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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불교-6 / 외국(서양) 비구들 이야기-파랑(2)

올린 게시글COLON 2017-01-23, (월) 11:34 am
글쓴이: lomerica
숲속의 명상가들로 부처님처럼 수행

사진 1: 태국의 삼림수행 전통을 세운 프라 아잔 사오 칸타실로 대장로 스님
(Phra Ajahn Sao Kantasilo Mahathera (1861–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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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 태국의 삼림수행전통의 2대에 해당하는 아잔 문 부리다토 대선사
(Ajahn Mun Bhuridatta Thera 1870-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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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태국 전통 삼림수행전통의 3대에 해당하는 대선사로 외국인 비구들인 파랑의 스승으로서 태국의 삼림수행전통을 서구에 보급하신
아잔 차(Achaan Chah, 1918-1992) 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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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4: 아잔 차 선사의 수제자로서 태국 전통 삼림명상 수행 제 4대에 해당 하는 루왕 포 아잔 수메도 비구(Luang Por Ajahn Sumedho 1934-현재, 미국 시애틀 출신),
영국 아마라와티 불교사원의 조실 겸 주지로서 서구출신 비구와 태국 납자들을 제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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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회에서 잠깐 소개한 바와 같이 태국에는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연중무휴로 찾는다. 태국에 가본 분들은 알겠지만, 태국은 외국인들에게 매우 친절한 곳이면서도 피로에 지친 심신을 풀어주는 나라이기도 하다. 89년 해외여행 자유화의 여파로 한국인들도 태국을 비롯한 동남아국가들을 찾는 기회가 많아져서 태국과는 익숙해졌다. 특히 방콕에 거주하는 교포들만 해도 만 명이 넘을 정도고 태국의 유명 관광지에서 한국인을 목격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단순한 관광객의 차원을 넘어서 태국에 대한 각 분야의 전문가들도 서서히 생겨나고 있다. 태국의 전문가란 여러분야가 있을 수 있는데, 태국의 불교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넓혀가는 분들도 숫자가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다.

미국인을 포함한 유럽인들은 우리보다는 더 일찍 동남아나 태국에 발을 디뎠다. 서구의 젊은이 사회에서는 대학을 마치면 대개 인도나 동남아를 한 1년 정도 여행하는 경험을 한다. 직장잡고 결혼하면 여행을 다니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20대 때, 여행을 하는데, 이 여행과정에는 몇 개의 이로운 목표가 있다고 한다. 첫째는 물론 이국에 대한 경험이겠지만, 비영어권 친구들은 1년 동안에 영어회화를 마스터하게 되고, 영어권 젊은이들에게는 인도나 동남아 국가들에 대한 문화나 언어 등을 익혀 전문가가 되는 좋은 기회가 된다. 지금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테마는 태국에서 불교 수행을 하는 외국 비구(승려)들에 대한 ‘파랑 비구들’에 관해서다. ‘파랑’은 유럽 백인을 의미하는 태국어인데, 불교 수행하는 서구 출신 비구들도 ‘파랑’이라고 호칭한다.

이들은 왜, 태국에서 불교승려가 되는가이다. 전회에서도 소개했지만, 내가 80년대 초, 방콕의 왓 보워니웻 사원에서 수행할 때다. 왓은 절(사원)이란 뜻이다. 태국의 모든 사원의 이름은 ‘왓’으로 시작한다. 중국이나 한국의 한자문화권에서는 ‘00사(寺)’라고 한다. 일본인들이 한국인들보다는 더 먼저 태국에 왔기에, ‘왓(Wat)’을 일본 발음으로 ‘와트’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일본 정보를 통해서 ‘와트’라고 발음하는데, 그냥 ‘왓’으로 발음하면 된다. 한글의 우수성이 이럴 때 나타난다. 어떤 사물이나 상황이라도 현지의 음(音)대로 발음을 정확하게 할 수 있어서다. 이 때 나는 오직 비구로서의 수행에 몰두하면서 영어에 매진하고 있었다. 영어를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영어의 위력은 너무나 컸다. 특히 내가 머무르는 기숙사가 국제관이었는데, 호주 영국 미국 캐나다 독일 이탈리아 등지에서 온 외국인 비구와 재가(在家)수행자들로 항상 만원이었다. 외국인 비구들, 이른바 ‘파랑’들은 태국불교 그것도 명상에 관심이 많았다.

태국의 비구들은 사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승가 고유의 비구승가 생활에 전념한다. 이를테면 227계목의 율장을 준수하면서 빨리어 삼장을 공부하고, 아침이면 탁발을 나가고 점심공양에 초청되어 신도들의 공덕 짓기에 찬팅(chanting염불)을 하고 생활필수품과 약간의 보시금(돈)을 받는 것이 일상이다. 그러면서 자기발전과 향상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 40만 승려가운데 90%는 이런 과정을 밟는다. 방콕이나 중소도시 시골도 마찬가지이다. 태국불교는 교육 제도가 잘되어 있다. 입문하면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하지만,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두탕가(Duthanga 숲속의 수행자)의 길을 오로지 밟는 비구들도 있다. 이 두탕가 비구들도 탁발을 하고, 계율을 준수하는 것은 도시의 비구들과 똑같지만, 이 비구들은 명상 수행에 더 몰두한다는 점이다. 삼림수행이 외부에 알려지게 된 것은 아잔 차 대선사로부터이다.

