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불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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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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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태국불교-3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23, (월) 9:16 am

태국불교!!

왓 보워니웻 사원
태국에는 많은 사원이 있는데, 태국의 수도 방콕에 약 4백 여 개가 있고, 그 밖의 지역에 3만개 이상의 대소 사원이 존재한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왓 보워니웻 사원(Wat Bowonniwet Vihara Rajavaravihara)은 방콕 시내 프라 나콘 디스트릭(구)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태국 방콕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카오산이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이 사원에서 비구계를 받고 아침마다 탁발(핀다빠다)을 했던 80년대 초에는, 소수의 서구인들이 태국 국내나 다른 동남아 또는 인도등지를 향해 출발하기 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항공권을 준비하던 시절이다. 비영어권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6개월만 체류하면 영어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영어가 공용어로 통하는 일종의 국제 타운이다. 지금도 카오산의 명성은 여전하고 법위가 더 확장되고 여기를 찾는 외국 여행객은 더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구미인은 물론 아시아인들(일본 한국 등)까지 합세하는 추세이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가끔 눈에 띠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이 들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까지 생긴 것을 보니, 한국인들에게도 이곳이 결코 낯선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작년에 미국에 유학중인 20대 초반의 한국청년이 이곳 왓 보워니웻 사원에서 비구계를 받고 한 달 동안 수행할 수 있도록 주선한 바 있다.

1: 왓보워니웻 사원의 야경, 1357년에 건립된 프라 뿌따친나시 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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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왓 보워니웻 사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사원은 태국 상좌부의 보수 개혁파인 탐마윳 니까야(Thammayut Nikaya 부처님의 가르침)의 본부사원이다. 이 사원은 태국 짜끄리왕조의 후원사원이다. 이 사원의 건물가운데 프라 뿌따친나시 법당은 1357년에 건립된 것이다. 이후 짜끄리 왕조의 많은 왕자들이 이 사원에서 공부하고 비구생활을 하였는데, 현재의 왕인 푸미폴 국왕과 왕자가 에메랄드 사원에서 수계의식을 거행한 후 이 사원에 와서 비구생활을 했는데, 작년에 입적하신 승 왕의 안내로 수행한 바 있다.

태국 현대 정치사에서 왓보워니웻 사원은 타놈 끼띠카쫀(1911-2004)의 이야기를 빗겨 갈수 없다. 그는 태국의 군인, 정치가로 1931년 왕립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방콕 주둔 제1사령관이 되어 1957년 쿠데타를 지지, 1958년 총리에 잠사 올랐다가, 부총리 겸 국방장관이 됐다. 1963년 12월 사릿 타나랏이 죽자 뒤를 이어 총리가 되어 8번째 태국의 헌법개정안을 위해 기초할 의원들을 임명했고 1968년 6월 새 헌법을 제정했다. 1973년 학생폭동으로 군부의 지지를 잃고 국외로 망명했다가 1976년 은밀히 귀국, 왓보워니웻 사원에서 가사를 수하고 비구생활을 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뉴스였다. 그 후 환속하여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2004년 사망했다. 그가 수상직에서 물러나자 그의 후임에는 산야 담마삭티(Sanya Dharmasakti(1907–2002) 법학교수가 취임했는데, 담마삭티 수상은 나중에 세계불교도우의회장을 역임해서 필자도 여러 차례 만났고 함께 활동한 바 있다.

