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불교와 왕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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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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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COLON 2016-11-29, (화) 5:42 am

태국불교와 왕실(1)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9-25, (월) 7:21 am

왕이 되려면 비구의 경험 있어야

태국은 지금 국상중이다. 지난 해 10월 13일 서거한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을 조문하는 추모객이 1천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태국의 왕실 장례 일정에 따라서, 오는 10월 말에 왕궁 사원인 왓 프라케오 맞은 편 광장인 사남루앙에서 장례식과 함께 화장을 하게 된다.

사진1: 지난해 10월 13일 서거한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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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왕궁사원에 마련된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의 빈소를 찾는 조문행렬. 10월 말경 장례식과 화장식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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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불교와 왕실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 있다. 전형적인 호국불교의 상징 그 자체라고 하겠다. 불교와 왕실의 관계는 바늘과 실과 같은 존재이다. 현대 태국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선 왕실을 먼저 알아야 하고, 왕실을 이해하려면 불교를 또 알아만 오늘의 태국불교와 사회를 이해하게 된다고 믿는다.

불교가 인도에서 발생할 때부터 왕권과는 밀접한 관련 속에서 성장했다. 다른 종교의 태동과는 다르게 불교는 시작부터 왕권의 보호를 받으면서 퍼져 나간 종교였다. 불교 창시자인 고타마 싯다르타 자신이 왕자라는 신분도 중요한 하나의 원인이 되었겠지만, 불교탄생 그 자체가 왕권과의 관계아래서 형성됐다. 이런 불교의 전통 때문에 불교가 확장되면서 그 지역의 왕권과는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으면서 발전해 갔다. 이런 역사적 연유를 오늘의 민주적 관점에서 부정하거나 어떤 선입견을 갖는다면 불교사는 없는 것이다. 태국불교 왕실에 대한 소개를 몇 차례에 걸쳐서 소개하고자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 불교 국가 중에서 왕권과 밀접한 관련 속에 있는 불교국가는 태국이 단연 선두라고 할 것이며, 캄보디아 또한 왕권과의 강한 유대관계에 놓여 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200여 년 간 부단하게 불교와의 관련을 고려할 때, 태국왕실과 불교가 단연 선두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태국 왕의 시작은 짜끄리 왕조로부터이다.

짜끄리 왕조는 1782년 딱신 대왕의 톤부리 시대부터라고 할 수 있다. 짜끄리 왕조를 일으킨 라마 1세(1737-1809)는 본명이 쨔오프라야짜끄리였다. 그는 딱신 왕 밑에서 장군을 지내고 있었으며 전쟁에서 공적이 많았다. 톤부리 왕조의 피아딱신 왕을 제거하고 스스로 왕위에 올라 수도를 방콕에 정하였다. 재위 기간 동안 왕조를 튼튼히 하였으며, 과거의 법전을 수집·개정하여 새로운 법전을 편찬해 내기도 하였다. 그는 짜끄리 왕조의 창시자로, 초대 국왕(재위 1782년-1809년)으로 라마1세가 된다. 이번에 서거한 왕은 라마 9세에 해당된다.

사진3:짜끄리왕조의 창시자 라마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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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마1세는 아유타야 왕가의 혈통을 받고 태어난 아유타야 시대의 사관, 차오프라야 코서판의 손자였다. 짜끄리도 아유타야 왕조 말기에 사관으로 벼슬을 했으며 붓다 요드파 출라로께의 벼슬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벼슬을 한 아유타야 왕조는 1767년에 버마에 점령되었고, 다음 해 중국계 세력인 딱신이 버마군을 몰아내고, 톤부리 왕조를 일으켜 태국의 왕으로 등극했다. 이때 붓다 요드파 출라로께(라마 1세)는 딱신 왕의 신하가 되었다. 출라로께는 딱신이 라용으로 군사를 일으켰을 때, 딱신의 어머니를 보호한 공훈으로 승진하고 많은 전과를 올려 차례차례 승진을 해서 사령관에 올랐다.

톤부리 왕조의 딱신 왕은 말년에 정신착란을 일으켰으며, 차오프라야(라마 1세)는 국내의 혼란을 두려워하여, 캄보디아 원정을 중단하고 톤부리로 돌아와 역성혁명을 일으켜 딱신 대왕을 폐위한 후, 왕위에 올랐다. 왕이 되었기 때문에 이름을 붓다 요드파 출라로께로 바꿨으며, 버마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수도를 톤부리에서 차오프라야 강을 사이에 두고 맞은편인 동쪽인 방콕에 건설하여 천도 한 후, 짜끄리 왕조를 창설했고, 딱신 왕 보다는 아유타야 왕조의 신권정치를 계승했다. 아유타야 왕조와 마찬가지로 그는 친 불교적이었으며, 국내가 안정되자 많은 사원을 세우고, 불교를 장려했다. 관광지로 잘 알려진 왕궁사원(왓 프라케오:에메랄드 사원)도 그가 세웠고, 후에 출라롱꼰 왕(라마 5세)은 라오스에서 빼앗은 에메랄드 불상을 이 사원에 봉안하기도 했다. 짜끄리왕조는 라마 1세 (푸타욧파쭐라록), 라마 2세 (푸타릇라나팔라이), 라마 3세 (쩨사다보딘), 라마 4세 (몽꿋), 라마 5세 (쭐랄롱꼰), 라마 6세 (와치라웃), 라마 7세 (프라차티뽁), 라마 8세(아난타 마히돈), 라마 9세(푸미폰 아둔야뎃)를 거쳐서 라마 10세(마하 와치랄롱꼰)에 이르고 있다.

사진4: 라마 10세로서 현 태국 국왕으로 등극한 마하 와치랄롱꼰의 초상화가 걸린 왕궁사원에서 일본 고승과 조문을 하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는 한국불교 대표인 필자 이치란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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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필자가 라마 9세의 조문에 참가하게 된 것은 세계불교도우의회(WFB)의 세계불교대학(WBU) 집행이사 자격으로 참가하게 되었다. WFB는 태국왕실과는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태국 왕실은 WFB의 후원자이기 때문이다. WFB 본부가 1950년에 창설되어 실론의 콜롬보에서 랭군(양곤)으로 다시 방콕으로 이동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바로 태국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과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사진5: 외국에서 온 불교대표단이 왕궁사원에 안치된 푸미폰 아둔야뎃 전 국왕의 빈소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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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 9월 20일부터 22일까지 조문을 마치고 귀국했다. 혼자만의 경험으로 간직하기엔 너무나 아쉬울 것 같아서 정리해 보기로 한 것이다.

태국 방콕: 보검 이치란 박사
WFB 세계불교대학(WBU)집행이사
해동세계불교연구원 원장 http://www.haedongacademy.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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