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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글올린 게시글: 2016-12-19, (월) 11:38 am 

가입일: 2016-11-29, (화) 5:42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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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승가와 율장 재인식해야

사진1: 불교의 생명은 승가공동체와 비구(비구니)들의 활동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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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isabogum01.jpg [ 167.5 KiB | 373 번째 조회 ]

한국불교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분들은 하나같이 앞으로의 우리 불교를 걱정하고 소멸하지 않을까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인식의 차이다. 안에서 있는 분들은 미래의 한국불교를 보는 눈이 확실치 않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안에 있으면서는 심각성을 인식하는데 다소 무디지 않느냐 하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도 밖으로 좀 다니면서 다른 나라 불교도 보고 우리 불교와 비교도 하면서, 현재의 한국 종교지형도 예리하게 분석하면서 뭔가 관심을 갖는 분들이라야 희미하게나마 미래의 우리 불교가 어떻게 전개되리라고 하는 분석을 하지 않을까 한다. 우리 불교의 미래에 대해서 다들 심각성을 느끼지 않는 분들이 있겠는가마는 최근 들어서 돌아가는 형국을 보면, 그나마 이런 문제에 초점을 두고 목소리를 내는 분들조차도 점점 소수화 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우리불교의 교세가 지난 몇 년간 급속하게 약화되어 가고 있는데, 눈에 띠게 불교의 활동력이 약해지고 있다. 신도의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느낌이다. 서울에서도 이름난 몇 군데 사찰을 제외하면 신도들의 움직임이 극히 미약하다고나할까, 대부분의 사찰에서는 활동이 별로 없다. 과거의 타성과 습관에 젖어서 변화를 모르고 구태의연한 모습을 바꿀지를 모른다. 무조건 부처님께 기도만하라는 식의 강요 아닌 강요만 있을 뿐이다. 부처님 오신 날을 겨냥한 연등 달기에만 집중되어 있다는 느낌과 장등 밝히기 등의 전근대적인 신앙형태에서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를 못하는 모양이다. 물론 이런 형태의 불교신앙도 필요는 하다. 결코 나쁘다고는 보지 않는다. 다만 너무 오래 이런 식으로만 진행되다보면, 불교의 본질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을까 해서 걱정이다. 사찰마다 다 그런 것은 아니다. 물론 현대적인 변화와 개혁불교를 위한 노력도 많은 사찰에서 하고는 있지만, 대부분이 전근대적이 아닌가 한다.

나는 한국불교의 가장 당면 문제는 두 가지 측면이라고 본다. 그것은 승가의 문제와 율장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불교신도가 많아도 승가가 없는 불교란 상상할 수가 없다. 한때 재가불교가 한국불교를 이끌어야한다는 논리가 우세한 적이 있었고, 재가불교지도자들이 마치 한국불교의 희망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주창한 적이 있었다. 교계언론이나 잡지 논문 등을 통해서, 재가불교에 뭔가 기대를 거는 듯한 논조와 주장들이 있었지만, 이런 관점은 불교의 본질을 잘못 짚은 근시안적 태도가 아니었는지 되돌아봐야 하고 당사자들은 반성조차 하지 않는데 이런 관점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불교의 성격상 승가가 없는 불교를 어떻게 생각한단 말인가. 지금 우리 불교의 승가공동체는 거의 해체단계에 와 있다, 불과 소수의 사찰에서만이 승가공동체가 굴러가고 있을 뿐이다. 설사 굴러가고 있다고 할지라도 과연 만족스러운 승가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는지 깊이 반성해야하고, 어떤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승가공동체는 해체되고야 말 것이다. 과연 25개 본사 제도도 꼭 필요한 것인지, 재고해 봐야 한다. 10개 정도 아니면 다섯 개 정도로 줄여야 한다고 본다. 본사마다 반대하겠지만, 이런 추세라면 과연 본사로서의 존속이 가능하겠는가. 물론 존속이야 되겠지만, 승가공동체로서의 본사가 존속할 수 있을는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국불교는 다시 살아난다고 본다. 사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수행공동체로서의 승가교육과 수행은 이제 한두 곳의 사원으로 집중시켜야 한다고 본다.

다음은 율장의 재인식이다. 비구 250계 비구니 348계를 준수하면 되는데, 거의 사문화 수준에 이르고 말았다. 승가와 율장을 재인식해서 뭔가 새롭게 하지 않으면, 수행도 교육도 계율도 다 없어지는 것은 시간문제가 아니겠는가. 너무 개인주의적인 독살이 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위선이 극해 달해서 이래도 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데, 우리 불교의 앞날이 정말 걱정된다. 하기야 나 같은 한 사람이 무슨 관점을 갖든지 간에 한국불교는 굴러갈 수밖에 없겠지만, 적어도 필자의 감각으로는 지난 몇 년간 우리 불교의 동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고 본다. 지금 우리 불교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승가공동체 활성화와 율장에 대한 재인식이다. 요즘처럼 율장이 사문화된 적이 있는지 재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계맥의 정통성 여하를 떠나서, 실제로 준수가 중요하고 율장의 실천과 실행이 중요하지 무슨 서상계가 어떠하니 하면서 학술적으로 정당성만을 강조하는 일부 논자들의 주장 또한 실소를 금치 못할 일이다.

사진2: 남방 상좌부의 한 사찰에서 비구계를 받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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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나야(위나야=율장)는 본래 의미가 ‘이끌다’ ‘교육하다’ ‘훈련(실천)하다’ 등이다. 준수하고 지킨다는 의미보다는 수행의 측면에서 교육하고 수련 한다는 의미가 더 강한 것이다. 율장은 승가를 떠받치는 기본구조로서의 규칙이다. 규칙이 없는 조직은 없다. 부처님은 승가공동체를 형성하고 두 날개의 축으로 제자들을 이끌었다. 하나는 법 즉 진리(철학)의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율장에 의한 승가공동체의 운영이었다. 법(진리=교리)과 실천(비나야=율장)이었다. 한마디로 이런 승가의 전통은 한국에까지도 그대로 전파가 되어 왔다. 교리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지만, 율장 면에서도 법장부파의 《사분율》이란 텍스트가 그대로 전달되어 와서 우리 승가에 표준 율장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런 원칙을 저버리고 승가공동체의 해체에 의한 개인주의적인 사생활화라든지, 승가의 모법(母法)인 율장 가운데 계목(戒目)과 계단(戒壇)의 모든 절차와 의식을 규정해 놓은 《사분율》이란 텍스트를 철저하게 재인식하고 소의경전인 《금강경》 이상으로 존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본다.

보검(해동세계불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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