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불교-2 / 1만 개의 사원이 있었던 천불 천탑의 빠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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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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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미얀마 불교-2 / 1만 개의 사원이 있었던 천불 천탑의 빠간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29, (일) 4:17 am

1만 개의 사원이 있었던 천불 천탑의 빠간

사진1: 빠간의 천불천탑 유적, 저 멀리 아난다 사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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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2백 여 명의 비구들이 수행하고 있는 빠간의 한 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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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불교는 태국 불교와 더불어서 남방 상좌부의 양대 산맥으로서 참으로 중요한 위치에 있다. 부처님 승가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는 불교가 미얀마 불교와 태국 불교이다. 어쩌면 미얀마 불교가 더 원형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미얀마 불교는 실론에서 불교가 집중적으로 전해졌는데, 버마(미얀마)에 전해질 때의 실론 불교는 인도불교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던 상좌부의 종가집이였다. 1861년 비구 빠나사미(Paññāsāmi)에 의해서 저작된 버마 불교역사를 말해주는 사사나 왕사(Sāsana Vaṃsa 승단사僧團史))나 실론에서 저술된 왕통사(王統史)인 마하왕서(Mahavamsa)에 따르면, 기원전 228년 아소카 대왕은 불교 전도단(傳道團)을 파견할 때, 비구 소나(Sona)와 우따라(Uttara) 두 장로를 미얀마의 옛 이름인 수바나부미(Suvarnabhumi)에 다른 비구들과 경전들을 함께 보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인도의 안드라 익사바쿠 비문에 의하면, 기원후 3세기경, 한 티베트-버마 왕이 불교로 개종했다는 기록과 비슷한 시기의 중국 문헌에서도 이 나라 사람들은 부처를 숭배하고 많은 사마나(승려)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상당한 이른 시기부터 불교가 존재했었던 것 같다. 기원후 7세기 경, 빨리어 산스크리트어 비문에 따르면, 퓨(Pyu)와 몬(Mon) 지역인 버마의 중부와 하 버마 지역에 불교가 존재한 것으로 기록이 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확실한 것은, 11세기에서 13세기 빠간(Pagan)의 왕과 왕비들이 탑과 사원을 많이 건립했다는 사실이다.

11세기 이전에는 인도의 보살불교도 한 때 유입된 것으로 기록되고 있지만, 현재와 같은 상좌부 불교가 버마 땅에 확실하게 심어진 것은 11세기 빠간(바간이라고도 함) 아나와라하따(Anawrahta 1014-1077)왕 때부터이다. 아나와라하따 왕은 1057년 군대를 하 버마 따톤의 몬 지역에 보내서 빨리어 대장경을 소유하기 위해서 정복을 하도록 했다. 왕은 몬 출신의 비구 쉰 아라한에 의해서 상좌부로 개종하게 되었고, 39권의 빨리어 경전을 입수했고, 빠간을 중심으로 한 버마 전역에 상좌부 불교를 전파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 무렵 아리 불교(Ari Buddhism)란 전통이 있었다. 아나와라하따 왕에 의해서 상좌부 불교가 본격적으로 뜨기 전에 이 아리 불교 전통이 7세기부터 있어왔다. 인도나 티베트에서 무역 상인을 통해서 소개된 것으로서 밀교 계통의 불교였고, 용(龍) 신앙과 힌두교 등이 혼재한 불교였다. 어떤 학자들은 중국 남부 운남성 지역에서 유입된 불교 전통에 기원을 두기도 하는데, 이 아리 불교 전통의 승려들은 남방 상좌부의 승원 중심의 계율을 철저히 준수하는 승가(僧伽)가 아닌 숲 속에서 주로 살면서 술도 마시고 여자도 취하면서 오후에 음식도 먹는 그런 승려들이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빠간 왕실에서는 이런 식의 종교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또 이 무렵 태국 서남부지방에 가까운 하 버마에는 몬 족이 살고 있었는데, 이곳 몬 지역에는 일찍이 인도 남부와 실론과 인도네시아 등지의 상좌부의 영향을 받아서 상좌부 불교가 상당히 뿌리 내리고 있었다.

