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불교-4 / 태국비구승가와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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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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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불교-4 / 태국비구승가와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23, (월) 11:19 am

태국비구승가와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

사진1: 왓 보워니웻 사원에서 쎔뎃 냐나상와라 수바다나 마하테라 상가라자로부터
구족계(비구)를 받고 가사와 발우를 받고 있는 이치란 박사의 젊은 시절(80년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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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구족계를 받고 가사를 수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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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외국인 비구들과 함께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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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비구계를 받고 태국, 스리랑카와 인도에서 그리고 프랑스와 영국에서 테라와다 비구생활을 하다가 마하야나 선승으로 전환하여 5년여 동안 영국유학을 하면서 영어를 습득한 덕에 지난 30여 년 동안 통역과 국제 불교활동을 분주하게 해오고 있다. 그나마 영어 덕에 밥을 먹고 나를 존재케 한 것 같다. 내가 영어를 본격적으로 하게 된 계기는 방콕의 왓 보워니웻 사원인데, 당시에는 많은 수의 외국(특히 영어권) 비구들과 재가 수행자들이 이 사원에서 수행하거나 아니면 다른 사원으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 숙소로 이용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과 하루 온 종일 영어로 회화연습을 한 결과 3개월 만에 귀가 열리고 입이 벌어졌다. 참으로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을 정도로 영어를 습득하는데 너무나 유리한 조건에서 영어회화를 완벽하게 습득했던 시절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당시 한국의 학교에서 아무리 영어 공부를 해도 회화가 되지 않았던 것은 비단 필자만의 경우가 아니다. 그래도 영영사전을 들고 타임지를 옆에 끼고 폼을 재던 시절이 있었으나, 귀가 열리지 않고 입이 벌어지지 않았다.

처음 태국에 갈 때는 비구생활을 조금하다가 미국으로 갈 계획이었다. 그때만 해도 아메리칸 드림으로 나의 머릿속은 꽉차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미국 대신 영국을 택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영어로 불교 공부하는 데는 더 장점이 있었던 것 같다. 태국에서 비구생활을 하면서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의 문하에서 수행했던 시절이 평생 나를 있게 해준 받침대가 되어주었다. 나는 한순간이라도 나의 스승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를 잊어 본 적이 없다. 물론 지금까지 몇 분의 스승이 계시고 그 분들을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로되, 태국불교와 세계불교를 논할 때,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께서는 저에게 큰 영향을 주신 분이다. 내가 왓 보워니웻 사원에서 비구계를 받고 수행할 때, 그는 차기 상가라자로 내정되어있었다. 그 후 1989년에 상가라자로 등극하셨다. 상가라자가 되 신 후, 나는 여러 차례 그를 친견한 바 있음을 이미 밝힌 바 있다. 그 때 함께 비구생활을 했던 네팔 출신 비구는 사서실장으로 계시고, 미국 출신 비구는 지금도 왓보워니웻 사원을 지키고 있었는데 이제는 고참 비구로서 우포사타(포살) 법회를 이끌고 계신다.

당시 나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227조항의 계목을 준수하면서 공부하는 것이었다. 나는 비구계를 받고 처음 나에게 닥친 감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비구에게 수행이란 별다른 것이 아닌 비구로서의 계율준수였다. 60년대 한국불교에서 사원생활을 하면서 알고 있던 비구의 개념이 완전히 무너졌다. 내가 알고 있던 비구의 개념이 180도 바뀌는 것이었다. 태국사원에서는 아침에 눈뜨자마자 가사를 수하고 맨발로 거리로 나아가 탁발을 해야 했다.
금강경에 익숙해있던 필자로서는, 法會因由分 (법회인유분)에서,

“如是我聞 一時 佛在舍衛國 祇樹 給孤獨園 與大比丘衆 千二百五十
여시아문 일시 불재사위국 기수 급고독원 여대비구중 천이백오십
人 俱 爾時 世尊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大城 乞食 於其城中 次第
인 구 이시 세존식시 착의지발 입사위대성 걸식 어기성중 차제
乞已 環至 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걸이 환지 본처 반사흘 수의발 세족이 부좌이좌 하시다.”

사실 이 구절이 태국에 오기 전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구족계를 받고 황색가사를 수하고 막상 탁발을 하고 보니 이 구절이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발우를 들고 거리에 나서니 재가 신도들이 여기저기서 공양을 바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탁발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승가는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 정도이고, 나머지 테라와다 불교 국가에서는 이 탁발이 여의치 않아 보였다. 테라바다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스리랑카는 신도들이 공양을 사원으로 직접 가져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탁발이 제대로 행해지는 나라는 태국과 미얀마 그리고 라오스 캄보디아 정도가 아닌가 한다.