2: 2013년 10월24일 100세로 입적하신 제 19대 태국 승왕, 썸뎃 프라 냐나상와라
(Somdet Phra Nyanasamvara) 비구 영전에서 승왕의 입멸을 애도하는 빨리어 독송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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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꿋 왕 라마 4세
이 사원이 짜끄리왕조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왕자 출신 비구 몽꿋(Bhikkhu Mongkut)이 1836년에 이 사원에 와서 주지직을 맡으면서부터다. 비구 몽꿋의 수계명은 와지라나노 (Vajirañāṇo)이다. 그는 나중에 라마 4세로 태국국왕에 등극하는데, 현재의 푸미폴 국왕은 이 라마 4세인 몽꿋 왕의 증손자이다. 라마 4세(1804-1868)는 몽꿋 왕으로 알려진 태국의 짜끄리 왕조의 네 번째 군주이다. 재위 기간은 1851년에서 1868년까지이며, 타이의 가장 존경 받는 왕 중의 한 분이다. 1946년 영화 안나 레오노웬즈가 6년간의 궁중 생활 이후에 쓴〈안나와 시암의 왕〉이라는 영화를 바탕으로 한《왕과 나》라는 연극은 외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그의 통치기간에 서양 제국주의의 압력이 최초로 시암에 밀려들어 왔을 때, 서양의 개혁을 포용했고, 기술과 농업 분야에서 시암의 현대화를 시작했다. 그의 묘비명에 있는 “시암의 과학과 기술의 아버지”라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몽꿋은 1824년 비구가 되었고, 비구 생활 중 부왕의 서거 소식을 듣지만, 차기 왕으로 책봉되지 못한다. 이유는 대신들의 농간으로 이복동생이 왕위에 올랐는데, 몽꿋은 왕비인 정실의 아들이었지만, 후비의 아들인 이복동생이 라마 3세로 등극하자, 몽꿋은 비구로서의 신분을 27년간 계속 유지하는데, 이 기간 그는 불교개혁을 주도하게 되고, 탐마윳 니까야(부처님 가르침 종파)를 창종하게 된다. 1833년 불교개혁을 시작하고 1836년 이 왓보워니웻 사원 주지로 부임하면서 이 사원은 태국불교 개혁파의 산실이 되었다. 그가 개혁을 주도하게 된 배경은 태국 전국을 만행하면서 비구들이 너무 게으르고 계율을 준수하지 않은 것을 보고, 개혁을 결심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불교개혁이란 다름 아닌 정법구현과 율장에 따른 계율준수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시암 왕실의 결정으로 라마 4세로 등극해야할 운명 때문에 비구계를 반납하고 18년간 왕위에 있게 되지만, 불교개혁은 계속하게 된다. 그는 서양의 근대지식을 접하고, 라틴어 영어를 배우고, 선교사로부터 천문학과 항해술에 대한 지식을 습득했다고 한다. 그는 18년간 재위에 있으면서 시암을 발전시켰고, 불교개혁을 위한 초석을 더욱 다지고 후원했는데, 1868년 64세로 서거하고 그의 아들 쭐라롱콘이 라마 5세로 왕위에 올라서 부왕의 불교개혁 정책은 더욱 강화했다. 부왕의 아들이자 이복동생인 와지라나나(Vajirañana)를 비구가 되게 하여, 불교개혁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왕자 출신 와지라나나 비구는 제10대 상가라자인 승왕에 추대되었다.

와지라나나 승왕과 불교제도확립
빨리어 이름으로는 와지라나나와로로사(Vajirañāṇavarorasa(1860-1921이고, 최고 호칭은 썸뎃 프라마하사마나차오 크롬쁘라야 와지라나나와로로사(Somdet Phramahasamanachao Kromphraya Vajirananavarorasa)이다. 승왕 와지라나나는 현재 태국불교의 제도를 확립하신 분이다. 왕자 출신 비구로서 그는 빨리어와 교학 학습에 전념하고, 1893년 마하마꿋 불교대학이 문을 열자, 빨리어와 교학 학습은 물론 시암어 역사 과학과 종교학 등의 교과과정을 설계하고 그의 불교개혁을 주도하게 된다. 그는 빨리어 문법서를 저술하고, 빨리어 국가시험제도를 확립한다.
태국 초등교육을 사원에서 실시하는 역할을 했고, 1894년 「법안(法眼)」이라는 불교잡지를 창간하여 지금까지도 발행되고 있다. 1902년 태국 최초 승가법에 의한 태국 최고 승가의 행정기관이 설립되었다. 1910년 그는 태국 승가의 최고 수장에 임명되었고, 1902년의 승가법에 의거하여 승가최고회의를 제도화하여 태국승가를 통괄하고 의결하는 승가최고의 권위기관으로 확립했다. 그는 최고 상가라자의 지위에 있으면서 많은 업적을 남기고 1921년 입적했다.
그의 율장입문(律藏入門) I.II를 살펴보겠다.