사진3: 빠간 왕조시대의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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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과 빠간 사이에 본격적인 교류가 있기 전에는, 실론과 버마 사이에는 특별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서 11세기 이전에는 주로 하 버마 지역인 따톤 지역인 몬(Mon)과의 관계정도였던 것 같다. 빠간에는 이른바 천불천탑(千佛千塔)이 있을 정도로 많은 탐과 사원이 즐비하다. 11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실론으로부터 상좌부 불교가 확실하게 이식되어 지금의 미얀마 불교의 모태가 된 것이다.

빠간왕조(1044-1267)는 버마 최초의 통일 왕조이다. 빠간 왕국은 250년간 버마 중부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라와디 강을 따라 번성했던 나라이다 이 왕조는 8세기 말 9세기부터 조그마한 왕국으로 출발해서 11세기가 되면 강국으로 발전, 버마 최초의 통일 왕국을 세운 나라이다. 빠간 왕조가 일어나기 전에는 밀교(딴뜨리즘) 대승불교 브라만교와 정령주의가 강하게 지배하고 있었다. 12세기가 되면 상좌부 불교가 이런 기존의 종교전통을 압도해서 시골 마을 단위에 이르기 까지 상좌부 불교가 뿌리 내리게 된다. 빠간 왕조는 이 지역에 1만개의 사원을 건립했고, 많은 면세의 토지를 사원에 기증하는 등, 그야말로 상좌부의 전성기를 구가한 것이다. 지금도 이 지역에 2천개의 사원이 남아 있을 정도이다. 사실, 미얀마 불교의 주류는 만달레이로 이동했지만, 적어도 12세기에는 동남아시아에서는 실론과 맞먹는 상좌부 불교의 센터였다. 실론 상좌부의 전통이 고스란히 버마의 빠간으로 전해져서 지금 미얀마 불교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지금 실론은 미얀마의 상좌부가 다시 역수입된 상좌부 불교이다.

빠간 왕조가 기울어진 것은 외형상으로는 몽골의 침입이지만, 그 전에 이미 패망의 징조가 나타나고 있었다. 가장 내부적인 직접적 요인은 면세에 의한 종교적 부의 성장으로 왕실과 군대를 보유할 국고(國庫)가 고갈되자, 내부적으로 영이 서지 않고 신하들이 말을 듣지 않았으며, 서쪽 해안의 인도 국경지역의 아라칸과 남부의 몬족과 중국 계통의 샨족들의 도전이었다. 게다가 몽골의 침입이 결정타를 먹여서 4백년 왕업이 허물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빠간 왕조는 16세기 까지 지리멸렬하게 존속하기는 했지만, 통일 왕조로서의 위상을 잃게 된 것이다. 미얀마 불교사에서 빠간 왕조 시대의 불교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고 할 것이다. 상좌부 전 역사를 통해서 이 빠간 왕조 시대에 실론에서 상좌부 불교를 직수입하지 않았다면 오늘날과 같은 미얀마의 불교 모습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며, 또한 오늘날 실론의 근현대 불교는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실론불교의 다수파인 시암니까야 종단의 전통이 시암(태국)에서 역수입되었지만, 인도불교의 원형이나 실론 버마 불교의 원형을 찾으려면 버마에서 역수입된 아마라뿌라 파와 라만야 파의 불교전통에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 4: 필자가 아침 일찍 탁발 나온 어린 사미승에게 공양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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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간과 실론사이에는 머나먼 거리이지만, 몬순 계절풍을 이용하면 2주일에서 한 달 정도면 갈 수 있는 이점이 있었지만, 뱃길을 잘 못 택하면 수개월이 걸리는 등, 매우 모험적인 이동경로였다. 이런 자연적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두 나라사이에 종교(불교)교류가 왕성하게 이루어졌었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할 정도이다. 게다가 언어마저 다른 두 나라사이에 종교적 교류가 왕성하게 이루어져서 미얀마는 현재 남방 상좌부의 종주국이 되어서 명상은 물론 빨리어에 의한 상좌부 교학의 센터가 되었다. 다음 회에서는 빠간 시대 양국의 불교교류를 더 소개해 보겠다.

해동영한 아카데미 원장
이 치 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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