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불교와 왕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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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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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태국불교와 왕실(2)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10-23, (월) 3:43 am

왕실사원 왓 보워니웻

사진1: 태국불교 개혁보수파의 총본산 왓 보워니웻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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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는 많은 사원이 있는데, 태국의 수도 방콕에 약 4백 여 개가 있고, 그 밖의 지역에 3만개 이상의 대소 사원이 존재한다. 지금 소개하고자 하는 왓 보워니웻 사원(Wat Bowonniwet Vihara Rajavaravihara)은 방콕 시내 프라 나콘 디스트릭(구)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태국 방콕을 찾는 외국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있는 카오산이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이 사원에서 비구계를 받고 아침마다 탁발(핀다빠다)을 했던 80년대 초에는, 소수의 서구인들이 태국 국내나 다른 동남아 또는 인도등지를 향해 출발하기 전, 이곳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정보를 교환하고 항공권을 준비하던 시절이다. 비영어권 여행객들이 이곳에서 6개월만 체류하면 영어 회화가 가능할 정도로 영어가 공용어로 통하는 일종의 국제 타운이다.

사진2: 카오산 거리를 활보하는 서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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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카오산의 명성은 여전하고 법위가 더 확장되고 여기를 찾는 외국 여행객은 더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이제는 구미인은 물론 아시아인들(일본 한국 등)까지 합세하는 추세이다. 한국의 젊은이들도 가끔 눈에 띠는 것을 보니 격세지감이 들었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 하우스까지 생긴 것을 보니, 한국인들에게도 이곳이 결코 낯선 곳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에 미국에 유학중인 20대 초반의 한국청년이 이곳 왓 보워니웻 사원에서 비구계를 받고 한 달 동안 수행할 수 있도록 주선한 바 있다.

한국불교에서는 출가자 감수로 불안감을 느끼고 있지만 태국은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사원은 항상 만원이다. 게다가 젊은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일생에 비구스님이 되어봐야 하는 관습과 전통이 태국사회 깊숙이 뿌리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태국 전역에는 어디를 가나 사원이 있고 샤프란(saffron)에서 추출한 샛노란 가루로 물들인 노란 가사를 수하고 다니는 비구스님들을 목격하게 된다. 황금색 사원과 샤프란 황색 가사를 입은 비구스님들을 빼고 나면 태국은 재미없는 나라가 되고 말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해 보이지만, 당사자인 비구스님들은 철저한 자기 통제와 금기적인 일상 속에서 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지키면서 태국사회의 버팀목으로서의 역할과 위상을 지키고 있다.

사진3:태국의 비구스님들이 명상에 잠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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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왓 보워니웻 사원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 사원은 태국 상좌부의 보수 개혁파인 탐마윳 니까야(Thammayut Nikaya 부처님의 가르침)의 본부사원이다. 이 사원은 태국 짜끄리왕조의 후원사원이다. 이 사원의 건물가운데 프라 뿌따친나시 법당은 1357년에 건립된 것이다. 이후 짜끄리 왕조의 많은 왕자들이 이 사원에서 공부하고 비구생활을 하였는데, 현재의 왕인 푸미폴 국왕과 왕자가 에메랄드 사원에서 수계의식을 거행한 후 이 사원에 와서 비구생활을 했는데, 작년에 입적하신 승 왕의 안내로 수행한 바 있다.

사진4; 국왕의 장례에 앞서서 왓 보워니웻 사원에서 비구스님들에게 공을 올리는 행사가 있었는데, 이 사원에 주석하고 계시는 한 큰 스님이 와ㅣ국 불교지도자 일행을 접견하고 기념촬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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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 현대 정치사에서 왓보워니웻 사원은 타놈 끼띠카쫀(1911-2004)의 이야기를 빗겨 갈수 없다. 그는 태국의 군인, 정치가로 1931년 왕립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방콕 주둔 제1사령관이 되어 1957년 쿠데타를 지지, 1958년 총리에 잠사 올랐다가, 부총리 겸 국방장관이 됐다. 1963년 12월 사릿 타나랏이 죽자 뒤를 이어 총리가 되어 8번째 태국의 헌법개정안을 위해 기초할 의원들을 임명했고 1968년 6월 새 헌법을 제정했다. 1973년 학생폭동으로 군부의 지지를 잃고 국외로 망명했다가 1976년 은밀히 귀국, 왓보워니웻 사원에서 가사를 수하고 비구생활을 한 것은 너무나 유명한 뉴스였다. 그 후 환속하여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2004년 사망했다. 그가 수상직에서 물러나자 그의 후임에는 산야 담마삭티(Sanya Dharmasakti(1907–2002) 법학교수가 취임했는데, 담마삭티 수상은 나중에 세계불교도우의회장을 역임해서 필자도 여러 차례 만났고 함께 활동한 바 있다.

사진5: 태국이나 남방 상좌부에서는 부처님께는 공양을 올리지 않고 꽃 공양이나 향을 피운다. 국왕의 장례식을 앞두고 비구스님들께 아침공양을 올리고 있는 불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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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불교는 한마디로 스님들의 불교요 신도들의 불교이다. 부처님의 불교가 아니다. 부처님께는 촛불을 켜고 향을 피우고 꽃을 올려서 부처님을 찬탄하지 밥을 올린다든지 과일을 올리는 의식은 하지 않는다. 부처님의 제자들로서 불교를 이어가는 비구들, 즉 제자들에게 직접 공양을 올리는 것을 불교로 생각하고 부처님을 공경하는 공덕으로 보는 것이다. 왜 불자들은 스님들을 이렇게 공경하고 부처님을 대신해서 잘 모실까를 생각해 봐야 한다. 그것은 태국불교의 내실에 있다고 해야할 것 같다. 태국에서 비구생활은 그야말로 율장 그 자체의 실천이다. 물론 미얀마나 라오스 캄보디아 승가도 비교적 율장 준수에 철저하다. 이들 상좌부 가운데서도 태국 승가는 제도적으로나 사회생활면에서 비구들은 계율을 지키지 않으면 안 되게끔 제도화 되어 있다. 예를 들어서 비구가 시장 통을 돌아다닌다든지 아니면 호텔 같은 곳을 출입할 수가 없다. 비구는 가사가 여인의 옷자락에 닿으면 오히려 그 여자 분이 복을 받지 못한다 하여, 비구의 가사에 몸이 닿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한다. 이러한 것이 생활 속에서 그대로 구현되고 있다. 이런 말을 하면, 상당수의 스님들은 나에게 좋지 않는 감정을 갖는다. 왜 남의 나라 불교를 칭송하느냐고. 하지만 욕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사실은 사실대로 말하고 싶다. 불교공부를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불교도의 입장에서 사실을 왜곡할 수는 없지 않는가. 게다가 우리나라 불교는 지금 위기에 처해있다. 많은 불교인들 더욱이 지도자급에 있는 분들은 이런 위기의 상황을 느끼지 못하는 듯해서 안타깝다.

태국 방콕: 보검 이치란 박사
WFB 세계불교대학(WBU)집행이사
해동세계불교연구원 원장 http://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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