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불교-7 / 삼장법사와 명상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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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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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미얀마불교-7 / 삼장법사와 명상스승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29, (일) 4:38 am

삼장법사와 명상스승

영국-버마 전쟁을 치루면서 영국은 끝내 버마를 손아귀에 넣게 된다. 브리티시 버마가 시작된 것이다. 브리티시 버마는 1824년부터 1948년까지 124년간 버마를 영국의 한 주(州)로 취급하여 지배했다. 영국은 처음부터 현재 미얀마의 판도를 다 점령한 것은 아니었다. 1885년 상(上) 버마를 점령함으로써 버마는 영국에 병합되었는데, 주로 스코틀랜드 출신 사람들이 버마를 식민지화하는데 앞장섰기에 버마를 스코틀랜드 버마라고도 부른다.

사진1: 영국-버마 전쟁으로 아라칸(검은 부분)을 브리티시 버마에 합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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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버마 전쟁이 일어난 것은 브리티시 인도의 치타공과 아라칸 왕국과의 분쟁 때문이었다. 영국은 1785년 아라칸을 물리치고 브리티시 인도에 병합시켰다. 버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라칸 지역까지도 버마 영토로 편입시킨 것이다. 영국군은 1885년 만달레이에 침입하여 만달레이를 1886년 영국에 복속시켰다. 이로써 상 버마를 손에 넣었다. 영국은 하 버마도 손에 넣어 랭군을 하 버마의 수도로 정했다. 버마의 마지막 왕이었던 티보 민(Thibaw Min 1859–1916) 왕은 인도로 망명을 가야했고, 그 후로 아무도 본적이 없다고 하는데, 그는 독실한 불교도 왕이었다. 제 5차 경전결집을 후원했던 민돈 왕의 아들로서 1878년에 왕위에 올랐다가 1886년 폐위됨과 동시에 역사 무대에서 사라졌다.

사진 2: 버마의 마지막 티보 왕이 영국 관료들의 안내를 받아 인도로 망명하기 위해서 기선에 오르고 있다(18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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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버마는 영국의 식민지로서 1948년 독립할 때까지 속국이 되고 이로 말미암아 버마 독립을 위한 민족주의 운동이 싹 트고 버마는 근.현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된다. 이런 와중에도 불교는 버마의 국교나 다름없는 종교로서 자리를 지켜왔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불교승가가 그대로 보존되고 독립되자마자 1954년 8개국 상좌부 비구 2500명이 모여서 제6차 경전결집을 주도했다는 것은 불교역사상 너무나 큰 사건이다. 영국통치하에서도 상좌부 불교의 전통을 그대로 지키면서 승가가 오염이나 타락하지 않고 순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은 버마 비구들의 눈물겨운 노력과 정진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제6차 경전결집에서 빨리어 경.율.론 삼장과 주석서 등을 암송한 삼장법사 민군 사야도 우 위찌따사라위왕사와(Mingun Sayadaw U Vicittasarabivamsa 1911–1993)삼장법사 대장로(大長老)와 경율론 주석을 물은 마하시 사야도 우 소바나 Mahasi Sayadaw U Sobhana 1904–1982) 삼장법사 대장로(大長老) 대선사이다. 대선사란 칭호를 부여한 것은 그가 많은 분들에게 명상으로 큰 영향을 미쳤기에 필자가 붙이고 싶은 존칭이다.

민군 사야도 우 위찌따사라위왕사(이하 줄여서 민군 사야도)는 브리티시 버마 치하, 만달레이에서 출생, 다섯 살 때부터 마을 사원에 보내져서 사원교육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암기에 뛰어나서 13세에 율장 시험에 합격하고 다음해에는 교학시험을 통과한 다음 단계별로 높은 시험에 합격했다. 이후 만달레이 북쪽의 사가잉 관구의 민군(Mingun) 타운의 담마난다 사원(Dhammananda Monastery)에서 1993년 입적할 때까지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평생 주석했다. 그래서 그에게 민군 사야도(長老)란 칭호가 붙었다. 민군 사야도는 그곳에서 도 담마차리(Daw Dhammacari)란 띨라쉰(thilashin)의 도움을 받았는데, 띨라쉰은 정식 비구니는 아니지만, 비구니에 준하는 여승이다. 상좌부에서는 부처님의 이모인 마하파자파티가 최초로 비구니 승가를 이룬 이후, 스리랑카에서 일찍이 계맥이 단절되어 상좌부 권에는 348계를 지키는 비구니 수계가 없었다. 이렇다보니 상좌부 권에서 버마는 비구니 보다 아래 단계인 지계자(持戒者)인 띨라쉰 제도를 두게 되고, 태국에서는 매치(Mae chee), 스리랑카에서는 다사 실 마타(dasa sil mata)라고 부르는 사미니에 가까운 지계자를 두고 있다. 하지만 상좌부 권에서도 최근 대만에서 비구니계맥을 이어와서 비구니 승가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사진3:양곤시내에서 탁발하는 띨라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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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태국 방콕의 한 사원의 매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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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는 1928년 태국 왕자출신인 친나원 시리왓(Chinnawon Siriwat) 승왕께서 법을 제정해서 이 제도를 도입했고, 스리랑카에서는 승단에서 비구니로 공식 인정은 하지 않지만, 최근 비구니 계맥을 도입하여 비구니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다.

