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불교 탐방-4 몽골제국의 마지막 황제, 복드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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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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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불교 탐방-4 몽골제국의 마지막 황제, 복드 칸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24, (화) 8:03 am

사진1: 제8대 젭춘담바 쿠툭 투(Жавзандамба хутаг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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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드 칸은 달라이 라마나 판첸 라마와 같은 티베트-몽골 불교의 최고 지도자로서 서열 3위에 해당되는 신정(神政)의 지위이다. 티베트와 몽골은 역사적으로 오랜 교류사를 갖고 있다. 종교적으로 하나가된 것은 몽골제국과 원(元)제국이 패망하여, 고비사막으로 쫓기어 북원(北元)을 세운 후 부터이다. 물론 원 제국시대에도 티베트 불교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오늘날 티베트 전통에 의한 몽골 불교가 착근된 것은 북원시대부터이다. 몽골족은 한 때 유라시아 영토의 거의 대부분을 정복하여 몽골 제국을 세웠지만, 칭기즈칸의 직계의 황금가족간의 내분과 명(明)의 등장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밟는데, 14세기 원(元)제국은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였다. 몽골제국이 무너지자 몽골족들은 다시 자기들의 고대 신앙체계인 샤머니즘으로 돌아갔다. 그 후 1578년 군사지도자인 알탄 칸(Altan Khan)은 칭기즈칸의 후계를 자처하며 신 몽골제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을 갖고, 흩어진 몽골제후국들의 연합운동을 주도했다. 동시에 티베트 불교의 겔룩빠(Gelug 일명 황모파)의 수장을 초청하여 스스로 불교의 보호와 후원자인 의식을 치루고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공식화 했다. 그리고 수장에게 달라이 라마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자신은 대칸(황제)의 지위를 담보 받은 역사적 사건이 이루어진 것이다.

자, 티베트-몽골 불교의 서열 3위인 복드 칸(몽골불교최고지도자)의 탄생을 추적해보자. 제1대 복드 칸은 활불(活佛)인 젭춘담바로 추앙하는 자나바자르(Zanabazar1635–1723)이다. 자나바자르는 티베트 불교의 조낭파(Jonang school)의 대 학승이었던 타라나타(Taranatha 1575–1634)의 화신(化身)으로 여긴, 할하 몽골의 통치자였던 투친 칸 곰보도르지의 아들이다. 12세기에 티베트에서 성립한 조낭파는 유가파였는데 나중에는 티베트 불교의 다른 파들에 의해서 견제를 받은 바 있다. 제 2대 활불(젭춘담바)로서의 복드 칸은 칭기즈칸 후손에서 출현했다. 청나라 건륭황제의 1758년 칙령 발표 이후에는 티베트인 가운데서 젭춘담바의 화신(化身)이 발견되었다. 이런 역사적 맥락을 갖고 있는 복드 칸은 1911년 청조의 멸망과 몽골국의 독립과 맞물려서 제8대 복드 칸으로 불리는 젭춘담바(1869–1924)가 티베트처럼 신정(神政)의 지도자로 부각되었다.

제8대 젭춘담바는 실제는 티베트 정부 고위층 아들로 태어난 티베트출신이다. 그는 소년시기에 티베트에서 제 7대 젭춘 담바의 화신으로 발견되어, 라싸의 포탈라 궁에서 13세 달라이 라마와 판첸라마가 입회한 자리에서 제 8대 젭춘담바로서 복드 칸으로 의식을 치루고 공인되었다. 그는 1874년 우르가(Urga)라고 불렀던 외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로 옮겨와서 살게 되었다. 제8대 젭춘담바인 복드 칸은 바로 몽골의 근대역사 그 자체로서 국외자에게는 흥미진진한 소설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가본 분들은 시내 남쪽에 위치한 자이산 가는 길 옆 우측에 복드 칸의 겨울 궁(冬宮)과 사원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박물관으로 관광객들의 발길이 그치지 않는 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1911년부터 1924년까지 몽골의 왕으로 재위했던 역사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복드 칸(복드 게겐으로도 호칭)은 라마였기에 세속적 의미의 황제로서 권력을 휘두르지는 않았고, 섭정은 총리가 했다. 그가 울란바타르로 옮겨와서 복드 칸에 즉위하자 지역의 왕 족들 가운데서는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세력도 있었으나, 신정의 왕으로서 역할을 수행해 냈다. 이런 가운데 뜻하지 않게 1921년 러시아 군인 지도자인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남작(1885년-1921년)은 몽골을 침입하여 1년간 몽골을 통치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태생의 러시아 제국의 군인으로, 1921년 몽골을 정복하여 독재정치를 한 인물이다. 티베트 불교에 심취한 그는, 그러나 제멋대로 티베트 불교의 교리를 왜곡하여, 자신을 '살아있는 부처'로 여길 정도의 기행을 하고, 1년간의 몽골 통치기간 동안, 엄청난 수의 몽골인을 학살하여, 몽골의 미친 남작으로 통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몽골 역사상 유일하게 몽골을 직접 통치한 유럽계의 사람이다. 이런 상황아래서 복드 칸은 신정의 왕으로서 당분간 왕권이 중단되었다.

