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론불교3 / 섬 숲속 암자 불교학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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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m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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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론불교3 / 섬 숲속 암자 불교학파

전체글 글쓴이: lomerica » 2017-01-22, (일) 12:25 pm

실론의 한 섬에 암자를 설립하여 불교학파를 형성한 냐나티로카 마하테라 (Nyānatiloka Mahāthera(1878-1957) 대장로 비구

1907년 버마에서 유럽출신 비구제자들과 함께 가운데 앉은 분이 냐나포니카 마하테라

도단두와 섬 암자 불교학파의 산실

섬 암자 불교학파의 제 2세대이신 냐나포니카 마하테라 (Nyanaponika Mahathera(1901–1994)

섬 암자 불교학파의 3세대이신 비구 보디(Bhikkhu Bodhi(1944-현재) 큰 스님

나는 젊은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불교에 관한 일관된 생각은 구도적(求道的) 일념이라고나 할까, 뭔가 불교의 진수를 수행경험을 통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론적이고 관념적으로 불교를 인식하는 입장보다는 실질적인 수행을 통한 인식을 선호해 오고 있다. 사실, 상좌부에 대한 인식도 막연하게 책만을 통해서 알려고 하는 자세보다는 직접 명상도 해보고 수행도 해 보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남방불교에 대한 경험을 직접 출가해서 승가공동체에 몸담아서 체험을 통해서 인식하고자 했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젊은 시절 직접 남방불교지역에 가서 체험을 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실론에 갔을 때, 운 좋게 와지라라마 사원에서 비구 보디스님을 만나게 되고, 그로부터 한수 배웠는데, 그로부터 섬 암자 불교학파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직접 이 섬을 찾아갔던 일이 있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80년대 초여서 주력 비구들은 안계시고, 스리랑카 출신 제자 비구가 암자를 지키고 있었다. 이 무렵 냐나포니카 대장로 스님은 캔디의 숲 속 암자로 옮겨간 이후였고, 비구 보디스님은 그의 후계수업을 밟고 있는 중이었다.

냐나티로카 조실의 대를 이어서 제 2대 조실로 활동하셨던 냐나포니카 비구는 유태계 독일인으로서 22세 때, 가족과 함께 베를린으로 옮겨서 생활할 때, 독일의 불교도들과 만나게 되고 불교를 접하게 되는데, 섬 암자에서 불교학파를 주도하고 계시던 냐나티로카 대장로 비구의 저작을 접하게 되었다. 그리고 냐나티로카 비구는 섬에 암자를 세우고 유럽의 비구들과 수행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그는 이내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는 몇 차례 편지를 냐나티로카 비구에게 보내서 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부모님을 봉양해야할 입장이어서 당장 섬으로 갈 수 없었으나, 부친이 사망하자, 1936년 실론으로 향했고, 드디어 섬 암자에 도달해서 비구계를 받고 불문에 들어가게 되었다. 1939년 나치가 폴란드를 점령하자, 그는 그의 어머니와 일부 친척들을 실론으로 옮기도록 했다. 이런 결과로 나치에 의해서 자행된 홀로코스트(Holocaust)를 면하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독일 제국과 독일군 점령지 전반에 걸쳐 계획적으로 약 6백만 명의 유태인을 학살한 사건이 홀로코스트다. 그 당시 유럽에 거주하던 9백만 명의 유태인 중 약 3분의 2가 죽임을 당했다. 유태인 어린이 약 백만 명이 죽었으며, 여자 약 2백만 명과 남자 약 3백만 명이 죽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유태인과 기타 피해자들은 독일 전역과 독일 점령지의 약 4만여 개의 시설에 집단 수용, 구금되어 죽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많은 유태인들은 이 홀로코스트에 대한 정신적 트라우마가 너무나 크다. 이들 중에는 유대교의 신을 믿지 않는다. 왜 유대교의 신은 이런 악의 상황을 그냥 지켜봤느냐는 것이었다. 이들에게 유대교의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유럽의 많은 유태인들이 불교에 심취한 경우를 보게 되는데, 비구들도 제법 되고, 이곳저곳에 명상센터를 운영하는 오너들도 제법 된다. 지금 말하는 냐나포니카 비구나 비구 보디 등이 다 유태계이다.