테라와다 비구는 오전에만 음식을 먹기 때문에 아침에 탁발해 온 음식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남겨두었다가 점심 공양을 한다. 때때로 신도 집에 공양 청(請)에 응하기도 한다. 테라와다 불교에서는 불상 앞에서 불공하는 의식이 없고, 비구에게 직접 공양을 올리는 것을 큰 불공으로 여긴다. 불공에 익숙해 있던 필자로서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하기야 지금 한국불교에서는 불공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아침 탁발이 끝나면 점심 공양 전에는 비구들은 법당에 모여서 예불을 드린다. 점심 공양 후, 1시간 정도 낮잠을 잔 다음 빨리어 찬팅(念誦)을 하거나 율장 공부를 한다. 대부분의 젊은 비구들은 승가대학에 공부하러 가는데, 왓 보워니웻 사원 산하에는 유명한 마하마꿋 불교대학이 있어서 필자도 이 대학에서 영어와 빨리어 강의를 듣고 상좌부 불교에 대한 공부를 한 것이 두고두고 밑거름이 되었다. 또한 내가 머물던 가나숭이라는 국제관에는 좋은 사원 도서관이 있었다. 영어불서가 수천 권 소장되어 있어서 유용했고, 마침 미국인 교수 출신 비구가 있어서 그에게 영어로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다.

비구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 가운데 하나는 한 달에 두 차례 있는 우포사타(Uposatha)인데, 우리에게는 포살(布薩)로 알려져 있다. 정주(淨住).장양(長養).재(齋).설계(說戒)등으로 번역되는데, 동일 지역의 모든 비구가 모여 227계목으로 된 파티목카(Pāṭimokkha)인 계경(戒經)을 송(誦)함을 듣고, 자기반성을 하고, 죄과를 고백참회(告白懺悔)하는 것을 말한다. 즉 계(戒)에 정주(淨住)하여 선법(善法)을 장양(長養)하기 위해서이다. 기억력이 좋은 한 비구가 단상에 올라 앉아 227 조항의 빨리어로 된 계목을 외우면, 다른 비구들은 조용히 들으면서 혹시라도 파계한 조항이 없는지 반성하고 살피는 시간을 갖는다. 대개 30분 정도 소용되는데, 25분 만에 외우는 기록을 세우기도 하는데, 이 시원에서는 20분 만에 외웠던 한 비구의 기록을 아직 깨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빠른 속도로 암송하면서도 정확성을 기해야 하고, 빨리어 발음이 틀리지 않아야 한다. 이 계목을 잘 외우는 비구는 특혜를 받는다. 태국에는 빨리어 시험이 있는데, 대개 최고 급수인 9급을 딴 비구들이 파티목카를 암송한다. 이 전통은 부처님 당시부터 행해져 오던 비구승가의 큰 행사였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2500년간 이 전통이 단절되지 않고 행해지고 있다는 것은 기적이다. 태국과 미얀마에서 이 전통은 그대로 지켜지고 있으며, 라오스와 캄보디아에서 부분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미얀마와 태국은 이점에 있어서 테라바다의 적통성을 부여받고 있는 종주국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이제 상가라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태국에서 처음 상가라자 제도가 생긴 것은 라마 I 세 때인 1782년이다. 라마 5세 때인 1902년 승가법(僧伽法)이 발효된 이후에는 다수파인 마하 니까야 파와 소수의 보수 개혁파인 담마유티카(태국에서는 탐마윳으로도 발음) 니까야에서 번갈아 가면서 상가라자를 임명해 왔다. 담마유티카는 마하 니까야 파에서 갈라져 나온 신생 파로서 몽꿋 왕이 비구로 있을 때 만들어진 개혁파이다. 라마 4세로 등극하기 전에 비구 와지라나노(Vajirañāṇo)로서 왓 보워니웻 사원의 주지로 있으면서 불교개혁을 주도했다. 이런 전통을 간직한 사원에서 배출된 제 19대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는 태국의 상가라자 가운데서 제8대 상가라자의 40년 재위 다음으로 24년간 상가라자의 지위에 계시면서 태국승가의 수장으로서 큰 역할을 하시고 작년(2013년 10월)에 입적하셨다. 승왕의 공식 이름은 썸뎃 냐나상와라 수바다나 마하테라이다. 그는 태국 칸차나부리에서 출생하여 14세에 출가하여 나콘파톰의 왓사네하 사원에서 승가대학을 마치고 2년 후 왓보워니웻 사원으로 옮겨서 입적할 때 까지 이 사원에 주석하셨고, 1941년 그의 나이 27세 때 빨리어 9급 시험에 합격하였다. 이후 그는 오직 수행에 매진하여 1989년 4월 21일에 상가라자에 오르셨는데, 영어가 유창하고 다수의 태국어 및 영어 저술을 남기셨고, 태국 불교승가를 명실상부한 테라와다의 적통성을 지닌 비구승가로 체제를 강화하셨다. 상가라자에 대한 소개는 다음 기회에 조금 더 하기로 하고 다음은 태국에서 수행하는 외국 비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치란 박사
해동경전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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