태국승가와 계율
누차 말하지만, 태국 승가의 계율정신은 내가 아는 한 세계불교계에서 가장 모범적이다. 태국에서 비구생활은 그야말로 율장 그 자체의 실천이다. 물론 미얀마나 라오스 캄보디아 승가도 비교적 율장 준수에 철저하다. 이들 상좌부 가운데서도 태국 승가는 제도적으로나 사회생활면에서 비구들은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게끔 제도화 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비구가 시장 통을 돌아다닌다든지 아니면 호텔 같은 곳을 출입할 수가 없다. 비구는 가사가 여인의 옷자락에 닿으면 오히려 그 여자 분이 복을 받지 못한다 하여, 비구의 가사에 몸이 닿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한다. 이러한 것이 생활 속에서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상당수의 스님들은 나에게 좋지 않는 감정을 갖는다. 왜 남의 나라 불교를 칭송하느냐고. 하지만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사실은 사실대로 말하고 싶다. 불교공부를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의 입장에서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지 않는가. 게다가 우리나라 불교는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많은 불교인들 더욱이 지도자급에 있는 분들은 이런 위기의 상황을 느끼지 못하는 듯해서 안타깝다. 갈수록 교세가 약화되고 불교로부터 등을 돌리는 신도들이 자꾸 증가한다. 문제는 승가이다. 승가가 건실해야 한다. 승가가 건실하고 청정하지 않으면 재가는 의지할 언덕이 사라진다. 이런 면에서 태국불교 승가는 청정성과 순수성을 잘 유지 계승하고 있다. 태국 승가는 계율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지금 이 글을 작성하는 순간, 대한불교조계종의 대선사이신 송담 대종사께서 조계종을 탈종한다는 선언을 하시고 언론에 공고했다는 뉴스를 접하고서는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조계종 종정반열에 계신 분이 그의 일부 제자들과 조계종 탈종을 한다는 것은 정말 사실로 믿기가 어렵지만, 사실로 확인되었다. 불자의 한 사람으로서 슬프기 그지없다. 다시 태국승가 이야기로 돌아가자.

사진1:The Enterance To The Vinaya, Vinayamukha I,II(율장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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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80년대 초, 왓 보워니웻 사원에서 비구계를 받고 남방 비구로서 수행할 때, 가장 나를 압박하는 것은 계율이었다. 비구생활 그 자체는 바로 계율준수 그 자체였다. 해가 뜨기 전부터 해가 지고 밤이 되어 잠이 들 때 까지, 비구의 삶은 율장을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 것이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비구계를 받고 내가 받아든 책이 바로 이《율장입문 I,II(The Enterance To The Vinaya), Vinayamukha》두 권이었다. 이《율장입문》I,II는 몽꿋 왕의 불교개혁을 실현하기 위해서 책임을 짊어진 제 10대 태국 상가라자였던 와지라나나와로로사(Vajirañāṇavarorasa(1860-1921)비구가 저작한 율장에 관한 저술이다. 태국의 비구 승가를 위해서 저술되었고, 불교대학에서 교재용으로 쓰던 텍스트였다. 태국어 초판이 1915(불기 2459)년에 출판된 이래로 현재까지 100판도 넘게 출판되었고, 영어판은 1969(불기 2512)년에 초판이 발간된 이래로 수십 판이 발행되었다. 50년 전부터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태국 승가에 와서 비구계를 받기 시작하자, 왓 보워니웻 사원 산하에 있던 마하마꿋 불교대학 출판부에서 영역하여 영어판을 내놓게 되었다. 작년에 입적하신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께서 마하마꿋 불교대학 학장으로 계실 때 영문판을 처음으로 간행하셨는데, 영역은 호주 출신으로 왓 보워니웻 사원에서 비구계를 받고 수행하던 프라 칸티팔로 비구와 교수 수친 씨가 공역했다.

《율장입문》 I 권은 1장부터 10장으로 구성됐고,《율장입문》 II권은 11장부터 22장으로 구성됐다.《율장입문》I의 1장은 우빠삼빠다(Upasampadā)인 구족계(具足戒)를 설명하고 있다. 구족계를 받기 위해서는 다섯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1. 남자여야하고, 2. 20세가 되어야 하며, 3. 남자로서 거세되지 아니한 자여야 한다. 말하자면 내시는 안 된다는 의미. 4. 부모를 살해한 자는 안 된다. 5.전에 비구로서 4 파라지카(바라이죄)를 범하지 않았어야, 그리고 비구였을지라도 잘못된 견해를 갖고 있다든지 다른 종교(외도)에 몸담았던 자는 안 된다. 제 2장은 율장이란 무엇인가? 제 3장은 파티목카(Pali:Pāṭimokkha, Sanskrit:Patimokha)를 소개하는데, 매우 중요한 장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라제목차(波羅提木叉)로 알려져 있는데, 비구가 지켜야할 계본(戒本)이다. 별해탈(別解脫), 별해탈계(別解脫戒)라 하여 몸과 입으로 범한 허물을 하나하나 따로 해탈하게 한다는 뜻으로 처처해탈(處處解脫)이라고 의역하기도 하는데, 남방 상좌부에서는 비구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실천 덕목이 된다.