냐나포니카 비구는 섬 암자에서 수행을 한지 얼마가지 않아서 냐나티로카 장로와 함께 독일 국적이라는 이유로 1939년부터 브리티시에 의해서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되는데, 수용소에서 그는 《숫따 니빠따(the Sutta Nipata 經集)》를 독일어로 번역한다. 그리고 《아미담마삐따카(Abhidhamma Pitaka 論藏)》의 첫째권인《담마상가니 (Dhammasangani 法集论》를 번역하고 《싸띠빠따나 명상(Satipatthana Meditation 사념처》을 완성한다.

인도 북부의 데라 둔 교도소에 수감되었던 비(非) 브리티시 비구들은 1946년 2차 대전이 끝나자 석방되어 실론의 섬 암자로 귀환하게 되는데, 그의 스승인 냐나티로카 대장로에게 어떤 신심 깊은 불자가 캔디 근처에 있는 숲 지역을 보시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에게 제 2라운드인 숲 속 암자 시대가 전개된다. 이들 비구들에게도 나이가 들어가자 덥고 숨 막히는 섬의 기후가 어려웠던 모양이다. 캔디의 숲 속 암자는 시원한 지역이다.

1952년 냐나티로카 대장로와 냐나포니카 장로는 버마 정부로부터 1954년에 개최하게 될 제 6차 경전결집회의( the Sixth Buddhist Council)에 참가하도록 초청을 받는다. 냐나티로카 대장로와 냐나포니카 장로는 1954년 제 6차 경전결집대회 개회식에 참가하여 냐나티로카 대장로는 축하 메시지를 낭독하였다. 냐나티로카 대장로는 이후 실론으로 귀환하고, 냐나포니카 장로는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장로 문하에서 명상 수업을 받고 1956년 제 6차 경전결집대회 폐회식에서 냐나티로카 대장로의 축하 메시지를 대독하게 된다. 냐나포니카 장로는 명상 경험을 하고 난 다음, 그의 마스터 피스인《불교명상의 핵심》을 저술하게 될 동기가 부여된다.

1957년 냐나티로카 대장로는 연로한 관계로 건강이 악화되어서 입적하게 되고 수많은 국민들과 당시 반다라이케Bandaranaike) 수상(首相)과 정부의 요인들이 참가한 가운데 스리랑카 국장(國葬)으로 다비식을 치룰 정도로 냐나티로카 대장로는 국민적 존경을 받은 고승이었다. 냐나포니카 장로는 그의 스승인 냐나티로카 대장로가 입적하신지 6개월 후에, 스리랑카의 명사들과 함께 1958년 1월 그 유명한 〈불교출판협회(Buddhist Publication Society, BPS)〉를 창립하게 된다. 불교출판협회는 전 세계 3천여 회원들에게 불교문헌을 공급하고 있는데, 영어와 싱할라어로 저술된 책들은, 독일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포르투갈, 체코어, 힌디어와 중국어 등으로 번역되고 있다. 창립회장은 냐나포니카 장로(Nyanaponika Thera, 1958-1988), 2대 회장은 비구 보디 Bhikkhu Bodhi, 1988-2010)스님이었고, 3대 회장은 프리마시리 교수(Prof. P.D. Premasiri, 2011-현재)가 맡고 있다.