아잔 차 큰 스님은 시골 태생이기도 하지만, 그는 젊어서부터 명상 즉 위빠싸나(Vipassanā 觀)라고 하는 명상 수행을 주로 해 왔다. 아잔 차 큰 스님은 1918년 6월 17일 태국의 북동부 우본 라자타니에서 가까운 시골 마을에서 출생, 십대 때 사미승으로 3년간 절에서 행자생활을 하다가 집에 와서 부모님을 도와 농사를 짓다가 20세 때 비구가 될 것을 결심하고 사원으로 가서 1939년 4월 26일 우빠삼바다(비구 구족계)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비구들과 마찬가지의 수행과정을 5년간 밟다가 부친이 심하게 아픈 것을 보고, 고통에 대한 문제를 깊이 생각하면서 인생의 의미에 대한 의문을 품고 빨리어에 의한 경전 공부를 접고, 28세 때, 한국불교로 보면 만행 즉 운수납자의 길인 두탕가의 수행 길에 들어서게 된다. 그는 서울서 부산까지의 정도의 거리인 400km를 걸으면서 잠은 숲속에서 자고 마을에서 탁발을 해 가면서 수행하는 과정에서, 한 사원에서 아잔 문 부리다토(Ajahn Mun Bhuridatto 1870-1949)라는 숲속의 도인 스님에 관하여 듣게 되었다.

아잔 문 부리다토 대선사는 라오스 출신의 태국 비구로서, 프라 아잔 사오 칸타실로 마하테라(Phra Ajahn Sao Kantasilo Mahathera(1861–1941)의 지도를 받았는데, 프라 아잔 사오 칸타실로 마하테라 장로 스님은 태국 승가의 보수개혁파인 담마유티카 니까야 소속으로서 태국의 삼림수행의 전통을 세우신 큰 스님이다.

아잔 차 비구는 아잔 문 부리다토 도인으로부터 명상 수행 테크닉을 배우고 지도를 받으면서 7년간 집중명상수행을 했다고 한다. 1954년 그는 그의 고향 마을 사람들로부터 초청을 받아 ‘파퐁’이란 토굴을 짓고 수행을 계속하면서, 차츰 차츰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나중에 ‘왓 파퐁’사원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아잔 차 선사가 도인이라고 소문이 나자 1967년 미국 출신 비구 수메도 스님이 라오스 국경 근처의 절에서 혼자 명상 수행을 하다가 이곳에 오게 되어 안거를 하면서부터 명상 수행에는 스승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아잔 차 선사에게서 본격적으로 명상 지도를 받게 되어 오늘날 많은 서구출신 비구들(파랑)이 이곳 왓 파퐁 사원에서 명상수행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수메도 비구는 5년간 아잔 차 선사 문하에서 명상 수행을 집중해서 한 후, 아잔 차 선사는 수메도 비구가 다른 서양 출신 비구들에게 명상을 지도할 수 있다고 인가하여 비로소 파랑 비구들이 태국 전통 숲속 면상 수행을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아잔 차 선사의 허락을 받아서 파랑비구들만이 모여서 수행할 수 있는 국제삼림사원인 왓 파 나나찻 사원(Wat Pah Nanachat: International Forest Monastery) 이 1975년 왓 파퐁 사원에서 그리 멀지 않는 거리에 설립되게 되었다.

이 국제삼림사원이 문을 열면서 수백 명의 파랑 비구와 재가 수행자들이 집중적으로 명상 수행을 할 수 있었고, 많은 파랑 출신 선사들을 배출하여 세계 도처에 불법을 전파하는 모태가 되고 있다. 내가 방콕의 왓 보워니웻 사원에서 비구생활을 할 때, 대부분의 파랑비구나 재가 수행자들이 이곳 국제삼림사원을 가기 위해서 내가 머무는 가나숭 국제관에서 짧게는 2-3일에서 일주 일 때로는 한 달간씩 머물렀다. 그 때 나는 이 분들과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찬스를 잡게 되었고, 3개월 만에 귀가 열리고 입이 벌어져서 영어회화가 가능했다. 영어가 통하자 이들이 왜 그곳에 가고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애를 쓰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들을 통해서 세계불교계의 정보에 접할 수 있었다.

당시 태국에는 북동부에 아잔 차 선사, 남쪽에는 붓다다사 비구(Buddhadasa Bhikkhu (1906–1993)를 도인으로 치고 있었다. 아잔 차 선사와 아잔 붓다다사 선사 두 분 다 숲속에서 명상 수행을 하시면서 태국 제자와 외국인 제자들을 문하에 제접하고 있었지만, 두 분의 성격과 스케일은 조금 달랐다. 아잔 차 선사가 순수 선사로서 태국의 삼림 수행의 전통에 충실했다면, 아잔 붓다다사 선사는 교학을 겸비한 선사이면서 불교의 대사회적인 활동에 관심이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지금도 비구 붓다다사 선사가 주석하셨던 남쪽의 왓 수안 목(Wat Suan Mokkh 해탈의 정원)을 방문하여 친견할 수 있었던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편, 80년 대 초인 이 무렵 외국의 파랑 비구들과 재가 명상 수행자들은 버마의 큰 스님인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U Sobhana 1904–1982)선사가 주석하였던 마하시 사야도 명상센터에서 신 버마식 위빠싸나 수행을 하기 위해서 수시로 드나들었다. 하지만 비자문제가 쉽지 않아서 파랑비구들과 재가 수행자들은 내가 머무르던 왓 보워니웻 사원의 국제관에 머물면서 대기하는 경우가 많아서 나는 유익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다음 회에 비구 붓다다사 선사와 마하시 사야도 선사에 대해서 소개하고, 태국 위주의 파랑 비구들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를 전개해 보고자 한다.

이치란 박사
해동경전어 아카데미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