사진5: 민군 사야도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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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군 사야도는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삼장법사(Tipitakadhara) 선발시험에 합격하였고, 삼장학위를 수여받았다. 민군 사야도가 빛을 발휘한 것은 1954년 우 누 수상의 후원으로 개최된 제6차 경전결집회의에서다. 이 경전결집회의는 카바 아예 파고다의 마하파사나 동굴에서 2년간 진행됐는데, 마하시 사야도 장로와 함께 집행부에서 주역을 담당했다. 특히 민군 사야도는 율장의 구석구석을 정확하게 답변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후, 민군 사야도는 우 누 수상의 요청으로 1955년부터 1960년까지《小部 쿠다카니까야 Khuddakanikāya》의 마하 붓다왕사(Maha Buddhavamsa佛种姓经》을 번역하고, 1979년 버마 정부는 아가 마하 판디타(Agga Maha Pandita) 타이틀을 수여했고, 다음 해에 처음으로 구성된 버마승가총회 대표고문(종정)에 추대됐다. 1985년 기네스북에 올랐는데, 1954년 16,000 페이지에 달하는 빨리어 삼장을 암송한 기록이다. 그는 1988년 버마 민주화 봉기에도 참여한 바 있다. 1993년 입적했다.

사진6: 1988년 8월 8일 열린 버마 민주화 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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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마하시 사야도 우 소바나 대장로(Mahasi Sayadaw U Sobhana 1904–1982) 비구스님에 대해서 알아보자. 마하시 사야도는 삼장에 정통한 학승의 이미지 보다는 서구와 아시아권에서 위빠싸나 명상 스승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명상 테크닉을 소위 ‘우 나라다 신(新) 버마방식(New Burmese Method" of U Nārada)“이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이 방식은 명상수행자는 호흡하는 동안 감각과 생각을 주의 깊게 관하면서 복부의 상승과 하강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방식에 의한 명상수행을 통해서 빠른 진척을 봄으로 해서 한 때 붐을 일으켰다. 그렇다면 이 방식을 개발한 우 나라다(U Nārada =Mingun Jetawun Sayādaw=Mingun Jetavana Sayādaw1868–1955)는 누구인가. 우 나라다 대선사는 주로 만행을 하면서 명상을 한 비구로 알려져 있으며,《사티파따나 Satipaṭṭhāna 四念住=大念处经》텍스트에 철저하게 의지하면서 호흡의 오르내림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견성한 분이다.

사진7: 만행을 주로 하면서 수행한 우 나라다 대장로 비구 대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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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8: 마하시 사야도 대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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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시 사야도는 상 버마에서 태어나서, 12세에 행자로 입문했고, 20세에 비구가 되어 교학공부에 매진하고 1941년 담마차리야(Dhammācariya) 법사 자격시험에 합격 했다. 1931년 하 버마에서 우 나라다 장로에게 명상을 배운 이래로, 계속해서 우 나라다 대선사의 지도를 받았다. 우 나라다 대선사는 버마의 숲 속 명상 전통에 의한 수행자였다. 1947년 우 누 수상은 양곤에 명상센터를 건립하고 마하시 사야도를 명상 스승으로 추천받았다. 마하시 사야도는 1954년 제 6차 경전결집회의에서 질문자로 선정되었다. 이후 그는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태국 등지에 명상센터를 설립했으며, 1972년 통계만 보면 약 70만 명이 그의 문하에서 명상을 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1979년 미국인 제자가 세운 미국 매사추세츠 위빠싸나 명상회(Insight Meditation Society (IMS)에서 명상지도를 하기 시작했고, 1982년 입적했다. 마하시 사야도는 여러 권의 저서를 남겼으며, 특히 붓다고사의《위수디마가 Visuddhimagga 淸淨道論》의 버마 본(本)과 기타 명상에 대한 영문저서가 있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양곤에 있는 마하시 사야도 명상센터를 찾는 수행자는 그칠 줄 모른다.

사진9: 미얀마의 한 명상센터에서 필자(이치란 박사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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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영한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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