냐나포니카 대장로(겸허한 뜻으로 본인은 그냥 장로라고 호칭하기를 바랐다. 그의 스승인 냐나티로카를 대장로로 호칭하기 때문에)는 남은여생을 불교출판에 쏟았다. 그는 소책자 형태인 200여권의 바퀴(Wheel, 법륜)와 100권의 각엽(보리수 잎 Bodhi Leaves)에 많은 글을 남겼다. 1984년 불교출판협회의 편집책임자를 사임하고 1988년에는 회장직을 그만두고 명예회장으로 남았다. 그의 명성은 널리 알려졌으며, 빨리 불교대학교와 페라데니야 대학교에서 명박을 받고 아마라뿌라 종단으로부터 대종사 품계를 받는다.

1994년 7월 그의 제자와 도반들에 의해서 발간된 그의 전집이 봉증되고, 그해 10월19일 파란만장한 비구로서의 일생을 마감하고 입적에 들었다. 그의 대표작은 《아비담마 연구》, 《의식과 시간의 탐구》, 《부처님의 위대한 제자들》, 《불교명상의 핵심》, 《불법의 비전》을 저술하고 비구 보디와 공저로 《증지부》를 저술했다. 비구 보디는 냐나포니카 대장로의 후임으로 불교출판협회의 편집책임자와 회장직을 이어 받아서 2010년까지 그 직을 수행했다.

비구 보디(Bhikkhu Bodhi, 1944-)스님은 유태계 미국인으로 브루클린에서 태어났고, 1972년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1967년 학생 때부터 미국의 월남 절에서 행자 생활을 하고, 1972년 스리랑카로 건너가서 비구계를 받고 상좌부 스님이 되어 수행과 경전연구를 하였다. 1984년에는 냐나포니카 대장로 후임으로 불교출판협회 편집책임자와 회장직을 맡아서 2010년까지 봉직하면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2002년부터 미국으로 옮겨가 보디 사원을 창건하여 현재까지 저술과 명상수행을 하면서 미국인들을 지도하고 있다. 비구 보디스님은 대학승으로서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저술을 보면 다음과 같다.

《팔정도 The Noble Eightfold Path: Way to the End of Suffering (1984》

《중아함경 The Middle Length Discourses of the Buddha: A Translation of the Majjhima Nikaya (with Bhikkhu Nanamoli, 1995, Wisdom Publications)》

《증지부 Numerical Discourses of the Buddha: An Anthology of Suttas from the Anguttara Nikaya (with Nyanaponika Thera, 2000, Altamira Press)》

《상응부 The Connected Discourses of the Buddha: A New Translation of the Samyutta Nikaya (2000, Wisdom Publications)》

《증일아함경 The Numerical Discourses of the Buddha: A Translation of the Anguttara Nikaya (2012, Wisdom Publications)》

《아비담마 입문 A Comprehensive Manual of Abhidhamma: The Abhidhammattha Sangaha of Ācariya Anuruddha (2000, BPS Pariyatti)》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서 In the Buddha's Words: An Anthology of Discourses from the Pali Canon (2005, Wisdom Publications)》

《있는 그대로의 부처님 가르침 The Buddha's Teaching As It Is" (1981)》

《빨리어 코스 A course in Pali Language (2003)》

《중아함경 강의Majjhima Nikaya lectures (2003–2008)》등.

숲속암자학파

사진 1: 비구 보디스님이 설립한 뉴저지에 있는 보디 사원

사진2: 비구 보디(1944-)

사진 3: 스리랑카 캔디 소재, 숲 속 암자

사진 4:비구 냐나투지타(Bhikkhu Nyanatusita, 1967-)

