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불교-6 / 제6차 경전결집 미얀마 양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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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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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미얀마불교-6 / 제6차 경전결집 미얀마 양곤에서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29, (일) 4:34 am

제6차 경전결집 미얀마 양곤에서

사진 1: 버마 양곤의 동굴에서 열린 제 6차 경전결집총회(195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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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601.jpg (108.88 KiB) 518 번째 조회
불교역사에서 경전결집회의는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제1차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다음, 라자그리하(왕사성)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戒律)과 설하신 법(Dhamma=진리)에 대한 해이(解弛)에서 출발했다. 한 늦게 출가한 비구가 말하기를, “이제 고타마 붓다는 열반하고 이 세상에 안 계신다. 귀찮은 계율 같은 것은 지킬 필요가 없다.”라고 하는 것을 마하 카사파(대가섭)가 듣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절실하게 깨닫고, 큰 동굴에 5백 명의 비구(아라한)들이 모여서 부처님께서 제정하시고 설하신 율과 법에 대한 편집을 한 것이다. 당시에는 부처님을 비롯한 비구들이 사용하던 마가다 어(語)는 구어(口語)였기에 기록할 문자가 없었다. 그러므로 암송(暗誦)에 의한 구송(口誦)으로 편집한 경율(經律)이었다. 부처님은 쿠시나가라에서 열반하시면서, 아난다가 부처님 사후에 우리는 누구를 따라야 하느냐고 ane자, 부처님은 법등명(法燈明) 자등명(自燈明)을 유계(遺誡)로 남기신 것이다.

이 유계는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계율과 법을 잘 따라서 스스로 의지해서 수행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라는 의미이다. 제1차 경전결집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 승가는 그런대로 잘 굴러갔는데, 100년 정도가 지나자 또 승가에는 진보파가 생겨날 조짐이 보이고, 승가의 분열이 일어날 상황이었다. 이에 제2차 경전결집이 이루어지고 승가가 스타비라 파(Sthaviras 上座部)와 마하상기카(Mahāsāṃghikas大衆部)로 나뉘게 되었다. 충분히 이해가 가는 현상이다. 장로들은 부처님과 선조 비구들의 전통과 유산을 보수적으로 그대로 잘 지키려는 입장이었고, 진보적인 다수파는 시대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변화하는 승가로 지향하고자 했다. 아마도 양 진영이 함께 하기가 극히 어려웠던 모양이다. 이렇다보니 승가는 점점 다양화 되고 100년 정도가 지나자 승가가 너무 부처님 승가와는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음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해서 제3차 경전결집이 이루어 졌다. 제3차 경전결집은 파탈리푸트라(현 파트나)에서 아소카 대왕의 후원아래 이루어져서 불교는 확장되게 된다.

사진 2: 아소카 대왕(재위 260–218 BCE) 때의 불교 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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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사에서 제3차 경전결집은 매우 중요한 획을 긋는 일이었다. 제4차는 실론과 카슈미르에서 개최되었는데, 어느 쪽이 정통이냐를 두고 시비와 논란이 있다. 하지만, 양쪽 다 엄청난 역사와 의미가 있다. 카슈미르에서 개최된 설일체유부의 주관아래 제4차 경전결집회의는 경전결집을 산스크리트어로 편집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다. 실론에서 개최된 상좌부 맥을 이은 제4차 경전결집도 문자로 기록됐다는 점이 중요하다. 버마에서의 5차 6차 경전 결집은 실론의 상좌부 전통을 계승한 것이다. 제5차 경전결집은 전회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만달레이에서 민돈 왕의 후원으로 주로 버마 승가의 삼장법사와 비구들로 구성된 결집회의였다면 제6차 경전 결집회의는 달랐다.

제6차 경전결집회의(Sixth Buddhist Council:Chaṭṭha Saṅgāyana)는 버마 양곤 ‘카바 아예 파고다’ 내에 인위적으로 만든 동굴에서 1954년부터 1956년 까지 2년에 걸쳐 8개 상좌부 나라에서 2500명의 비구가 참가한 가운데 부처님 열반 2500주년에 맞춰서 개최됐다.
상좌부의 다른 8개국에서 참가한 2500명의 비구들이 자기 나라에서 편집된 빨리어 삼장을 구송하여 삼장을 점검하고 표준 삼장을 편집하는 것이었다. 제6차 경전결집회의는 만달레이에서 개최 된지 83년만인 1954년 5월 17일 웨삭(Vesak 부처님 탄생=성도=열반일)에 시작해서 1956년 5월 26일 웨삭의 날에 회향했다. 1956년은 부처님 열반 25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제6차 경전결집은 버마 민족주의자 우 누(U Nu 1907–1995) 수상의 후원에서였다.

제3차 경전결집은 전적으로 목갈리뿌따 띠싸(Moggaliputta Tissa)라고 하는 대장로(大長老)에 의해서 주도되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게다가 아소카 대왕의 후원을 받아서 불교가 인도 亞 대륙은 물론 인도 外의 지역에 까지 불교가 전파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로써 인도 갠지스 평원의 동부 지역에 머물렀던 불교는 인도 전역은 물론 인도 밖으로 퍼져나가게 되어 결국에는 불교가 상좌부의 종주국인 실론과 수반나부미라는 버마 태국 지역에 까지 확장하게 되었다.

사진 3: 제6차 경전결집 회의를 후원한 우 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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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누 수상은 1948년부터 1956년까지 수상 직에 있었고, 그는 인도 왕사성에서 개최했던 제1차 경전결집을 모방하여 ‘카바 아예 파고다’ 사원 내에 동굴을 만들어서 제6차 경전결집회의 개최를 후원했다. ‘마하 파사나 구하(Maha Passana Guha)’란 대동굴(大洞窟)은 지금도 보존되어 있다.

제6차 경전결집회의 개최 목적은 부처님께서 설하시고 제정한 진짜 법과 율의 확정이었다.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와 네팔에서 온 비구들이었다. 일본에서도 대표단을 파견했고, 서구 출신으로는 독일출신으로 실론에 거주하고 있던 냐나틸로카 대장로와 냐나포니카 비구가 참석했다.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1904-1982) 장로 비구가 경율(經律) 에 대해서 묻고 바단타 위찌따사라위왕사(Bhadanta Vicittasarabhivamsa 1911-1993)대장로가 답하는 형식을 취해서 경전결집집편집회의가 진행됐다.

사진4: 제6차 경전결집회의에서 경율을 암송하여 구송한 바단타 위찌따사라위왕사(민군 사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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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5: 명상 스승으로 더 잘 알려진 삼장법사 마하시 사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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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의 두 분 대장로 비구들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 더 소개하기로 하겠다. 이 경전결집회의는 상좌부 8개국에서 갖고 있는 빨리어 삼장에 대한 점검과 교정을 함으로 인해서 표준 삼장을 도출해 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상좌부 삼장에 대한 주석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여 52개 주석을 포함한 40권의 전집으로 빨리어 경율론 삼장을 편집했으며, 8개국은 각기 자기나라 문자로 번역하여 발간했다.
제 6차 경전결집 본(本)은 1999년부터 태국에서 교정해 왔으며, 세계삼장본(三藏本)에서 40권을 로마자 화(化)하여 2005년 발간했으며, 2007년 40권 본(本) 참고문헌이 등장하기도 했다.

사진 6: 양곤 국제 테라와다 전도대학 학술대회에 참가한 필자(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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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영한 아카데미 원장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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