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불교-5 / 외국비구들 이야기-파랑(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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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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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태국불교-5 / 외국비구들 이야기-파랑(1)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23, (월) 11:27 am

외국 비구들의 스승, 태국 숲속의 대선사 아잔 차(Ajahn Chah 1918-1992) 큰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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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은 관광의 천국이다. 아시아에서는 아마도 태국을 찾는 관광객이 가장 많지 않을까 한다. ‘연기 없는 굴뚝’을 일찌감치 깨달은 나라가 태국이 아닌가 한다. 외세의 지배를 받아 보지 않았기에 태국인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다. 유럽의 열강이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를 먹어 치울 때, 태국왕실은 외교적 수완을 발휘해서 식민지가 되는 운명을 용케 피해갔다. 게다가 버마 말레이시아는 대영제국이 차지하고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필리핀은 스페인이 다음은 미국이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는 프랑스가 적당히 나눠먹고 태국마저 식민지화하려고 하니 열강들끼리 대결이 불가피 하자, 이들 열강은 완충지역이 필요했다. 태국은 동남아의 스위스가 되기를 원했다. 동시에 모든 열강에게 항구를 개방하지 않을 수 없었고, 서구 문물을 급속하게 받아 들였다. 왕실은 그 나름대로 근대화를 빨리 이룩한 셈이다. 유럽의 열강들은 자연스럽게 태국을 완충지역으로 삼아서 자유롭게 드나들게 되었다.

세계 제 2차 대전이 끝나고, 태국은 유럽인들에게 더욱 주목 받는 나라가 되었다. 더욱이 베트남 전쟁을 계기로 태국의 해안가는 미군들의 휴양지로서 각광을 받으면서 점점 일반인들에게도 태국은 관광의 대상으로 매력적인 나라로 변모해 갔다. 온갖 부류의 군상들 가운데는 항상 정신적인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빵(물질적)만으로는 살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정신적 자유와 미지의 정신세계에 대한 궁금증은 철학자와 종교가 그리고 히피와 같은 격외(格外)의 방외지사(方外之士)들을 생산하게 되어 있다. 60년대와 70년대 많은 서구인들은 인도를 찾기도 하고 동남아를 배회하면서 뭔가 정신적인 허무를 탈피해 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시기가 있었다. 대개 이들은 인도로 몰려들었다. 물론 18세기부터 유럽인들은 인도에 왔고, 19세기에는 브리티시 인디아 식민제국을 세워서 통치했는데, 이때의 유럽인들은 식민지 관료 군인 국영회사원 등이었다. 이 가운데 일부의 학구적인 사람들은 이른바 인도롤지(Indology 印度學)에 관심을 갖게 되고 오리엔탈리즘(東洋學)으로 확대시키는 선구 역할을 하게 된다. 하지만, 태국은 인도나 스리랑카 버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과는 다소 다른 시각에서 유럽인들이 접근하게 된다. 19세기부터 태국인들은 유럽의 백인들을 ‘파랑(Farang)“이라고 불렀다. 나중에는 미국인도 이 파랑의 개념에 포함되는데, 지금은 모든 서구인들에게 통용되는 용어로 개념화되었다.

60-70년대 인도로 몰려든 서구의 젊은이들은 인도의 정신에 흠뻑 빠져들게 되는데, 그것은 힌두의 요가 구루(Guru)들이었다. 물질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면서 반인간주의적인 서구문명에 염증을 느낀 젊은 세대들이 인도에서 영적 위안을 찾기 위해서 몰려들었다. 비틀즈가 인도를 여행하고 음악적 영감을 얻은 것은 다 알고 있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아무튼 이런 흐름은 70년대에 절정을 이루고, 서구의 젊은이들은 힌두의 요가에서 점점 더 깊이 파고들어서, 불교란 종교에 까지 다다르게 된다. 그것은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망명해 있던 달라이 라마에 주목하게 되고, 티베트 불교만이 아닌 테라와다(상좌부)라고 하는 버마 태국 실론 불교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물론 학술적으로는 서구의 불교학이 이미 19세기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해서 20세기 중반이면 상당한 진척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게다가 소수의 유럽 출신 승려들이 실론이나 버마에 와서 비구계를 받고 수행을 하고 있었지만, 일반 대중들에게는 60-70년대에 이르러서다.

이제 태국의 불교계로 눈을 돌려보자. 태국의 불교승가에 대해서는 전회(前回)에서 대강 소개했듯이 주류는 빨리어 경전어(經典語)에 의한 상좌부 삼장(三藏) 중심의 교학 불교로서 율장을 철저하게 준수하는 비구승가 공동체이다. 빨리어 교학 시험을 중시여기고 법계(法階)가 분명하며, 비구승가 공동체를 위주로 한 비구 중심의 불교이다. 비구승가 공동체는 법랍이나 법계에 따른 위계질서가 분명하며, 하위법이긴 하지만, 승가법이라는 법규에 의해서 승가는 규율 통제된다. 아무나 마음대로 출가하여 비구가 된다든지, 비구가 된 다음에 마음대로 아무데서나 주처(住處)를 한다든지 또는 비밀리에 가족을 둔다든지 하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 승가공동체에서 철저하게 수행위주의 생활을 하면서 비구로서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이렇게 통제되고 규율된 공동체이지만, 개인이 정 견디기 힘들면 언제라도 계를 반납하고 세속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따라서 3회에 걸쳐서 출가하여 비구가 될 수 있도록 승가법은 규정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두 번까지 환속할 수 있다는 의미인데, 새로 출가하여 비구가 되면 법랍은 다시 기산한다. 10년간 비구생활을 하다가 환속해서 다시 재출가한다면 법랍은 새로 시작된다.

이런 절차나 과정을 거쳐서 비구생활을 하는 것이 통상적이지만, 태국의 비구들 가운데에는 이런 기본적인 과정을 거쳐서 두탕가(Dhutanga)라고 하는 숲속의 수행자들이 있다. 이 말은 빨리어의 두탕가(dhutaṅga)란 용어인데, 방기(放棄)란 뜻으로 세속을 버린다는 의미로서 출가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부처님이 왕자의 신분을 버리고 출가한 것도 두탕가이다. 우리는 이런 두탕가의 전통을 태국 불교에서 찾을 수 있으며, 태국 출신 비구들보다는 외국인들 즉 파랑 출신의 두탕가 비구들에 의해서 오늘날 태국 불교의 두탕가 전통이 계승되고 있다고 하는 점에 주목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인도나 동남아를 떠돌면서 영적 위안을 찾던 일부 구도자들은 불교에 입문하는데, 특히 태국의 두탕가 전통에 매력을 느끼고 출가의 길을 걷게 된다. 여기에는 태국 숲속의 대선사로 알려진 아잔 차 큰 스님이 계셨다. 그의 문하로 입문한 파랑 비구들은 지금 아잔 차의 법맥을 이어서 세계 도처에서 불법을 전파하고 있다. 다음 회에 더욱 구체적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이치란 박사
해동경전어 아케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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