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불교-4 / '몽골의 침입, 전환점을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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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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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미얀마 불교-4 / '몽골의 침입, 전환점을 맞다'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29, (일) 4:25 am

'몽골의 침입, 전환점을 맞다'

사진 1: 몬 족에 의해서 6-10세기 사이에 건립된 쉐다곤 파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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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간 왕조의 역대 왕들은 모두 불심이 돈독하고 사원을 건축하고 실론에서 수입된 삼장을 번역하여 널리 익히고 심지어 1279년경에는 비구니를 위한 사원을 세울 정도로 불교가 왕성하게 발전하고 있었다. 1287년 몽골의 침입이 있을 때 까지 빠간 불교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이런 불교의 태평성대가 몽골의 침입으로 크게 동요하고야 말았다.

원나라 세조인 쿠빌라이 칸(Kublai Khan 1215–1294)은 1277년,1283년과 1287년 3차에 걸쳐서 빠간 왕국을 침입한다. 1253년 중국 남부인 운남성을 손에 넣은 쿠빌라이는 1273년 장군을 보내서 버마의 복속을 요구했다. 이 무렵 버마는 소요 속에 놓여 있었고, 종교(불교) 소유 토지에 대한 면세 정책 등으로 국고(國庫)가 바닥이 나고 국가 재정은 더욱 악화되는 시점이었다. 이 무렵의 빠간 왕국의 나랏티하파테(Narathihapate 1238–1287)왕은 1256년에 등극했으나 무능한 왕이었다. 몽골 원 나라의 사절단을 처음에 잘 대접했으나 두 번째 사절단은 참수해버렸고, 타이 국경을 침입하자 이에 몽골군은 1277년 버마를 침공했다. 1283년 빠간 왕실의 내분을 틈타서 몽골군은 빠간을 침입했고, 1287년 빠간 왕국은 몰락하고 말았다. 버마는 몇 개의 소국으로 분열했지만, 이 소국들은 친 불교적인 왕국들이었다. 이런 혼란기에 버마에는 태국삼림전통의 불교가 들어왔는데, 이 전통은 실론에서 태국의 아유타야 국으로 전해진 불교전통이었다. 교학불교(敎學佛敎)에 대한 반발로서 삼림에서 명상수행을 하는 순수불교였다.

동부의 태국과 가까운 샨 족의 왕이나 하 버마의 몬 족의 왕은 불교 후원자였다. 1287년부터 1552년간의 하 버마 몬족의 바고 왕국(1287-1539, 1550-1552)의 담마제디(Dhammazedi 1409–1492) 왕은 버마 역사상 가장 영민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사진 2:빠간 왕조가 몰락하고 1287–1552년간의 3국 병립시대의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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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비구였던 담마제디 왕은 젊은 시절 경쟁국이었던 아바 왕국에서 교육을 받았고, 쉰 소부(Shin Sawbu) 왕비의 눈에 들어서 48세 때 환속하여 왕비의 사위가 되어서 왕위에 올랐다. 쉰 소부 왕비는 사재를 털어서 쉐다곤 파고다를 전부 금으로 도금할 정도로 불심이 깊었다. 담마제디 왕은 20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몬 족의 가장 전성기를 구가한 왕이었다. 경쟁국인 아바 왕국과도 평화 상태를 유지했으며, 대외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고, 빠간의 뒤를 상좌부의 중심역할을 하기도 했다. 실론과의 강한 외교관계를 유지했고, 보드 가야에 비구들을 보내서 인도불교의 부흥에도 노력했다. 중국 남부의 운남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담마제디 왕은 1484년 금은동이 섞인 294톤의 담마제디 대종(大鐘)을 주조하여 쉐다곤 파고다에 기증하였으나, 16세기 유럽열강의 반출 시도로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양곤 시 근처의 한 강에 묻혀있다고 한다.

사진3: 미얀마 몬 주에 있는 기도처 짜익띠유 파고다(황금 바위)에는 수십만 명의 불자들이 일 년 내내 참배 하러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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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간 왕조가 멸망한 다음 버마 지역에는 샨족이 세운 잉와 왕국과 버마족의 따웅우, 몬족의 바고 등 3왕조가 병립했는데 따웅우 왕조(Taungoo Dynasty1485–1752)가 강력해져서 버마를 재통일했다.

사진4: 따웅우 왕조(Taungoo Dynasty1485–1752)시기의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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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간 왕조가 멸망하고 3국이 병립했지만, 불교는 그 나름대로 실론과 유대를 이어갔으나 실론 또한 16세기가 되면 유럽 열강의 식민지 개척으로 큰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버마 땅에서는 정치적 상황과는 다르게 상좌부 불교는 그대로 지속되고 있었다. 하지만 실론과의 관계는 그렇게 원활하게 관계가 유지되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인도 이후 상좌부 불교의 명맥을 이어가는데 이 두 나라의 불교교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사진5: 미얀마 만달레이 시의 한 사원에서 공부하는 젊은 비구 학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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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 불교사적으로 보면, 빠간 왕조와 꼰바웅 왕조 시대의 불교가 큰 획을 긋는다. 따웅우 왕조에 이어서 꽁바웅 왕조가 18세기 중엽 버마족의 얼라웅퍼야가 개창한 후 19세기 후반까지 대를 이은 미얀마 최후의 왕조이다. 수도는 이라와디 강 중류에 있는 슈웨보, 아바, 아마라푸라, 만달레이 등으로 전전하였고, 한 때는 팽창정책을 펼쳐 태국 아유타야까지 원정했고, 미얀마 최대의 판도를 누렸다. 그러나 영국 세력과 충돌하여 3차에 걸친 영국-미얀마 전쟁이 있었고, 결국 1885년 제10대 왕인 시보가 영국군에 포로가 되자 이 왕조는 133년 만에 멸망하였다. 미얀마의 근현대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시대의 불교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큰 족적을 남겼다.

해동영한 아카데미 원장
이 치 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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