실론불교역사에서 이들 섬 암자에 이은 숲속 암자 불교학파는 큰 족적을 남기고 있다. 이 들 불교학파 비구들의 저작은 영어권은 물론 타 유럽어로 번역되어 많은 영향을 끼쳤다. 물론 실론 자체 내에 싱할라어로 저작된 저술이 많겠지만, 상좌부의 핵심 경전이나 주요 논전들을 영어나 독일어로 번역하여 세상에 내 놓은 것은, 전 세계의 많은 독자들로 하여금 상좌부에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상좌부의 종가라고 할 수 있는 싱할라어에 대한 구사능력이 없는 한, 영어 저작을 통해서 접근할 수밖에 없다. 이런 측면에서 이분들의 저술은 실로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그 분들의 공로가 지대하다고 하겠다. 나는 이분들을 섬 암자와 숲 속 암자 불교학파라고 부르고 싶다. 이 분들의 특징은 철저하게 상좌부 비구로서의 율장을 지키면서 수행과 학문을 병행했다는 점이다. 관념적이거나 너무 철학적인 내면의 심학(心學)에 기울여지지 않고, 인문학의 본령인 어문사철(語文史哲)의 균형을 이루면서 특히 어학(語學)에 비중을 크게 뒀다는 점이다. 이들 불교학파에게는 빨리어가 기본이다. 그리고 싼쓰크리트어와 싱할라어이다. 아시아의 전통적인 학문 연구 방법론보다는 유럽이나 미국의 근현대학문 방법론에 의했다는 점이다. 불교사에서 역경자들의 역할과 공로는 너무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의 경우에서도 이런 논리는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불교가 인도에서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해질 때, 서역이나 중앙아시아 인도 출신 역경승(譯經僧)들의 역할은 너무나 컸던 것이다. 한국불교는 중국어로 된 한문 경전을 접하게 되었는데, 한문을 모르면 불교경전의 진수 파악이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한국의 역대 대다수의 스님들은 한문습득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대승경전을 접하기 위해서는 한문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하고, 불교학연구 측면에서는 일본의 근대불교학 방법론에 입각하여 일본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크게 의존해 온 것이 실상이다. 이에 반해서 상좌부 삼장에 대한 접근은 참으로 어려운 상항이었다. 이런 차원에서 실론의 불교학파의 저작들은 영어해독이 가능한 일부 극히 소수의 한국인들에게는 필수 통로였다. 그 가운데 나 같은 사람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갖는다. 그것도 가장 초기에 접했다는 데에 긍지를 갖고 있다.

지나간 이야기 이지만, 실론의 불교학파들의 저작을 접하고, 또 실론 출신이나 영국 유럽 출신 학자들의 실론 불교나 상좌부 전반에 대한 저술을 접하면서, 당시 30대 초반인 나로서는 영어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빨리어나 싼쓰크리트어 보다 영어가 우선이었음을 절감했다. 영어가 능통해야 이런 저술에 접근하고 사전류의 참고서를 활용할 수 있었다. 결국 영국에서 5년간 유학을 하면서 영어에 몰입, 심화시켜서 영어로 인문학기초를 세우고 어느 정도 능통한 영어 실력을 쌓았던 것이 두고두고 자산이 되었다. 나의 상좌부 연수나 체험은 이렇게 영어를 통해서 인식할 수밖에 없었고, 이 과정에서 실론의 불교학파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았고, 지금도 이 분들에 대한 존경은 변함이 없다. 내가 실론에서 영향을 받은 것은 비단 외국인 출신들로 구성된 불교학파 뿐만이 아니다. 실론 출신 불교 운동가와 학승과 학자들로부터 받은 영향 또한 막대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다음 회에 소개해 보겠다.

특히 불교학 연구에 있어서, 상좌부는 영어를 통한 빨리어 원전을 접하는 길이 지름길이다. 상좌부의 경전어(經典語)는 빨리어이다. 대승경전은 싼쓰크리트어가 경전어지만, 한문 또한 경전어이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어가 경전어이다. 한국인으로서 불교학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한문 일어 영어(불어)의 기본에다가 빨리어 싼쓰크리트어 티베트어를 해야, 불교학자로서의 소양을 갖춘다고 보기 때문이다. 과연 이 조건에 부합하는 학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겠다. 아마추어 세미(半)불교학 연구자인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실론의 불교학파는 참으로 본 받아야할 모델들이고, 서구의 근현대 학문 방법론에 의한 이분들의 저서를 통해서 체계를 세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치란 박사
해동경전어 아카데미 원장
세계불교대학(WBU)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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