要》、《뻐화경약소法华经略疏》、《유교경주석遗教经注释》、《원각경현의圆觉经玄义》、《심경해心经解》 등을 저작, 편찬했으며, 이를 훼손한 세력에 대항해서 싸웠고, 26명의 승려를 구금한데 대해서 국무원 총리 주은래에게 통지하여 이들을 석방하도록 주선했다고 한다. 1952년에는 중국불교협회를 결성, 수석 발기인이 되었으며, 1953년에는 달라이 라마, 판첸라마 내몽골의 함보라마 등과 함께 명예회장으로 취임했고, 강서 영수현 운거산 진여선사에서 제자들과 신도들을 거느리고 수행에 몰두했다.

사진4: 중국선종사애 한 획을 그은 6조 혜능대사가 주석했던 보림사(보림도량 현판). 현재는 남화선사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6조 혜능이 이곳에서 동산법문을 펼쳐서 선종의 조정으로 초석을 다졌고, 근대에는 허운 대사가 주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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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120세 시에, 운거산에서 원적에 들었으며, 1982년 미국에서 허운 화상에 대한 영문판 서적이 발간됐고, 《허운화상사적虚云和尚事迹》、《허운화상연보虚云和尚年谱》、《허운화상화법집虚云和尚画法集》등과 허운 화상 사리가 남화선사에 보존되어 있다. 허운화상이 말년에 입적은 강서 운거산에서 했지만, 원적 후 사리는 허운 화상이 오랫동안 머물렀던 남화선사에 모셔져 있다. 원적 후에는 《허운화상법휘虚云和尚法汇》 잠학려 편집(岑学吕辑)과 《허운화상법휘속편虚云和尚法汇续编》, 정혜법사 편집(净慧法师辑), 《허운노화상적족적(虛雲和尙的足跡》 유승 저(惟升著) 등이 있다.

허운 대사에 대해서는 참고할 만한 이야기 거리가 더 많지만,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하고, 영남불교탐방 또한 일단락을 짓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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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선림원 지도법사=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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