남방 상좌부는 이 계본에 의하면 227 계(조항)가 되고, 북방은 법장부의 사분율(四分律)에 의해서 250 조항이 되며, 비구니계는 348 조항이 되는데, 남방은 비구니 계맥이 단절됐다고 해서 이《율장입문》에서는 다루지 않고 있다. 한국불교는 중국에서 전해졌는데, 법장부의 사분율 전통에 따라서 구족계를 받았다. 사실, 사분율은 남방 상좌부의 율과 거의 같다. 티베트는 근본설일체유부의 율에 따라서 빅슈로서 구족계를 받는다. 이렇게 보면 율장 상으로는 남방 상좌부나 중국 한국(사분율) 그리고 티베트가 거의 다 같은 율장에 의해서 비구(빅슈)로서 구족계를 받고 있는 것이다. 교리나 사상적으로는 상좌 대승 금강승(티베트) 선불교 등등으로 분류된다고 할지라도 승가구성원인 비구(비구니)는 같은 율장에 의해서 구족계를 받고 수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국가에서 승려가 결혼하도록 칙령을 반포해서 사실상 비구승가가 없어졌고, 극히 극소수의 비구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일제치하에서 한국의 비구 승가를 대처화한 조선 총독부는 한국불교계에 대악을 저질렀다. 오늘날 한국불교 승가가 시끄러운 것은 일제에 원인이 있다. 그런데도 학문적으로 조금 선진적이라 하여 일본불교학자나 그들의 저술이라면 자기 조상 신주단지인양 모시고 흠모하는 자들의 담론을 보노라면 그들의 정신 상태를 이해 못하겠다. 학술적으로 아무리 왕성한 담론을 펼쳐도 비구승가가 무너지면 불교교단은 존립이 어렵다고 본다. 일본처럼 국가가 나서서 결혼을 허용하고 전 국민이 동의한다면 모르겠으나 우리 한국불교는 아직 그런 역사가 없다. 한국불교는 비구승가가 원칙이다. 여기서 이 문제는 더 이상 논의하지 않겠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더 자세하게 논해보기로 하고, 태국불교 승가로 돌아가서 마무리를 하자.

사진2: 태국의 마하마꿋 불교대학 나콘빠톰 캠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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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3: 작년에 입적하신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의 영전에
조문하는 WFB 관계자들과 왓보워니웻 사원에서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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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장입문》I,II는 태국 승가의 율장입문 해설 지침서로서, 태국의 비구들에게는 필수과목과도 같은 텍스트이다. 그러므로 외국인으로서 태국에 와서 비구생활을 하는 수행자들에게 이 영문판《율장입문》I,II는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기본 교재이다. 필자도 비구계를 받고 수행생활을 하면서 왓 보워니웻 사원 경내에 있는 마하마꿋 불교대학에서 작년에 입적하신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의 훈도를 받으면서 율장을 공부할 때, 이 텍스트를 집중해서 연구했던 때가 엊그제 같다.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께서는 평생 비구로서 100세가 되도록 율장을 준수하면서 수행을 하신 분이다. 평생 아침에 탁발을 빠뜨린 적이 없다. 사원 주의의 거리에 나가셔서 탁발하셨다. 그리고 항상 방문을 열어 놓으시고 불자님들이나 내방객을 맞이하여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비구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셨다. 내가 이렇게 태국의 비구 승가를 칭송하는 것은 세계 모든 불교의 비구승가가 건실하고 청정하고 순수해야 세계불교가 발전하고 정법이 구현되고 불교라는 종교가 영원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함에 그 의도 있음을 독자들께서는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다음은 태국의 현대승가와 썸뎃 냐나상와라 상가라자에 대해서 소개하고자 한다.

이치란 박사
해동경전어 아카데미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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