이런 정국의 혼미로 몽골은 혼란에 빠졌다. 이 때 담딘 수흐바타르(1893-1923) 장군이 나타나서 혁명을 일으켜 인민정부를 세우고 스스로 국방장관에 취임하고 복드 칸의 왕정을 잠정 복구 시켰다. 복드 칸은 1924년 그가 열반할 때까지 제한된 왕권을 누렸다. 하지만, 그를 구원해 준 수흐바타르도 같은 해 결핵으로 죽고 말았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 가면 시내 중앙에 수흐바타르 광장에 동상이 서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가 바로 수흐바타르 장군이다. 그는 유목민의 집안에서 태어나, 1911년, 몽골 독립 후 건군된 자치 몽골군의 소집을 받고 입대, 하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기관총소대장으로서 전공을 세웠다. 1918년 정부 인쇄소의 식자공이 되었는데, 그 동안 중국과 무능한 몽골 지배층에 대한 불만이 쌓여갔다. 러시아 혁명에 자극을 받은 그는 1920년 6월 허를러깅 처이발상 등과 몽골인민당(인민혁명당)을 결성, 독립을 위한 무장투쟁에 들어갔다. 전후 두 차례에 걸친 레닌과의 회담을 통하여, 몽골혁명의 성공과 그 후의 국가건설을 위한 전술지도를 받고, 1921년 인민의용군을 결성, 그 총사령관이 되어 적군(赤軍)과 함께 마이마친에서 군사를 일으켜, 7월 10일 니슬렐 후레(울란바타르)에 인민정부를 수립하고 스스로 국방장관이 되었다.

사진2: 우란바타르 시내에 위치한 수흐바타르 광장, 뒤에는 몽골정부 종합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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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수흐바타르 광장 건너편에는 대형 건물이 들어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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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몽골국의 마지막 칸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몽골은 러시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서 몽골혁명정부가 들어서고,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하게 되었다. 1990년 몽골이 소련의 위성 국가에서 독립할 때 까지 70여 년간,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되고, 불교를 탄압하고 몽골 고유문자를 없애고 키릴문자로 전환하는 문화말살 정책을 쓰게 된다. 90년대 초, 필자가 만난 몽골의 지식인들은 사상적으로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불교를 중흥시키는 지혜를 발휘했다. 70년의 공백이 있었지만, 불교가 워낙 뿌리가 깊게 스며있어서 곧 회복하는 찬스를 잡은 것이다.

복드 칸의 화신, 9대 젭춘담바 쿠툭 투
복드 칸의 사후, 몽골 혁명정부는 더 이상의 환생은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열반에 든 같은 해에 복드 칸(젭춘담바)이 몽골 북쪽 지역에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았고, 1925년 복드 칸이 또다시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자 1926년 11월 몽골정부 제3차 대회에서 복드 칸의 환생을 찾는 의식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결의문을 발표하고, 마지막 금지령이 1928년 몽골인민혁명당 7차 회의와 5차 인민대회에서 결정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드 칸의 환생인 한 소년이 1932년 티베트 라싸에서 발견되었다. 이 사실은 1990년 소련이 무너질 때까지 비밀에 부쳐졌다가 1990년 인도에서 제14세 달라이 라마의 공식 인정하에 제9대 젭춘담바 쿠툭 투로 즉위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1999년에는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에서 달라이 라마가 임석한 가운데 거행됐고, 그 때 필자도 참석한 바 있다.

그는 1932년 11월 티베트의 라싸의 조캉 사원 근체에서 환생했는데, 그는 생후 6개 월 후에 부모 곁을 떠나서 13세 달라이 라마의 경호원이었던 삼촌 슬하에서 보호받았다. 1933년 13세 달라이 라마가 열반에 들고, 레팅 린포체가 14세 달라이 라마의 환생이 발견되어 즉위할 때 까지 티베트를 섭정했다. 1936년 그 당시 4세였던 잠팔 남돌 쵸기 걀첸(Jampal Namdol Chökyi Gyaltsen)이란 이름을 가진 어린아이는 3단계의 시험을 거쳐 제8대 젭춘담바의 화신으로 인정되었는데, 정치적 이유로 그의 존재는 비밀에 부쳐졌다. 그는 7세 때, 티베트 겔룩빠의 3대 사원가운데 하나인 드레펑 사원에 들어가서 공부했다. 그는 일반 라마들처럼 보통 승려의 길을 걷다가 25세 때, 환속하여 결혼해서 자녀를 두기도 했는데, 1959년 달라이 라마와 함께 인도로 망명하였는데, 이유는 공산주의자들에게 선전용으로 이용되거나 희생될 것을 두려워해서였다. 인도로 망명해서는 티베트어 방송국에서 일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직업을 가졌었고, 첫 부인과 사별하고 재혼하여 자녀들을 두는 등, 세속적인 삶을 살았으며, 1984년에는 라싸를 방문하기도 했다. 1990년 달라이 라마에 의해서 마디야 프라데시 주에서, 1992년에는 다람살라에서 제9대 젭춘담바 쿠툭 투로 공인되고, 1999년 7월 관광비자로 몽골에 입국하여 간덴 사원에서 즉위식을 갖고, 계속해서 인도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2011년 11월 몽골로 와서 수장으로 즉위했으나 2012년 3월 1일 열반에 들었다. 필자도 1999년 그가 칭기즈칸 호텔에 체류했을 때 친견했으며, 2011년에는 그의 사저에서 친견한 바 있다. 당시 분위기로는 몽골불교지도자 급에서는 조용히 관망하는 입장이었고, 재가 지도자들과 일반 국민들에게는 큰 인기가 있었다.

다음은 몽골제국과 황제들의 종교관을 소개하겠다.

이치란 박사
해동경전어 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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